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마리의 칠면조가 사육되고 있는 미국 미네소타주의 한 가금류 농장. 지난 16일 미네소타를 방문한 미 농무부 수의센터 관계자는 이 지역에서만 약 200만 마리의 칠면조와 닭이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노출됐다고 밝혔다. AP 연합뉴스
23일 미국 아이오와주 북서쪽의 오세올라 카운티의 한 양계농장. 380만 마리가 사육되는 닭 농장에 지금 미국민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지난 20일 고병원성(HP) 조류 인플루엔자(AI) 변종인 H5N2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아이오와주에서는 두 번째였고, 주별로 보면 열두 번째의 발생이었다. 지난 14일에 인근 부에나 비스타 카운티의 소규모 칠면조 농장에서 H5N2가 발생해 비상 방역망이 쳐졌지만 소용이 없었다. 380만 마리의 닭은 살처분될 처지에 놓였고, 가축보건 방역당국은 초긴장 상태에 휩싸였다. ‘매의 눈(Hawk eye state)’ 별칭을 가진 아이오와주는 미국 양계산업의 본고장이다. 미국에서 소비되는 계란의 다섯 개 중 한 개가 아이오와주에서 생산된다. 아이오와주의 연간 계란 및 관련 제품 판매액은 20억 달러(약 2조1574억 원)에 달한다. 5000만여 마리의 산란용 암탉들이 있는 아이오와주에 H5N2가 확산될 경우 미국의 양계산업은 치명타를 입는다. 지금까지 H5N2는 칠면조 농장에서 주로 발생했지만 이번에는 닭 농장이 피해를 보았다.
아이오와주 가금류 협회(IPA)의 랜디 올슨 전무이사는 공영방송인 NPR에서 “H5N2 확산을 막기 위한 1급 경계태세에 들어간 상태”라고 말했다.
미국 대륙에서는 인간과 AI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한창이다. H5N2는 지난해 12월 서부 오리건주 더글러스 카운티에서 처음 발생했다. 이어 보름만인 지난 1월 인접한 워싱턴주로 번졌고, 1월 중순에는 아이다호주로 확산됐다. 비슷한 시기에 캘리포니아주 킹스카운티의 양계농장에서는 또 다른 변종인 H5N8이 발견됐다. H5N8은 유럽과 아시아, 한국에서도 기승을 떨치고 있다. 서부에서 출몰한 H5N2 바이러스는 파죽지세로 4월에는 미네소타, 미주리, 몬태나, 캔자스 등 중부 지역으로 세력범위를 넓혔다. H5N2는 4월 중순 현재 아칸소, 노스다코타, 사우스 다코타, 위스콘신을 포함해 12개 주 50개 지역에서 감염이 확인됐다. 스콧 워커 위스콘신주 주지사는 지난 20일 H5N2 확산을 막기 위해 주방위군 동원안까지 승인했다.
고병원성 H5N2는 전염력이 강하고 폐사율이 높아 ‘치킨 에볼라’라고 불린다. 감염된 가금류는 48시간 안에 대부분 폐사한다. 144개에 달하는 AI 바이러스 조합 중 하나다. AI 바이러스는 폐사율이 75%를 넘어가면 제1종 고병원성 가축전염병으로 분류된다. H5N2는 1983년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발견됐을 때는 저병원성이었지만 이후 전 세계로 퍼지면서 고병원성으로 바뀌었다. 최근 미국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H5N2 역시 고병원성으로 방역 당국은 감염됐거나 감염 우려가 있는 가금류를 대부분 살처분 하고 있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최근 “변종인 H5N2가 인간에게 전염될 확률은 낮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간 감염 위험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대부분의 AI 바이러스처럼 H5N2 역시 철새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서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달 중순 미국 농무부(USDA) 동식물위생검사청(APHIS)은 와이오밍주의 래러미 카운티에서 야생 ‘캐나다 기러기(Canada goose)’가 H5N2를 보유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분자 실험 결과 최근에 미국 중서부주에서 발견된 H5N2 바이러스는 캐나다 기러기들이 갖고 있는 바이러스와 거의 일치했다. 야생 오리류도 주요한 H5N2 전염 매개체로 손꼽힌다. 이에 따라 남부와 동부지역 주들은 서부와 중부의 H5N2 확산으로 경계심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번 가을 철새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오면 H5N2가 미국 전역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철새들의 이동경로에는 미국의 가금산업 중심지인 조지아, 사우스·노스 캐롤라이나, 델라웨어, 메릴랜드, 버지니아주가 위치하고 있다. 미국 야생보호센터의 혼 아입 연구원은 “이번 가을에도 비슷한 H5N2 확산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AI는 무역장벽 문제도 야기시키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최근 한국 정부가 취한 미국산 닭과 오리 등 가금류와 가금육 수입 금지 조치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워싱턴과 오리건주에서 고병원성 AI 발병을 이유로 미국산 가금류 전체에 수입금지 조치를 발표했다. H5N8과 H5N2가 발생한 독일, 네덜란드, 영국, 캐나다, 일본, 이탈리아 산 가금류에 대해서도 수입금지 조치가 진행 중이다. 미국은 H5N2의 확산을 막기 위해 발병 시 전수 살처분, 농장 폐쇄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인접한 주로 들불처럼 확산되고 있는 AI 바이러스를 아직까지는 효과적으로 차단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미국을 비롯한 세계는 AI 일상화 시대로 향해 가는 분위기다. 특히 H5 계통 바이러스는 지난해부터 전 지구촌에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철새들의 이동에 따른 확산이라는 설명이 유력하지만 일부에서는 집단밀집사육에 따른 ‘자연의 반격’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좁은 공간에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가금류를 가둬놓고 기계적으로 살을 찌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질병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사 출처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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