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택시기사 면허증을 취득하려면 2만5000여개의 도로와 수천 개의 광장을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 도로를 모두 익히는 데 2∼3년은 소요된다고 한다. 2000년 영국 런던대학의 엘리노어 맥과이어 박사는 런던의 택시 운전사 16명과 일반인 50명을 대상으로 뇌의 구조를 조사했다. 그 결과 베테랑 택시 운전자일수록 다른 사람보다 뇌에 있는 해마(뇌신경세포가 모여 있는 곳)가 3% 컸고 그에 따른 뇌 신경세포의 수가 20%나 증가한 것을 발견했다. 나이에 관계없이 머리를 쓰면 쓸수록 뇌 신경세포가 늘어난다는 뜻이다.
반대로 뇌를 쓰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범람하는 디지털 기기로 인해 뇌의 사용이 줄어들면 뇌 세포가 줄어들어 퇴화한다. 그 결과 실제 치매와 비슷한 ‘디지털 치매’ 상태가 된다. 정보통신 기술이 급속도로 확산된 한국은 디지털 치매가 확산되기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디지털 치매’라는 말도 한국에서 나왔다. 특히 여러 디지털 기기 중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이 가장 큰 문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 중독 증상을 보이고 있고, 등이 굽고 시력이 나빠지는 육체적 폐해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스마트폰의 달콤한 유혹, 정신과 육체를 좀먹다=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하루 종일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스마트폰은 디지털 치매를 확산시키는 주범이다. 스마트폰에 의지해 살다 보니 점점 머리를 쓸 일이 사라지고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해지는 현상도 생겨났다.
방송통신위원회의 ‘2012 하반기 스마트폰 이용 실태 조사’ 자료에 따르면 스마트폰 이용자의 77.4%가 “특별한 이유 없이 스마트폰을 자주 확인한다”고 답했다. 스마트폰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라고 호소한 사람도 10명 중 3명이나 됐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하루 평균 스마트폰 이용 시간은 66분이다.
스마트폰에 의존하다 보니 뭔가를 기억할 필요성은 점점 사라진다. 온라인 설문조사 기업인 두잇서베이가 지난해 남녀 582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33.7%가 부모·형제의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직계가족 이외에 전화번호 6개 이상을 기억하는 응답은 15.6%에 그쳤다. 직접 운전하는 운전자 2114명에게 운전 시 내비게이션에 대한 의존도를 물어본 결과 “70% 이상 의존한다”는 사람이 절반 이상(52%)이었다.
응답자를 대상으로 간단한 디지털 치매 진단을 한 결과 38.9%가 치매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어제 먹은 식사 메뉴가 바로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이 30.9%, 단순 암산도 계산기로 한다는 사람도 32.5%였다. 사람들이 스스로 기억해내려는 습관도 사라지고 있다. ‘알고 있는 부분이 잘 생각나지 않을 경우 어떻게 행동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59.5%가 바로 스마트폰을 통해 검색한다고 응답했다. 스마트폰, 인터넷 등 데이터 의존도는 68.11%나 됐다.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은 신체적 부작용도 동반한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최근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직장인 48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스마트폰 사용이 개인에게 미친 영향(복수응답)으로 ‘구부정한 자세’(32.7%), ‘시력감퇴’(32.5%), ‘어깨 결림’(32.2%), ‘수면부족·불면증’(28.8), ‘손가락 결림’(18.4%) 등이 생겼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많았다.
서울 송파구 소재 뽀빠이정형외과 이재학 원장은 스마트폰 보급 이후 자세 교정을 위해 병원을 찾는 중·고교생들이 이전에 비해 급증했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과거 업무상 컴퓨터를 사용하던 30∼40대 직장들이 거북목이나 등이 굽는 현상 등으로 체형교정클리닉을 많이 찾았지만, 2010년 이후에는 스마트폰에 과다하게 노출된 학생들도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루 종일 고개를 숙이고 등을 웅크린 채 몇 시간씩 스마트폰에 매달리다 보니 주로 일자목이나 척추측만증과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많다. 이 원장은 “어렸을 때 한 번 나빠진 자세는 쉽게 교정하기 어렵다”며 “되도록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을 사용해야 한다면 바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디지털 독소 빼는 ‘디지털 디톡스’ 운동 확산=스마트폰 중독이 심해지면서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디톡스는 인체에 쌓인 독소를 빼낸다는 개념인데, 여기에 디지털을 붙여 디지털 기기의 과도한 사용을 줄이고 운동과 독서, 명상 등을 통해 몸과 마음을 건강한 상태로 회복하자는 의미다.
디지털 디톡스 운동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광주광역시 남구는 지난 7일 스마트폰의 강한 자극에 노출돼 현실 감각이 무뎌지고 주의력이 떨어지는 중독 현상의 중증화 예방을 위해 ‘디지털 디톡스’ 예방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중독 없는 스마트한 세상 디지털 디톡스’라는 주제로 교육을 희망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중독 예방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외식업계가 고객을 대상으로 책 읽기 캠페인을 펼치는가 하면 북카페 테마의 매장을 선보이는 등 독서를 통한 ‘디지털 디톡스’ 운동도 활발하다. 외식문화 기업 강강술래는 도서출판 길벗과 함께 ‘하루 30분 스마트폰 끄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하루 30분이라도 스마트폰을 끄고 책을 읽어보자는 취지다. 커피전문점 할리스커피는 지난해 교보문고와의 협업을 통해 서울 지하철 2호선 합정역에 북카페 테마의 콜라보레이션 매장을 열고 책을 통해 디지털 기기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도록 돕고 있다. 매장에는 인문, 사회, 소설 등 다양한 분야의 책 500여권을 비치했고, 베스트셀러나 신간 도서 등 ‘교보문고 추천 이달의 도서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디지털 디톡스 관련 상품이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미국 내 일부 호텔과 리조트들은 여행객을 대상으로 디지털 디톡스 상품을 판매한다. 여행객이 체크인하면서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자신의 디지털 기기를 반납하거나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하면 숙박료를 할인하는 상품이다. 디지털 기기 대신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보드게임이나 고전 도서 등이 제공된다. 여기에 스파 치료, 카약 강습, 하이킹 등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병행된다. 어떤 곳에서는 방에 TV와 전화기마저 두지 않는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해 연말 디지털 디톡스를 위한 방안으로 일정 시간 동안 디지털 기기를 완전히 꺼 버리거나 메시지 도착 등을 알리는 신호음과 팝업 기능을 차단하는 방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기사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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