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11일 목요일

밤마다 후끈해지는 ‘야시장’의 매력 속으로

야시장의 매력
20~30대 ‘먹자여행’ 필수코스로 떠오른 부산 부평깡통시장·전주 남부시장 야시장


허름하면서도 정감 넘치는 분위기, 불 밝힌 노점들에서 즐기는 저렴한 음식과 이색적인 상품들, 그리고 전통 악기 연주와 공연이 벌어지는 흥겨운 무대…, 밤에 서는 시장, 야시장 풍경이다. 야시장 하면 먼저 동남아·유럽의 유명 관광지 야시장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그 지역 전통문화와 먹거리를 즐기려는 관광객들로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다. 이런 야시장이, 요즘 국내 관광지 밤거리에서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최근 몇년 새 국내 일부 도시에 야시장이 잇따라 선보이면서, 지역 밤 문화를 즐기며 먹고 마시는 이색 여행지로 급부상중이다.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이색 먹거리 노점을 중심으로, 깔끔하면서도 짜임새 있게 조성된 매력 덩어리 ‘야시’(夜市)들이 상설 또는 주말 시장으로 선보이며 명소로 떠오른 것이다.

밤마다 단장하고 불 밝히며 북적대는 ‘야시’ 덕분에 쇠퇴해가던 기존 시장들까지 다시 벌떡 일어섰다는 말도 나온다. 서울시내 일부 전통시장처럼 밤늦게까지 붐비는 시장도 있지만, 기존 점포들과 별도로 밤에만 노점들이 모여 ‘야시장’이란 간판을 내걸고 불야성을 이루게 된 건 최근 일이다. 특이한 건 이런 야시장의 핵심 고객이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20~30대 젊은이들이란 점이다. 일부 대학생들 사이에서 “먹거리 여행의 성지들”로 불리는 부산 부평깡통시장 야시장과 전주 남부시장 야시장을 찾아가 그 매력이 뭔지 알아봤다. 행정자치부의 야시장 활성화 사업 지원을 받는 국내의 대표적 야시장들이다.

야시장 비교
낮에 없었다가 밤에 펼쳐지는 노점
구이·튀김·꼬치·볶음 등 먹거리 천국
케밥·사탕수수 주스 등 다문화음식도
대학생들 입소문 타고 젊은층 북적


부평깡통야시장의 파네수프 판매대.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부산 부평깡통시장 야시장의 일부를 내려다본 모습.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부산 여행 필수과목, 부평깡통시장 야시장

지난 1월30일(토) 저녁 7시20분 부산 부평깡통시장 상인회 사무실 앞. 최인용(56) 야시장 관리팀장이 회원들에게 ‘개장 전 당부의 말씀’을 했다.

“자, 준비 다 됐지예? 근자에 워낙 사람들이 마이 몰려드이께네, 왕래가 불편하다느니, 쫌 불친절해 보인다느니 하는 민원이 쫌 안 있습니까. 손님맞이 친절하게 해주시고, 우측통행 잘 지켜주시고, 오늘도 잘 쫌 해보입시더. 이상!”

20여명의 회원들은 곧바로 흩어져 야시장 골목으로 향했다. 기존 시장 2차 아케이드 구간, 120m 길이의 골목에 매일 저녁 판매대 27개(매일 3개씩 휴무)가 일렬로 늘어서 저녁 7시30분부터 밤 12시까지 펼치는 야시장이다.

“지금 가모 앞사람 머리·어깨만 보일 낍니더. 걷지도 몬해요.” 최 팀장 말은 틀리지 않았다. 골목은 인산인해, 우측통행 원칙을 어기는 이들은 하나도 없어 보였지만, 2~3m 간격으로 설치된 판매대 하나를 지나는 데 2~3분이 걸렸다. 먹거리를 파는 노점마다 주문하고 기다리고 먹는 인파에 둘러싸여 눈앞엔 머리·어깨들만 가득했다. 이 좁고 짧은 골목 구간에 하루 7000여명이 찾는다는 말이 실감 났다. 주축은 두셋씩 짝을 이룬 20~30대 젊은 남녀들이고, 가족 나들이객과 중년 부부들도 끼어 있다.

30개의 판매대 중 22개는 먹거리를, 8개는 액세서리·소품 등을 판다.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곳은 물론 각종 구이·튀김·꼬치·볶음 등을 파는 먹거리 판매대들이다. 가격은 거의 1000~4000원 선. 1인분을 사서 둘이나 셋이 부담없이 나눠 먹고 곧바로 또다른 음식에 눈길을 던지는 이들이 많았다.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들렀다”는 20대 연인 한쌍은 “골라 먹는 재미에 뭐부터 먹을지 눈이 돌아갈 지경”이라며 즐거워했다.

부평깡통야시장의 소시지 판매대.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베트남·필리핀·터키·중국·일본 등 다문화가정의 음식 매대도 붐비는 곳이다. 케밥, 파네 수프, 일본식 튀김·부침 음식, 독일식 소시지 구이, 사탕수수 주스 등이 인기다. 케밥을 팔던 터키인 이보(33)는 “4000원짜리 닭고기·야채 케밥이 하루 200개 넘게 팔린다”고 자랑했다.

2013년 10월 국내 첫 ‘야시장’으로 문 연 이곳은, 이제 부산을 찾는 20~30대들의 필수 방문지 중 하나로 떠올랐다. 서울에서 남자친구와 함께 온 여대생 김아무개씨는 “지난해 보수동 책방골목 여행 때 처음 야시장에 와보고 재미있어 이번에도 들렀다”며 “친구들 사이에선 부산 여행 때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기존 시장 상인들과 갈등은 없을까. 야시장 시작 무렵 이미 기존 상가 대부분은 문을 닫았지만, 어묵집·떡집·통닭집·순댓집 등 일부 가게들은 야시장 손님들을 겨냥해 늦도록 문을 열고 있었다. 최 팀장은 “야시장 참여 품목을 선정할 때 기존 상가 품목과 겹치지 않도록 배려해 큰 갈등은 없다”며 “매년 재계약을 통해 품목을 다시 선정한다”고 말했다.

‘먹자 여행 성지’ 전주 남부시장 야시장

“금요일엔 평균 8000명, 토요일엔 1만명 안팎이 찾아와요. 70% 이상이 20~30대 젊은이들이죠.”(전주 남부시장 하현수 상인회장)

지난 1월29일(금) 저녁 6시 전주 남부시장. 야시장 회원들이 판매대를 밀고 나와 도열하며 판을 벌이기 시작하자, 시장 네거리 골목이 순식간에 20~30대 남녀들로 빼곡하게 메워졌다. 하 회장은 “줄 서는 판매대를 살펴보면 인기 음식을 알 수 있다”고 했지만, 골목 가득한 긴 행렬로 인해 모든 판매대가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양새다.

전주 남부시장 야시장의 물방울떡.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전주 남부시장 야시장의 야채뚱땡.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2014년 10월 개장한 남부시장 야시장은, 먹거리 24곳(다문화가정 5곳, 시니어클럽 2곳, 취약계층 2곳, 기존 상인 몫 2곳 포함), 액세서리 등 소품 10곳, 그리고 시장 안내소 1곳 등 총 35개 판매대로 꾸려진다. 가장 붐비는 곳은 역시 구이·튀김·볶음 등을 파는 곳들이다. 야채 등을 삼겹살에 말아 소스를 입혀 가스불로 익혀내는 야채뚱땡, 비빔밥을 국화빵처럼 구워내는 비빔밥구이, 막걸리·복분자주 등을 아이스크림과 섞어 만든 아이술크림, 소고기불초밥 등이 인기 먹거리다.

전주 남부시장 야시장의 비빔밥구이.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전주 남부시장 야시장의 ‘아이술크림’ 판매대.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베트남 음식 판매대에서 볶음쌀국수를 사 나눠 먹던 대학생 김대종·김은지·박보하(이상 22)씨는 “한옥마을 구경하고 군산으로 이동했다가, 야시장에 들르고 싶어 다시 전주로 왔다”고 했다. “부산 깡통야시장에도 가봤다”는 김은지씨는 “친구들 사이에서 먹으러 가는 여행이 유행인데, 야시장은 ‘먹거리 여행의 성지’로 여겨지는 곳”이라고 말했다. 

8시가 되자, 시장 네거리에선 귀에 익숙한 대중가요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매달 1회씩 열리는 대중가수 초청 공연과 고객 참여 노래자랑대회가 시작된 것이다. 참가 신청을 받아 고객들이 무대에 오르면서 야시장 골목의 밤은 한층 흥겨운 잔치판이 되어 자정으로 흘러갔다. 밤늦도록 기존의 유명 식당인 피순댓집, 콩나물국밥집, 비빔밥집 등도 붐비는 모습이다.

하 회장은 “저녁이 되면 불 꺼지고 한산해지던 남부시장에 한옥마을 젊은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시작한 야시장이 이제 새 명소로 자리잡았다”며 “곧 일요일 밤에도 야시장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본디 이 야시장은 남부시장 6동 2층 ‘청년몰’에서 시범적으로 시작했던 것을, 정부 지원을 통해 대규모로 확장해 개장한 것이다. 청년몰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문전성시’ 사업으로 꾸려진, 젊은이들을 참여시켜 조성한 ‘청년 상가’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수공예품·액세서리 가게들과 카페·식당 등 32개 가게로 이뤄져 있다. 야시장이 열리기 이전부터, 젊은 여행자들에게 남부시장의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기사 출처 :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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