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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7일 일요일

우린 언제부터 떡국을 먹었을까…'설날 떡국 이야기'


우리의 전통음식 떡국
조선 중기부터 설 떡국 기록…'한 그릇에 나이도 한 살 더'

멥쌀로 길게 만든 흰 가래떡을 썰어 맑은 장국에 넣고 끓인 떡국은 설날 상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우리 고유의 음식이다.

설에 모처럼 모인 가족들과 한 그릇씩 나눠 먹으며 나이 한살 더 먹었다고 생각하게 되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홀로 쓸쓸히 보내는 이도 혼자라도 어설프게나마 끓여 먹으며 허전함을 달래는 것이 바로 떡국이다.

◇ 언제부터 떡국 먹었나…조선 중기부터 견해 많아

7일 민속학계에 따르면 떡국과 관련한 옛 문헌 자료가 많이 남지 않아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설에 떡국을 먹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나마 조선후기 서적 '동국세시기'와 '열양세시기'는 떡국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들 책에서 떡국은 새해 차례와 아침식사 때 없으면 안 될 음식이며, 손님 접대용으로 꼭 내놓았다고 적혀 있다.

동국세시기는 떡국이 겉모습이 희다고 해서 '백탕'(白湯), 혹은 떡을 넣고 끓인 탕이라는 뜻에서 '병탕'(餠湯)이라 적었다.

조선 중기 이식의 '택당집'은 '새해 첫날의 제사상을 차릴 때 병탕과 만두탕을 한 그릇씩 올린다'고 적었다.

조랭이 떡국
조선 초기 서적에는 떡국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우리 민족이 조선 중기부터 설에 떡국을 먹기 시작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떡국의 기원이 중국 당나라 때 먹었던 '탕병'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구한말에 오면 떡국은 시장에서 사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매우 흔한 음식이 됐다는 것을 당시 신문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최남선은 우리 민족이 설에 떡국을 먹는 이유를 이렇게 썼다.

"새해 첫날은 천지만물이 새롭게 태어나는 날인 만큼 정결한 흰떡과 자극적이지 않은 국을 먹으며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했다."

요즘 떡국 한 그릇을 먹으면 나이 한 살을 더 먹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과거에는 나이를 물을 때 '병탕 몇 사발 먹었느냐'고 했다.

떡국을 한자로 첨세병(添歲餠)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먹은 떡국 그릇 수에 따라 나이가 더해지는 음식이라는 의미다.

◇ 지역마다 종류도 다양…조랭이 떡국·닭장 떡국 

옛날 떡국 국물을 만들 때 부유한 집은 꿩고기를, 서민들은 닭고기를 많이 썼다고 한다. 여기서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이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과거 떡국을 만들 때는 고춧가루를 넣었다. 이는 꿩고기의 잡내를 없애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떡국을 끓이는 방법은 지역마다 다르고 떡국 국물은 대개 쇠고기로 낸다. 

일반적으로 쇠고기를 육수로 끓인 장국에 0.5㎝ 두께로 썬 흰떡과 가늘고 얇은 쇠고기 산적, 흰자와 노른자가 구분된 지단 등을 넣은 것을 떡국으로 본다.

북한 개성에서는 떡 가운데를 잘록하게 만들어 끓인 조랭이 떡국이 유명하다.

떡 모양이 귀신을 쫓는 능력이 있다고 여겨진 조롱박과 실을 뽑는 누에고치의 모양과 비슷해 한해 액운을 물리치고 일이 잘 풀리라고 기원하면서 먹었다는 해석이 있다.

조선 개국 초기 고려에 충성한 개성 사람들이 조선을 비틀어 버리고 싶다는 뜻에서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충청도나 경상도에서는 익반죽(뜨거운 물로 반죽)한 쌀가루를 도토리 크기로 둥글게 빚어서 만든 생 떡국을 먹었다.

전남이나 영남 바닷가 근처 지역은 매생이나 굴을 넣어 떡국을 끓이기도 한다.

전라도에서는 닭으로 육수를 낸 닭장 떡국이 유명하다. 

평안도나 함경도 등 이북에서는 떡국은 안 먹어도 만두는 먹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떡국에 만두가 많이 들어간다.
<기사 출처 : 연합뉴스>

2016년 1월 14일 목요일

한반도 양력 도입 120년 지나도 음력과 '질긴 동거'


서울 인사동을 오가는 행인들. 우리나라에서 양력이 사용된 지 120년이 됐지만 여전히 음력이 병행 사용되고 있다.
명성황후 시해 후 을미개혁으로 태양력 사용 

이중과세 논란 속 음력 풍습과 오랜 '공존'

나는 양력(陽曆)입니다. 지구가 태양 둘레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을 1년으로 정한 역법이죠. 한국에서 태어난 지 벌써 120살이 됐네요.

나의 기원은 이집트로 추정됩니다. 이집트에서 BC 18세기쯤 1년 365일의 저를 만들었답니다. 이 땅에서는 조선 말기 고종 때인 1896년 1월 1일부터 사용됐어요.

◇ "고종 임금 때 일입니다"

고종은 그날 태양력을 도입했다는 의미로 연호를 건양(建陽)으로 정했죠. 한 해 전 일어난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구성된 김홍집 내각이 추진한 을미개혁의 일환이었어요. 전국에 단발령이 내려진 것도 양력 첫 날인 그날이었죠.

이 땅에 날짜를 알려준 음력(陰曆)으로는 그날이 1895년 11월 17일이었죠. 조정이 양력을 도입하는 바람에 음력 개념인 을미년(乙未年)은 40여 일을 남겨두고 갑자기 사라졌고, 병신년(丙申年)도 영영 오지 않는 줄 알았죠.

음력은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을 기준으로 만든 역법이랍니다.

조선 백성은 음력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죠. 내가 활용된 지 120년이 지나 얼마 안 있으면 병신년이 또 돌아오네요.

보름달을 지나는 경비행기. 음력은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을 기준으로 만든 역법이다.
◇ "이중과세 논란이 컸죠"

일제는 나를 받아들이도록 압박을 가하면서 설에 쉬지도 못하게 했죠.

설에 관청이나 학교의 조퇴를 금지하고 세배를 다니는 흰옷 차림의 사람에게 검은색 물을 채운 물총을 쏘아 얼룩지게 하며 괴롭히기도 했어요.

해방 후에는 정부가 양력을 퍼뜨리려 노력했답니다. 양력 1월 1일을 공식 설로 정하고서 이틀을 더해 사흘을 공휴일로 지정한 것이죠. 

대다수 국민은 여전히 음력만 챙겼어요. 내가 한국 땅에 들어온 지 90년이 지난 1986년까지도 국민의 83.5%가 음력설을 쇠었다고 하네요.

결국 정부는 1989년 음력설에 '설'이라는 이름을 되돌려줬고, 1990년부터는 음력설 전후 하루씩을 공휴일로 지정해 사흘을 쉴 수 있도록 했죠. 

그해까지 양력설도 사흘을 쉬었기에 1990년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양력설과 음력설 모두 사흘씩 쉰 해가 됐답니다.

양력설은 휴일이 1991년 이틀로 줄었다가 1999년부터는 지금과 같은 당일 하루로 다시 깎였어요.

지금도 평시에는 나를 사용하면서도 동지나 입춘 등 절기를 보낼 때나 설, 추석 등 명절 때는 꼬박꼬박 음력을 활용한답니다.

양력설인 1월 1일은 1년의 시작이라는 공식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반면 음력설은 우리 민족이 전통 풍속으로 지켜온 명절이라고 보기 때문이죠.

요즘은 스마트폰에 밀려 종이 달력도 위기를 맞았다. <<연합뉴스TV 캡쳐>>
물론 양력설을 받아들인 일부 사람은 음력설은 그냥 공휴일로 보고 양력설을 쇠기도 한답니다.

두 번 설을 쇠기에 적잖은 경제적, 시간적 손실이 발생해 '이중과세(二重過歲)' 문제가 생긴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 "음력과 계속 함께해야겠죠"

최근에는 음력을 기준으로 추석을 쇠면 2000∼2029년 추석의 70%가 여름이라 농산물의 출하 시기가 앞당겨지고 가격도 비싸지는 등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니 양력을 기준으로 추석 일을 지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어요.

물론 추석이 음력 8월 15일인 것은 전통이고 날짜를 바꾸는 것은 역사적 의미에 맞지 않는다는 반박의 설득력이 훨씬 크답니다.

설이나 추석 말고도 생일을 셀 때 나이 많은 분들은 아직도 음력으로 날을 챙기시죠. 역술가가 사주를 볼 때도 음력이 기준이죠.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나와 음력은 계속 함께 나이를 먹어가며 120년을 보냈습니다.

2016년이자 병신년인 올해도 우리 둘의 인연은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병신년의 시작은 대개 음력설(2월 8일)로 보는데 일부에서는 입춘(2월 4일)을 시작일로 보기도 한답니다. 아무튼, 분명한 건 아직은 음력으론 을미년이죠.

<※이 기사는 올해 양력 도입 120년을 맞아 국립민속박물관이 발간한 세시풍속 사전 등을 참고해서 유래와 역사 등을 일인칭 이야기 전개 형식으로 소개한 기사입니다.>
<기사 출처 : 연합뉴스>

2015년 10월 12일 월요일

조선·건설사 회계감사, 80년 만에 확 바뀐다

감사의견에 위험 사항 기재해야
금융위 '핵심감사제' 내년 도입



금융위원회가 조선 및 건설업 등 수주산업에 대해 핵심적인 재무정보를 투자자에게 고지토록 하는 ‘핵심감사제(KAM)’를 내년에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대우조선해양처럼 대규모 부실이 나중에 드러나는 것을 방지하자는 취지지만 세계적으로 도입한 국가가 몇 곳 없는 까다로운 감사제도여서 논란이 예상된다.

11일 금융당국과 회계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내년에 조선 및 건설사에 KAM을 도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수주산업 회계투명성 제고 방안’을 이달 중 발표할 예정이다. 이어 2018년부터는 전체 상장사에 적용할 계획이다.

1933년 미국 증권법이 제정된 이후 80년 넘게 써오던 ‘단문형’ 감사의견 체계가 ‘장문형’으로 바뀌는 것으로, ‘신(新)국제감사기준’이라고 불릴 만큼 큰 변화라는 평가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2012년 도입한 국제회계기준(IFRS) 이상의 파장을 낳을 수 있는 파격적인 제도”라고 설명했다.

■ 핵심감사제(KAM)

key audit matters. 외부감사인이 기업의 회계감사를 진행하면서 가장 중요하거나 위험하다고 판단한 부분에 대해 서술하는 제도. 회계업계에서는 ‘중요 감사사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사 출처 : 한국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