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방글라데시 영토 분쟁 매듭… 마을 162곳 교환]
-'육지의 섬' 신세였는데…
다른나라 영토에 둘러싸였던 고립됐던 마을 환호성
"이제야 조국을 갖게 됐다"
-모디의 계산은?
인도, 영토 손실 감수하며 中의 남아시아 영향력 견제
지난 31일 밤 인도 동부의 마을 '다시아르 치하라' 주민 수백명은 횃불을 든 채 시간이 지나는 걸 초조히 기다리고 있었다. 자정이 지나자마자 주민들은 준비한 초록색 방글라데시 국기를 흔들며 방글라데시 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한 주민은 친구들과 춤을 추며 "원하던 조국을 갖게 됐다"며 "방글라데시 만세"를 외쳤다고 프랑스 AFP통신은 전했다.
같은 시각 비슷한 현상이 양국 국경 마을 162곳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인도와 방글라데시가 1일 0시를 기점으로 마을 162곳의 영토를 상호 교환했기 때문이다. 인도 내 방글라데시 마을 51곳(면적 29㎢)은 인도 영토가, 방글라데시 내 인도 마을 111곳(면적 70㎢)은 방글라데시 영토가 됐다. 인도로서는 홍콩의 절반가량 되는 면적이 줄어든 셈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인도가 영토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국경 협정을 체결한 배경에는 남아시아로 뻗어가는 중국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있다"고 했다.
양국 사이 국경선 4100㎞는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국경선'으로 불려왔다. 본토와 분리된 채 다른 나라 땅으로 둘러싸인 '월경지(越境地)'가 200여개에 이르렀다. 워싱턴포스트는 "심지어 '다할라 카그라바리' 같은 인도 마을은 방글라데시 영토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그 방글라데시 영토가 다시 인도 영토로 둘러싸여 있고, 그 인도 영토는 다시 방글라데시 영토에 둘러싸여 있는 '3중 월경지'였다"고 전했다.
'육지의 섬'인 월경지에서의 삶은 낙도(落島) 생활과 비슷했다. 양국 정부가 상대국의 행정이 자국 영토 내 월경지까지 미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본토로부터 전기·수도가 공급되지 않아 촛불과 우물에 의지했다. 학교나 병원에 가려면 거금을 주고 '가짜 신분증'을 샀다. 영국 BBC는 "주민 등록을 하려면 월경지 밖 외국 땅을 밟아 본토로 가야 한다"며 "이렇게 신분증과 비자도 갖추지 못한 채 불법 입국을 하다가 얻어맞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전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해당 지역에서 국경 등을 넘다가 국경수비대에 숨진 이가 2001~2011년 1000명에 달한다고 추산한다. 인도 내 방글라데시 월경지에 거주하던 주민 무함마드 만수르 알리(74)씨는 "여기 살면서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의 독립을 내 눈으로 지켜봤지만, 정작 우리는 어떤 권리도 누리지 못하고 살아왔다"며 "68년이 지나서야 자유를 얻었다"고 했다. 영국 BBC는 "양국이 주민들에게 국적 선택을 맡긴 결과, 인도인 3만6000명과 방글라데시인 1만4000명이 자신의 기존 국적을 버리고 거주지에 따라 새 국적을 선택했다"며 "인도 국적을 유지하기로 한 900여명은 11월까지 인도 서부 웨스트벵골 주로 이주할 것"이라고 했다.
이 지역의 복잡한 영토 문제는 300여년 전 무굴제국이 동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시작됐다. 무굴제국 병사들이 동쪽의 토후국 '쿠치 베하르'에 침입하면서 영토 경계가 복잡해졌다.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해당 경계는 국경으로 굳어졌다. 방글라데시 독립 3년 뒤인 1974년 양국 간 영토 협상이 이뤄졌지만, 인도 의회가 국민 정서 등을 이유로 조약을 비준하지 않았다. 인도 의회는 국경 협정 체결 41년 만인 지난 5월 비준에 동의했고, 다음 달 양국 정부가 비준서를 교환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이번 국경 문제 해결은 베를린 장벽 붕괴 같은 일"이라며 "양국 관계에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했다.
<기사 출처 : 조선일보>
<기사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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