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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5일 금요일

헤밍웨이도 단골이었던 파리의 서점

파리의 고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  파리의 고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
ⓒ 김윤주

"그 무렵 무척 가난했던 나는 오데옹 거리 12번지에 있는 실비아 비치의 대여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책을 빌리곤 했다. 겨울이 되면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쌀쌀한 거리에 있는 그 서점에서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입구에 커다란 난로를 피워 놓았다. 따뜻하고, 쾌적하고, 멋진 곳이었다." 

서점을 처음 발견한 날, 헤밍웨이는 투르게네프의 <사냥꾼의 수기>와 D.H.로렌스의 <아들과 연인>을 집어 들었다. 곁에 있던 실비아는 "원한다면 다른 책을 더 빌려가도 돼요"라고 말했다. 그 말에 헤밍웨이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와 도스토옙스키의 <도박꾼과 그외 단편들>을 더 골라 들었다. 

집에 돌아온 헤밍웨이는 아내 해들리에게 한아름 빌려온 책들을 보여 주며 낮에 만난 서점과 주인 이야기를 쏟아낸다. 사랑스런 신부 해들리는 미소 띤 얼굴로 "그러지 말고 어서 가서 돈을 내고 와요"라고 말하고, 헤밍웨이도 그러마 대답한다. 

그렇게 말하기는 했어도 둘은 낯선 도시에서 얻은 뜻밖의 행운에 한껏 흥분해, 모처럼 좋은 와인도 사고 맛있는 요리도 만들어 먹자는 둥, 한눈팔지 말고 서로만 사랑하자는 둥, 들뜬 약속을 나눈다. 가난한 신혼부부에겐 참으로 따뜻한 저녁이었을 게다. 

내가 그 책방에 처음 간 건 파리에서의 두 번째 날, 비에 젖은 늦은 밤이었다. 초록색과 노란색의 따뜻한 간판을 찾아내기까지는 야속하게도 많은 골목들을 헤매야 했다. 

파리 시내 지도는 현실 세계에 대입하면 거리와 거리 사이를 예측한 것보다 훨씬 덜 가야 목적지에 다다른다. 파리의 면적이 서울의 6분의 1 수준이라니 서울에서의 공간 감각을 그대로 적용해 파리시 지도의 지명과 도로 간 거리를 가늠하면 흔히 생겨나는 오류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를 가기로 작정하고 시테역에 내린 건 그리 나쁘지 않은 결정이었다. 생 미셸 노트르담역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시테 섬 일대를 먼저 돌아볼 참이었기 때문이다. 지도에 나온 대로 노트르담 성당 앞 작은 다리(Petit Pont)를 건너 조금만 더 가면 서점이 있어야 마땅했다. 

혹시 헤매게 된다 해도 아무나 붙들고 물어보면 "아! 거기? 헤밍웨이가 자주 다녔다는 그 오래된 서점 말이지?"하며 대답해 줄 거라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이건 웬걸. 책방은 나타나지 않았고, 뜻밖에도 내가 만난 파리 사람들은 그 유명한 전설의 서점을 전혀 알지 못했다. 

두어 명 젊은이들의 난감한 표정을 만나고 골목과 골목을 어지간히 헤매고 난 후에야 근근이 서점에 도착했다. 그러고 보면 이 거만하고 차가운 도시 파리에서 모국어로 된 책을 쌓아둔 공간은 그 자체로 정말 감동이었겠다. 밤거리를 헤매다 찾아낸 서점은 내게도 감동이었다. 노란색과 초록색 간판이 따뜻해 보였다.   

누구나 머물며 글 쓸 수 있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  파리의 고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
ⓒ 김윤주

헤밍웨이가 서점을 처음 발견한 날 그랬던 것처럼 구석구석 들여다본다. 빼곡히 책들이 가득하다. 바닥에 쌓아 올린 책들도 천장에 닿을 지경이다. 선반에는 오래된 책들이 꽂혀져 있다. 통로와 기둥 사이로 작은 공간들이 있고 벽에는 흑백 사진들이 걸려 있다. 눈에 익은 작가들 모습이다. 책장과 선반 사이를 조심조심 움직여야 한다. 

좁은 계단을 올라간다. 푹신한 소파가 곳곳에 놓여 있고 사람들은 제집처럼 몸을 뉘인 채 책을 읽고 있다. 책 더미 사이로 오래된 타자기가 놓여 있고, 저쪽엔 낡은 피아노도 보인다. 물건과 공간의 용도가 무의미하다. 다만 책 무더기 속에 파묻혀 있을 뿐이다. 

안쪽 구석진 공간에 작은 탁자가 놓여 있다. 오래된 나무 의자에 앉으니 네모난 작은 창으로 젖은 파리가 들어온다. 창밖으로 센강이 흐르고 구석진 다락방 창문가엔 낡은 나무 책상이 놓여 있으니, 이곳에선 절로 글자들이 춤을 추며 문장이 되고 단락을 이뤄 한 편의 글이 될 수 있겠다 잠시 생각했다. 

청바지에 까만 재킷을 걸친 늘씬한 여자가 두리번거리던 나의 눈과 마주쳤다. 의자들을 둘러 세우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길래 물었더니, 오늘밤 글쓰기 워크숍이 있을 예정이란다. 모임의 리더인 모양이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짧은 눈인사를 나누고 아쉬움을 묻어둔 채 그곳을 나왔다. 

1층으로 내려오며 보니 한쪽 구석에 알록달록한 메모와 편지들이 잔뜩 붙어 있다. 나도 그곳에 앉아 노란색 포스트잇에 짧은 편지를 써 붙여 두고 나왔다. 손에는 나를 이곳으로 이끈 헤밍웨이의 바로 그 책 'A Moveable Feast'(국내 번역서 <파리는 날마다 축제>)가 들려 있었다. 13.5유로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는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오래된 책방이다. 우리에겐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 <비포 선셋>에서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10년 만에 해후하는 애잔한 첫 장면으로 유명하다. 

미국에서 태어나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파리에 온 실비아 비치(Sylvia Beach, 1887~1962)는 이 서점의 첫 주인이다. 1919년에 처음 문을 열고 1921년 오데옹 거리(Rue de l'Odeon) 12번지로 옮겼는데 마침 그때는 젊은 헤밍웨이가 파리에 막 도착한 시기였다. 

구하기 어려운 영어로 된 수많은 책, 따뜻한 스프와 글을 쓸 수 있는 공간, 이곳은 고국을 떠나온 가난한 젊은 작가들의 포근한 아지트였다. 영국과 미국에서 금지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Ulyssis)>를 1922년 출간한 사건으로도 유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 문을 닫고 지친 실비아도 은퇴해 버려 서점은 역사 속 이야기로 남는가 싶었다. 

그런데 10년 후 미국의 방랑 시인 조지 휘트먼이 오데옹 거리에서 멀지 않은 이곳, 노트르담 성당 근처 센 강변 뷔셰리 거리(Rue de la Bucherie) 37번지에 비슷한 서점을 다시 연다. '미스트랄(le Mistral)'이었던 서점의 이름을 1964년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로 바꾸면서 지금에 이르게 된다. 

2011년 그도 세상을 떠나고 지금은 그의 딸 실비아 휘트먼이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데 여전히 열댓 개의 침대를 두고 누구라도 머물며 글을 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에세이 한 편, 매일 책 한 권씩 읽기, 서점 일 돕기 따위가 자격 조건이라니 꿈같은 이야기다. 이미 4만 명이나 머물다 갔다면 더 이상 몽상가의 꿈도 아니다. 

이쯤 되면 이곳은 그저 오래된 책방이 아니다. 조지 휘트먼이 말한 대로 '서점으로 가장한 사회주의자들의 낙원'이고, '세 글자로 된 한 편의 소설(a novel in three words)'이다. 
<기사 출처 : 오마이뉴스>

2015년 12월 29일 화요일

'○같이 주차된 차'…프랑스 불법주차 고발스티커 붙이기 '열풍'


"주차가 엉망이야" 스티커 판매 광고(출처.캠페인 공식 홈페이지 화면 캡처)
불법 주차한 자동차에 '○같이 주차된 차'라는 스티커를 붙이는 시민캠페인이 프랑스 곳곳에 번져나가고 있다.

28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에 따르면 교통 체증과 교통법규 위반으로 악명높은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에서 횡단보도, 인도, 자전거 전용도로 등에 불법주차된 차량에 몇 주 전부터 알록달록한 색깔의 스티커가 붙기 시작했다.

'나는 ○같이 주차된 차'(Gare Comme Une Merde: I'm parked like a s**t)라고 쓴 스티커를 붙이는 운동은 지역 시민단체 '르방디카르'(Revendic'Art)가 시작했다.

단체 활동가들이 사비를 털어 시작한 스티커 붙이기 운동은 큰 호응을 얻어 몇 주간 스티커 수천 장이 팔렸다. 

보행자나 자전거 이용자뿐만 아니라 자가용 운전자들도 스티커를 구매해 간 것으로 나타났다. 스티커 60장 묶음 가격은 19유로(약 2만 4천 원)에 팔리고 있다.

"주차가 엉망이야" 스티커 붙이기 운동 프랑스에 유행(출처. 캠페인 공식 홈페이지 화면 캡처)
최근에는 마르세유를 넘어 수도 파리나 다른 지역의 불법 주차 차량에도 스티커가 부착되기 시작했다.

불법 주차 광경을 담은 비난성 사진들도 해시 태그 '#gcum'를 달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다.

단체는 스티커를 붙이고 나서 공식사이트에 인증 사진을 공유할 수도 있게 했다.

르방디카르 관계자는 "불법 주정차에 매일 불만을 느끼는 수천 명 운전자들의 정신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스티커 붙이기 운동을 전개하게 됐다"고 밝혔다.
<기사 출처 : 연합뉴스>

2015년 12월 21일 월요일

고흐도 살았던 몽마르트르, 이게 말해주는 것

가난한 예술가의 언덕 '몽마르트르'


▲ 파리시내 전경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바라본 파리시내 전경, 날이 흐리고 비가 와서 시야는 넓지 않았다.
ⓒ 김민수

종일 우중충하던 날씨는 몽마르트르 언덕에 이르자 이내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기라도 하는 듯 비를 내렸다. 11월 17일, 그러니까 11월 13일 파리 테러가 발생하고 닷새째를 맞이한 날이었다.

파리는 겉으로는 평온했지만, 그 속내는 마치 종일 우중충한 날씨 같았다. 울고 싶어도 울지 못했는데 마침 비가 내려주니 빗물인양 눈물을 흘릴 수도 있었을 듯하다.

'몽마르트르(Montmartre)'는 파리에서 가장 높은 언덕으로 파리 시내 전경을 볼 수 있다. 'Mont'는 '언덕, 산'이라는 뜻이고, 'Martre'는 '순례자'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몽마르트르는 '순례자의 언덕'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 사크레 꾀르 성당 1876년부터 40년에 거쳐 지어진 성당으로, 보불전쟁에서 패한 프랑스가 자존심 회복을 위해 성금으로 지어진 성당이다.
ⓒ 김민수

몽마르트르 언덕에 자리잡은 '사크레 꾀로 성당(Sacre-Coeur)' 안에는 프랑스의 초대 주교인 생드니(Saint Denis) 신부가 자신의 목을 들고 있는 조각품이 있다. 생드니가 자신의 목을 들고 있는 조각품은 이곳 외에도 노트르담 대성당 등 프랑스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8km 거리에는 '생드니성당'이 있다. 프랑스 초대 주교였던 생드니가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참수되었지만, 자기의 목을 들고 몽마르트르 북쪽에 위치한 그곳까지 걸어와서 숨을 거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 몽마르트르 파리테러 직후라 몽마르트르 언덕에도 중무장한 군인들이 순찰을 돌고 있다.
ⓒ 김민수

가이드는 다른 날보다 관광객들이 많지 않은 편이라고 했다. 날씨 탓도 있겠지만, 파리 테러 이후에 공공장소나 유명 관광지에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중무장한 군인들이 성당 주변을 순찰하고 있었다.

이후에 안 사실이지만, 몽마르트르도 테러리스트들의 표적이었다고 한다. 사실상 테러는 우리 일상에 너무 깊숙히 자리하고 있어서 테러리스트가 테러를 가하고자 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했다. 하필이면, 그 희생자가 내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 나는 운 좋게 테러의 희생자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런 생각에 서글펐다.

▲ 몽마르트르 몽마르트르 거리의 기념품 상가들
ⓒ 김민수

몽마르트르는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파리에서 가장 높은 언덕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언덕이라기 보다는 산이었고, 'Mont'의 뜻에는 '산'이라는 뜻이 더 강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몽블랑'은 '설산'이라는 뜻이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네델란드의 화가 '빈센트 빌럼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3.30-1890.7.29)일 것이다.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하나인 그는 살아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했던 예술가였다. 그가 죽은 후 11년이 지난 후, 파리에서 그림전시회를 한 후 그의 명성은 급상승했다. 37세의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한 고흐가 그린 그림 중에는 <몽마르트르 언덕의 채소밭>이라는 그림도 있다. 

고흐와 미술상이었던 그의 동생 테오가 함께 살았던 '반 고흐의 집'은 아직도 몽마르트르에 있다. 몽마르트르는 생제르맹 거리로 예술가들이 떠나기 전 프랑스 문화를 꽃피운 곳이며, 아직도 많은 예술가들이 몽마르트르에 거주하면서 그림을 그리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몽마르트르 몽마르트르의 카페들 역시도 테라스는 필수다.
ⓒ 김민수

'테르트르 광장'으로 이어지는 골목길 사이에는 기념품점과 카페들이 줄 지어 있다. 골목의 끝에는 파리 시내가 저만치 내려다 보인다.

몽마르트르는 지금은 파리에 속해있지만 처음부터 파리에 속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돈 없는 예술가들이나 파리에서 살 수 없는 도시 빈민들이 슬럼가를 형성했던 곳이기도 하다. 우리의 상황과는 조금 다른지는 모르겠으나, 이른바 파리 근교의 달동네가 몽마르트르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가난한 예술가들이 많았고, 살아 생전에는 늘 가난과 싸워야했던 미치광이 반 고흐도 그곳에서 살았던 것이 아닌가? 물론 언덕에 자리잡은 '사크레 꾀르 성당'의 건축으로 프랑스 국민의 자존심을 회복하려 했던 정책이 난개발을 막기는 했겠지만, 지금도 몽마르트르는 가난한 예술가의 언덕이 아닌가?

▲ 몽마르뜨 화가들이 모여 작업도 하는 작은 광장 주변의 카페
ⓒ 김민수

'사크레 꾀르 성당'에 대해 조금만 더 부연설명을 한다면 이렇다. 1876년에 건축에 들어간 성당은 40년에 거쳐 비잔틴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이 성당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보불전쟁)'에서 패한 프랑스가 자존심 회복을 위해 성금으로 지어졌다.

오스트리아를 패배시킨 '비스마르크'는 독일 통일의 마지감 걸림돌인 프랑스를 제거하려고 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프로이센은 1871년 1월, 베르사이유 궁전의 '거울방'에서 제국의 성립을 선포하면서 빌헬름 1세를 초대 독일제국의 황제로 추대한다.

이런 과정에서 성당이 지어졌던 몽마르트르는 파리의 외곽이었지만 프랑스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을 터이고, '순례자'라는 그 이름 역시도 가난에도 자존심으로 살아가는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곳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 몽마르트르 테러 이후의 몽마르트르 거리는 다소 한산했다. 그곳을 다녀온 뒤로 안 사실이지만, 테러범들의 몽마르트르 테러 계획은 미수에 그쳤다고 한다.
ⓒ 김민수

파리에서 서울로 돌아온 후 꼭 한 달이 되었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여행기를 마무리 짓지 못했다, 덕분에 나는 아직도 프랑스를 여행하고 있는 중이고, 더 많이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사진이 간직한 여행의 흔적을 더듬으면서 여행의 흔적을 기록하는 일은 제2의 여행이다. 비록 보름이 안 되는 시간을 프랑스와 스위스를 오가며 보냈지만, 나는 지금도 여행 중이다. 이런 여행도 좋은 여행이 아니런가!

▲ 몽마르트르 몽마르트르의 화가들, 허가를 받은 이들만 이곳에서 작업을 할 수 있다. 주로 작품을 팔고 인물화를 그려준다.
ⓒ 김민수

예술가들의 광장 '테르트르 광장'이다. 이곳엔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많이 있었다. 자신이 그린 그림도 판매하고, 인물화 같은 것도 그려준다고 한다. 관에서 허락을 받아야 이곳에서 활동할 수 있는데 하루 수입은 각기 다르겠지만, 가이드에 따르면 대체로 50유로 이상은 될 것이라고 한다.

적지 않은 일당이며, 그 정도면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단다.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으니 치열함이 덜하고 그래서 예술의 깊이를 더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유명한 작가가 되길 갈망하는 이들은 가난해도 이곳에 나오지 않고 그림에 전념하기도 한단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 할 수 없지만, 자기가 가장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 일이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라면 일용할 양식을 얻는데 큰 문제가 없는 세상이 사람사는 세상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사는 세계는 사람사는 세상과는 거리가 멀지도 모르겠다.

▲ 몽마르트르 빈센트 반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가 작업했던 '반 고흐의 집'도 이곳에 있다.
ⓒ 김민수

소강 상태를 보이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여행자들은 물론이고 그림을 그리던 화가들도 비를 피하느라 분주하다. 그때 내가 한국인임을 알았는지 현지인 중 하나가 "빨리빨리" 하며 웃음을 짓는다.

가랑비라 우산도 없이 천천히 걸었는데 아무래도 조금은 더 빨리 걸어야 싶었나 보다.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그 많은 말 중에 '빨리빨리'라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 몽마르트르의 화가 몽마르트르 언덕의 화가, 붉게 물든 파리 시내 전경과 에펠탑이 인상적이다.
ⓒ 김민수

내가 본 바에 의하면, 프랑스는 느릿느릿 천천히 사회다. 어쩌면 '빨리빨리'는 우리에 대한 조롱일 수도 있다. 우리는 '빨리빨리' 살아오면서 잃은 것이 너무도 많다. 

경쟁사회가 요구하는 삶의 양식 중 하나가 '빨리빨리' 문화다. 이것은 강자 독식의 사회를 가져오고, 각자도생의 사회를 만들고, 약자들의 아우성을 외면하는 사회를 만든다. 약자들의 아우성을 '소요' 정도로 생각하는 국가는 건강한 국가라고 할 수 없다.

구약성서의 출애굽기를 보면 '약자들의 아우성'에 무조건적으로 응답하는 신(하느님)이 등장한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온 아기 예수도 바로 이 '약자들의 아우성'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다.

유럽과 우리나라를 단순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영락없이 산동네로 전락했을지도 모를 몽마르트르, 그 곳에서 예술가들의 위대한 혼을 만났다.
<기사 출처 : 오마이뉴스>

2015년 12월 13일 일요일

<파리 기후협정> 무늬만 구속력…"의미 있으나 시작일 뿐" 지적


파리 기후 협정이 체결된 12일(현지시간) 4만 명의 시민과 활동가들이 파리 시내에서 위치태그 기법을 활용해 '기후정의와 평화'의 메시지를 만들고 있다. << 지구의 벗 제공 >>
'자발적 목표 의무화' 실효성 의문…협상 당사국들도 한계는 시인 

12일(현지시간) 체결된 '파리 협정'은 지구 온난화를 막고자 전 세계가 함께 노력하자는데 합의한 역사적 결과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환경단체 등을 중심으로 이번 합의의 한계와 우려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협정 당사국들도 이런 견해를 일부 시인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로 꼽히는 것은 구속력이다. 

각국이 감축목표를 제출하는 것이 의무화됐으나 그 목표는 자발적으로 수립되고 이행 여부도 자발적으로 노력할 사항으로 규정돼 법적 구속력이 없다. 

영국의 사회단체 '글로벌저스티스나우'의 닉 디어든 대표는 BBC방송 인터뷰에서 "세상에서 가장 취약한 공동체의 권리를 약화시키고 미래 세대가 안전하고 살 만한 기후를 보장할 구속력은 하나도 없으면서 성공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지적했다. 

BBC는 가난한 나라들을 지원할 재원, 꾸준히 감축 목표치를 높일 수 있는 강력한 점검 시스템이 있어야 협정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NBC 뉴스는 기후 변화로 '손실과 피해'를 입은 나라들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협정에는 그런 나라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들 국가의 기후 대응을 돕는 체계를 만든다는 내용이 막연하게 포함됐다. 

그러나 저개발국들이 요구하는 보상과 배상 방안은 아예 빠지면서 미리 산업화에 성공한 국가들이 구체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AP=연합뉴스)
NBC는 "외교적 수사를 치우고 보면 저개발국의 요구는 기후변화로 파괴된 재산을 보상해달라는 것"이라며 "어떤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보더라도 그런 재산상의 손실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협정 대부분은 단순히 미래 행동을 위한 토대일 뿐이라며,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면보다 훨씬 더 많은 불확실한 면이 앞으로 대기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파리 협정에 따르면 각국은 5년마다 상향된 감축 목표를 제출하며, 검증도 2023년부터 5년 단위로 이뤄지며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검증하는 '이행 점검'(Global Stocktaking) 시스템도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 역시 "아직 존재하지 않는 시스템"이라며 "결국 파리 협정은 시작일 뿐"이라고 NBC는 지적했다. 

미국 인터넷 매체 복스도 섭씨 1.5도 이하라는 "모호하지만 기분 좋은 목표에 합의했을 뿐"이라며 "그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 명확한 계획은 없다"고 꼬집었다. 

유명 기후학자인 제임스 핸슨는 각국의 자발성에 의존하는 이번 협약을 두고 "쓸모없다"고까지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협상을 이끈 각국 지도자들도 이번 협정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번 협정이 '완벽하지는 않다'고 말했고, 중국의 협상 대표도 '이상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이것이(협상의 결점이) 우리가 역사적인 단계로 나아가는 것을 막지는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환경보호청 청장을 지낸 크리스틴 토드 휘트먼은 파리 협정이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고 진단했다. 
<기사 출처 : 연합뉴스>

2015년 12월 10일 목요일

커지는 이슬라모포비아.. 끄떡없는 IS

‘유럽의 9·11’로 일컬어지는 11·13 프랑스 파리 테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돼 간다. 프랑스를 위시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은 파리 테러를 계기로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격퇴를 위한 공세를 한층 더 강화했다. 하지만 IS는 미국과 영국, 이탈리아 등에 대한 추가 테러를 공언하며 리비아와 아프가니스탄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유럽과 미국 등에서 이슬라모포비아(이슬람 혐오증)가 확산해 무슬림 겨냥 증오범죄가 잇따르고 극우세력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IS 와의 전쟁’을 선포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핵 항공모함 샤를 드골호를 시리아 연안에 급파하는 등 공습 전력을 3배로 증강했다. 미국과 러시아 등도 IS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미군의 지상전은 없다”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00∼150명 규모의 특수부대를 파병했다. 시리아 온건반군 공습에 집중하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IS의 거점인 시리아 락까를 집중 공습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공습 대상을 이라크에서 시리아로 확대했고, 독일 역시 지상군을 파병하기로 결정했다.

국제사회는 IS의 ‘돈줄 끊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은 IS가 장악한 유전지대에 대한 공습을 크게 늘렸고, 유럽연합(EU)은 IS와 추종자들의 자산동결과 계좌추적 방안을 논의 중이다. 러시아는 지난달 24일 터키의 자국 전폭기 격추 사건을 계기로 IS와 터키 간 원유 밀거래 의혹을 집중 제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IS는 여전히 건재해 보인다. 미국의 안보컨설팅업체 수판그룹은 8일(현지시간) IS에 합류한 외국인 전투원이 86개국 2만7000∼3만1000명이라고 추산했다. 지난해 6월에는 1만2000명 수준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난민으로 위장해 본국으로 돌아간 뒤 현지 추종자들에게 테러를 지시하거나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IS는 또 지난 5월 이래 리비아 북부 해안 200여㎞를 장악해 전투원 2000∼3000명을, 아프간 동부 낭가르하르주에서도 1600명을 주둔시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럽에서는 이슬라모포비아가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지난 6일 실시된 프랑스 지방선거 1차 투표에서는 반이민·반이슬람을 내세운 국민전선(FN)이 제1당에 올랐다. 영국의 무슬림 겨냥 증오범죄는 테러 이전 24건(11월4∼10일)에서 76건(11월18∼24일)으로 세 배 이상 늘었다. 난민 수용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독일과 스웨덴은 파리 테러 이후 난민 입국 심사와 국경 통제를 강화하며 빗장 걸기에 나서고 있다.
<기사 출처 : 세계일보>

2015년 12월 7일 월요일

"현 방식으로는 IS 격퇴 불가" …미 정보기관 보고서 인정


파리 기후변화총회에서 IS 격퇴를 위한 국제 공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AP=연합뉴스 DB)
백악관 지시로 CIA 등 정보 기관 분석가들이 작성 
'고급표적' 제거 등은 권고 채택한 듯… 특수전 사령부 싱크탱크 설치 권고 

미국이 공습과 군사 고문단 위주의 현 방식으로는 파죽지세인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를 격퇴시킬 수 없음을 인정하는 새로운 정보보고서가 미국에서 나왔다.

6일(현지시간) 미 온라인매체 데일리비스트에 따르면 CIA(중앙정보국) 등 정보공동체가 발간한 최신 보고서는 IS가 주 활동무대인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점령지 대부분을 상실하지 않으면 예상보다 빠르고 많은 추종자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세를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프랑스 파리 테러와 미 캘리포니아주 샌버나디노 총기사건 발생 직전 백악관의 지시로 CIA, 국방정보국(DIA), 국가안보국(NSA) 등 정보기관 소속 전문 분석가들이 한 달 넘는 작업 끝에 내놓은 보고서는 특히 IS를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봉쇄했다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확신에 찬물을 끼얹는 것으로 IS 격퇴전 방식과 관련해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요르단에서 역내 특수부대원들과 합동훈련 중인 미 특수부대원들(AP=연합뉴스 DB)
8쪽 분량의 보고서는 IS에 대한 미국 주도의 지속적인 공습과 3천500명 규모의 미군 군사고문단을 통해 IS 격퇴전 훈련을 이라크 정부군이나 시리아의 중도성향 반군들에게 전수, 일부 지역에서 IS 세력을 축출했지만, IS는 다른 점령지를 확보하고 새 조직원들을 충원하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적시했다. 한 마디로 미국의 IS 격퇴전에 IS를 못 따라가는 상황임을 인정한 셈이다. 

오바마 대통령,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 조지프 던포드 합참의장 등 미국의 수뇌부가 새로운 IS 격퇴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한 것도 이 보고서의 권고에 따른 것이라고 데일리비스트는 전했다.

드론 공습, 특수부대에 의한 기습타격, 친미성향의 현지 무장세력 등을 동원한 작전 등 대 테러 공세가 강화되고 있으며 카터 국방장관은 최근 시리아와 이라크 내 IS 주요 표적 타격과 무력화를 위한 200명 규모의 특수임무원정대를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특임원정대는 미군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아랍연합군(SAC)과 함께 시리아 북부에서 활동할 50명의 미군 특수부대와 함께 타격작전을 조율하며 특임원정대와 시리아내 50명의 병력은 모두 합동특수전사령부(JSOC )지휘를 받는다고 소식통은 밝혔다.

보고서의 내용 중에 주목할 또 다른 내용은 바로 델타포스, 데브그루(DevGru, 실 6팀), 그린베레 등 6만여 명의 최정예 특수전 요원들을 거느린 통합특수전사령부(SOCOM)의 역할 확대 부분이다.

데일리비스트는 국방부 수뇌부가 SOCOM이 효율적인 IS 격퇴전을 위한 새로운 방식 모색을 위해 군, 외교, 정보 당국 대표자들과의 부처간 '싱크탱크'를 발족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시리아 내 IS 세력 공습에 나서는 영국 공군의 토네이도 전투기(EPA=연합뉴스 DB)
소식통은 또 SOCOM이 이라크와 시리아에서의 IS 격퇴전과 관련해 지휘권을 인수하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없지만, 다른 재래식 병력과 달리 고유한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의견을 제시하라는 요청은 충분히 받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기습 타격과 인질 구출 임무 외에도 육군 특전단(그린베레)처럼 현지 반군 세력에 대한 훈련, 자문, 지원 등 비정규전 수행을 전문으로 하는 요원들이 투입되거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 달에 1천 명가량의 새로운 조직원들을 새로 끌어들이는 IS에 대한 심리전를 전개할 수 있다는 것이 소식통의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식통은 "이번에 나온 정보보고서는 이미 우리가 아는 것들을 권고한 것이 특징"이라며 전 세계에 걸쳐 있는 IS에 대해 충성을 맹서했거나 친IS 성향을 보이는 조직 등에 대한 상세설명 등도 내용에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국가정보국(DNI)은 보고서 발간 사실은 시인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제프 데이비스 국방부 대변인도 SOCOM이 대테러위협 추격과 군사적 대응에 대한 기획 임무를 이미 수행 중이라면서, IS 격퇴전 과정에서 특수부대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사 출처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