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축제에서 선보인 훈민정음 한지등. |
ⓒ 이현정 |
"샵쥐 생선 사러 갈 건데. 같이 갈래? 배카점 셀이잖아."
"우래기 퍄노 섭 끝나고 갈게. 버정에서 만나."
여러분은 이들의 대화가 쉽게 이해되시나요? 글쎄요, 전 분명 우리말이긴 한데, 그 뜻을 곧바로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고리타분하거나 유행에 뒤처지는 사람이 되어 버린 탓일까요? 최근 들어 이처럼 해석이 필요한 대화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카카오톡,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SNS 서비스를 이용해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알쏭달쏭한 경우가 더욱 많아졌는데요. 신조어, 줄임말 해설서라도 만들어야 할 판입니다. 그렇다면 줄임말과 각종 신조어 사용, 과연 이대로 괜찮을까요?
재미삼아 쓰는 줄임말 신조어, 그 실태는?
배카점은 백화점, 셀은 세일을 이르는 말입니다. 즉, 앞선 대화를 해석하면, "시아버지 생신 선물 사러 갈 건데. 같이 갈래? 백화점 세일이잖아." "우리 애기 피아노 수업 끝나고 갈게. 버스정거장에서 만나"입니다.
뭐 버스정거장을 '버정'이라고 줄이는 정도야 이젠 일상적인 언어가 되었다 생각하는데요. 문센(문화센터), 고터(고속버스터미널), 놀터(놀이터), 스골장 (스크린골프 연습장), 생선(생신선물), 생파(생일파티), 문상(문화상품권), 김찌(김치찌개), 아메(아메리카노), 법카(법인카드), 음쓰(음식쓰레기), 일쓰(일반쓰레기), 김냉(김치냉장고), 결기(결혼기념일), 열폭(열등감 폭발), 페메(페이스북 메시지), 일유(일반유치원), 예랑(예비신랑) 등과 같은 단순 줄임말은 그나마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댐(남대문), 셩장(수영장), ?실(미용실), 삼실(사무실), 쟈철(지하철), 팸래(패밀리레스토랑), 공뭔(공무원), 대겹(대기업), 뻐카충(혹은 뻐충, 버스카드 충전), 빠충기(배터리 충전기), 횐갑(회원 가입), 유천(유치원), 촘파(초음파), 솩(수학), 설(서울), 윰차(유모차) 등의 경우에는 약간의 머리 굴림이 필요합니다.
요즘에야 드라마 제목 등도 모두 이렇게 줄여 얘기하고, 심지어 뉴스 기사에도 등장할 정도이니, 이 정도는 무덤덤하게 넘겨집니다.
▲ ddp 개관 시 선보인 한글켈러그래피. |
ⓒ 이현정 |
하지만 엄빠(엄마아빠), 애겸마(애기엄마), ?남편(저희 남편), 삼갤(3개월), 얼집(어린이집), 시래기(에어컨 실외기) 등에 이르면, 굳이 이렇게까지 써야 할까 의아해집니다. 무엇보다 압권은 우래기(우리 아기), 멱국(미역국), 셤니(혹은 셤마, 시엄니, 시모 : 시어머니), 시압쥐(혹은 샵쥐, ?지, 시압지,#g : 시아버지)인데요. 대체 왜 이런 불쾌감을 유발하는 어감의 표현까지 사용하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SNS로 소통하는 세상, 줄임말 신조어는 필수?
물론 SNS 서비스로 대화를 나누려면, 줄임말이 필요하다는 것쯤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말이 아닌 문자를 사용하다 보니, 보다 빨리 더 간단하게 쓸 필요성이 생겼을 테니까요.
좋은 소식이 있을 때는 SNS를, 반대로 나쁜 소식은 전화로 소통한다고 하죠? 최근 미국의 한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결과라 하는데요. SNS서비스는 이제 일상적인 소통과 대화의 장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전화보다는 SNS서비스를 주로 이용하고, 문자 대화가 신속하고 맘 편한 세상이 된 것이지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줄임말 사용은 이제 문화가 된 듯합니다. 최근 SNS서비스나 인터넷 글들을 들여다 보면 이러한 줄임말 사용은 일종의 놀이처럼 확산되는 모양새입니다. 예전에야 망가지고 어긋난 우리말 사용은 청소년층의 문제라 했는데, 요즘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거리낌없이 줄임말을 사용합니다. 하긴 청소년들은 더 알 수 없는 초성만 쓰는 줄임말을 사용하고 있죠? 또한, 대화의 대부분을 속어나 은어가 차지하는 걸로 압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줄임말 단어보다 더욱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신조어들인데요. it님(블로그 이웃님), 심남(관심이 가는 남자), 썸녀(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여자) , 관종(관심 종자), 존잘(아주 잘 생김) 등의 단어에서부터, 케바케(때에 따라서), 케미(잘 어울린다) 등 외래어에서 온 단어 등도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건어물녀(연애를 포기한 여자)나 초식남(온순하고 착한 남자)과 같은 일본 만화나 드라마 등에서 유래된 신조어도 많이 눈에 띕니다. 이처럼 다양한 문화가 혼합되어 나타나는 신조어들의 문제는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어떻게 파생되어 온 단어인지 인식하지 못한 채 쓰고 있는 경우가 많아 더 큰 문제라 생각됩니다.
▲ 한글 서예전 남산도서관에서 있었던 한글서예전 '한글의 꽃' 모습. |
ⓒ 이현정 |
사실 이런 신조어들은 발 빠르게 알아채지 못하면, 뭔가 시대에 뒤처지는 것 같은 자격지심까지도 느껴지게 하는데요. 글쎄요. 신조어나 줄임말 대신, 깨끗한 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이 그저 시대에 뒤처지는 답답한 노릇일까요?
오는 9일은 568돌 한글날입니다. '한글 사랑 나라 사랑'류의 계몽성 기사들이 의례적으로 등장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무슨무슨 날만 되면 나오는 계몽성 글들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올해만큼은 꼭 한번 함께 생각해 봤으면 싶어, 저도 이렇게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한글날을 맞아 지금 나의 한글 사용 실태는 어떤지 한 번쯤 되돌아보는 건 어떨까요? 굳이 멀리서 찾지 말고 자신이 쓴 SNS서비스의 글들을 되짚어 보면 금세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줄임말이나 신조어 대신 예쁜 우리말로 바꿔 사용하면 더욱 좋겠습니다.
<기사 출처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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