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욕망을 허하라.’
드라마, 영화, 공연 등 문화의 전역에서 여성의 욕망을 제약하던 오랜 관습들이 깨져 나가고 있다.
◆ 관습의 전복 = 3월 27일 화제 속에 막을 올린 박칼린 연출의 ‘미스터 쇼’(위 사진)는 객석 점유율 95%를 넘기며 연일 만석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근육질 남성 8명이 펼치는 이 19금 여성전용쇼에 대해 ‘남성의 성상품화’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지만 객석 분위기는 뜨겁기만 하다.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 일정 수준을 넘지 않는 계산된 연출력과 박칼린이라는 명성이 보장해 주는 안전판 뒤에서 여성들이 마음 놓고 즐기고 있다.
관람객이 20대부터 40·50대까지 고르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 같은 공연에 대한 여성의 욕구가 세대차를 넘어섰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대 위 여성을 즐기는 남성’이라는 구도를 역전시킨 작품은 상업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순 없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 성문화에 있어서 피해자이자 약자였던 여성이 자본주의 시스템 내 최고 권력자인 ‘소비자’ 위치에 올랐다는 점은 주목할 일이다.
이에 앞서 지난 2월 개봉한 영화 ‘관능의 법칙’(아래 왼쪽)은 40대 세 여성의 성과 사랑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여성의 성=젊음’이라는 오랜 공식을 깼다. 앞서 tvN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 등을 통해 여성의 성이 보다 자유롭게 다뤄지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그 대상이 30대 싱글 선에 그쳤던 것을 ‘관능의 법칙’은 40대 여성으로 끌어올렸다. 시나리오는 당초 50대 여성의 자유로운 성을 다룬 것이었으나, 제작사 명필름이 아직 우리 관객이 수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40대로 연령을 낮췄다고 한다.
◆ 여성 욕망의 제약은 여성의 권력 = 기존 관습과 제약이 무너진 자리에 강력한 새 걸림돌이 등장했다. 이는 장안의 화제작인 JTBC 월화 드라마 ‘밀회’(아래 오른쪽)가 제대로 보여준다. 드라마에서 예술재단 기획실장 오혜원(김희애)과 스무 살 연하의 천재 피아니스트 이선재(유아인)는 본격적인 밀회에 들어갔다. 하지만 지난 1일 방송된 6회에서 남편 강준형(박혁권)은 혜원과 선재의 관계를 눈치챈다. 사랑으로 이름 붙일 만한 단계에 이르기도 전에 들켜버리는 것이 ‘밀회’가 기존의 불륜이나 연상연하 커플 사랑이야기와 다른 지점이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속으로 썩어 들어가고 있는, 최상위 1%의 세계에선 등장인물들이 모두 계산에 바쁘다. 이 세계에서 준형은 부인과 제자의 관계를 알아차렸지만 천재 선재를 내세워 학교에서 ‘파워’를 행사하고픈 욕망 사이에서 머리 아픈 계산을 한다. 혜원 역시 마찬가지다. “그냥 저 사랑하시면 돼요. 밑질 거 없잖아요. 분명히 제가 더 사랑하는데”라며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선재에게 끌리면서도, 선재의 사랑을 갖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렵게 일군 지위와 권력을 모두 버려야 하는 선택 앞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드라마 평론가이자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인 황미요조 씨는 “여성들이 성공하고 이전에 남성이 가졌던 권력을 얻게 되면서 자신의 욕망을 막는 것이 외부의 도덕이나 틀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 이 사회에서 쌓은 자신의 권력이 돼버렸다”고 진단했다.
<기사 출처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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