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2일 금요일

싱가포르 '철통' 방역체계, 지카 '습격'에 속수무책


지카 바이러스 감염자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싱가포르에서 보건 당국자들이 살충제를 뿌리고 있다[AP=연합뉴스]
과거 의심사례 추적 검사서 확진자 52명…뎅기열과 유사한 특성도 한몫

철통 같은 감염병 관리 시스템을 자랑하는 싱가포르가 지카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이다.

지난달 27일 첫 감염자 발생 이후 불과 엿새 만에 확진자 수는 150명을 넘어섰고, 환자 발생지역도 중남부에서 중부와 북부 지역으로 이전보다 훨씬 넓어졌다.

특히 감염자 가운데 상당수가 해외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인 데다, 이웃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는 싱가포르를 방문했던 여성이 감염자로 확인되면서 싱가포르가 동남아 지카 바이러스의 온상이 될 우려도 커졌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싱가포르의 급격한 감염자 증가 추세를 고려할 때 보건당국이 지카 바이러스 확산 세를 통제하기가 쉽지 않은 지경이라고 진단했다.

급기야 리셴룽(李顯龍) 총리가 직접 나서 국토 전역에 지카 바이러스가 전파됐음을 인정해야 하며, 매개체인 모기 박멸을 위해 전 국민에게 협조를 구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국토면적이 697㎢로 서울(605㎢)보다 조금 더 큰 싱가포르는 철저한 감염병 관리체계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 2003년 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싱가포르는 이후 촘촘한 감염병 감시체계와 감염 경로 추적, 사후처리 및 방제 시스템을 갖췄고, 국제사회에서 벤치마킹 대상 우수사례로 주목받았다.

지카 바이러스가 창궐한 싱가포르의 한 주택가에 설치된 모기 퇴치 홍보물[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런 싱가포르의 감염병 관리 시스템이 제 역할을 못 한 가장 큰 원인은 증상이 심하지 않은 지카 바이러스의 특성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싱가포르 글레니글스 병원의 감염병 전문가인 왕 신 예 박사는 "지카에 감염됐더라도 80%는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모기에 물린 모든 사람을 검사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이런 무증상 감염자는 '조용한 전파자'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싱가포르내 확진자 가운데 상당수는 발병 당시에 지카 바이러스 감염 의심을 받지 않았고, 뒤늦게 보건당국의 조사를 통해 확진자로 판명됐다.

싱가포르 보건당국은 지카 지역감염이 본격화하자 최근 몇 개월간 의심증세를 보였던 236명을 재차 확인했고, 이 과정에서 확진자가 52명이나 쏟아져 나왔다.

지카 바이러스 감시망에서 벗어났던 이들은 결국 전국적인 지카 확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또 싱가포르에 가장 만연한 감염병인 뎅기열과 지카 바이러스의 유사성도 감염자 급증세에 한몫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듀크-NUS 의과 대학의 신종감염병프로그램 담당자인 엥 엉 우이는 "지카는 뎅기열이 창궐하는 지역에서 전파될 수 있는 모든 유전 형질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지카는 뎅기열을 전파하는 이집트 숲 모기에 감염되고 전파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들어 싱가포르에서는 뎅기열 환자가 급증해 상반기에만 9천명 이상이 감염됐고 5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국은 올해 뎅기열 발생 건수가 사상 최악이었던 2013년(2만2천170명) 수준을 넘어 3만 건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또 좁은 면적에 많은 인구가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거시설에 몰려 사는 싱가포르의 여건도 지카의 빠른 확산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싱가포르에서는 많은 사람이 아파트에 밀집해 생활한다. 몇 마리의 감염된 모기만 있어도 많은 수의 사람들이 감염될 수 있는 여건인 셈이다"고 진단했다.
<기사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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