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고노 담화 검증에 항의하는 네덜란드인들
- (헤이그<네덜란드>=연합뉴스) 박성진 특파원 = 일본군 피해 배상을 요구하는 네덜란드 비정부기구(NGO)인 '일본명예부채재단'(Foundation of Japanese Honorary Debts) 회원들이 8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 일본 대사관 앞에서 고노 담화 검증에 항의하며 일본의 과거사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네덜란드도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입었다. 이 때문에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1993년 고노 일본 관방장관의 담화를 부인하려는 일본 정부에 항의하는 목소리가 높다.
일본은 2차 대전 때인 1942년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를 점령해 인도네시아인뿐 아니라 현지에 거주하는 네덜란드인을 강제 노역에 동원하고 일부 네덜란드 여성들을 일본군 위안부로 삼았다.
2차 대전 당시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일본군이 점령했던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약 4만2천 명의 네덜란드 군인이 포로로 붙잡혀 이 중 8천400명이 포로수용소에서 숨졌다.
또한, 네덜란드 민간인 10만 명이 수용소 생활을 했으며 이중 1만3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마르크 뤼터 현 네덜란드 총리의 아버지도 집단수용소에 억류됐고 총리의 이모는 수용소에서 숨졌다.
네덜란드 중등역사 교과서에는 "수천 명의 네덜란드 여성과 소녀가 일본군 위안소에 끌려가, 소위 일본에서 완곡하게 말하는 '위안부'로 일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1994년 조사에서 문서로 입증된 네덜란드 위안부 피해자는 65명이라고 밝혔다.
2차 대전 종전 후 1948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임시 국제군법회의에서 재판부는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가 피해를 봤다고 소송을 제기한 네덜란드 여성 35명 중 25명이 강제연행됐다고 인정했다.
- 일본 고노 담화 검증 항의하는 네덜란드 NGO 회원들
- (헤이그<네덜란드>=연합뉴스) 박성진 특파원 = 일본군 피해 배상을 요구하는 네덜란드 비정부기구(NGO)인 '일본명예부채재단'(Foundation of Japanese Honorary Debts) 회원들이 8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 일본 대사관 앞에서 고노 담화 검증에 항의하고 있다.
재판부는 위안부 강제 동원 책임을 물어 책임자인 오카다 게이지(岡田慶治) 일본 육군 소좌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나머지 11명의 일본인에게도 징역 2∼15년형을 내렸다.
바티비아 전범재판으로 불리는 이 재판 기록은 1993년 일본의 고노 담화 작성 시 중요한 근거자료가 됐다.
네덜란드 의회와 민간단체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국으로서 네덜란드 하원은 지난 2007년 11월 유럽에서 처음으로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네덜란드 하원은 2007년 제1차 아베(安倍) 내각에서 위안부 관련 입장 수정을 시도하자 2011년 다시 한 번 위안부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하원은 2011년 결의안에서 일본이 ▲1993년 고노 담화와 상충하는 발언을 하지 말 것 ▲생존 피해자들에게 도덕적·재정적 보상을 할 것 ▲교과서에 진상을 알리는 내용을 담을 것을 요구했다.
네덜란드 비정부기구(NGO)인 '일본명예부채재단'(Foundation of Japanese Honorary Debts)도 일본정부가 2차 대전 당시 피해를 본 네덜란드 국민과 위안부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급할 것을 촉구하며 매달 두 번째 화요일 헤이그에 있는 주네덜란드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작년 8월에는 일본군 점령 당시 인도네시아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네덜란드 여성 8명의 경험을 담은 '상처입은 꽃'이라는 제목의 수기집이 출간됐다.
<기사 출처 : 연합뉴스>
<기사 출처 : 연합뉴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