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감독 김경묵씨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소회를 밝히고 있다. |
ⓒ 지혜 |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오태양씨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지 13년이 지났다. 그 사이 헌법재판소의 대체복무제도 개선 권고, 법안 상정, 국방부의 대체복무제 허용 발표 등 사회적 변화가 생기는 듯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체복무제 논의는 전면 무효화됐다. 지금 이 순간에도 총을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700명가량의 젊은이가 수감 중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지원 단체인 '전쟁 없는 세상'에 따르면, 평화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청년 8명도 현재 감옥에 있다.
독립영화 감독 김경묵씨(29)는 입영일이던 지난 5월 13일, 군인이 되기를 거부했다. 김씨가 병역법 위반으로 경찰과 검찰 조사를 받는 동안 세간은 윤 일병 사망 사건과 임 병장 총기난사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하지만 군의 '혁신'은 없었다.
김씨는 2004년 <나와 인형놀이>로 데뷔해 <얼굴 없는 것들><청계천의 개><줄탁동시><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등 독립영화를 연출했다. 베니스영화제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영된 그의 작품에는 탈북자, 동성애자 같은 소수자가 등장한다. 오는 11월 19일 재판을 앞둔 그를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군대에 가지 않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
"어릴 적부터 군복을 입고 총을 든 채 단체로 군사훈련을 받는 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다 2004년, 스무 살에 신체검사를 받으면서 군복무가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병무청에 열아홉 살 때부터 받은 정신과 치료 진단서를 제출했다. 7급 재검 판정을 받았다. 당시 나는 긴 시간 정신과 치료를 받은 만큼 군대 내에서 '관심사병'이나 '문제사병'이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반복되는 재검 판정을 받으며 '일단 (군대에) 집어넣고 보자'는 병무청의 뜻을 몸소 느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치료를 중단하니 곧바로 3급 현역 대상자 판정이 내려졌다. 시간이 지나 노무현 정권에서 대체복무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군대에 변화가 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곧바로 대체복무제는 헌신짝처럼 버려졌고, 병역 제도는 이전처럼 유지되었다. 나는 군폭력 희생자의 자리도, 가해자의 위치도 원하지 않았기에 병역거부를 결심했다."
"저항하는 이들의 고통이 보였다"
- 병역거부를 앞두고 심적 부담이 컸을 것 같다.
"올해 영화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를 6월에 개봉하고, 곧바로 다큐멘터리 <유예기간> 작업을 완료해야만 했다. 입영일이 나오자, 감옥에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심적 고통이 왔다. 병역거부에 따른 처벌은 대체로 1년6월 징역형이다. 때 늦은 나이이기에 나는 스스로 어느 정도 준비가 된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병역거부 소견서를 작성하려니 며칠 간 한 마디도 쓸 수 없었다.
이전까지의 병역거부자들은 평화주의에 대한 신념, 전쟁을 반대하거나 집총을 거부하는 이유로 병역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들 모두 존경스럽다. 하지만 내가 그런 이유로 병역거부를 말하는 게 사회적 대의명분 뒤에 자신을 숨기는 것만 같았다. 합리적인 명분을 떠나 병역거부와 징역을 앞두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고 싶었다. 나에게는 어떠한 대의명분 이전에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먼저 다가왔다. 군대에 가는 것만큼 징역살이 역시 두렵게 받아들이는 자신을 보며, 이 두려움의 정체에 대해서 깊이 고찰하기 시작했다.
올해 일어난 군폭력 사건들을 떠올려 보자. 피해자가 (하루아침에) 가해자가 되는 현 군체제에서 선임병이 후임병에게 행하는 폭력은 군대에서는 평범한 행위로 정당화 된다. 불행한 사실은 그들 자신이 행했거나 받아야 했던 폭력을 성찰하며 그 체제에 '왜'라는 의문을 제기하면, '체제부적응자'라는 낙인이 찍힌다는 거다.
이처럼 군폭력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된 이들 역시 군 폭력 앞에 반하거나 이탈하게 될 때 마주해야 하는 처벌이 두려웠을 것이다. 악한 행위는 악한 자가 아니라, 악의 체제에 의해서 작동된다. 국가의 징집제도에 의해 강제로 그 체제에 자기 자신을 끼워 맞춰야 했던 그들의 상황이, 병역거부를 택한 나의 두려움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 느꼈다.
병역거부 소견서에 보면 신념에 가득 찬 병역거부자가 아닌, 나약한 한 인간 '김경묵'이 드러나 있다.
'군대를 가지 못하는 마음이 어디서부터 왔을까?'하는 질문이, 소견서를 쓰는 데 첫 번째 해답이었다. 군사주의적 문화에 적응할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운 감정을 마주했다. 그 마음이 군복무를 거부하도록 했다. 여전히 대중들에게 양심적 병역거부에 '양심'이라는 말은 논란거리다. 양심은 '어떠한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불변한 신념을 지칭하는데, 나에게는 병역에 대한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 이 양심을 향해 다가서는 첫 번째 발걸음이 되었다.
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거나 단순한 병역기피자일 수도 있다. 본질적으로 그 차이는 없다고 본다. 병역거부 의사를 밝힌 뒤 검찰 조사를 받고 재판을 기다리며 두려움을 마주한다. 병역거부 사실을 알린 후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 국가 체제에 불복종하면서 당하는 처벌에 대한 두려움, 사회에서 단절된 채 징역살이하는 두려움, 처벌 이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두려움이 끝없이 다가온다. 군복무 중 자기가 당한 폭력이 부당함에도 불구하고 맞아야 했던 군인, 폭력을 보고도 침묵해야 했던 군인, 군복무 중 괴로워서 탈영을 한 사람이나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도 나와 같은 두려움을 마주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모두가 병역거부를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도, 나는 이 모든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제대 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군필자도 같은 마음일 거라고 본다. 삶 전체를 걸고서라도 지켜내고자 하는 불변적인 신념인 양심은 언어로 쓰기 이전의 감정, 즉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가치가 허물어지는 듯한 두려움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 영화감독 김경묵씨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소회를 밝히고 있다. |
ⓒ 지혜 |
- 병역 거부 과정에서 무엇을 느꼈나?
"'국가권력에 저항하는 개인은 정말 미약하구나'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평택 대추리, 용산 참사, 강정 해군기지, 세월호 참사 등 그간 기사를 통해 희생자의 고통을 짐작은 했지만 피부로 느끼지는 못했다. 처벌에 따른 공포와 무기력, 두려움은 생각보다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그런 감정은 국가에 저항하지 말라는 명령을 수행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가 약속했던 특별법 제정을 하지 않고 '그만하라'고 등 돌리는 상황을 보면서 국가에 대항하는 개인이 얼마나 작고 초라한지, 또한 그러한 행위가 한 개인의 삶을 통째로 희생하게 될 수 있는 지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저항하기를 선택한 데 경외감을 느낀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겪으면서 타인의 불행이나 고통을 이전보다 더 나 자신의 일과 같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국가권력에 저항하는 이들의 고통에 더 깊이 공감과 연대감을 갖게 되는 한편, 이와 같은 분들이 있기에 나 또한 소신을 굽히지 않고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됐다" (김경묵 감독은 10월3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영화인 선언에 이름을 올렸고, 10월 6일부터 7일까지 광화문에서 동조단식에 참여했다).
- 병역거부과 관련해 어떤 절차들이 있었나?
"5월 13일 입영통지서를 받고서 입영을 거부한다는 의사를 병무청에 전달했다. 담당자는 '병역법위반으로 기소되는 거 아시죠?'라고 간단하게 이야기 하더라. 그러고 나서 경찰조사와 검찰조사를 받았다. 10월 2일 피고인 소환장을 받았다. 11월 19일 공판이 예정돼 있고, 2∼3주 후 결심 재판이 진행된다.
수감되기 전 이별을 준비하며 내가 사랑하는 영화를 지인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까 한다. 또한 후원파티를 계획하고 있다. 옥살이에 필요한 영치금을 마련하기도 하고, 양심적 병역거부자 지원단체인 '전쟁 없는 세상'에 일부 후원을 할 예정이다. (병역거부자 김경묵씨 소식은 그의 후원회 https://www.facebook.com/conscienceless.things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사 출처 : 오마이뉴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