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9일 목요일

금리 바닥인데… 사라지지 않는 약탈금리

연체금리부터 담보·약관·카드 대출까지 요지부동

금융사, 당국 눈치보며 수익 급급… 서민 고통 가중

겉으론 '연체 리스크 관리' 속으론 서민 상대로 '이자놀이' 

기업銀 연체금리 낮아도 연체율 관리 잘하는데

타은행 '도덕적 해이 방지 명분' 이치에 안맞아

보험 약관대출 등 내돈 맡기고 빌릴때도 가산금리


직장인 이동건(가명)씨는 '습관성 금융소비자'다.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가입한 예적금을 비롯해 결혼 직후 받은 주택담보대출·마이너스통장까지 여수신 상품을 10년째 운용하고 있다. 그는 얼마 전 기묘한 경험을 했다. 업무로 바빠 자금운용을 잘못하면서 연체를 했고 그 대가로 10%에 가까운 연체이자를 납부해야 했다. 

그는 궁금했다. 10년 사이 예금금리는 무려 2%포인트 넘게 내려앉았는데 연체이자는 과거와 큰 차이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은행 수익원인 대출금리는 예금금리보다 덜 내렸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이씨는 기준금리 변화에 따라 금리도 등락한다고 배웠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씨는 은행지점을 찾아 연유를 물었지만 명쾌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내주는 이자는 적게 주고 거두어들이는 이자는 많이 떼는 행태, 이른바 '약탈금리'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3월 취임을 앞두고 '약탈적 금융 시스템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후 1년6개월이 지났지만 금융권의 약탈금리 행태는 깔끔하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기준금리는 저점을 경신하고 있지만 연체금리는 수년간 요지부동이다. 또 수신금리는 곧바로 내리면서 여신금리는 늦게 내리는 습성도 여전하다. 생명보험사들의 약관대출, 카드사들의 현금서비스 등도 마찬가지다.

금융회사들이 당국의 눈치만 살피며 수익에 집착하는 사이 서민들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는 얘기다. 

9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신한·하나·우리은행이 대출금 연체시 부과하는 이자율은 최고 17%에 달한다. 국민은행과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은 각각 18%, 21%로 이보다 높다. 이들 은행은 최근 수년간 비슷한 수준의 연체금리를 책정해왔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조치에 따라 지난 2012년 1월 이후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는 1.5%포인트 이상 떨어졌지만 연체금리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중은행들은 대체적으로 1개월 내로 연체할 경우 7%포인트, 3개월 이하는 8%포인트, 3개월 초과는 9%포인트의 가산금리를 대출금리에 더한다. 연체금리는 주택담보대출이나 신용대출·예적금담보대출 등 담보제공 여부와 상관없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연체금리만 유독 기준금리 흐름과 괴리되는 것은 왜일까. 시중은행들은 도덕적 해이 방지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항변한다. 연체금리가 어느 정도 높게 설정돼야지만 연체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약속된 기간에 대출금액을 상환하지 않을 경우 자금의 미스매치(불일치)가 발생하고 이에 따라 선의의 고객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징벌적 성격의 가산금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연체 이자율을 낮출 경우 은행이 리스크 관리를 더욱 꼼꼼하게 하게 돼, 제 2금융권으로 대출 수요가 몰릴 수 있다"며 "연체 이자율은 기회비용이나 여타 자금 조달 비용 등을 다 고려해서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연체 이자율을 낮춘 게 3년이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시 이를 낮추기에는 은행들로서도 무리가 있다"며 "연체 이자로 발생하는 수익도 생각만큼 높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연체율과 연체금리 간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은행들이 주장하는 것과 반대되는 현상이 도드라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6월 현재 시중은행 가운데 연체금리가 가장 낮은 곳은 기업은행으로 최고금리를 11%로 책정해놨다. 기업은행은 연체금리가 가장 낮은데도 연체율은 가장 우수했다. 같은 기간 기업과 가계대출 연체율은 각각 0.57%, 0.35%를 기록했다. 기업은행은 지난 2011년 9월 연체이자율을 18%에서 13%로 떨어트린 후 2012년 8월에 12%로, 지난해 1월 11%로 각각 낮춘 바 있다. 

반면 연체금리 최고한도가 3년 가까이 17%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신한은행(0.66%, 0.34%)과 하나은행(0.73%, 0.39%), 우리은행(1.62%, 0.73%)의 연체율은 대부분 기업은행을 큰 폭으로 웃돌았다. 신한은행의 가계 대출 연체율만 기업은행보다 0.01%포인트 낮았다. 

연체금리 최고한도가 18%로 4대 은행 중 가장 높은 국민은행은 기업과 가계 대출 연체율은 각각 1.15%와 0.78%로 기업은행은 물론 신한은행이나 하나은행보다 높았다. 시중은행 중 연체이자율이 가장 높은 SC은행의 상황은 더 심각해서 기업대출 연체율은 1.64%, 가계대출 연체율은 1.30%로 두 부문 모두 업계 최고 수준이다. 

수치로만 보면 높은 연체 이자율이 가계나 기업의 대출 연체율을 낮출 수 있다는 은행의 해명이 틀린 셈이다. 연체율 관리는 약탈금리 형태의 금리정책보다는 기업컨설팅 등과 같은 금리 외적인 정책이 더욱 효과를 발휘한다는 해석이 나오는 缺??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업대출 연체율은 1.16%로 그 전달에 비해 0.13%포인트 올랐으며 가계대출 연체율 또한 그 전달에 비해 0.05%포인트 상승한 0.71%를 기록하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도덕적 해이 방지를 이유로 약탈금리를 부과하는 사이 한계기업과 가계의 부담은 그만큼 커진 것이다. 

은행의 약탈적 행태는 본인이 예치해 놓은 예금이나 적금을 담보로 돈을 빌릴 때도 그대로 적용된다. 8월 기준으로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2.35%로 0.12%포인트, 정기적금 금리는 2.57%로 0.1%포인트 각각 내렸다. 반면 같은 기간 예·적금 담보대출 금리는 4.02%로 0.07%포인트만 내리는 데 그쳤다. 내 돈을 맡기고 돈을 빌릴 때도 금리 시차가 작용한다는 뜻이다. 

시중은행이 예담보 대출과 관련해 비용이 거의 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수준으로 추가 금리를 받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의 비판이 가능하다. 

현재 4대 은행 중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1년만기 예금 금리에 1.2%포인트를 더해, 예·적금담보 대출을 해주고 있다. 신한은행은 이보다 더 많은 1.25%포인트의 추가금리를 더하고 있으며 국민은행은 5억원 이하에는 1.25%포인트를, 5억원 초과에는 1%포인트를 추가하며 예치금액에 따라 대출 금리를 달리 적용하고 있다. 

2금융권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보험사 약관대출이다. 약관대출은 고객이 낸 보험료를 담보로 보험사에서 돈을 빌리는 것을 말하는데 약관대출 금리도 요지부동이다. 약관대출 금리의 경직성은 가산금리 흐름에서 확인된다. 한 대형생보사의 약관대출(금리연동형) 가산금리 현황을 보면 최근 5년째 1.5%로 변함이 없다. 

보험사들은 가산금리는 인건비나 시스템 구축비 같은 비용이 반영된 것이어서 기준금리 변동과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가산금리를 산정할 때 비용 말고도 채권과 같은 지표금리가 반영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보험사 약관대출 금리의 주먹구구식 운영은 오랜 시간 비판을 받아왔다. 금융위원회가 보험사의 대출금리 체계 합리화 및 비교공시 개선을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약관대출은 담보 특성 상 리스크가 거의 없는데도 은행의 마이너스통장보다 높은 가산금리를 책정하는 것은 분명 문제"라며 "금리책정 과정이 투명화되면 금리정상화가 어느 정도는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카드사들의 행태는 이보다 더 하다. 최고 연 28%에 육박하는 대출금리는 저금리 기조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다. 

지난해 말 금융당국은 '제2금융권 금리체계 모범규준'을 마련해 카드사 대출금리 인하를 유도했다. 이에 카드사들은 회사별로 카드론 금리 평균 0.9%포인트 인하, 현금서비스 금리 평균 0.6%포인트 인하계획을 전달했다. 그러나 실제적 효과는 없었다. 여신금융협회 공시에 따르면 20개 카드사(겸영은행 포함)의 현금서비스 금리는 연 최고 27.9%에 달한다. 한국은행이 지난 4월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현금서비스 이용자의 63%가 연 20% 이상의 고금리대출을 쓰고 있다. 최수현 감독원장이 최근 임원회의에서 "신용카드사 현금서비스 수수료 실태를 철저히 점검하라"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소비자 연맹 관계자는 "은행이나 보험사, 카드사 등에서 돈을 빌려 쓰는 사람들은 연체 이자에 대해 명확한 개념이 없는 상황에서 이같이 갑자기 금리가 올라가면 생활 필수자금을 연체 이자를 갚기 위해 쓰는 경우도 발생한다"며 "서민들의 경우 연체 이자를 한번 물게 되면 계속 해서 늘어나는 액수 때문에 이자 수렁에서 헤어나오기 힘든 상황"이라고 밝혔다. 
<기사 출처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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