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가전기기 업체 샤오미는 30만원대 전동휠 제품을 출시해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 기존 두발 전동휠 제품 가격의 30%에 불과하다. / 나인봇
회사원 김모(32)씨는 지난 가을 두발 전동휠(personal mobilty·전기 충전 방식으로 한 사람이 탑승해 이동할 수 있는 장치)을 타고 출근하다가 넘어지면서 행인과 심하게 부딪혔다. 팔꿈치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은 행인은 김씨에게 병원비 일체를 포함한 금전적인 보상을 요구했다. 김씨는 혹시 기계 결함이 아닐까 싶어 전동휠 판매사에 문의했지만, 해당 업체는 제품에 하자가 없다며 보상 불가 방침을 통보해 왔다.
외바퀴 혹은 두바퀴가 달린 전동휠이 인기를 끌면서 사고 발생도 늘어나고 있지만, 이를 규제하거나 관리할 법적 제도가 정비되어 있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전동휠은 아직까지 명확한 안전 운행 지침이 마련돼 있지 않고 법적인 규제도 받지 않아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다.
주부 최민승(40) 씨는 “젊은이들 서너 명이 우르르 전동휠을 타고 떼로 질주하는 것이 유행이던데 그럴 때마다 혹시 (나랑) 충돌하진 않을까 겁난다”면서 “도로도 아니고 인도에서 자동차만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데, 가까이 다가오면 위협을 느낀다”고 말했다.
◆ 차세대 이동 수단으로 각광 받는 전동휠
관광객들이 대표적인 전동휠 제품인 ‘세그웨이’를 타고 산책을 즐기고 있다. / 세그웨이
전동휠은 앙증맞은 크기에 바퀴가 한 개 혹은 두 개 달려 있다. 운전대가 달려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자동차나 스쿠터보다는 느리지만 자전거보다는 빠른 속도(최대 속력 25km)로 달린다.
통상 전동휠은 수백만원을 호가해 고가 제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지난 해 중국의 전자업체인 샤오미가 36만원 상당의 저가 상품을 내놓으면서 폭발적인 시장 확대가 예고돼 있다. 국내에서 정확히 얼마나 판매됐는지 통계는 잡히지 않는다. 다만 전동휠의 대표 제조사인 나인봇의 경우, 2014년에 4000대 정도 판매됐는데 지난해는 그 두 배인 8000대 가량 판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정부 “전동휠 대중화되면 법 정비할 것” 여유만만
’세계에서 제일 빠른 사나이’인 우사인 볼트도 ‘기계의 습격’엔 무력했다. 지난해 8월 열린 베이징 올림픽에서 남자 200m 결승에서 우승한 뒤 경기장을 돌며 관중에게 인사하던 볼트는 세그웨이를 타고 촬영하고 있던 카메라 기자와 충돌했다. 이날 볼트는 종아리에 찰과상을 입었다. / 조선DB
전동휠은 빠른 속도로 대중화되고 있지만, 안전 규정이나 운행 지침 등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관련 기관마다 해석이 엇갈리고 있어 정체성이 모호한 것이다.
일단 전동휠은 도로교통법상으론 ‘원동기장치자전거’로 분류된다. 이는 125cc 이하의 이륜 자동차 또는 50cc 미만의 원동기를 단 자동차를 뜻한다. 운전자는 헬멧과 같은 보호 장구를 착용해야 하며, 제2종 운전면허인 원동기 장치 자전거 면허도 따야 한다. 도로에서만 타야 하고 인도나 자전거 도로로는 주행할 수 없다.
전동휠 매니아인 회사원 이모씨는 “주차 걱정도 필요 없고 기름 값도 안 들어서 매일 출퇴근 길에 애용하고 있는데, 헬멧을 써야 한다는 사실은 몰랐다”면서 “헬멧도 안 쓰고 인도로 달려도 교통 경찰들이 단속하지 않아 괜찮은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국토교통부 생각은 다르다. 전동휠은 자동차가 아니기 때문에 도로로 달려선 안된다는 것이다. 자동차는 자기 인증(제작사가 제품에 대한 법적 안전 규격을 스스로 인증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데, 전동휠은 그런 인증 대상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1인용 전동 스쿠터가 이동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 법을 개정하면 되지만, 잠깐 인기만 끌고 지나갈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법 개정은 무의미하다”면서 “현재 관련 통계나 연구가 진행되지 않아 법 개정을 얘기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성호 새누리당 의원은 “교통 수단은 갈수록 ‘스마트’해지고 있는데, 관련 제도는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를 쫓아가지 못한다”면서 “전동휠은 사실상 무법(無法)의 1인 교통 수단인 만큼, 법적 제도 마련과 보상 체계 정비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보험 사각지대, 전문가들 “사고 나도 대책 없어”
전동휠과 같은 신종 이동수단은 아직 법적으로 정확한 정의가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보험 사들도 관련 상품을 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전동휠과 관련된 사고가 발생해도 피해자가 보상 받을 길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전동휠과 같은 이동수단은 현재 자동차 보험법상 자동차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면서 “법적 정의조차 없는 제품을 갖고 보험 상품을 출시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보험사들도 관련 상품 출시를 꺼리고 있다. 한 대형 손보사 관계자는 “전동휠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관련 통계 자료가 전혀 없다”며 “사고 발생 확률 같은 기본적인 통계치도 없는데 섣불리 상품을 출시할 순 없다”고 했다.
◆ 판매사 통한 보상은 한 건에 불과... 탑승자 책임
그렇다면 전동휠을 타고 가다가 지나가는 행인과 부딪혀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론은 순전히 ‘전동휠 탑승자 책임’이다.
제조사에 책임을 물을 수도 있지만, 별도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제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한다.
기자가 직접 국내에 전동휠을 시판 중인 한 유명 중국업체에 문의한 결과, 해당 업체가 소비자에게 사고와 관련 보상을 해 준 사례는 단 한 건 밖에 없었다. 업체 관계자는 “사고가 날 경우 회사가 제품을 수거해 블랙박스를 판독하고 이상이 증명될 경우 소비자에 보상을 해준다”며 “소비자들에게 문의는 자주 오지만 실제 적용된 사례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도 호버보드 사고 속출… 안전규정 및 보험까지 ‘탄탄’
전동휠과 같은 신종 이동수단 때문에 골머리를 앓기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선 호버보드와 관련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호버보드(Hoverboard)란, 영화 ‘백투처퓨처’에 나왔던 공중을 떠다니는 스케이트보드를 지칭한다. 미국에선 스케이트보드 형태의 전동휠 제품을 통칭 호버보드라 부른다.
지난해 12월 로스엔젤레스 한인타운에 있는 사우스버몬트 애비뉴에서 호버보드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 유튜브 갈무리
미국 하원의원인 카를로스 쿠르벨로는 지난해 말 호버보드를 타다가 왼팔 골절 사고를 당했다. 그는 자신의 SNS에 "호버보드는 어린이들 것이다. 나는 결국 병원 응급실로 갔다"라고 썼다. CBS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카를로스 의원은 호버보드를 타다 조작 실수로 넘어져 부상을 당했다.
미국 하원의원 카를로스 쿠르벨로 씨. 지난해 12월호버보드를 타다 사고를 당해 왼팔 골절상을 입었다. / 트위터 갈무리
호버보드는 제품 자체적인 결함도 문제가 되고 있다.주행 중에 호버보드가 불에 타거나 배터리가 폭발하는 식이다.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는 지난해 말까지 호버보드를 타다 다쳤다고 보고된 사람이 최소 50명이며 배터리 화재·폭발 건수가 11건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는 호버보드 안전 점검이 다시 이뤄져야 한다며 아마존과 같은 일부 소매업체에 호버보드 판매를 중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러한 전동휠 사고에 대한 대응책이 상당히 잘 마련돼 있다. 미국이 전동휠에 대한 특별법을 제정해 자동차의 범주에 속한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전동휠 같은 전력을 통해 가는 이동수단을 ‘저속 자동차(Low Speed Vehicle·LSV)’로 규정해 일종의 ‘작은 전기자동차’로 규정했다. 신종 이동수단이 빠르게 커가는 속도에 맞춰 관련 제도를 정비한 결과, 미국에선 면허, 보험, 차량 등록, 주행 방법, 보험 제도까지 상세한 법적 장치가 마련됐다.
<기사 출처 : 조선비즈>
<기사 출처 :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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