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 보험 등 가입 때 요구, 모든 책임 떠넘기는 부메랑 돼
각종 금융상품 가입마다 소비자 보호를 명목으로 따라붙는 '서명' 제도가 오히려 소비자를 보호받지 못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부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고객님, 밑줄 그은 데마다 서명해 주시면 됩니다.”
웬만한 금융상품에 가입할 때면 한번쯤 들어봤을 익숙한 권유다. 암호 같은 용어와 복잡한 설명에 귀 기울이며 금융사 직원이 가리키는 곳마다 마치 받아쓰기하듯 서명을 하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은 하얘지기 일쑤다. 무슨 조항에 어떤 동의를 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수십 번의 서명을 통해 소비자는 이미 추후 어떤 불만도 제기할 수 없는 무장해제 상태에 놓이곤 한다.
소비자 보호라는 명분으로 시행 중인 금융상품 가입 시 서명 의무화 제도가 오히려 소비자를 보호받지 못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양산하고 있다.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 소비자가 많게는 수십 번에 이르는 서명의 의미를 모두 이해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기계적인 서명이 결국에는 소비자에게 모든 책임을 떠안기는 부메랑이 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최근 수년 간 빠른 속도로 서명 횟수 늘리기에 주력해온 정부와 금융업계가 올 들어 뒤늦게 서명 간소화와 실효성 향상을 위한 개선작업에 착수했지만 묘수가 나올 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소비자의 눈높이는 외면한 채 사고 때마다 면피성 서명만 늘려온 땜질식 정책이 현실을 더욱 왜곡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보험상품 하나에 가입할 때 필요한 서명은 줄잡아 30~50회에 달한다. 펀드 가입에도 30회 전후의 서명이 필요하고 신용카드 가입 시에도 최소 10회 이상의 서명이 소비자에게 요구되고 있다.
이는 2000년대 후반 이후 금융당국과 금융사들이 불완전 판매 감소와 소비자 권리 보호를 명분으로 상품 가입 전 갖가지 설명 의무를 확대해 온 탓이다. 2000년 이전 3~4회에 불과하던 서명 횟수는 신용정보보호법, 개인정보보호법, 자본시장법 등 법률에 의해 급격히 불어났고 펀드ㆍ기업어음(CP) 부실판매, 개인정보 대량 유출 등 각종 금융사고를 겪으며 마치 누더기처럼 변했다.
하지만 많게는 책 한 권 분량에 이르는 방대한 계약 내용을 소비자가 일일이 이해하고 서명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게 문제다. 서명 조항 가운데는 숱한 개인정보 제공 동의는 물론, ‘약속한 내용을 보장받을 수 없다’거나, ‘추후 어떤 불만도 제기하지 않겠다’는 식의 내용이 적지 않다. 결국 ‘설명을 잘 들었고 충분히 이해했다’는 의미의 서명이 사실은 충분히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소비자의 권리를 박탈하고 있는 셈이다.
김헌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는 “대부분의 자산 증식과 노후 대비를 금융상품에 의존하는 현실에서 상품의 핵심 조건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가입하는 현실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소비자에게 상품 정보를 실질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정부와 금융업계, 소비자의 총체적 개선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기사 출처 : 한국일보>
각종 금융상품 가입마다 소비자 보호를 명목으로 따라붙는 '서명' 제도가 오히려 소비자를 보호받지 못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부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고객님, 밑줄 그은 데마다 서명해 주시면 됩니다.”
웬만한 금융상품에 가입할 때면 한번쯤 들어봤을 익숙한 권유다. 암호 같은 용어와 복잡한 설명에 귀 기울이며 금융사 직원이 가리키는 곳마다 마치 받아쓰기하듯 서명을 하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은 하얘지기 일쑤다. 무슨 조항에 어떤 동의를 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수십 번의 서명을 통해 소비자는 이미 추후 어떤 불만도 제기할 수 없는 무장해제 상태에 놓이곤 한다.
소비자 보호라는 명분으로 시행 중인 금융상품 가입 시 서명 의무화 제도가 오히려 소비자를 보호받지 못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양산하고 있다.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 소비자가 많게는 수십 번에 이르는 서명의 의미를 모두 이해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기계적인 서명이 결국에는 소비자에게 모든 책임을 떠안기는 부메랑이 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최근 수년 간 빠른 속도로 서명 횟수 늘리기에 주력해온 정부와 금융업계가 올 들어 뒤늦게 서명 간소화와 실효성 향상을 위한 개선작업에 착수했지만 묘수가 나올 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소비자의 눈높이는 외면한 채 사고 때마다 면피성 서명만 늘려온 땜질식 정책이 현실을 더욱 왜곡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보험상품 하나에 가입할 때 필요한 서명은 줄잡아 30~50회에 달한다. 펀드 가입에도 30회 전후의 서명이 필요하고 신용카드 가입 시에도 최소 10회 이상의 서명이 소비자에게 요구되고 있다.
이는 2000년대 후반 이후 금융당국과 금융사들이 불완전 판매 감소와 소비자 권리 보호를 명분으로 상품 가입 전 갖가지 설명 의무를 확대해 온 탓이다. 2000년 이전 3~4회에 불과하던 서명 횟수는 신용정보보호법, 개인정보보호법, 자본시장법 등 법률에 의해 급격히 불어났고 펀드ㆍ기업어음(CP) 부실판매, 개인정보 대량 유출 등 각종 금융사고를 겪으며 마치 누더기처럼 변했다.
하지만 많게는 책 한 권 분량에 이르는 방대한 계약 내용을 소비자가 일일이 이해하고 서명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게 문제다. 서명 조항 가운데는 숱한 개인정보 제공 동의는 물론, ‘약속한 내용을 보장받을 수 없다’거나, ‘추후 어떤 불만도 제기하지 않겠다’는 식의 내용이 적지 않다. 결국 ‘설명을 잘 들었고 충분히 이해했다’는 의미의 서명이 사실은 충분히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소비자의 권리를 박탈하고 있는 셈이다.
김헌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는 “대부분의 자산 증식과 노후 대비를 금융상품에 의존하는 현실에서 상품의 핵심 조건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가입하는 현실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소비자에게 상품 정보를 실질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정부와 금융업계, 소비자의 총체적 개선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기사 출처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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