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만들어내는 실손보험
400만원짜리 디스크 수술 하라
300만원짜리 인공수정체 넣으라
병원, 비싸고 불필요한 수술 권해
“담당 의사가 실손보험 가입했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더니, ‘그럼 윈윈합시다’라고 말하더라고요.” 7~8년 전부터 허리에 통증이 있어 디스크 진단을 받았던 50대 중반 김아무개씨는 지난해 7월 걸을 수 없을 정도로 허리 통증이 심해졌다. 어쩔 수 없이 척추 수술을 잘한다는 병원을 주변에 물어 찾아갔다. 의사는 “디스크가 심해 수술이 필요하다”며 “고주파 감압술을 받는 게 좋겠다”고 권했다. 고주파 감압술은 디스크 부위에 고주파 에너지를 내는 특수 바늘을 넣어 삐져나온 디스크를 줄어들게 만드는 시술로,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비급여 치료다. 김씨는 병원 쪽에서 본인 부담은 30만원 정도만 되도록 해주겠다는 말을 듣고 이 치료법을 선택했다. 시술과 나흘간 입원비를 합쳐 모두 440만원이 나왔다. 김씨는 먼저 병원비를 낸 뒤 보험회사에서 380만원을 돌려받았다.
김씨는 “시술 경과를 보려고 병원에 다시 갔을 때 병원 사무장이 실손보험에서 얼마나 돌려받았는지 묻고 현금이 30만원 든 봉투 하나를 줘서 받았다”며 “결국 내 돈은 30만원가량만 낸 셈”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또 “입원했을 때 다른 환자들에게 들으니 똑같은 고주파 감압술을 받는데도 실손보험에 가입했는지에 따라 병원 쪽에서 부르는 시술비가 달랐다. 병원이 수술비를 마음대로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든다”고 말했다. 김씨는 시술 뒤 5개월도 지나지 않아 다시 허리 통증이 재발했고 결국 대학병원을 찾아 디스크 수술(피부를 절개해 디스크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김씨는 “실손보험에 가입했다고 하니까 결국 효과도 없는 시술을 병원이 권한 것 아니냐”며 “차라리 실손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면 불필요한 시술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아무개(56·서울 강동구)씨는 지난달 시야가 좀 흐릿해진 것 같아 서울의 한 안과병원을 찾았다. 주변에서 백내장에 걸린 사람들을 많이 봐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백내장 수술을 해야 한다며 실손보험이 있냐고 물었다. 이씨는 “가입했다고 했더니 의사가 ‘수술비는 거의 다 보상되니 이왕이면 질이 좋고 값이 비싼 다초점 인공수정체를 넣으라’고 권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백내장 수술에 사용하는 30만원 정도가 아닌 200만~300만원짜리를 쓰라는 의미였다. 이씨는 되도록 수술을 피하고 싶어 다른 안과전문병원을 찾았다. 이 병원에서는 “백내장 초기라서 수술을 해야 할 단계는 아니니 정기적으로 관찰만 해보자”고 말했다.
국내에서 실손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이 전 국민의 60%인 3200만명에 이를 정도로 보편화되면서 불필요하고 값비싼 진료가 남발되는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10여년 전부터 판매되기 시작한 실손보험은 건강보험에서 지급되지 않는 병원비를 지원해준다는 점을 내세워 ‘국민보험’ 수준으로 대중화됐지만, 본인부담이 적은 점이 악용되면서 과잉진료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 남용, 실손보험료와 건강보험료 인상 등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실손보험의 부작용으로는 무엇보다 비급여 항목 진료(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의 급증을 들 수 있다. 과거에는 비싼 비용 탓에 비급여 진료를 병원에서 쉽게 권하지 못했지만, 최근에는 병원들이 적극적으로 추천을 하고 있다. 문제는 비급여 진료 중 상당수가 안전성과 효과 면에서 의학적 검증이 부족해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허리 통증 환자는 약만 먹어도 대부분 6개월 안에 통증이 사라지는데, 최근 검증이 덜 된 신경성형술(척추 꼬리뼈 쪽에 얇은 관을 넣어 통증 부위를 제거하는 시술)이나 고주파감압술 등이 난무하고 있다”며 “자칫 후유증만 남기고 치료효과는 없어 환자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효과에 비해 비용이 너무 비싼 치료법이 남용되는 것도 문제다. 전체 의료비 총액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안과 교수는 “백내장 환자 중 일부는 다초점 인공수정체가 필요하지만, 모든 환자가 다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실손보험 때문에 가격이 비싼 다초점 인공수정체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비급여 진료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실손보험 가입자는 급여 항목 진료(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의 환자부담금도 실손보험에서 지원되기 때문에 전체적인 병원 이용이 늘어나기 쉽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비급여 시술을 받아도 입원비는 건강보험에서 지급해야 한다는 점, 자기부담이 적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일반진료의 횟수도 늘어난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 재정 지출이 증가하면 결국 전국민 건강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실손보험 상품을 파는 민간보험회사들도 표면적으로는 비급여 진료가 증가하는 현상에 반대하고 있다. 보험금 지급이 늘어나서 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올해 초 보험사들은 손해율(가입자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 비율)이 급증했다며 실손보험료를 대대적으로 인상하기도 했다. 손해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치료 목적이라고 의사가 판단한 시술이나 치료에 대해서는 보험금을 내줄 수밖에 없다”며 “보험회사 입장에서 대부분의 비급여 치료의 종류와 횟수를 제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과잉진료 문제를 의료계 탓으로 돌린 것이다. 하지만 김종명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은 “민간보험사들은 애초 의료진이 불필요한 시술을 해도 환자가 이를 쉽게 받아들이게 보험상품을 만든 뒤 대대적인 광고로 가입자를 늘려놓고, 이제 와서 의료계와 보험가입자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다”며 “실손보험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사 출처 : 한겨레신문>
400만원짜리 디스크 수술 하라
300만원짜리 인공수정체 넣으라
병원, 비싸고 불필요한 수술 권해
“담당 의사가 실손보험 가입했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더니, ‘그럼 윈윈합시다’라고 말하더라고요.” 7~8년 전부터 허리에 통증이 있어 디스크 진단을 받았던 50대 중반 김아무개씨는 지난해 7월 걸을 수 없을 정도로 허리 통증이 심해졌다. 어쩔 수 없이 척추 수술을 잘한다는 병원을 주변에 물어 찾아갔다. 의사는 “디스크가 심해 수술이 필요하다”며 “고주파 감압술을 받는 게 좋겠다”고 권했다. 고주파 감압술은 디스크 부위에 고주파 에너지를 내는 특수 바늘을 넣어 삐져나온 디스크를 줄어들게 만드는 시술로,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비급여 치료다. 김씨는 병원 쪽에서 본인 부담은 30만원 정도만 되도록 해주겠다는 말을 듣고 이 치료법을 선택했다. 시술과 나흘간 입원비를 합쳐 모두 440만원이 나왔다. 김씨는 먼저 병원비를 낸 뒤 보험회사에서 380만원을 돌려받았다.
김씨는 “시술 경과를 보려고 병원에 다시 갔을 때 병원 사무장이 실손보험에서 얼마나 돌려받았는지 묻고 현금이 30만원 든 봉투 하나를 줘서 받았다”며 “결국 내 돈은 30만원가량만 낸 셈”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또 “입원했을 때 다른 환자들에게 들으니 똑같은 고주파 감압술을 받는데도 실손보험에 가입했는지에 따라 병원 쪽에서 부르는 시술비가 달랐다. 병원이 수술비를 마음대로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든다”고 말했다. 김씨는 시술 뒤 5개월도 지나지 않아 다시 허리 통증이 재발했고 결국 대학병원을 찾아 디스크 수술(피부를 절개해 디스크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김씨는 “실손보험에 가입했다고 하니까 결국 효과도 없는 시술을 병원이 권한 것 아니냐”며 “차라리 실손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면 불필요한 시술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아무개(56·서울 강동구)씨는 지난달 시야가 좀 흐릿해진 것 같아 서울의 한 안과병원을 찾았다. 주변에서 백내장에 걸린 사람들을 많이 봐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백내장 수술을 해야 한다며 실손보험이 있냐고 물었다. 이씨는 “가입했다고 했더니 의사가 ‘수술비는 거의 다 보상되니 이왕이면 질이 좋고 값이 비싼 다초점 인공수정체를 넣으라’고 권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백내장 수술에 사용하는 30만원 정도가 아닌 200만~300만원짜리를 쓰라는 의미였다. 이씨는 되도록 수술을 피하고 싶어 다른 안과전문병원을 찾았다. 이 병원에서는 “백내장 초기라서 수술을 해야 할 단계는 아니니 정기적으로 관찰만 해보자”고 말했다.
국내에서 실손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이 전 국민의 60%인 3200만명에 이를 정도로 보편화되면서 불필요하고 값비싼 진료가 남발되는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10여년 전부터 판매되기 시작한 실손보험은 건강보험에서 지급되지 않는 병원비를 지원해준다는 점을 내세워 ‘국민보험’ 수준으로 대중화됐지만, 본인부담이 적은 점이 악용되면서 과잉진료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 남용, 실손보험료와 건강보험료 인상 등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실손보험의 부작용으로는 무엇보다 비급여 항목 진료(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의 급증을 들 수 있다. 과거에는 비싼 비용 탓에 비급여 진료를 병원에서 쉽게 권하지 못했지만, 최근에는 병원들이 적극적으로 추천을 하고 있다. 문제는 비급여 진료 중 상당수가 안전성과 효과 면에서 의학적 검증이 부족해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허리 통증 환자는 약만 먹어도 대부분 6개월 안에 통증이 사라지는데, 최근 검증이 덜 된 신경성형술(척추 꼬리뼈 쪽에 얇은 관을 넣어 통증 부위를 제거하는 시술)이나 고주파감압술 등이 난무하고 있다”며 “자칫 후유증만 남기고 치료효과는 없어 환자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효과에 비해 비용이 너무 비싼 치료법이 남용되는 것도 문제다. 전체 의료비 총액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안과 교수는 “백내장 환자 중 일부는 다초점 인공수정체가 필요하지만, 모든 환자가 다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실손보험 때문에 가격이 비싼 다초점 인공수정체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비급여 진료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실손보험 가입자는 급여 항목 진료(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의 환자부담금도 실손보험에서 지원되기 때문에 전체적인 병원 이용이 늘어나기 쉽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비급여 시술을 받아도 입원비는 건강보험에서 지급해야 한다는 점, 자기부담이 적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일반진료의 횟수도 늘어난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 재정 지출이 증가하면 결국 전국민 건강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실손보험 상품을 파는 민간보험회사들도 표면적으로는 비급여 진료가 증가하는 현상에 반대하고 있다. 보험금 지급이 늘어나서 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올해 초 보험사들은 손해율(가입자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 비율)이 급증했다며 실손보험료를 대대적으로 인상하기도 했다. 손해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치료 목적이라고 의사가 판단한 시술이나 치료에 대해서는 보험금을 내줄 수밖에 없다”며 “보험회사 입장에서 대부분의 비급여 치료의 종류와 횟수를 제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과잉진료 문제를 의료계 탓으로 돌린 것이다. 하지만 김종명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은 “민간보험사들은 애초 의료진이 불필요한 시술을 해도 환자가 이를 쉽게 받아들이게 보험상품을 만든 뒤 대대적인 광고로 가입자를 늘려놓고, 이제 와서 의료계와 보험가입자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다”며 “실손보험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사 출처 :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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