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마블링’ 오해와 진실
“아버지는 마블링이 많은 쇠고기를 좋아하신다니까.” (예비 신랑 우육근 씨·31)
“그게 다 지방이야. 아버님 혈압 높으시잖아.” (예비 신부 채사랑 씨·29·이상 가상 인물)
설 명절을 한 주 앞둔 31일, 서울의 한 정육점에서 올봄 결혼을 약속한 우 씨와 채 씨 사이에 승강이가 벌어졌다. 양가 부모님에게 선물할 쇠고기로 마블링이 많은 최고가의 1++등급(이른바 ‘투뿔’)을 고를지, 덜 비싸고 등급은 낮지만 단백질이 더 많은 쪽을 택할지 의견 충돌이 벌어진 것. 쇠고기 마블링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이들의 주장을 통해 짚어 봤다.
○ “마블링이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 높여”
채 씨=오빠, 우선 지금 한우 육질 등급을 매기는 기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부터 짚어 볼게. 등급을 매길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건 마블링, 즉 지방의 양이야. 소가 얼마나 건강하게 자랐는지, 영양성분이 고르게 들어 있는지는 등급과 상관이 없다는 얘기지. 그렇다 보니 신선한 풀을 뜯어먹으면서 방목한 소보다 사육장에 갇혀 탄수화물이 잔뜩 든 사료만 먹은 소가 오히려 높은 등급을 받아. 미국은 최고 등급(프라임) 쇠고기의 지방도가 ‘투뿔’ 한우의 절반 수준이야.
지방이 많으면 고기가 부드럽게 느껴지고 고소한 맛도 많이 나는 건 사실이지. 그런데 마블링에 들어 있는 건 몸속에서 잘 녹지 않는 포화지방산이야. 많이 먹으면 ‘나쁜 콜레스테롤(LDL)’과 중성지방이 혈액에 쌓여서 혈관을 막고 동맥경화 등 성인병을 유발할 수 있어. 아버님 혈압 높아서 식사 때마다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들어 있는 생선이나 호두를 챙겨 드시잖아. 그런데 이렇게 지방이 잔뜩 낀 쇠고기를 즐기시면 말짱 도루묵 아닌가 싶어.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쇠고기를 2군 발암물질로 분류하기까지 했다니까.
오빠도 회식 때 쇠고기 자주 먹지? 한국인은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서 점점 쇠고기를 더 많이 먹는데, 이젠 하루에 쇠고기로 섭취하는 열량이 평균 43.8kcal래. 흰쌀밥, 돼지고기, 빵, 소주, 라면에 이어 여섯 번째야. 지방은 돼지고기, 콩기름에 이어 세 번째고. 특히 마블링이 많은 1등급 이상 쇠고기 소비량은 2010년 11만7500t에서 2014년 16만9500t으로 늘었대.
축산업자들은 쇠고기 지방도를 높인다고 비싼 옥수수 사료를 주로 쓰는데 우리나라 옥수수 자급률은 1%도 안 되잖아. 국제 곡물 가격 변동에 따라 농가가 큰 피해를 볼 수도 있는 구조라는 거지. 국익을 위해서라도 마블링에 대한 집착은 버리는 게 좋지 않겠어?
○ “마블링 섭취량 걱정할 정도는 아냐”
우 씨=좋아, 이번엔 내 얘길 들어 봐. 지방을 많이 섭취하면 건강에 안 좋은 거야 상식이지. 그런데 매일 쇠고기만 먹는 사람이 어디 있겠니? 한국인이 하루에 먹는 쇠고기는 평균 30g도 안 되는데, 이걸 전부 ‘투뿔’ 한우로 먹더라도 지방 섭취량은 5g이 조금 넘는 정도야. 하루 지방 기준치인 51g에 한참 못 미치지.
쇠고기 소비가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서구권에 비하면 아직 새 발의 피야. 한국인 1명이 쇠고기를 연간 10.8kg 소비할 때 미국인은 37.4kg, 호주인은 35.1kg이나 먹었어. 갑자기 많은 양을 먹으면 물론 문제가 되겠지만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정도로 마블링을 많이 먹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는 얘기야.
게다가 쇠고기 등급을 매길 때 지방도를 기준으로 삼는 곳은 한국만이 아냐. ‘투뿔’ 한우는 지방도는 19% 정도인데, 일본은 한발 더 나아가 최고 등급(5등급) 와규(和牛)의 지방도가 22.5∼31.7%나 된대. 호주도 최고 등급(9등급) 쇠고기의 지방도는 21%야.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등 남미 국가들도 마블링이 많은 쇠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사육 방식을 방목에서 사육장 중심으로 바꾸고 있고. 어때? 수입 쇠고기에 맞서 국익을 지키려면 아직 마블링을 포기하면 안 될 것 같은데….
○ 등급보다는 신선도 위주로 고르세요
채 씨와 우 씨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것처럼 마블링과 건강의 관련성 논쟁은 첨예하게 이어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6월경 한우 등급 판정 기준 개선안을 내놓으며 마블링의 평가 비중을 낮출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명절을 앞두고 쇠고기를 구입할 계획이라면 등급 자체보다는 고기와 지방의 색을 통해 신선도를 판단하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고기 색은 선홍색을 띠면서 윤기가 나는 것이 좋다. 처음 고기를 썰면 검붉은 색을 띠다가 30분 정도 지나면 미오글로빈이 산소와 결합해 선홍색으로 변하는데, 도축한 지 오래된 것은 갈색을 나타낸다. 지방색은 우윳빛이 좋다. 나이가 들었거나 영양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한 소의 지방은 노랗고 푸석푸석하다.
신선한 쇠고기를 구입했더라도 보관 방식에 따라 결과가 다를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얇게 썬 쇠고기는 공기와 닿는 단면이 넓어 상하기 쉬우므로 즉시 조리하고 남은 것은 밀봉해 냉장 보관하라고 조언했다. ‘동그랑땡’ 등을 만들기 위해 다진 고기는 부패 속도가 가장 빠르므로 구입 즉시 물기를 제거하고 밀봉해 냉장 보관 시에는 1∼2일 내에, 냉동 보관 시는 2주 내에 먹는 것이 좋다.
등급이 낮은 쇠고기도 숙성을 통해 연한 맛을 낼 수 있다는 제안도 나온다. 숙성된 쇠고기는 효소 작용에 의해 근육의 질긴 조직들이 끊어져 부드러워지고 감칠맛을 내는 글루탐산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음식 컨설팅 업체 ‘여행자의 식탁’의 김진영 대표는 “마블링에 치중하는 대신 숙성 쇠고기를 택하면 맛과 영양을 모두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기사 출처 : 동아일보>
“아버지는 마블링이 많은 쇠고기를 좋아하신다니까.” (예비 신랑 우육근 씨·31)
“그게 다 지방이야. 아버님 혈압 높으시잖아.” (예비 신부 채사랑 씨·29·이상 가상 인물)
설 명절을 한 주 앞둔 31일, 서울의 한 정육점에서 올봄 결혼을 약속한 우 씨와 채 씨 사이에 승강이가 벌어졌다. 양가 부모님에게 선물할 쇠고기로 마블링이 많은 최고가의 1++등급(이른바 ‘투뿔’)을 고를지, 덜 비싸고 등급은 낮지만 단백질이 더 많은 쪽을 택할지 의견 충돌이 벌어진 것. 쇠고기 마블링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이들의 주장을 통해 짚어 봤다.
○ “마블링이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 높여”
채 씨=오빠, 우선 지금 한우 육질 등급을 매기는 기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부터 짚어 볼게. 등급을 매길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건 마블링, 즉 지방의 양이야. 소가 얼마나 건강하게 자랐는지, 영양성분이 고르게 들어 있는지는 등급과 상관이 없다는 얘기지. 그렇다 보니 신선한 풀을 뜯어먹으면서 방목한 소보다 사육장에 갇혀 탄수화물이 잔뜩 든 사료만 먹은 소가 오히려 높은 등급을 받아. 미국은 최고 등급(프라임) 쇠고기의 지방도가 ‘투뿔’ 한우의 절반 수준이야.
지방이 많으면 고기가 부드럽게 느껴지고 고소한 맛도 많이 나는 건 사실이지. 그런데 마블링에 들어 있는 건 몸속에서 잘 녹지 않는 포화지방산이야. 많이 먹으면 ‘나쁜 콜레스테롤(LDL)’과 중성지방이 혈액에 쌓여서 혈관을 막고 동맥경화 등 성인병을 유발할 수 있어. 아버님 혈압 높아서 식사 때마다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들어 있는 생선이나 호두를 챙겨 드시잖아. 그런데 이렇게 지방이 잔뜩 낀 쇠고기를 즐기시면 말짱 도루묵 아닌가 싶어.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쇠고기를 2군 발암물질로 분류하기까지 했다니까.
오빠도 회식 때 쇠고기 자주 먹지? 한국인은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서 점점 쇠고기를 더 많이 먹는데, 이젠 하루에 쇠고기로 섭취하는 열량이 평균 43.8kcal래. 흰쌀밥, 돼지고기, 빵, 소주, 라면에 이어 여섯 번째야. 지방은 돼지고기, 콩기름에 이어 세 번째고. 특히 마블링이 많은 1등급 이상 쇠고기 소비량은 2010년 11만7500t에서 2014년 16만9500t으로 늘었대.
축산업자들은 쇠고기 지방도를 높인다고 비싼 옥수수 사료를 주로 쓰는데 우리나라 옥수수 자급률은 1%도 안 되잖아. 국제 곡물 가격 변동에 따라 농가가 큰 피해를 볼 수도 있는 구조라는 거지. 국익을 위해서라도 마블링에 대한 집착은 버리는 게 좋지 않겠어?
○ “마블링 섭취량 걱정할 정도는 아냐”
우 씨=좋아, 이번엔 내 얘길 들어 봐. 지방을 많이 섭취하면 건강에 안 좋은 거야 상식이지. 그런데 매일 쇠고기만 먹는 사람이 어디 있겠니? 한국인이 하루에 먹는 쇠고기는 평균 30g도 안 되는데, 이걸 전부 ‘투뿔’ 한우로 먹더라도 지방 섭취량은 5g이 조금 넘는 정도야. 하루 지방 기준치인 51g에 한참 못 미치지.
쇠고기 소비가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서구권에 비하면 아직 새 발의 피야. 한국인 1명이 쇠고기를 연간 10.8kg 소비할 때 미국인은 37.4kg, 호주인은 35.1kg이나 먹었어. 갑자기 많은 양을 먹으면 물론 문제가 되겠지만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정도로 마블링을 많이 먹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는 얘기야.
게다가 쇠고기 등급을 매길 때 지방도를 기준으로 삼는 곳은 한국만이 아냐. ‘투뿔’ 한우는 지방도는 19% 정도인데, 일본은 한발 더 나아가 최고 등급(5등급) 와규(和牛)의 지방도가 22.5∼31.7%나 된대. 호주도 최고 등급(9등급) 쇠고기의 지방도는 21%야.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등 남미 국가들도 마블링이 많은 쇠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사육 방식을 방목에서 사육장 중심으로 바꾸고 있고. 어때? 수입 쇠고기에 맞서 국익을 지키려면 아직 마블링을 포기하면 안 될 것 같은데….
○ 등급보다는 신선도 위주로 고르세요
채 씨와 우 씨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것처럼 마블링과 건강의 관련성 논쟁은 첨예하게 이어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6월경 한우 등급 판정 기준 개선안을 내놓으며 마블링의 평가 비중을 낮출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명절을 앞두고 쇠고기를 구입할 계획이라면 등급 자체보다는 고기와 지방의 색을 통해 신선도를 판단하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고기 색은 선홍색을 띠면서 윤기가 나는 것이 좋다. 처음 고기를 썰면 검붉은 색을 띠다가 30분 정도 지나면 미오글로빈이 산소와 결합해 선홍색으로 변하는데, 도축한 지 오래된 것은 갈색을 나타낸다. 지방색은 우윳빛이 좋다. 나이가 들었거나 영양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한 소의 지방은 노랗고 푸석푸석하다.
신선한 쇠고기를 구입했더라도 보관 방식에 따라 결과가 다를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얇게 썬 쇠고기는 공기와 닿는 단면이 넓어 상하기 쉬우므로 즉시 조리하고 남은 것은 밀봉해 냉장 보관하라고 조언했다. ‘동그랑땡’ 등을 만들기 위해 다진 고기는 부패 속도가 가장 빠르므로 구입 즉시 물기를 제거하고 밀봉해 냉장 보관 시에는 1∼2일 내에, 냉동 보관 시는 2주 내에 먹는 것이 좋다.
등급이 낮은 쇠고기도 숙성을 통해 연한 맛을 낼 수 있다는 제안도 나온다. 숙성된 쇠고기는 효소 작용에 의해 근육의 질긴 조직들이 끊어져 부드러워지고 감칠맛을 내는 글루탐산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음식 컨설팅 업체 ‘여행자의 식탁’의 김진영 대표는 “마블링에 치중하는 대신 숙성 쇠고기를 택하면 맛과 영양을 모두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기사 출처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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