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5일은 미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 테러 1주기입니다. 이를 앞두고 지난 주말 보스턴 마라톤 테러로 왼쪽 다리를 잃은 한 여성의 이야기를 뉴스에 소개했습니다. 애드리안 해슬렛-데이비스라는 올해 33세 여성입니다. 애드리안은 남편과 함께 결승선 부근에서 골인하는 선수들을 응원하던 중 두번째 폭탄 파편에 맞아 왼쪽 다리 무릎 아래를 잃었습니다. 애드리안은 볼룸댄스 선수이면서 댄스 강사였습니다.
자신이 불구가 됐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된 그 끔찍한 순간을 애드리안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고 직후 병원으로 실려가 수술을 받은 애드리안은 왼발에 심한 통증을 느끼며 잠에서 깼습니다. 어머니가 병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에게 왼발이 아프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애드리안, 넌 왼발이 없단다. 잃어버렸어."
댄스 선수에게 "다리를 잃었다."라는 말은 아마도 '사형선고' 같은 것이었을 겁니다. 다리와 함께 직업과 꿈, 그리고 미래가 모두 사라졌다는 뜻이니까요. 하지만 애드리안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댄스밖에 없다며 댄스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애드리안의 용기에 당시 많은 미국인들이 감동하고 격려를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열렬히 박수를 치면서도,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거라고 믿는 이들은 사실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전 세계적으로 큰 명성을 얻고 있는 'TED' 강연회 무대에 흰색 드레스를 멋지게 차려입은 애드리안이 등장했습니다. 남성 파트너와 함께 라틴 음악에 맞춰 룸바 댄스를 멋지게 소화해 냈습니다. 객석에서는 기립박수가 쏟아졌습니다. 공연을 끝낸 뒤 애드리안도 무대 위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짧은 드레스 아래 드러난 왼쪽 다리엔 의족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애드리안은 수술 후 회복하자마자 의족을 신고 연습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처음 신어보는 의족은 걷는 것 조차 힘겨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반 의족으로는 정교한 춤 동작을 소화하는 건 무리였습니다. 몇 달을 연습했지만 진전이 없었습니다.
그때 소식을 들은 MIT 연구진이 나섰습니다. 애드리안을 위해 컴퓨터가 장착된 최첨단 로봇 의족을 제작해 줬습니다. 춤 동작을 일일이 컴퓨터로 입력하고 분석해서 미세한 움직임까지 가능하게 한 최첨단 의족 덕분에 애드리안은 꿈에도 그리던 무대에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첫 무대는 바로 애드리안의 기적같은 '컴백'을 가능하게 한 컴퓨터 의족 기술을 소개하는 'TED' 강연장이었습니다.
미국 CNN 방송은 애드리안의 이야기를 42분에 걸친 특집 다큐물로 제작해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애드리안이 '복귀' 의지를 밝힌 지난해부터 1년을 밀착 취재한 결과물입니다. 그 속엔 끔찍한 테러 당시부터 현재까지 애드리안이 겪었던 고통과 분노, 좌절과 희망, 성공과 실패, 땀과 눈물이 꾹꾹 눌러 담겨 있습니다.
방송에 소개된 애드리안의 인터뷰들은 하나같이 너무나 진솔해서 수시로 코끝이 찡할 만큼 감동적입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역시 "나는 희생자가 아니라 생존자입니다."라는 말입니다. '기적'을 가능하게 한 애드리안의 강한 의지와 삶을 대하는 긍정적 자세를 한마디로 웅변해 주는 말입니다.
애드리안은 말했습니다. "나는 희생자가 아닙니다. 희생자는 다른 사람에 끌려다니고 고통받는 사람을 말하는 거죠. 전 고통받는 게 아니라 성장하고 있는 거예요. 전 희생자가 아니라 생존자입니다. (I'm not a victim. That means i'm belong to somebody or i'm suffering. I'm not suffering. I'm thriving...I'm a survivor, i'm not a victim.)"
무엇이 이런 의지를 가능하게 했을까요? 지난해 테러 발생 직후 병원에서 진행된 인터뷰 말미에 CNN 기자가 애드리안에게 물었습니다. "(이 상황에) 화가 나세요?" 당연히 애드리안은 대답했습니다. "네. 화납니다. 매 순간 화나 있는 건 아니지만, 네. 화납니다."
"매 순간 화나 있는 건 아니지만(I'm not angry 100% of time)," 개인적으로, 애드리안이 만들어낸 기적의 비결은 바로 이 말속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꿈속에서마저 분노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결코 그런 부정적 감정에 완전히 매몰되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 그런 태도와 용기 말입니다.
끝으로 시간의 제약 때문에 방송에서는 미처 소개하지 못 했던 애드리안의 또 다른 인터뷰를 소개합니다.역시 끔찍한 테러를 당한 직후 병상에서 했던 말입니다.
"누군가 당신이 하려는 일을 못하게 막거나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지면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현실 속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아야 합니다. 저는 지금의 이 상황이 '끝'이 되길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제 겨우 서른둘인걸요. 이렇게 끝나고 싶지는 않아요. 결심했습니다. 저는 더 강해질 거예요."
<기사 출처 : SBS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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