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숙제, 글쓰기
미국의 유명 대학들은 신입생 선발 때 반드시 ‘에세이’를 제출하라고 한다. 하버드대는 엄격한 에세이 평가로 악명(?)이 높은 대학이다. 교수들이 에세이를 꼼꼼히 읽은 뒤 직접 평을 쓰고 당락을 가른다. 하버드 합격생들의 에세이를 묶어놓은 책을 보면 글을 잘 썼다는 느낌을 받는다. 문체나 문장력, 구성력이 좋을 뿐 아니라 내용이 감동적이다.
에세이에 과거 드러난다
미국 대학들이 입시전형에서 에세이에 비중을 두는 이유는 딱 하나다. 글쓰기 능력 평가보다 전인적, 창의적 학생을 고르는 방법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주어진 분량 안에 ‘자신이 누구인지’를 표현해 내려면 종합적인 능력이 필요하다. 첫째, 내용이다. 외국 대학이 요구하는 에세이 주제는 남의 얘기나 소설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내용이어야 한다. 고교 졸업 때까지 살아온 수많은 과정 중 핵심을 글에 투영해내야 한다. 대학 측에서는 내용을 보고 해당 학생이 어떻게 살아왔으며 그것을 토대로 향후 어떤 미래를 살아갈 것인지를 파악해낸다. 글 안에 인생관, 가치관, 행동양식, 잠재의식까지 드러난다는 것이다. 어떤 역경이 있었는지,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글을 통해 알 수 있다. ‘글은 자신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라고 하는 이유다. 하버드대 에세이집(集)을 보면 이민 와서 산 이야기, 파산한 가족 이야기, 노숙자의 자식이었던 이야기, 공부를 포기했다가 다시 책을 잡은 이야기 등 수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
독서량을 나타낸다
둘째는 글쓰기 능력이다. 아무리 자기 삶이 파란만장해도 글쓰기 능력이 없다면 문고리 없는 문짝과 같다. 여기서 글쓰기 능력은 단순히 재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글쓰기 능력은 독서량을 말한다고 한다. 글쓰기 능력이 좋다는 말은 평소 책을 많이 읽었음을 알려주는 신호라는 것이다. 독서량에 따라 글의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다. 대학은 많이 읽고 많이 써내야 하는 곳이 아닌가. 결국 글쓰기가 풍부한 어휘력과 표현력, 문장력, 구성력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통로가 된다. 글재주가 타고난 학생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표현력, 문장력, 구성력은 독서량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글쓰기를 잘하면 훨씬 돋보인다. 적은 분량의 에세이로도 평가자를 웃고 울릴 수 있다.
우리나라 입시에서도 자기소개서 작성란 등이 있으나 여전히 형식적이다. 대학 이전의 학습기간 동안 글쓰기와 책읽기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학생들에게 자기소개서 작성은 ‘학원에서 배우기’로 가능한 영역으로 치부된다. 천편일률적인 자기소개서가 나오는 이유다.
좋은 글이 세상 바꾼다
많은 유명 작가들도 “왜 글을 쓰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어떤 이는 문자가 있어 글을 쓴다고 하고, 어떤 이는 뇌가 있어 글을 쓴다고 말하기도 한다. 글을 쓰는 이유가 카타르시스에 있다고 말하는 작가도 많다.
글을 쓰는 것은 인간만 가능한 지적 작업이다. 고대인들은 상형문자, 갑골문자로 소통을 하고 역사를 남겼다. 글쓰기가 없었다면 역사는 단절됐을 것이다. 글쓰기는 정보를 자자손손 전달하는 매우 중요한 문명이기다. 문자와 글쓰기가 없었다면 성경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글쓰기, 톨스토이의 글쓰기 덕분에 우리는 대대로 그의 글을 읽는다. 글쓰기가 없었다면 1000년 전의 철학자들이 고민했던 철학과 사상의 진화는 이뤄지지 않았을 게 자명하다.
시인은 세계를 향한 갈망이 시를 쓰게 한다고 한다. 윤동주의 ‘서시’가 오늘날 손자들에게 전해진 것도 글을 쓰고자 하는 시인의 갈망 덕분이다. 글쓰기를 ‘감정을 객관화하는 과정’으로 풀이하는 문인도 있다. 남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려면 격한 감정을 걸러내고 정서로 엮어내는 글쓰기 능력이 필수다. 인류의 마음을 움직이고 인류의 문명사적 전환기를 가져온 것 중에 명연설이 적지 않다. 명연설은 좋은 글쓰기 없이 불가능하다.
미국 대학의 한 경제학과 교수는 1학년 첫 수업시간에 자신이 쓸 책 제목을 써내라고 한다. 글을 쓰기 위해선 사전에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이 교수는 알고 있는 것이다. 글쓰기가 중요한 이유는 글을 쓰기 전에 많은 노력을 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최종적인 글쓰기는 그런 준비 과정을 보여주는 스크린이다. 글쓰기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남긴다고 생각해보라. 참으로 멋지지 않은가.
‘1984’를 쓴 소설가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를 글로 남겼다. 글쓰기가 왜 중요한가를 짧은 글을 통해 설명한 것이다. 그는 이 글에서 “내가 쓴 심각한 작품은 어느 한 줄이든 직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들”이라고 밝혔다. 1930년대 유럽에 휘몰아친 전체주의와 공산주의를 최선봉에서 고발한 작가답다.
그는 이어 “나는 책을 쓸 때 스스로에게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쓰는 건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이나 주목을 끌어내고 싶은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오웰은 글 쓰는 동기를 네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 순전한 이기심, 둘째 미학적 열정, 셋째 역사적 충동, 넷째 정치적 목적이다. 그는 “똑똑해 보이고 싶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오래 기억되고 싶은 등등의 욕구를 동기가 아닌 척, 그것도 강력한 동기가 아닌 척 하는 건 허위”라고 솔직히 말했다.
그는 이 중 정치적 목적을 가장 높게 평가했다. 그에게 있어 정치적 목적이란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뜻한다.
오웰은 “모든 책은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내 작업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됐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돼 있던 때였다”고 한 이유다. 그렇다고 그가 좋은 산문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 그는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사 출처 : 한경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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