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만 진행" 절반도 안 돼, 교수 실력 부족·부적합 강의 개설 탓
슬그머니 한국어 강의로 바뀌어 로스쿨도 영어자료 읽고 해석이 전부
“학생이 생각하는 언어란 무엇인가요?”(교수)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입니다.”(학생)
17일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한 사립대의 전공과목 수업. 이 수업은 외국인도 수강할 수 있는 영어강의지만 시종일관 한국어로 진행됐다. 영어라고는 강의교재와 스크린에 띄워놓은 자료가 전부였다. 수강생 80여명 중에는 중국인 학생도 10여명 있었다. 교수는 영어강의라는 사실조차 잊은 듯 “한국어로 수업하기 때문에 외국인 친구들이 내 강의를 다 이해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주요 대학들이 국제화를 명분으로 영어강의를 확대하고 있지만, ‘무늬만 영어강의’인 수업이 여전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광현 부산교대 교수 등이 2012년 영어강의 진행방식에 대해 대학생 1,728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영어로만 진행된다’고 답한 학생은 40%(693명)에 그쳤다. 순수하게 영어로만 진행되는 수업은 절반이 채 안 되고, 한국어를 일부 또는 대부분 사용하는 영어강의가 더 많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빚어진 데는 교수의 영어 실력이 부족하거나 내용이 어려운데도 억지로 영어강의를 개설하는 등의 문제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2년이 흐른 지금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경기도의 H대에서 올해 1학기 진행된 거시경제학 영어강의는 한 달 만에 돌연 한국어강의가 돼 버렸다. 강모(23)씨는 “한 단원이 끝나면 교수가 한국어로 30분 정도 요약해주는 식이었는데 수업 집중도가 떨어져 영어 사용을 아예 포기했다”며 “영어강의는 집중이 안 돼 출석체크만 하러 가게 된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2학기 서울 S대의 경영정보론 영어강의를 수강하려던 외국인 교환학생 6명은 강의실에서 내몰렸다. 총 수강생 80명 중 소수인 외국인 학생만 영어로 따로 수업한다는 이유였다. 이 수업을 들은 권모(22)씨는 “잔뜩 기대를 했는데 영어실력을 전혀 키울 수 없었다. 과거 들었던 경제원론은 교수가 강의자료를 읽으며 ‘This’ ‘That’만 반복하다 끝났다”며 한숨을 쉬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도 사정은 비슷하다. 올 1학기 서울 소재 한 로스쿨에서 진행된 영어강의인 지적재산권법 수업은 교수가 영어로 된 강의자료를 그대로 읽고 한국어로 해석하는 게 전부였다.
기대에 못 미치는 영어강의에 학생들의 반발이 당연히 클 수밖에 없다. 서울 J대 영문과 학생 김모(27)씨는 “우리 과는 외국에서 살다 온 학생들이 많이 들어오는 편이라 영어강의를 한국어로 하는 것에 특히 반감이 크다”며 “어차피 학생들이 못 알아들으니 어쩔 수 없다는 게 학교의 변명인데 처음부터 한국어강의로 분류하는 게 옳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불만은 교수들 사이에서도 나온다. 학교가 추진하는 사안이니 따를 수밖에 없지만 전달력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대학 언론학과 교수는 “과목 특성상 영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한국적인 이슈들이 많아 어떻게 강의해야 할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매 학기 경영통계 영어강의를 맡고 있는 한 사립대 교수는 “통계는 한국말로 해도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학교 규정을 지키려고 영어로만 수업하면 학생들이 수업을 따라오지 못한다”며 “고육지책으로 한국어로 된 녹화강의를 미리 듣고 오게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적합한 과목을 영어강의로 지정하고 대학이 적극적으로 사후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광현 교수는 “한글로 출제되는 교사 임용시험 과목을 영어로 강의하는 등 무분별하게 영어강의를 확대한 것이 문제”라며 “대학 측에서 면밀하게 검토해 영어강의를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이 영어강의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학생들의 만족도는 어떤지 등도 조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사 출처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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