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제 대학을 나와서 대기업에 들어가도 50세 전에 잘리는 직장인이 많은 요즘 세태를 감안하면 노후를 미리미리 준비해야 하지 않겠어요?" 지난 8일 서울 강서구 롯데시네마 2층의 한 사업설명회장. 웬만한 샐러리맨들이 소파에 늘어져 있을 일요일 오후 5시인데도 300여 석 규모 설명회장은 강의를 들으러 온 수백 명의 수강생들로 열기가 후끈했다. 대부분 참가자는 30·40대 직장인들로 보였다. 이들이 모인 곳은 한 외국계 기업의 네트워크 마케팅(넓은 의미의 다단계 판매) 사업설명회장이었다.
숱하게 언론 보도에 나온 대로 '소비자'가 곧 '판매자'가 돼 회원을 끌어들이면 끌어들일수록 돈을 많이 버는 방식이다.
대기업 과장으로 일하고 있다는 하정우 씨(가명·42)는 "주변 금수저 동료들은 상가나 오피스텔을 사서 벌써 임대사업을 하고 있다"며 "차장 승진에서 미끄러진 뒤 '언제까지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 탓에 '투잡'이라도 뛰어볼 요량으로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날 설명회장에 가장 많이 나온 연령층은 40대였다. 40대는 한국 중산층에 진입한 대표 연령대다. 돈도 백도 없는 중산층은 실직, 도산 등으로 한번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다 보니 '투잡'이라도 뛰어야 한다는 절박감이 최근 극심한 내수 불황 속에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에는 벼랑에 몰린 중산층이 더 큰 파국을 맞는 사례도 빈번해지고 있다. 서울에서 광고 관련 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A씨(60)는 지난달 고향인 밀양 초동면 한 단독주택에서 방화를 일으켜 자신과 노부모님 목숨까지 잃게 만들었다. 경찰은 도산 이후 생활고에 시달리던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 중산층의 몰락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특히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경제연구소 경제논집 최근호에 게재된 표학길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부)의 논문('소득·소비분배구조 변화의 정책적 함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실질소득 분포 구조는 2008년 금융위기를 전후로 크게 변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부터 20년 동안 중상위권(5~7분위) 소득계층의 실질소득증가율이 149~153%로 전체 10분위 계층 가운데 가장 높았다. 반면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후인 2008~2015년에는 같은 중상위권 소득증가율이 6~8%에 그쳐 하위계층(1~4분위) 11~14%보다 훨씬 낮았다. 금융위기 전에는 소득 증대를 통한 계층 신분 상승이 중산층에서 활발하게 나타난 반면 금융위기 이후에는 복지를 위한 증세와 일자리 불안 등으로 중산층 삶이 오히려 더 팍팍해졌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표 교수는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소득계층과 소득증가율 사이에 이처럼 중산층의 실질소득증가율이 하위 계층보다 떨어지는 이른바 '코끼리 곡선'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의 블랑코 밀라노비치 뉴욕시티대학원 교수가 2013년 제시한 곡선으로 1988~2008년 20년간 분위별 세계 소득분포와 실질소득증가율 사이에 마치 코끼리 옆 모습 같은 모양의 그래프가 나타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밀라노비치 교수가 지구촌의 계층별 소득증가율을 분석한 결과 중국과 같은 지구상의 중간 소득 그룹과 세계 가구소득 최상위 1% 그룹의 소득증가율은 60~80%로 크게 증가한 반면 세계 가구소득 상위 60~80% 분위에 속한 선진국 '중하위 계급'은 소득이 거의 늘지 않았다.
표 교수는 "최근 정부의 내수 진작 정책이 효과를 못 내는 것도 전통적으로 소비를 주도해온 중상위 소득계층의 상대적 박탈감이 크기 때문"이라며 "중상위 계층의 상대적 박탈감이 중산층 주도의 정치·경제적 이반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기사 출처 : 매일경제>
노숙인 사망, '고인 물'처럼 갈수록 심각해져 '의자 뺏기' 딜레마 갖힌 노숙인, 공간 부족해 누군가는 노숙해야 전문가들 "기존 '관리' 중심 대책서 '주거 중심' 대책으로 전환해야"
‘이슬을 맞으며 잠을 자는 사람.’
‘노숙인’(露宿人)을 글자 그대로 풀면 이렇다. 얼핏 시처럼 들리지만 집 없이 이곳 저곳에 몸을 기대야 하는 이들의 삶은 전혀 시적이지 못하다. 요즘처럼 추위가 뼛 속을 파고드는 겨울이 오면 특히 그렇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겨울, 노숙인들은 오늘도 죽음의 공포를 온몸으로 견뎌내고 있다. 매년 그래왔던 것처럼.
△‘고인 물’처럼 심각해지는 노숙인 사망= ‘350여명’. 매해 거리 및 자활·재활·요양 시설 등에서 사망하는 노숙인들의 숫자다. 대략 하루에 한 명 가량의 노숙인이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이 수치는 거리에 내몰린 사람들이 급속히 늘어난 IMF 시절 이후 급증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 따르면 1998년 5명에 불과했던 노숙인 사망자는 2010년 142명, 2002년 273명 등으로 꾸준히 늘었고, 2005년 이후부턴 ‘300명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300명을 처음 넘어선 2005년 이후 한해 노숙인 사망자수는 350 여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노숙인의 사망은 입구는 있는데 출구는 없는 고인 물과 같아서 시간이 갈수록 더 늘어난다는 문제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인구 10만명당 사망률을 의미하는 ‘표준화 사망비’로 보면 노숙인들의 사망률은 일반인에 비해 2배 이상 높다. 특히 질병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이 낮은 20대 노숙인의 사망률은 같은 또래에 비해 최대 11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길거리에서 잠을 자는’ 환경 자체가 노숙인들 건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다. 주영수 한림대 의과대학 교수는 “지난 1999년~2009년까지 사망 원인을 종합해 보면 다쳐서 사망하는 사례들이 가장 흔했고, 술과 관련한 간 질환이 그 다음이었다”라고 분석했다.
노숙인들은 “살아서도 존중받지 못한 인생인데 죽어서도 존중받지 못하다”고 토로한다.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가 사체 인수를 포기한 고립 사망자의 경우 장사법(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시체 처리 규정 때문에 제대로 된 장례조차 치를 수 없기 때문이다.
노숙인들을 포함해 이처럼 아무도 돌봐주지 못한 외로운 죽음들이 매해 1,000명에 이른다. 그 해 사망한 노숙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매년 동짓날 열리는 ‘홈리스추모제‘의 공동기획단은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법적 연고자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노숙인들은 동료의 죽음을 애도할 기회마저 얻지 못하고 있다“며 “적절한 장례를 보장받기 위한 공영장례제도의 도입과 기초생활보장 장제급여의 현실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경계를 배회하는 노숙인들= 정부에 따르면 국내 노숙인 수는 지난해 기준 1만 2,000여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자활·재활 시설 및 일시보호 시설 등에 임시적으로 생활하는 이들이 1만1,000여명 가량 된다.
특히 시설 생활 노숙인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데 반해 1,000여명 가량의 노숙인들은 그 숫자가 줄지 않은 채 거리를 배회하는 일이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거리 노숙인들은 가정 불화 및 가족 해체를 경험했고, 자퇴 및 퇴학 등 정규 교육 과정에서도 배제되고, 법률 위반 등의 범죄 행위에 노출된 경험이 높은 편“이라며 “약물 및 술의 의존 경험도가 높은 특성을 갖고 있다”고 진단했다.
더욱 큰 문제는 이 통계 자체가 과소 추계돼 있다는 점. 정부 수치엔 찜질방이나 PC방, 고시원, 만화방 등 관리의 사각지대를 전전하는 이들이 빠져 있다. 이런 주거 취약 계층을 모두 포함할 경우 그 수는 정부 추산 22만 여명에 달한다.
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노숙인은 인구학적으로 고정된 양상이 아니라 역동적인 생활 상태에서의 한 국면이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를 내기 어렵다“며 “특히 우리나라는 행정의 가장 중요한 도구로 ‘주민등록상 거주지’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으론 노숙인을 제대로 포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주거의 불안정성은 많은 문제를 낳는다. 죽음의 공포, 건강의 위협이 이들에겐 일상화 돼 있다. 지난해 정원오 성공회대 사회복지학 교수가 노숙인 300명을 대상으로 사례 분석한 결과 만성질환에 시달리고 있다는 비율이 전체의 36.2%에 달했고, 알코올 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는 이들도 19.3%나 됐다.
범죄로의 노출도 문제다. 유홍준 성균관대 사회학 교수 등이 실시한 2011년 연구 프로젝트에 따르면 무임승차나 노상방뇨, 음주소란 등 일탈 행동을 저지른 적이 있다고 응답한 노숙인 비율이 66.8%에 달했다. 이 중 폭력, 절도, 금전 갈취 등을 해본 이들이 각각 11.3%, 4.4%, 24.3%나 됐다.
반대로 노숙인이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사례도 빈번하다. 여성 노숙인이 성착취 및 성폭력을 당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21.7%에 달했다. 일반인들에 의한 언어·신체 폭력 뿐 아니라 인신·장기 매매 위협, 최근엔 명의 도용에 따른 금융 범죄에 노출되는 경우도 급증하고 있다는 게 노숙인 관련 단체들의 지적이다. 노숙인들은 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 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살아가고 있다.
△ ‘의자 뺏기‘ 딜레마 갖힌 노숙인들 = 우리나라의 노숙인 시설은 현재 150곳이다. 자활시설이 64개소로 가장 많고, 재활요양 시설(58), 쪽방상담소(10), 종합지원센터(10), 일시보호시설(8) 등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배치돼 있다. 자활 시설의 경우 1곳당 노숙인 30.5명이, 재활·요양 시설은 1곳당 144.1명이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소한의 사적 공간이 담보되지 못하는 집단 거주 환경은 시설 노숙인들으로 하여금 ‘일탈’을 욕망하게 만든다. 최성남 전국노숙인시설협회 정책위원장은 “장애인 단체의 경우 대규모 시설이 야기할 수 밖에 없는 인권침해의 구조적 장벽을 허물기 위해 30인 이상의 생활 시설은 없애기로 결의하고 있다”며 “반면 평균 140명이 넘는 노숙인들의 재활 및 요양 시설의 소규모화에 대해선 아무런 대안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평’ 쪽방은 자기 공간을 갈구하는 노숙인들이 거리에 나앉기 전 몸을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안식처다. 다른 곳에 비해 거주 비용이 저렴한 덕에 많은 노숙인들이 쪽방 생활을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개발 열망이 쪽방에도 들이닥쳤고, 노숙인들은 그렇게 자신들이 기댈 수 있는 ‘최후의 터전’을 잃고 있다.
서울 동자동, 영등포동, 남대문 지역 등에 있던 쪽방 자리 일부를 이미 마천루 건물, 게스트하우스 등이 점령했고, 현재 남아 있는 쪽방도 임대 사업자들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 실제 지난해 10월 서울역 연세빌딩 부근 쪽방촌 주민 260명에 대한 건물주의 퇴거 통보가 있었고, 그곳에서 수년간 생활을 꾸려갔던 주민 대부분이 방을 뺐다. 동자동 쪽방 주민 김정호씨는 최근 서울 중구청에서 열린 집회에서 “우리는 한쪽 어깨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것도, 요구할 것도 없는 사람들”이라며 “살아 있는 목숨이니, 제발 살게 좀 해달라”라고 호소했다.
남기철 교수는 노숙인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의 부족을 ‘의자 뺏기’로 설명한다. “한 사회에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는 주택 수와 전체 수용자 수의 차이만큼 ‘의자’에 앉을 수 없어 결국 구성원 중 누군가는 노숙 생활에 처할 수 밖에 없는 ‘게임 규칙’을 갖고 있다”는 것. 박은철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탈노숙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이 부족해 시설을 옮겨 다니며 생활하는 ‘회전문’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 “집 한 채를 주는 게 비용이 싸다” = 박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현행 노숙인 정책이 “시설 입소를 중심으로 한 ‘관리’ 차원에서 시행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노숙인 문제의 ‘실질적 해결’보단 대규모 시설을 활용한 ‘집단 관리’를 주된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인데, 이는 ‘시설→쪽방→고시원→거리→시설’이라는 만성적 회전문 현상을 낳는 주된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실제 서울시 노숙인종합지원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노숙인 시설을 이용한 이들 가운데 ‘노숙 생활을 마친다(탈노숙)’는 이유로 퇴소한 비율은 전체의 10%에 불과했다.
선진국에선 1990년대 이 같은 ‘시설 중심’ 정책의 한계를 일찌감치 인정하고, ‘주거 중심’으로 정책적 사고를 변화시켰다. ‘주거 중심 정책’은 노숙인 지원의 방점을 ‘안정된 주거’에 두겠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노숙인 각자에게 ‘살 집을 마련해 준다’는 얘기다. 미국의 ‘하우징 퍼스트(HosingFirst)’, 노숙 종식을 위한 캐나다 연합(CanadianAlliancetoEndHomelessness)의 주거 지원 캠페인, 스웨덴 스톡홀름시의 ‘도심 영구 거처 제공 정책’, 영국의 ‘연속 이틀 노숙 방지(NoSecondNightOut)’ 프로그램 등?대표적 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주거 중심’ 정책이 경제 비용 측면에서 효과적이라는 것. 만성적 거리 노숙인을 양산하는 시설 대책 대신 차라리 집을 한 채씩 주는 정책이 더 적은 예산으로 더 큰 효과를 낸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 결과 및 실제 사례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지난 2014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숙인들에게 주거지를 지원해주는 데 들어가는 한 해 비용은 1인당 1만4,000달러(약 1,649만원)로 이들을 거리에 방치하는 데 따른 의료 및 사법 비용 3만9,458달러(약 4,648만원)의 35%에 불과했다. 이들에게 최소 비용만 받고 집을 제공한 결과 응급실 및 병원 이용이 80% 가까이 줄어 180만 달러를 절약할 수 있었고, 위법 행위로 이들이 사법 처리 되는 비율 역시 72%나 급감했다.
우리나라는 서울시 등 재정 여력이 있는 소수 지방자치단체에서 주거 우선 정책을 선별적으로 내놓고 있다. 지난해 3월 서울시가 실시한 ‘단기월세지원(임시주거지원)’ 사업은 프로그램 이용자의 80%가 노숙을 청산했을 정도로 뚜렷한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노숙인 정책 대부분이 지자체 소관인 현실에선 예산 부족에 시달리는 대다수 지자체가 정책 집행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노숙인 재활요양 시설을 제외한 모든 업무가 지자체 소관으로 지방 정부에 과도한 위임이 이뤄진 실정”이라며 “주거 지원 사업은 국토교통부와 복지부 등 범정부 차원의 대책이 나와야 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주거 지원 정책’은 이런 행정적 한계를 압도하는 걸림돌이 있다. ‘도덕적 해이’ 논란이 그것. 쉽게 말해 “ 게으름뱅이 노숙인들을 왜 도와줘야 하느냐”라는 사회적 비난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더 큰 과제다. 논픽션 베스트셀러 작가 말콤 글래드웰은 저서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에서 이렇게 썼다.
“사회적 혜택엔 일정한 도덕적 정당성이 따라야 한다. 장애유공자가 저소득 싱글맘에게 혜택을 주는 일은 정당하다. 하지만 알코올 중독에 빠진 노숙자에게 아파트를 주는 일은 또 다른 논리에 기반을 둔다. 그것은 철저하게 (경제) 효율성을 추구하는 논리다. (중략) 이 문제는 우리에게 불쾌한 선택을 강요한다. 우리는 도덕적 원칙을 고수하거나 아니면 효율적 해법을 적용해야 한다. 두 가지를 모두 얻는 길은 없다”
올해 4대 중증질환 건강보험적용이 보다 확대된다. 유도 목적의 4대 중증 초음파 검사의 전면급여가 추진되고, 수면내시경에도 급여가 적용되는 등 고비용 필수검사에 대한 건강보험 혜택이 늘어난다. 1월부터는 암·희귀난치질환의 진단, 약제선택, 치료방침 결정 등 ‘환자 개인별 맞춤의료’에 유용한 유전자 검사 134종에 대해 새롭게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또 3월부터는 희귀질환(질병코드가 없는 희귀질환 등) 및 상세불명희귀질환자도 본인 부담률을 경감 받는 산정특례가 적용된다.
국가암검진 중 간암 및 자궁경부암의 검진주기 및 연령도 조정된다. 간암은 암의 발전 속도가 빠른 점을 고려해 현행 1년의 검진주기를 6개월로 조정하고, 자궁경부암은 20대에서 발생증가를 반영해 검진 시작연령을 30세에서 20세로 조정했다. 이와 함께 상반기 중에 어린이(만 12세 이하) 국가예방접종에 자궁경부암을 추가해 전국 위탁 의료기관에서 주소지에 관계없이 무료 접종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노인의 경우 무릎인공관절수술의 지원대상자 선정 시 소득기준을 현재는 ‘전국가구 평균소득 40%(4인기준 199만원) 이하’에서 2016년부터는 ‘기준 중위소득 60%(4인기준 263만5000원) 이하’로 완화해 지원대상이 확대된다.
위조·불량의약품 차단시스템도 본격 도입된다. 의약품의 최소 유통단위에 고유번호인 일련번호를 부착하고, 이를 각 유통단계마다 정보시스템에 보고토록 해 위조·불법의약품 차단에 나선다. 2015년 생산된 의약품부터 순차적으로 일련번호를 부착해 2016년에 모든 전문의약품에 일련번호가 부착되며, 단계적(제약·수입사 2016년 7월, 의약품도매상 2017년 7월부터)으로 정보시스템에 일련번호 정보를 보고토록 의무화해 해당 의약품에 대한 추적관리체계를 구축한다.
한약제제에서 짜먹는 약(연조제)와 알약(정제)도 1월부터 건강보험적용이 확대된다. 그동안 한약제제는 가루약(산제) 형태만 보험적용이 가능해 한약의 쓴맛에 거부감이 있는 경우나, 영유아 등은 복용에 불편함이 있었다. 이와 관련 복지부는 제형 다양화 사업을 추진하고, 현행 보험적용 56종의 처방 중 7종에 대해 연제제로 개발하고 보험적용을 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1월부터 의료기관 휴폐업, 장비신고 등 13개 보건의료자원신고업무에 대해 하나의 기관에 한번만 신고하면 되도록 신고절차가 일원화된다. 또 신고인은 온라인 보건의료자원 통합신고포털을 통해 신고뿐 아니라 증명서 발급까지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다만 인력·시설의 상세현황, 금융계좌 정보 등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추가 신고해야 한다.
한편 복지분야에서는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 수급자 선정기준 및 최저보장수준이 확대된다. 맞춤형 급여개편에 따라 118만원(4인 가구 기준) 이하의 소득인정액이 2016년에는 127만원 이하 가구로 확대됐다. 최저보장수준도 수급자 선정기준과 동일하게 127만원으로 인상됐다.
복지사각지대 발굴을 위해 지금까지 시군구에서만 실시하던 통합사례관리를 읍면동 주민센터로 단계적 확대한다. 이를 위해 2016년 전국 700개 읍면동에 위기가구 사례관리 사업비 600만원을 지원 하고, 위기가구에 대한 보건·복지·고용·주거 등 맞춤형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연계·제공한다는 계획이다. 또 ICT를 활용한 복지 사각지대 발굴도 지원한다. 단전, 단수, 건강보험·국민연금 체납 등 총 24종의 정보를 수집·분석해 사각지대 대상자를 선제적으로 발굴하는 정보시스템을 본격 운영한다.
장애인과 관련해서는 우선 장애로 인해 생활이 어려운 중증장애인을 지원하는 장애인연금 선정기준액을 단독가구 기준 100만원, 부부가구 기준 169만원으로 상향조정했다. 또 발달장애인법 시행에 따라 4월 이후 광역지자체에 지역발달장애인지원센터 17개소 신규 설치(개소당 4억7000만원), 행동발당증진센터 2개소를 신규 설치(개소당 4억원), 발당장애인가족 휴식지원 서비스 확대(10억원), 공공후견서비스 확대(15억원)한다. <기사 출처 : 국민일보>
금연치료 프로그램 참여자 10명 중 7명이 중도 포기하는 것으로 집계되자 정부가 더 강력한 금연 인센티브를 내놨다. 지난 10월 금연치료비를 54% 인하한 데 이어, 내년부터는 조건만 충족되면 치료비를 받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보건복지부는 내년 1월부터 8주 또는 12주짜리 금연치료 프로그램을 모두 이수하면 치료비 중 참가자 본인부담금을 전액 지원하겠다고 30일 밝혔다. 참가자가 금연치료 의료기관을 세번째 방문할 때부터 치료비를 받지 않고, 프로그램을 끝까지 이수하면 첫번째와 두번째 방문 때 지불했던 비용도 모두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흡연자의 금연을 돕기 위해 지난 2월25일부터 금연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있다. 참가자가 12주 프로그램을 신청한 뒤 의료기관에서 상담 받고 금연치료의약품이나 금연보조제를 처방받으면 전체 비용의 30%만 참가자에게 부과하는 방식이었다. 이 때 참가자는 금연치료의약품 챔픽스 기준으로 19만2960원을 내야했다.
그러나 ‘그것도 비싸다’는 흡연자들의 원성이 나오자 지난 10월부터는 본인부담 비율을 30%에서 20%(8만8990원)로 낮추고, 프로그램을 모두 이수하면 지불했던 비용의 80%를 돌려주기 시작했다. 프로그램을 끝마친 참가자는 1만7800원만 내면 되는 것이다. 정부는 12주 프로그램이 ‘길다’는 불만도 받아들여 8주짜리 프로그램을 새로 만들었다.
TV 방영 중인 금연홍보 동영상 |보건복지부 제공 하지만 정부의 ‘인센티브 공세’에도 참가자의 대다수는 프로그램을 끝까지 마치지 못했다. 지난 9월 말 기준 참여자 16만2010명 중 10만9693명(67.7%)이 중도 포기했고, 중도 포기자의 76%는 상담을 2회만 받고 바로 그만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가 ‘3회 상담부터 공짜’ 정책을 들고 나온 이유도 중도 포기 유혹을 느끼는 참가자들을 독려하기 위한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프로그램 중도 탈락률이 높아 인센티브 구조를 프로그램을 계속 참여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참가자가 프로그램을 모두 이수하면 10만원 상당의 축하선물도 제공할 계획이다. 종전에는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6개월이 지난 뒤 금연 중인 것이 확인돼야 인센티브 10만원을 지급했다. 이와 함께 참가자에게 매주 문자서비스를 제공해 금연 의지를 지지하고 금단증상을 극복하도록 도울 방침이다. <기사 출처 : 경향신문>
24일 익명의 기부자가 부산 해운대구 반송2동 주민센터 앞에 놓고 간 동전이 가득 든 종이상자 2개. 2005년부터 이어진 선행은 올해도 어김없이 이뤄졌다. 반송2동 주민센터 제공 24일 부산 해운대구 반송2동 주민센터. 평범한 차림의 남성 2명이 종이상자를 하나씩 들고 와 민원대에 놓고는 아무런 말 없이 그대로 빠져나갔다. 이들이 남기고 간 상자에는 10원, 100원, 500원짜리 동전 1만2000여 개와 함께 쪽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구겨지고 녹슬고 때 묻은 돈일지라도 좋은 곳에 쓸 수 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무식한 사람이라 말도 글도 표현 못 하지만 적은 돈 죄송’이라는 내용이었다.
주민센터 직원들이 황급히 이들을 따라 나갔지만 두 사람은 총총히 차를 타고 사라졌다.
선행의 주인공들은 이 지역에서 ‘동전 천사’로 불린다. 2005년부터 해마다 크리스마스 전후가 되면 반송2동 주민센터에 나타나 동전이 가득 담긴 큰 플라스틱 저금통이나 종이상자를 센터에 두고 급하게 사라진다. 지난해 12월 23일에는 동전 115만5340원이 든 박스를 두고는 일하던 직원의 어깨를 두 번 톡톡 치면서 손가락으로 상자를 가리킨 뒤 사라졌다.
동전 천사가 올해 남기고 간 동전은 99만610원이었다. 일부러 동전으로 바꾼 게 아니라 꾸준히 모은 것으로 보여 한 해 동안 기부를 위해 매일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조금씩 모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동전 천사가 지금까지 기부한 금액은 1300여만 원에 이른다. 주민센터는 동전을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매년 기탁하고 있다.
이승용 반송2동 동장은 “어려운 이웃에게 희망과 사랑을 전하는 동전 천사가 매년 어김없이 찾아와 반갑고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며 “내년에도, 후년에도 센터를 찾아 온기를 나눠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가 없이 남에게 1만 원짜리 한 장 쓰기 쉽지 않은 세상. 동전 천사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한 기부’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산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 있는 얼굴 없는 천사들을 찾아봤다.
▼ “배고픈 사람 없어야죠”… 현금-과일-쌀 몰래 두고 가 ▼ 이달 2일 아침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암2동 주민센터에 쌀 10kg짜리 10포대와 라면 10상자가 도착했다. 인근 농협 하나로클럽에서 50, 6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구입한 뒤 주민센터로 배달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의 선행은 올해로 10년째다. 정호형 용암2동장은 “명확하게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2011년부터지만 이전 근무자들로부터 2006년부터 같은 분이 비슷한 기탁을 해왔다는 말을 들었다”며 “실제 이분의 선행은 10년 정도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해마다 설과 추석, 연말에 쌀과 라면을 보내고 있다. 얼굴은 드러내지 않는다. 대부분 인근 마트에 의뢰해 쌀, 라면 등을 주민센터로 배달한다.
‘동네 주민인 것 같다’는 심증이 생기면서 직원들이 누군지 파악하기 위해 한때 그를 찾으려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냥 어려운 사람들한테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뜻을 거듭 밝혀 직원들도 더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광주 광산구 하남동 주민센터에도 2011년부터 설, 추석 명절 때마다 과일과 쌀을 주민센터 주차장에 놓고 가는 ‘얼굴 없는 천사’가 있다. 이 기부자는 과일, 쌀을 가져다 놓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자필 메모를 남긴다.
올해 추석을 앞둔 9월 23일에는 사과 50박스(한 박스 5kg)를 갖다 놓았다. 궁금한 마음에 주민센터 직원들이 폐쇄회로(CC)TV를 돌려봤더니 전날 오후 11시경 낡은 봉고차 한 대가 주차장에 들어오는 모습이 찍혔다. 하지만CCTV의 해상도가 낮아 차량 번호와 운전자는 확인하지 못했다. 하남동 주민센터 관계자는 “그분은 건물에 불이 켜져 있으면 오지 않는다”며 “1, 2년 전 우연히 한 직원이 주차장에서 익명의 기부자로 추정되는 사람을 만났지만 ‘물품 배달 부탁을 받은 직원’이라고 말하며 황급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키다리 아저씨, 쌀 아저씨… “모든 걸 나눕니다”
얼굴 없는 기부천사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이 가진 많은 부분을 아낌없이 내놓는다. 돈이 많건 적건 ‘우선 나눈다’는 것이 이들의 철칙이다.
지난달 30일 경남 합천군 합천읍 동서로 66-1에 있는 우체통에서 우편물을 수거하던 우체부는 현금 40만 원과 손으로 쓴 쪽지가 들어 있는 봉투를 발견했다. 쪽지에는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소년소녀가장들에게 따뜻한 한 끼 식사라도 줄 수 있을지. 너무 적은 금액입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충남 보령시에도 이달 7일 한 노부부가 주민센터를 찾아와 돼지저금통과 플라스틱통 2개를 전달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통 세 개 안에는 97만 원이 들어 있었다.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는 20대 여성이 전화를 걸어와 “기부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문의한 뒤 모금회 계좌로 1400만 원을 보내왔다. “오빠(30대)와 함께 3년간 용돈에서 조금씩 모아 한 통장에 매달 저축해 왔는데, 어려운 이웃이 많다는 뉴스를 보고 그동안 모은 1400만 원을 오빠와 상의해서 기부하게 됐다”고 밝혔다. 인적사항 등을 물었지만 이 여성은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자신을 알리기를 거부했다.
나누는 일이라면 국적도 상관이 없다. 경기공동모금회가 경기 성남시에서 실시간 유선방송을 통해 모금을 진행하는 중에 30대 베트남 여성이 모금함에 봉투를 넣는 장면이 목격됐다. 한국에 온 지 10년이 됐다고 밝힌 이 여성은 “나도 못살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 지역에도 어려운 이웃들이 있는 것 같아 조금이라도 보태고 싶었다”고 말했다.
23일 오후 4시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근처 식당에 있으니 잠깐 나와서 돈 받아 가이소!” 매년 이맘때 들을 수 있는 바로 ‘그 목소리’였다. 그는 모금회 직원에게 근처 식당으로 잠깐 나와 달라고 했다. 전화를 받은 김미정 모금사업팀장이 급히 식당을 찾았다. 낯익은 60대 남성이 그를 반겼다. 지인과 식사하던 그는 “이거 받으이소”라며 봉투 하나를 건넸다. 봉투 속에는 수표와 접힌 광고 전단이 들어 있었다. 수표에 인쇄된 금액은 1억2000만 원이 조금 넘었다. 전단 뒷면에는 “꼭 필요한 곳에 도움이 되도록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대구공동모금회 직원들은 그를 동화 속에 나오는 익명의 후원자에 빗대 ‘키다리 아저씨’라고 부른다. 첫 기부는 2012년 1월 1억 원부터 시작됐다. 같은 해 12월에는 모금회 사무실 근처 국밥집에서 1억2300만 원, 2013년 12월에도 1억2400만 원을 전달했다. 올해까지 키다리 아저씨가 낸 성금은 총 5억9000여만 원. 하지만 그의 부탁에 따라 모금회 직원들은 이름이나 주소를 절대 밝히지 않고 있다. 오죽하면 수표를 통해 신원이 드러날까 정확한 액수도 공개하지 않는다.
기부를 위해 아예 ‘투잡(twojob)’으로 일한 기부자도 있다. 전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올해 7월 28일 익명의 기부자가 현금 1억 원을 송금했다. 정년퇴직한 60대 소방공무원으로 추정되는 이 기부자는 쉬는 날(비번일)마다 폐지와 고철을 수집해 팔았다고 했다. 이렇게 20년간 땀 흘려 번 현금 1억 원을 남을 위해 내놓았다.
“내 고향, 우리 동네에 눈물 흘리는 이웃 없기를…”
얼굴 없는 기부천사들에게는 또 다른 공통분모가 있다. 바로 어린 시절에 살았던 고향이나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 배고프고 아픈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충남 논산시 연무읍에도 11년째 나타나는 얼굴 없는 천사가 있다. 그는 고향의 지인을 통해 2005년부터 매년 설과 추석 명절 때마다 10kg짜리 500포대의 쌀을 보내고 있다. 매번 300포대를 보내다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 주다 보면 쌀이 좀 모자라더라”라는 읍사무소 측의 얘기를 지인을 통해 전해 들은 뒤 지난해 추석부터는 500포대를 보내기 시작했다. 돈으로 따지면 매번 1000만 원이 넘는다.
미곡처리장 관계자는 “대리인이 주문하고 송금해 누군지는 모른지만 어린 시절 고향에서 어렵게 살다 출향해 수도권에서 건설 관련 회사를 운영하는 자수성가한 사람으로만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읍사무소 측은 이 쌀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 주었다.
강원 원주시 연세대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에는 환자 수백 명에게 사랑을 나눠 준 50대 여성이 있다. 2009년 9월 28일 오전 처음 병원을 방문한 이 여성은 티셔츠에 면바지 차림이었다. “희귀 난치성 질환에 시달리는 어린이들을 위해 써 달라”며 1억 원짜리 수표를 꺼내 놓았다. 그는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잘 살아오신 아버지의 사랑에 보답하고 싶었다”고 기부 이유를 밝혔다.
그의 기부는 2012년까지 4년 연속 이어져 총 6억5000만 원을 기부했다. 난치성 질환 어린이, 노숙인 환자, 병원비 때문에 생활이 어려운 환자 가족 등 수백 명에게 사랑의 온기가 전해졌다. 직원들은 ‘VIP 건강검진권’을 준비해 놓았다가 주려고 했지만,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차라리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써 달라”며 한사코 사양했다.
최근 전북대에는 오랫동안 대학에 재직하고 퇴임한 한 명예교수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대학 본부장의 손을 이끌고 은행으로 간 기부자는, 그 자리에서 수십 년 동안 부어 온 적금을 찾아 대학 발전기금으로 전액 기탁했다. 기부자는 “학업에 뜻이 있으면서도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는 학생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평소 생각을 실천에 옮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며 자신을 절대 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몰래 기부하는 이유는
기부는 남을 위한 이타주의에서 시작한다. 다른 사람을 돌보고 싶은, 선한 인간의 마음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혹자는 “기부는 결국 자기만족 아니냐”고 평가하기도 한다. “착한 일 하네”, “좋은 사람(또는 기업)”이라는 존경과 인정을 받고 싶기 때문 아니냐는 것이다. 일부 기업의 경우 세제 혜택이나 기업 이미지 쇄신을 위해 기부를 한다. 널리 알리고 싶어 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인다.
외국에서도 인간의 본성에 거스르는 ‘몰래 기부’의 이유를 궁금해했다. 2012년 9월 경제잡지 포브스는 ‘왜 기부할 때 익명으로 할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몇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우선 “부자라는 것이 세상에 공표되면 자녀가 납치된다든지 사기를 치려는 사람들이 접근할 가능성이 생긴다”고 분석했다.
또 엄청난 부자들은 기부한 뒤 처할 수 있는 나쁜 상황을 예상한다는 것. A라는 단체에 좋은 마음으로 기부를 한 뒤, 이 사실을 접한 다른 단체들로부터 “왜 우리 단체에는 기부를 하지 않느냐”고 끊임없이 기부 요청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1991년 미국 인디애나대 연구센터가 자선단체 관련자 563명의 설문 내용을 바탕으로 조사해 보니, 익명 기부자의 50.6%는 ‘다른 단체들로부터의 요청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연예인들이나 유명인들이 기부 사실을 알리는 것은 양날의 칼처럼 위험하다. 가수 김장훈 씨는 본인은 월세를 살면서 100억 원 넘는 기부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자기 앞가림이 더 급해 보인다”는 등의 일부 악플에 시달려야 했다.
몰래 선행을 베풀다 우연히 알려진 배우 문근영 씨도 칭찬의 말을 많이 들었지만 “훨씬 많이 벌었으니 한 것 아니겠느냐” “익명으로 계속하지 홍보를 위해 알린 것이냐”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다. 선의에서 시작한 일인데도 이름을 밝히는 순간, 갑자기 평가의 대상이 된다.
단순히 이런 이유만으로 몰래 한 선행을 전부 설명할 순 없다.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가 1954년 발표한 ‘매슬로의 욕구 5단계’는 인간의 욕구를 다양하게 나눠 설명한다. 생리적 욕구(1단계), 안전에 대한 욕구(2단계), 사회적 욕구(3단계)가 성취되면 사람은 자존과 존엄성 욕구(4단계)를 갖게 된다.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고 존경받고 싶은 단계가 이때다. 그러나 이 단계마저 뛰어넘은 사람은 ‘자아실현의 욕구’(5단계)를 추구한다는 것이 매슬로의 설명이었다. 내 이름이 알려지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스스로 목표를 이룬 것에 만족하는 단계다.
“다른 사람들의 기부 액수보다 너무 많거나 너무 적을 때 사람들은 익명을 택한다”는 설명도 있다. 진화생물학자인 니콜라 라이하니는 2014년 1월 학술저널 ‘바이올로지 레터스’에 발표한 글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그룹의 규범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기부가 남들과 비교당하는 것을 꺼린다”고 주장했다. 그는 영국 내 36개 자선단체에 기부한 기부 사례 3945건을 분석했는데 평균 기부액수는 33달러(약 3만5000원)였다. 기부자 중 5%는 익명으로 기부를 했는데 이들이 기부한 액수는 평균보다 소액이거나 고액이었다는 것. ‘너무 적은 돈이어서 이름을 내놓기 쑥스럽다’고 생각했거나 ‘많이 낸다고 생색내는 걸로 보이진 않을까’ 식으로 사회적 비난을 두려워한 결과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름을 알리든, 알리지 않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기부는 따뜻한 불씨가 된다. 나와 비슷한 처지인 사람이, 아니 나보다 더 어려운 것 같은데도 자신의 모든 것을 쪼개 남에게 나누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다른 이에게 감동을 준다. 전선(電線)처럼 사랑을 전파한다.
올겨울에는 이런 기부 천사들이 더 많이 올까. 웅크린 사람들의 차가운 마음 위로, 온 세상을 포근하게 감싸 주는 새하얀 눈처럼. <기사 출처 : 동아일보>
더는 나을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신이나 가족의 결정으로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관련법이 입법의 첫 관문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우리 사회는 생명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근거해 웰다잉(Well-Dying)을 향한 큰 걸음을 내딛게 됐다.
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이날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이런 내용을 담은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을 통과시켰다. 국회 보건복지위는 9일 전체회의를 열어 이 법에 대한 입법작업을 마무리하고 국회 법사위로 넘길 예정이다.
이 법은 또 말기암환자에게만 적용되는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간질환 등 다른 말기질환에도 확대 적용하도록 했다.
특히 이 법은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 대상 환자를 회생 가능성이 없고 원인 치료에 반응하지 않으며 급속도로 임종(臨終) 단계에 접어든 임종기(dyingprocess) 환자로 정했다. 이런 의학적 상태는 의사 2인 이상의 판단을 거치도록 했다.
연명의료란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등으로 임종기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임종기 환자에 대해서는 크게 3가지 범주에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
먼저 의식이 살아 있을 때 환자 자신이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명확한 의사를 표시한 경우다. 환자 자신의 뜻에 따라 담당 의사와 함깨 연명의료계획서(POLST; PhysicianOrdersforLife-SustainingTreatment)'나 사전의료의향서(AD; AdvancedDirectives를 작성해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방식이다.
다음은 임종기 환자가 의식이 없을 때다. 이럴 때는 환자의 의사를 추정해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게 했다.
미리 작성한 사전의료의향서에서 연명의료 중단의 뜻을 담당의사 2명이 확인하거나 사전의료의향서가 없을 때는 환자 가족 2명 이상이 일치해서 환자가 평소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보였다고 진술하고 의사 2명이 이를 확인할 때도 환자의 의사로 추정해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
마지막으로는 임종기 환자가 연명의료에 대해 어떤 의사를 가졌는지 추정할 수조차 없을 때다.
이럴 때도 미성년자는 법정 대리인인 친권자가 미성년 환자를 대리해서 연명의료 중단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했다. 성인은 환자 가족 전원이 합의하고 의료인 2인이 동의하면 환자를 대신해 환자의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게 했다.
법정 대리인 등 가족이 없을 때는 '의료기관 윤리위원회'가 임종기 환자를 위한 최선의 조치로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할 수 있게 했다.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긴 했지만 대리 결정권을 인정했다.
이에 앞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2013년 7월 31일 '무의미한 연명 의료 결정에 관한 권고안을 확정해 복지부에 입법화를 권고했다.
생명윤리위는 이 권고안에서 ▲ 환자가 의사와 함께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POLST)에 따라 특수 연명치료 중단 여부 결정 ▲ 환자 일기장이나 가족의 증언에 따른 '추정 의사' 인정 ▲ 가족 또는 후견인의 대리 결정 등을 연명치료 중단 법률안에 담도록 정부에 권고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4년도 노인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대다수가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다.
의식불명이나 살기 어려운데도 살리려고 의료행위를 하는 연명치료에 대해 65세 이상 노인 3.9%만이 찬성했다.
조사대상 88.9%에 이르는 대부분 노인은 성별과 지역(도시-농촌), 연령, 배우자 유무, 가구형태(노인독거가구, 노인부부가구, 자녀동거가구), 교육수준, 취업상태, 가구소득 등 모든 특성에 관계없이 연명치료에 반대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노인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다가 숨지는 경우가 많았다.
건강보험공단 부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의 '노인장기요양보험 인정자의 사망 전 급여이용 현황' 보고서를 보면, 노인장기요양 등급 인정을 받고 요양 중 숨진 10명 중 3명꼴로 숨지기 전 한 달 사이에 연명치료를 받았다.
이들은 사망한 달에 가까워질수록 의료서비스를 더 많이 이용했고, 의료비 지출규모도 사망시점에 다가갈수록 더 커졌다.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사망의 40.9%를 차지하는 장기요양 노인이 죽음을 맞는 현주소이다. <기사 출처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