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시아파 후티 반군, 차별정책에 반발
수도 사나·대통령궁 무력 점령
홍해-인도양 길목 아덴 놓고
배수진 친 정부군과 격렬한 교전
사우디-이란 대리전 양상
시아파 규합 나선 이란은 반군 지원
美 항모 급파, 이란 견제·중재 나서
아라비아 반도 남서부에 위치한 예멘이 내전의 불길에 휩싸였다. 이슬람 시아파인 후티 반군과 수니파인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대통령의 정부군 간 교전이 격화하면서 25년 만에 예멘이 두 개의 국가로 다시 쪼개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예멘 내전은 중동의 패권을 차지하려는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간 대리전 양상을 띠어서 최악의 경우 예멘이 중동을 전화(戰火) 속으로 몰아 넣는 화약고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종교분쟁과 내전 등으로 점철된 중동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불안한 시선이 지금 예멘으로 집중되고 있다.
후티 반군과 정부군, 남부도시 아덴 두고 교전 중
후티 반군은 올해 1월 예멘 북부에 위치한 수도 사나를 무력으로 점령했다. 이후 이달까지 약 3개월 동안 예멘 남부에 위치한 제2의 수도 아덴을 향해 파죽지세로 돌격했다. 후티 반군은 25일 아덴에 배수진을 친 정부군을 사방으로 포위하고 격렬한 교전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항구도시인 아덴은 ‘밥 알 만답’ 해협의 입구에 위치해있는 예멘 최대의 전략적 요충지다. 이 해협은 주요 산유국인 사우디와 이집트 등 걸프 국가들이 위치해 있는 홍해와 인도양으로 통하는 남부 아덴만 사이를 잇는 가교다. 후티 반군이 해협의 관문 격인 아덴을 점령하면 당장 걸프국에서 유럽과, 아시아, 미국 등으로 향하는 원유 수송로가 끊기는데다 전세계 물류 거점인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도 이용할 수 없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후티 반군이 아덴을 점령하는 순간 중동 지역에서 걸프국을 상대로 한 전략적 지렛대를 확보하면서 예멘에 대한 실권을 장악하게 될 거라는 관측이다.
예멘 정부군을 지지하는 사우디 주도의 수니파 아랍국 동맹군이 지난달 26일 예멘 전역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에 나선 것도 후티 반군의 아덴 진출을 저지하기 위한 절박함에서 비롯됐다. 사우디 국방부는 지난 23일 예멘에 대한 공습을 중단하면서 약 26일 동안 이뤄진 2,000여 회의 폭격을 통해 후티 반군이 지닌 탱크와 미사일 등 군 전력의 80%를 무력화시켰다고 밝혔다.
하지만 내전은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후티 반군은 여전히 아덴에서 물러서지 않은 채 게릴라 전투를 이어가며 기회를 엿보고 있다. 후티 반군을 지지하는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배후 지원도 후티 반군이 예멘을 차지하려는 야욕을 포기하지 않는 중요한 이유다. 미국과 핵 협상 타결로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이란은 중동에서는 시아파 국가들을 규합해 세력 확대에 나서고 있다. 이란은 이라크에는 수니파 이슬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 척결을 내세워 군대를 파견했으며, 시아파 독재자인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통치하는 시리아에도 군 병력과 각종 물자를 지원하고 있다. 예멘에서는 시아파인 후티 반군 정권의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예멘은 사우디 코 밑에 위치해 있어 사우디를 견제하기 위한 이란의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로 활용할 수 있다.
이란을 제외한 국제사회는 후티의 예멘 통치를 불법으로 보고 있다. 후티 반군은 쿠데타로 수도 사나를 점령한 후인 올해 2월6일 임시헌법을 발표해 의회를 해산하고, 151명의 대통령 위원회를 설치해 2년 간 정부 역할을 맡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012년 2월 예멘 선거를 통해 공식적으로 선출된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대통령만이 합법적 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게 걸프국과 미국 등 국제사회의 주장이다. 이들 국가들은 후티 반군에 대한 비판을 표출하기 위해 수도 사나에 있던 자국 대사관들을 폐쇄하고 정부군이 지키고 있는 아덴에 새 대사관을 개설했다. 하디 대통령은 후티 반군을 피해 아덴으로 피신했다가, 아덴마저 점령될 위기에 놓이자 사우디 수도인 리야드로 지난달 망명한 상태다.
하지만 후티 반군은 지난달 중순 “우리는 예멘 문제에 있어 누구라도 어떠한 구실과 형식을 이용해 간섭하는 것을 전적으로 거부한다”면서 “예멘의 자랑스러운 아들들은 영토 및 주권 위협에 맞설 것”이라고 밝히며 국제사회의 적대적 움직임을 비판했다.
후티와 정부 사이의 10년 대립
예멘 시아파 반군이라고 알려진 후티(Houthi)는 1992년 수도 사나에서 시아파 분파인 자이드파의 부흥을 위해 시작된 청년 운동에서 비롯됐다. 모하메드 알 후티와 그의 형제 후세인 알 후티가 주도해 이 운동을 주도해 이름도 ‘후티’가 됐다. 그러나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자 친미 정권인 예멘 정부에 대한 반정부 투쟁으로 비화됐다. 특히 후티의 반발에는 예멘에서 수니파가 다수를 차지하면서 벌어지던 종교적 차별과 경제적 소외 등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2004년 6월 반체제 성직자인 후세인 바드레딘 알 후티가 예멘 정부에 대한 군사적 반란을 일으켰고 이후 수년 간의 내전으로 약 2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예멘 정부는 도시 지역은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었으나 농촌 지역은 전통 부족들이 자치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사실상 통제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던 상태였다. 사우디가 2009년 11월 예멘에 본격 개입해서야 다음해인 2010년 2월에 후티 반군과 정부는 휴전에 합의했다.
하지만 예멘 정부가 2014년에 후티에 차별적인 정책을 추진하면서 또 한번 갈등이 발생했다. 예멘 정부는 당시 예멘을 6개 자치구역의 연방제로 변경하는 헌법 개정안을 추진했다. 예멘의 최대 수익인 석유 원전이 남부에 몰려있는 상황에서 예멘을 6개 지역의 연방제로 분할할 경우 후티가 거주하는 북부 사다 지역은 경제적으로 소외될 것이 뻔했다.
후티는 정부의 헌법 개정에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급기야 지난해 수도 사나 점령을 목표로 군대를 움직였다. 후티는 예멘 석유와 가스 생산의 70%를 차지하는 마리브주를 자신의 통제 하에 두었고, 지난해 9월에는 마침내 수도 사나의 대통령궁을 점령했다.
예멘, 25년 만에 다시 두 개의 국가로 분단되나
예멘 내전이 격화하면서 예멘의 잠재돼 있던 갈등 요인들이 우후죽순처럼 커지고 있다. 예멘은 1962년 남북으로 분리됐다가 사회주의 남예멘이 서방의 경제제제로 붕괴하면서 1990년 전격 통일됐다. 하지만 예멘의 통일은 많은 갈등을 안겼고 아직도 봉합되지 않은 상태였다.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통일 예멘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 2011년까지 장기 독재 정권을 유지하며 민중의 불만을 억지로 눌러왔다. 하지만 이후 선출된 하디 대통령이 수니파 위주의 정책을 펴면서 시아파의 불만이 고조됐고, 후티의 반란으로 정부의 통제도 약화되면서 그 동안 누적됐던 사회적 갈등들이 폭발하고 있다.
북예멘과 남예멘은 사실 이슬람 문화에서도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일례로 당시 북예멘 지역은 1부 4처제를 인정하고 여성의 사회적 활동을 통제했던 반면 남예멘에서는 1부 1처제의 채택과 여성의 지위 향상으로 여성 근로자들이 남성과 동등하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북예멘 주도의 통일 이후 이슬람 전통을 헌법 헌법이념으로 채택함으로써 여성의 사회활동은 제한 받게 됐다. 사회주의 교육을 받아 전반적으로 이슬람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를 찬성하지 않았던 남예멘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된 상황이다.
특히 남예멘 주민들은 원유의 대부분이 남부에서 생산되고 있음에도 원유 생산에 따른 혜택을 북부에 빼앗기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실제 북예멘과 남예멘이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결정적 배경에는 1980년대 예멘에서 수출이 가능할 정도의 양을 가진 원유가 발견된 데 있었다. 극심한 경제 불황을 겪던 상황에서 원유가 발견되자 경제발전을 위한 정치적 안정과 평화공존을 위한 통일의 필요성이 급부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 예멘에서는 원유 및 인프라 시설 등에 대한 유지,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지난 10년간 원유 생산량이 급감해왔다. 경제침체가 심해지자 남예멘 분리주의 운동도 폭력 시위로 변모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1월에는 남부 예멘에서 대규모 분리독립 시위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이번 내전으로 예멘이 무정부 상태에 빠질 경우 남예멘 분리주의 운동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특히 이번 예멘 내전은 후티 반군과 정부군과인 대립인 동시에 사우디와 이란의 중동 패권을 둔 대리전이다. 사우디와 이란은 최악의 무력 충돌은 피하기 위해서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예멘이 두 개의 나라로 분단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사우디는 남부 아덴을, 이란은 북부 사나를 중심으로 각각 과도 정부를 세우는 방식이 고려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도 사우디와 이란 사이를 중재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최근 페르시아만에 주둔해있던 핵 항모 시어도어 루즈벨트호와 유도미사일 순양함 노르망디호를 걸프 해역인 아덴만으로 급파했다. 이란이 예멘에 함대를 파견하는 등 군사적 개입을 본격화하려 하자 경고를 보낸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예멘에서 사우디와 이란의 무력 대결이 촉발될 경우 이는 중동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며 “중동 국가들은 IS의 준동보다도 예멘 사태를 평화를 위협하는 최대 불안 요인으로 여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사 출처 : 동아일보>
시아파 후티 반군, 차별정책에 반발
수도 사나·대통령궁 무력 점령
홍해-인도양 길목 아덴 놓고
배수진 친 정부군과 격렬한 교전
사우디-이란 대리전 양상
시아파 규합 나선 이란은 반군 지원
美 항모 급파, 이란 견제·중재 나서
아라비아 반도 남서부에 위치한 예멘이 내전의 불길에 휩싸였다. 이슬람 시아파인 후티 반군과 수니파인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대통령의 정부군 간 교전이 격화하면서 25년 만에 예멘이 두 개의 국가로 다시 쪼개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예멘 내전은 중동의 패권을 차지하려는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간 대리전 양상을 띠어서 최악의 경우 예멘이 중동을 전화(戰火) 속으로 몰아 넣는 화약고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종교분쟁과 내전 등으로 점철된 중동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불안한 시선이 지금 예멘으로 집중되고 있다.
후티 반군과 정부군, 남부도시 아덴 두고 교전 중
후티 반군은 올해 1월 예멘 북부에 위치한 수도 사나를 무력으로 점령했다. 이후 이달까지 약 3개월 동안 예멘 남부에 위치한 제2의 수도 아덴을 향해 파죽지세로 돌격했다. 후티 반군은 25일 아덴에 배수진을 친 정부군을 사방으로 포위하고 격렬한 교전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항구도시인 아덴은 ‘밥 알 만답’ 해협의 입구에 위치해있는 예멘 최대의 전략적 요충지다. 이 해협은 주요 산유국인 사우디와 이집트 등 걸프 국가들이 위치해 있는 홍해와 인도양으로 통하는 남부 아덴만 사이를 잇는 가교다. 후티 반군이 해협의 관문 격인 아덴을 점령하면 당장 걸프국에서 유럽과, 아시아, 미국 등으로 향하는 원유 수송로가 끊기는데다 전세계 물류 거점인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도 이용할 수 없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후티 반군이 아덴을 점령하는 순간 중동 지역에서 걸프국을 상대로 한 전략적 지렛대를 확보하면서 예멘에 대한 실권을 장악하게 될 거라는 관측이다.
예멘 정부군을 지지하는 사우디 주도의 수니파 아랍국 동맹군이 지난달 26일 예멘 전역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에 나선 것도 후티 반군의 아덴 진출을 저지하기 위한 절박함에서 비롯됐다. 사우디 국방부는 지난 23일 예멘에 대한 공습을 중단하면서 약 26일 동안 이뤄진 2,000여 회의 폭격을 통해 후티 반군이 지닌 탱크와 미사일 등 군 전력의 80%를 무력화시켰다고 밝혔다.
하지만 내전은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후티 반군은 여전히 아덴에서 물러서지 않은 채 게릴라 전투를 이어가며 기회를 엿보고 있다. 후티 반군을 지지하는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배후 지원도 후티 반군이 예멘을 차지하려는 야욕을 포기하지 않는 중요한 이유다. 미국과 핵 협상 타결로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이란은 중동에서는 시아파 국가들을 규합해 세력 확대에 나서고 있다. 이란은 이라크에는 수니파 이슬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 척결을 내세워 군대를 파견했으며, 시아파 독재자인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통치하는 시리아에도 군 병력과 각종 물자를 지원하고 있다. 예멘에서는 시아파인 후티 반군 정권의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예멘은 사우디 코 밑에 위치해 있어 사우디를 견제하기 위한 이란의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로 활용할 수 있다.
이란을 제외한 국제사회는 후티의 예멘 통치를 불법으로 보고 있다. 후티 반군은 쿠데타로 수도 사나를 점령한 후인 올해 2월6일 임시헌법을 발표해 의회를 해산하고, 151명의 대통령 위원회를 설치해 2년 간 정부 역할을 맡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012년 2월 예멘 선거를 통해 공식적으로 선출된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대통령만이 합법적 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게 걸프국과 미국 등 국제사회의 주장이다. 이들 국가들은 후티 반군에 대한 비판을 표출하기 위해 수도 사나에 있던 자국 대사관들을 폐쇄하고 정부군이 지키고 있는 아덴에 새 대사관을 개설했다. 하디 대통령은 후티 반군을 피해 아덴으로 피신했다가, 아덴마저 점령될 위기에 놓이자 사우디 수도인 리야드로 지난달 망명한 상태다.
하지만 후티 반군은 지난달 중순 “우리는 예멘 문제에 있어 누구라도 어떠한 구실과 형식을 이용해 간섭하는 것을 전적으로 거부한다”면서 “예멘의 자랑스러운 아들들은 영토 및 주권 위협에 맞설 것”이라고 밝히며 국제사회의 적대적 움직임을 비판했다.
후티와 정부 사이의 10년 대립
예멘 시아파 반군이라고 알려진 후티(Houthi)는 1992년 수도 사나에서 시아파 분파인 자이드파의 부흥을 위해 시작된 청년 운동에서 비롯됐다. 모하메드 알 후티와 그의 형제 후세인 알 후티가 주도해 이 운동을 주도해 이름도 ‘후티’가 됐다. 그러나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자 친미 정권인 예멘 정부에 대한 반정부 투쟁으로 비화됐다. 특히 후티의 반발에는 예멘에서 수니파가 다수를 차지하면서 벌어지던 종교적 차별과 경제적 소외 등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2004년 6월 반체제 성직자인 후세인 바드레딘 알 후티가 예멘 정부에 대한 군사적 반란을 일으켰고 이후 수년 간의 내전으로 약 2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예멘 정부는 도시 지역은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었으나 농촌 지역은 전통 부족들이 자치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사실상 통제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던 상태였다. 사우디가 2009년 11월 예멘에 본격 개입해서야 다음해인 2010년 2월에 후티 반군과 정부는 휴전에 합의했다.
하지만 예멘 정부가 2014년에 후티에 차별적인 정책을 추진하면서 또 한번 갈등이 발생했다. 예멘 정부는 당시 예멘을 6개 자치구역의 연방제로 변경하는 헌법 개정안을 추진했다. 예멘의 최대 수익인 석유 원전이 남부에 몰려있는 상황에서 예멘을 6개 지역의 연방제로 분할할 경우 후티가 거주하는 북부 사다 지역은 경제적으로 소외될 것이 뻔했다.
후티는 정부의 헌법 개정에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급기야 지난해 수도 사나 점령을 목표로 군대를 움직였다. 후티는 예멘 석유와 가스 생산의 70%를 차지하는 마리브주를 자신의 통제 하에 두었고, 지난해 9월에는 마침내 수도 사나의 대통령궁을 점령했다.
예멘, 25년 만에 다시 두 개의 국가로 분단되나
예멘 내전이 격화하면서 예멘의 잠재돼 있던 갈등 요인들이 우후죽순처럼 커지고 있다. 예멘은 1962년 남북으로 분리됐다가 사회주의 남예멘이 서방의 경제제제로 붕괴하면서 1990년 전격 통일됐다. 하지만 예멘의 통일은 많은 갈등을 안겼고 아직도 봉합되지 않은 상태였다.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통일 예멘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 2011년까지 장기 독재 정권을 유지하며 민중의 불만을 억지로 눌러왔다. 하지만 이후 선출된 하디 대통령이 수니파 위주의 정책을 펴면서 시아파의 불만이 고조됐고, 후티의 반란으로 정부의 통제도 약화되면서 그 동안 누적됐던 사회적 갈등들이 폭발하고 있다.
북예멘과 남예멘은 사실 이슬람 문화에서도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일례로 당시 북예멘 지역은 1부 4처제를 인정하고 여성의 사회적 활동을 통제했던 반면 남예멘에서는 1부 1처제의 채택과 여성의 지위 향상으로 여성 근로자들이 남성과 동등하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북예멘 주도의 통일 이후 이슬람 전통을 헌법 헌법이념으로 채택함으로써 여성의 사회활동은 제한 받게 됐다. 사회주의 교육을 받아 전반적으로 이슬람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를 찬성하지 않았던 남예멘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된 상황이다.
특히 남예멘 주민들은 원유의 대부분이 남부에서 생산되고 있음에도 원유 생산에 따른 혜택을 북부에 빼앗기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실제 북예멘과 남예멘이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결정적 배경에는 1980년대 예멘에서 수출이 가능할 정도의 양을 가진 원유가 발견된 데 있었다. 극심한 경제 불황을 겪던 상황에서 원유가 발견되자 경제발전을 위한 정치적 안정과 평화공존을 위한 통일의 필요성이 급부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 예멘에서는 원유 및 인프라 시설 등에 대한 유지,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지난 10년간 원유 생산량이 급감해왔다. 경제침체가 심해지자 남예멘 분리주의 운동도 폭력 시위로 변모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1월에는 남부 예멘에서 대규모 분리독립 시위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이번 내전으로 예멘이 무정부 상태에 빠질 경우 남예멘 분리주의 운동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특히 이번 예멘 내전은 후티 반군과 정부군과인 대립인 동시에 사우디와 이란의 중동 패권을 둔 대리전이다. 사우디와 이란은 최악의 무력 충돌은 피하기 위해서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예멘이 두 개의 나라로 분단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사우디는 남부 아덴을, 이란은 북부 사나를 중심으로 각각 과도 정부를 세우는 방식이 고려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도 사우디와 이란 사이를 중재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최근 페르시아만에 주둔해있던 핵 항모 시어도어 루즈벨트호와 유도미사일 순양함 노르망디호를 걸프 해역인 아덴만으로 급파했다. 이란이 예멘에 함대를 파견하는 등 군사적 개입을 본격화하려 하자 경고를 보낸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예멘에서 사우디와 이란의 무력 대결이 촉발될 경우 이는 중동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며 “중동 국가들은 IS의 준동보다도 예멘 사태를 평화를 위협하는 최대 불안 요인으로 여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사 출처 : 동아일보>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