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9일 목요일

바나나, 식탁서 사라질 위기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치명적 곰팡이병, 아시아 넘어 아프리카까지 번져]

전체 수출량 80% 차지하는 중남미 전파도 시간문제

저항력 강한 아시아산 야생종서 유전자 추출해 신품종 만들어 단일 품종 소비 행태 바꿔야


바나나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과일이다. 바나나의 영양소들은 체내 흡수가 빠르기 때문에 쉽게 에너지로 변한다. 게다가 원기 회복에 필요한 칼륨과 비타민도 풍부해 환자나 운동선수들도 애용한다. 그런 바나나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최근 바나나에 치명적인 곰팡이병이 아시아를 넘어 아프리카로까지 번진 것이 확인됐다. 바나나 최대 수출 지역인 남미로 번지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나온다. 멸종 위기의 바나나를 구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1950년대 이어 두 번째 위기

네덜란드 와게닝겐대 거트 케마 교수 연구진은 지난 10월 국제 학술지 '식물 질병'에 '중동 요르단에서 바나나에 치명적인 Foc-TR4 곰팡이가 발견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Foc-TR4는 땅에 사는 푸사리움 곰팡이의 한 종류다. 바나나가 이 곰팡이에 감염되면 잎이 갈색으로 변하면서 말라 죽는다. 지난달에는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도 이 곰팡이병이 발생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과학계는 두 사건을 바나나 멸종의 전조(前兆)로 받아들이고 있다. Foc-TR4 곰팡이는 1980년대 대만에서 처음 발견됐다. 당시 대만에서 재배하는 바나나의 70%가 이 곰팡이 때문에 말라 죽었다. 이후 중국과 필리핀·인도네시아·호주로 퍼졌다. 이번에 중동과 아프리카로 이 곰팡이가 퍼진 것이 확인되면서 전 세계 바나나 수출량의 80%를 차지하는 중남미로 전파되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바나나가 멸종 위기에 몰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50년대 바나나의 주류였던 그로 미셸(Gros Michel) 품종도 파나마에서 시작된 푸사리움 곰팡이병으로 사라졌다. 지금 우리 식탁에 오르는 바나나는 그 후계자인 캐번디시(Cavendish) 품종이다. 이 역시 그로 미셸을 공격한 푸사리움 곰팡이의 변종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산 야생종에서 해답 찾아

바나나는 긴 역사를 갖고 있는 과일이다. 기원전 5000년부터 동남아시아 말레이반도에서 재배되기 시작했다. 바나나는 처음 열매가 아닌 뿌리를 캐먹기 위해 재배했다, 그러다가 열매에 씨가 없는 돌연변이가 나타나면서 과일로도 인기를 얻었다.

바나나 멸종 위기는 인간이 자초한 일이다. 바나나가 수출품으로 인기를 얻은 것은 껍질이 단단해 장거리 수송에 적합한 그로 미셸 품종이 개발된 19세기 이후다. 그로 미셸이나 그 후계자인 캐번디시 모두 씨가 없어 뿌리줄기를 잘라 번식시킨다. 즉 모든 바나나가 유전적으로 한 개체인 셈이다. 유전적 다양성이 사라진 생물은 치명적인 질병 하나로 일시에 멸종 위기로 몰릴 수밖에 없다. 그로 미셸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다행히 비슷한 캐번디시 품종이 있었지만 지금은 캐번디시를 대체할 품종이 없다.

과학자들은 자연에서 바나나를 구할 해답을 찾고 있다. 수출되는 바나나는 전 세계 생산량의 12%에 불과하다. 아시아나 아프리카에는 다양한 야생종 바나나가 자란다. 과일로는 상품성이 떨어져 수출되지 않고 현지에서만 식용으로 소비된다. 전 세계 4억명은 바나나를 식량으로 삼고 있다. 이 중에는 Foc-TR4 곰팡이에 저항력이 있는 품종들도 있다. 다양성이 질병을 막는 차단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네이처'지에는 아시아산 야생 바나나 한 종(種)의 유전자를 완전히 해독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 바나나는 Foc-TR4 곰팡이에 대한 저항력이 있었다. 호주 퀸즐랜드 공대의 제임스 데일(Dale) 교수는 이 아시아산 바나나에서 곰팡이 저항 유전자를 찾아 캐번디시 바나나 유전자에 끼워 넣었다. 이렇게 만든 신품종은 곰팡이병이 이미 번진 호주에서 18개월간 키워도 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데일 교수는 밝혔다. 아직 최종 연구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단일 품종에 기반을 둔 현재의 바나나 생산과 소비 형태를 바꾸는 것이 근본 대책"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기사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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