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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2일 월요일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처절한 사투 중

힘없이 남겨진 동물들, 그리고 지킴이들


굶주림ㆍ야생동물 습격에 떼죽음

살아있는 개ㆍ고양이ㆍ소들도

우리 떠난 이후 생사 불분명

먹이 주러오는 자원봉사자 등

“아우슈비츠가 따로 없었어요”

정부는 살처분으로 수습 급급

보호단체들도 원전사고 경험 전무

5년 지나서야 대응노력 자리잡아


후쿠시마 원전 사고 4주기를 맞은 지난해 3월, 오염지역 내 가축 살처분 과정에서 한 농가 주인이 현장을 찾아 희생된 소를 추모하고 있다. 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헤 프리랜서 기자 pe deletree@gmail.com

“피난한 날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마다 고향집에 왔어요. 개들 밥을 주러 말이죠. 직장 때문에 이제 이사가야 하는데 얘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난 12월 후쿠시마현 이다테에서 만난 다카기 마사카츠(57)씨의 사연은 절절했다. 그는 원전사고 4개월 뒤인 2011년7월 소마로 피난했다. 원전인근 주민들은 사고 직후 대피했지만 40㎞나 떨어진 이다테는 방사능 오염이 심각했는데도 피난이 늦었다. “안전하다”는 전문가들의 말만 믿고 있던 주민들은 참담한 심정으로 뒤늦게 마을을 떠났다. 

그가 좀처럼 발걸음을 뗄 수 없었던 건 반려견 4마리 때문이었다. 가설주택에서는 키우는 게 금지된 터라, 그날부터 다카기씨는 새벽 4시에 일어나 30분 거리의 고향집에 들러 사료를 주고 출근했다. 벌써 5년째, 하루도 거른 날이 없었다. 그간 3마리가 병으로 죽었고 강아지 한 마리가 태어났다. 이젠 엄마개 코로(14)와 딸 치비(4)가 큰 집을 지키고 있다. 코로는 일본 토종 사냥개인 키슈종으로 본래 공격적 성향이 강했지만 지금은 제 집 밖에도 잘 나오지 않을 정도로 겁이 많아졌다. “사람이 없으면 산에서 멧돼지가 내려오고 야생 원숭이들이 지붕을 뛰어다녀요. 얘들이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직장인 일본농협의 후쿠시마 영업점들이 통폐합되면서 그는 이번 봄부터 고리야마 지점으로 전근 발령을 받았다. 차로 한 시간이 넘는 거리다. 지금처럼 새벽에 밥 주고 출근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는 “데려갈까도 생각해봤지만 아무래도 도시에 적응하지 못할 것 같다. 이래저래 답답하고 막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자원봉사자가 방사능 오염이 심각해 사람이 살 수 없는 이다테에서 남겨진 개를 데리고 산책하고 있다. 이 개는 산에서 내려오는 야생 멧돼지를 잡기 위해 설치된 덫에 걸려 다리 한 쪽이 절단됐다. 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헤 프리랜서 기자 pe deletree@gmail.com

후쿠시마 반려동물 대부분 초기에 죽어 

쓰나미와 원전 참사 앞에서 생명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도 그럴진대, 사람에 절대 의존해야 하는 반려동물들은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후쿠시마에서 고양이를 구조해온 수의사 유이 아키코씨는 처음 이 지역에 왔던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사람이 떠난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개와 고양이들이 떼로 몰려 들었어요. 먹을 것 좀 달라고, 아니 간절하게 도와 달라는 눈빛이었지요.” 피난민들은 워낙 급하게 떠나느라, 한편으론 곧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에 반려동물들을 무방비 상태로 남겨뒀다. 집에서 키우던 개 고양이는 자생능력이 부족해 굶어 죽거나 야생동물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었다. 유이씨는 “발견 당시 살아있는 동물들도 치명적 질병에 감염돼 있었다”며 “정부는 손을 놨고 민간이 대처하기엔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다카기씨 케이스는 예외적이었다. 이다테 지역의 피난이 늦어진 건 사람에겐 불행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동물들에게는 다행이었다. 다른 지역을 교훈 삼아 이다테 주민들은 동물들의 떼죽음을 막을 수 있었다. 사고 직후 방사능 오염 때문에 접근 자체가 금지됐던 원전 인근지역과 달리 이곳은 낮 시간 출입이 가능해 주인들이 주기적으로 동물들을 보살필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곳 반려동물이 모두 멀쩡했던 건 아니다.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에 목을 물려 상처가 난 개, 멧돼지를 잡기 위해 놓은 덫에 걸려 다리 하나가 잘려나간 개 등이 심심찮게 보였다.

후쿠시마에서 구조한 고양이를 중성화 수술시키고 새 주인을 찾아주는 지원활동을 하고 있는 가와사키의 한 동물병원. 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헤 프리랜서 기자 pe deletree@gmail.com

가축들은 더 열악했다

“아우슈비츠가 따로 없었어요. 우리 안에 사체들이 널려 있었고, 살아있는 동물들은 들쥐에 뜯긴 몸으로 계속 울어댔죠. 몸이 너무 약해 물을 줘도 마시지 못하고 픽픽 쓰러졌어요. 한 돼지 우리에서는 떼로 나가보려고 발버둥을 쳤는지 사체들이 한쪽에 몰려있더라고요.”

다니 사츠키(35)씨는 원전 사고 한 달 뒤의 참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당시 후쿠시마 원전 반경 20㎞ 안에는 소 3,500마리, 돼지 3만 마리, 닭 67만 5,000마리가 방치돼 있었다. 가축의 절반 이상은 굶어 죽은 것으로 추정되며, 우리를 떠나 야생화된 가축들의 개체 수와 그들의 생사는 아무도 모른다. 도쿄의 한 구호단체에서 일하고 있던 그는 후쿠시마 동물들의 상황이 궁금해 직접 현장을 찾았다. “극한 상황에서 큰 피해를 입는 건 언제나 힘없는 약자잖아요. 사람은 피난이라도 갔지만 동물들은 영문도 모른 채 계속해서 피폭을 당한 거죠. 이 점에서 반려동물, 가축, 야생동물 모두 피해자입니다.” 

정부는 동물들에 대해 가장 ‘손 쉬운’ 대응을 택했다. 살처분이었다. 일본 정부는 사고 2개월 뒤인 2011년 5월 소에 대한 살처분을 시작, 작년 초까지 약 1,800마리를 방사성 폐기물과 함께 묻었다. 살처분에는 농가의 동의가 필요했지만 어차피 후쿠시마산 육우는 유통이 금지된 터였고, 주민들 또한 장기 피난에 지친 상태여서 달리 선택이 없었다. 오직 오쿠마, 나미에, 도미오카 등 세 마을만이 살처분에 반대했을 뿐이다. 이들 지역 소수의 주인들이 피폭 위험을 무릅쓰고 고향에 남아 지금도 가축들을 키우고 있다.


다니씨는 도저히 그곳을 떠날 수 없었다고 했다. 고민 끝에 회사를 그만두고 전혀 연고도 없는 후쿠시마로 거처를 옮겼다. 처음에는 개인자격으로 봉사를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같은 사람들과 연대가 생겼다. 현재는 접근제한구역인 오쿠마에 남겨진 소 7마리의 밥을 매일 챙기고 있다. 오쿠마에서 4시간 거리로 피난간 나이 많은 농부가 그에게 간곡히 청했다고 한다. 

다니씨는 교통비 사료비 등 모든 비용을 스스로 책임지고 있다. 기부만으론 턱없이 부족해 학원강사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새벽까지 하고 있다. 심지어 대출까지 받았다.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가”란 질문에 그는 “이건 동물이 죽고 사는 문제만이 아니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 과정이다. 사람이 동물들을 우리에 가둔 만큼 책임도 사람이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후쿠시마에 남겨진 소들은 약 500마리로 추산된다. 전문가들은 “남은 소들이 황폐화한 땅의 지력을 회복시켜주고 사방을 덮은 풀들을 먹어 치움으로써 산불을 방지해주고 있다”면서 추가 살처분을 반대하고 있다. 오다카지역 축산농가 12명이 설립한 한 비영리기구는 도호쿠대 연구진 등과 연계, 소 90마리를 대상으로 소의 방사선 영향에 관한 연구조사도 진행하고 있다.

후쿠시마 한 농가에 오염지역 소들의 살처분을 반대하는 메시지와 함께 원전 사고로 목숨을 잃은 소들의 두개골이 놓여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초까지 약 1,800마리의 소들을 살처분했다. 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헤 프리랜서 기자pe deletree@gmail.com

아직은 갈 길 먼 대응체계 

‘7월 7일/ 수분이 있는 사료를 주고 물을 갈아줌. 산책 20분 - 키요가와 시모무라 작성’

취재진이 동물보호단체 소라(SORA)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이다테를 찾았을 때 개들이 매여있는 집에는 이런 노트가 비치되어 있었다. 노트 첫 장에는 그 집 개들의 이름, 색, 나이, 질병내역 등이 상세히 적혀있었다. 자원봉사자 하세가와 준씨는 “봉사자들이 중복해서 사료를 주거나 적절하지 않은 처방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며 “2015년부터 시작해서 현재 40곳에 노트가 비치돼 있다”고 설명했다. 참사 5년이 흐르면서 이처럼 동물관련 민간단체들의 대응노력도 차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재난동물대책단체 아니스(ANICE)도 원전사고에 대처하는 자체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히라이 히토시 대표는 “13년째 단체를 운영하면서 지진 화산 태풍 등 각종 재난현장에서 조사를 해왔는데 원전 사고는 처음이라 어디서도 가이드라인을 찾아볼 수 없었다”며 “봉사자들이 몰려왔지만 방사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안전상 문제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그는 ▦구조 현장에 40세 이하 여성은 보내지 말 것 ▦적절한 보호장구를 착용할 것 등 사람에 대한 규정부터 ▦오염지역에서 동물을 구조한 뒤에는 먼저 씻기고 방사선 수치를 체크하며 ▦그래도 수치가 높으면 털을 깎는다는 식의 기초적인 동물구호절차도 정했다. 그러나 그는 “동물들의 내부 피폭에 대해서는 누구도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조된 동물들은 보호소로 보내지지만, 그게 해결책은 아니다. 한 동물단체 봉사자는 “민간 보호소의 경우 후원금을 엉뚱한 곳에 쓰고 정작 내부 동물복지에는 눈감는 사례들이 종종 발견된다. 동물들이 늙어가면서 입양될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고 있어 지저분한 우리에서 남은 생을 보내야 하는 처지”라며 안타까워했다.

입양이 성사돼 새 삶의 환경이 마련된다 해도, 반려 동물들은 첫 주인의 흔적을 절대 잊지 못한다. 3.11 참사 현장에서 구조돼 1년 만에 새 주인을 찾은 반려견 모모는 지금도 경트럭 엔진 소리만 들으면 멍멍 짖는다고 한다. 담배를 피우거나 머리를 기른 남성을 유독 따르기도 한다. 옛 주인의 모습과 습관이 깊이 각인된 까닭이다.

후쿠시마 피해자를 사람으로만 국한 짓는 건 부당하다. 어쩌면 가장 큰 피해자는 어쩌면 피해사실조차 모른 채 죽어간 동물들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동물들은 이 순간 그저 사람만을 그리워하고 있다. 
<기사 출처 : 한국일보>

2016년 2월 6일 토요일

"선생 고맙소" 말에 무료 이발 멈출수 없었다

[20년째 설맞이 요양원 봉사 '69세 가위손' 조남진씨]
소아마비 앓아 다리 불편해도 후배와 7~8시간 100명 머리 손질
"이맘때면 자식들이 찾아올까봐 어르신들, 머리 모양에 더 예민"
"우와! 우리 어머니, 엄청 예뻐지셨네."
4일 오후 7시 강원도 홍천의 한 노인 요양원. 의자에 앉은 백발 할머니의 등 뒤를 왔다 갔다 하며 머리를 매만지던 조남진(69)씨가 너스레를 떨자 주위에서 웃음꽃이 피었다.
할머니는 "남 부끄럽게 그런 소리를 해" 하면서 손을 가로저었다. 조씨가 실눈을 뜨고 할머니 머리를 다시 살피고선 가위질을 몇 번 더 하더니 "이발 끝!"을 외쳤다. "고마워서 어떡해." 할머니가 함빡 웃으며 일어섰다.
조씨는 이 요양원의 '전속 이발사'다. 그렇지만 돈은 받지 않고 봉사하는 전속 이발사다. 조씨는 홍천 옆 춘천시 후평동 한 주택가에서 40년째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다. 평소 오후 7시면 자기 이발소를 지키고 있을 시간이지만 4일은 일찌감치 문을 닫고 요양원에 왔다. 조씨는 지난달 26일 요양원에 들러 노인 90여 명의 머리를 깎았다. 오전 7시부터 시작한 작업이 오후 5시가 넘어서도 끝나지 않자, 이날 재차 이발 가위를 들고 요양원에 온 것이다.
이발사 조남진씨가 지난 4일 강원도 홍천의 한 노인 요양원에서 어르신을 위한 무료 이발 봉사를 하고 있다. 조씨는 1997년부터 20년째 이 요양원에서 봉사를 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조씨가 요양원에서 이발 봉사를 시작한 것은 1997년 1월이다. 그때도 설날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이 요양원에서 일하던 먼 친척이 "명절이 다가오는데 노인들 머리가 모두 장발이라 걱정"이라며 부탁한 것이 계기가 됐다.
처음 노인들 머리를 깎으러 갔을 때 머리가 헝클어진 백발노인 20여 명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걸 보곤 깜짝 놀랐다고 한다. 10명쯤 이발하자 손가락이 저려 왔다. 속으로 '괜히 사서 고생하는구나' 후회할 무렵, 70대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고맙소."
조씨는 "태어나서 '선생님' 소리는 그때 처음 들었다"며 "어쩐지 가슴이 뿌듯해졌고 그때부터 매달 요양원에서 노인들 머리를 깎게 됐다"고 했다.
조씨가 이발 봉사를 해온 20년 새 요양원에 사는 노인은 20여 명에서 100여 명으로 다섯 배가 됐다. 조씨는 "그만큼 자식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는 노인이 많아졌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했다. 세 살 아래 후배 이발사 윤동현(66)씨가 18년째 조씨를 돕고 있지만, 둘이서 100여 명의 이발을 끝내려면 7~8시간이 걸린다. 이발하는 날이면 두 사람은 오전 6시쯤 춘천에서 차로 출발해 저녁에야 집으로 돌아간다.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조씨는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쪽 다리가 가늘고 짧다. 집안 형편 때문에 공부는 초등학교로 끝이었다. 할 수 있는 일도 마땅치 않았다. 열여덟 되던 해 하사로 군 복무 중인 친형이 살던 강원도 양구를 찾았다가 우연히 그곳에서 동향 선배가 하는 이발소에 들어갔다. 거기서 배운 이발 기술로 집을 얻고 딸 셋을 어렵게 키웠다.
조씨는 매달 한두 차례, 이발소가 문을 닫는 날인 화요일에 요양원을 찾는다. 조씨가 노인들 머리를 만지면서 특별히 신경 쓰는 시기가 설과 추석 밑이다. 노인들은 이때만 되면 유독 머리 모양에 예민해진다. 자식들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라고 한다. 조씨는 "그렇지만 요양원에 있는 노인 가운데 20%가량은 명절에도 자녀들 얼굴을 못 본다더라. 머리를 깎으면서 말동무도 되어드리고 하는 게 보람"이라고 했다.

그 사이 세상을 뜬 노인도 적잖다. 102세였던 노인은 조씨가 지난해 10월 머리를 깎아준 게 마지막이었다. 조씨는 최근 허리 통증에 시달린다. 장애 때문에 한쪽 다리에 제대로 힘을 줄 수 없어 생긴 것이다. 이번 설을 앞두고 통증이 심해졌지만, 반갑게 맞아주는 노인들 얼굴을 떠올리며 힘을 냈다. 조씨는 "그래도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올 자식들을 기다리는 노인들을 생각하면 한 분이라도 더 멋지게 이발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올 설에는 더 많은 자녀가 요양원 노인들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기사 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