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객도 졸고, 조종사도 졸고비행기를 타면 잠이 잘 옵니다. 자는 것 말고 달리 할 일이 없기도 하고요. 곤하게 잠들었다가, 착륙할 때 바퀴가 활주로에 닿는 소리에 잠에서 깨 본 분들 있으실 겁니다. 과거에는 안전하게 착륙에 성공하면 승객들이 함께 손뼉을 쳤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광경 찾아보기는 어렵죠. 항공기 탑승이 예전만큼 특수한 경험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승객들이 잠든 항공기가 착륙할 때, 항공기를 모는 조종사도 졸고 있다면 어떨까요? 취재진이 만난 조종사들이 들려준 이야기의 한 토막입니다. 저에게도 충격이었습니다. 졸다가 바퀴가 활주로에 닿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거나, 관제탑의 지시를 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요. 활주로가 신기루처럼 몽롱하게 보이기도 한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편집'하지 않은 현직 항공기 조종사 8명의 증언을 그대로 전해드리겠습니다.
항공기 조종사 A"너무 졸려서'렌딩기어(착륙장치) 다운' 이럴 때 정신 번쩍 차리고 일어나서 기어 다운할 때도 있고.. 관제교에서 저를 부를 때 한 번에 대답 못 하고 여러 번 불러서 대답한 적도 있고. 너무 피로해서 그 중요한 어프로치 다운에서도 피곤해서 졸면서 깜박깜박하면서.. 그때 갑자기 왜 내가 여기 있지 그런 생각도 하게 되고."
항공기 조종사 B마지막에 네 번째 다섯 번째 착륙이 되다 보면 피로해지고.. 착륙하는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는 경우가 있잖아요. 눈을 감으면서. 그런데 본인은 잤다고 못 느끼는 그런 경우들이요. 그런 경우들이 마지막에 착륙할 때는 그런 사건들이 몇 건 있다보니까…. 심지어 바퀴 내릴 때 그때 기장님께서 깨셨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바퀴 내리는 소리 듣고..
항공기 조종사 C"피로도라는 건 눈에 나타나지 않는 거잖습니까. 몸으로 감수하고 내리는데 그게 나쁜 날씨나 나쁜 상황하고 겹치게 되면 그게 훨씬 극대화돼서 악영향을 끼친다는 거죠. 보통 중국 같은 곳은 스모그나 아니면 계절적인 영향에 의해서 시정이 안 좋을 때가 있고 또 시정이 안 좋은 상태에서 바람까지 강하게 되면 안전하게 착륙하기 위해서는 마지막 자세, 수평으로 활주로에 접지하는 속도를 가감을 시켜야 하는데 그건 순전히 감각으로 해야 하는 건데요. 피곤하면 그게 안 맞는 거죠."
" 저시정 상에서 땅이 저희 몸으로 다가오는 속도가 저희가 인지하는 반응속도가 늦어서 하드렌딩(경착륙)이라고 얘기하는데 쾅 찍는 경우가 생기는 거죠. 그것도 일정 부분 피로도가 기여하는 거죠. 특히 야간 비행이나 아니면 아침 비행이나 저시정 비행이나 그럴 때 그런 경우들이 많이 나타나는 거고 저도 그런 경험이 있었고.."
■ ‘책임감’ 뛰어난 조종사들…왜?조종사들의 증언대로라면, 상당수의 항공기가 '졸음비행'을 하고 있다는 건데요. 대체 그 이유가 뭘까요? 항공기의 안전에 많은 승객은 말할 것도 없고, 조종사들 역시 자신의 생명이 걸려있는 상황인데 말이죠. 그래서 솔직히 처음에는 조종사의 고백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조종사들은 차량이나 선박보다 훨씬 복잡한 '항공기'를 조작하기 때문에 엄격한 자격 요건을 요구받습니다. 일단 오랜 교육과정을 거쳐야 하고요. 조종사가 되고 나서도 비행에 적합한 육체적 상태를 늘 유지하기 위해 높은 수준의 자기 관리를 해야 합니다. 수개월마다 정기적으로 실제 항공기 조종석과 똑같은 시뮬레이터로 시험을 보는데, 떨어지면 자격이 박탈됩니다. 특히 항공기 '기장'의 경우 많은 승무원을 지휘하고, 비상상황이 닥쳤을 때 승객들의 안전을 최종적으로 책임진다는 점에서 어떤 직업보다 높은 책임감과 자부심을 갖춘 분들이기도 합니다.
■무리한 비행 스케줄…피로도 심각그렇다면 왜 이런 '졸음비행'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취재진이 입수한 비행스케줄에 그 답이 숨어 있었습니다.
다음 달 7일, 인천공항에서 미국 뉴욕으로 가는 아시아나 항공기 기장의 비행스케줄입니다. 비행시간은 14시간으로, 기장과 부기장으로 이뤄진 2팀이 7시간씩 번갈아가며 항공기를 조종합니다. 그렇게 뉴욕에 도착한 다음 24시간을 체류하고, 다시 같은 방식을 통해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는 겁니다. 14시간을 날아가서, 24시간 머물다가 다시 14시간을 날아오는 거죠. 좁은 비행기 조종석에 갇혀 28시간을 보내는 것도 문제지만 아시다시피 뉴욕은 서울과 시차가 정반대인 곳입니다. 아무리 엄격한 관리를 한다고 해도 몸 상태가 정상일 수 있을까요?
이런 살인적인 스케줄이 장거리 비행에만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지난 12일 저녁 5시 20분 김포공항에서 여수공항까지 비행한 한 기장의 스케줄입니다. 김포에서 여수, 여수에서 김포, 김포에서 다시 광주로 비행합니다. 광주에서 하룻밤 묵은 뒤 다시 제주로, 제주에서 대구, 대구에서 다시 제주를 거쳐 김포로 돌아옵니다. 24시간 동안 7번이나 이착륙을 반복한 겁니다. 전날까지 범위를 넓히면 2일 동안 국제선을 포함해 9번 이착륙을 했습니다.
이런 무리한 비행스케줄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조종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항공기 조종사 D"피로하면 아무래도 집중력이 떨어지는데 바람이나 기후변화가 순식간에 이뤄지기 때문에 그때마다 항공기를 계속 집중력있게 컨트롤을 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늦습니다. 멀티태스킹이 좀 부족해지는거죠. 능력이 부족해져서 한 쪽에 시선이 집중된다거나 다른 한쪽에 저희가 비행을 할 때는, 눈으로는 계기를 보고 손으로는 조종간을 움직이면서 귀로는 관제사의 지시 혹은, 옆에 부기장의 조언. 이런 거를 다 동시적으로 다 수용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피로하게 되면은 그걸 할 수가 없어요."
항공기 조종사 E"굉장히 미묘한 얘긴데. 개인적으로는 사실 힘들지만 이런 스케쥴대로 비행을 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어쨌든 모든 사람이 이 패턴을 수용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최대한 이런 패턴은 비행횟수를 경감을 해줘야 하거든요? 줄여줘야지 더 안전해지는 확률이죠. 어떻게 보면 안전에 대한 확률을 높여주는 건데.. 물론 이렇게 24시간 동안 많은 이착륙이나 밤샘비행이 사고와 직결되는 건 아닙니다. 그런 것은 아닌데 다만 사고가 1%, 2%라도 올라갈 수 있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확률을 높여준다는 거죠."
항공기 조종사 F"(조종하다가) 아예 의식을 잃은 게 아니라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는 경우가 있어요. 눈을 감으면서. 그런데 본인은 잤다고 못 느끼는 그런 경우들이요. 연속 이착륙을 하다가 마지막에 착륙할 때는 그런 사건들이 몇 건 있다 보니까 '아, 이게 근무에 위험하구나' 그런 생각을 해서 조종사들이 무리한 비행 패턴은 하지 말자고 하는 거고요."
■ 헷갈리는 ‘24시간’ 기준…미뤄지는 운항기술기준 개정이런 비행스케줄에 대한 법적인 규제는 없을까요? 물론 있습니다. 현행 항공법은 연속되는 24시간동안 조종사 1명이 최대 8시간까지만 조종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제한합니다. 국토부는 이런 항공법의 원칙을 더 세분화한 '운항기술기준'을 고시해서 항공사들에게 따르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운항기술기준에는 항공법에는 없던 '휴식시간 없이'라는 개념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항공법 시행규칙-운항승무원의 연속 24시간 동안 최대 승무시간.비행근무시간 기준 (8시간)
국토교통부 운항기술기준-연속되는 24시간 동안 휴식시간 없이 승무 및 비행시간이 다음을 초과하도록 운항 승무원의 승 무 및 비행근무시간을 계획하여서는 안된다. (8시간)
이 둘의 차이점을 아시겠나요? 국토부는 운항기술기준을 통해 '하루'의 비행시간 제한을 이렇게 해석해 왔습니다. '법정 휴식시간인 8시간을 주면 새로운 24시간이 시작된다.'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 휴식시간을 주면 '24시간(하루)'의 개념이 계속 리셋(재설정)된다는 겁니다. 휴식이 이 끝나는 시점부터 새롭게 24시간이 시작되고, 새롭게 8시간의 비행근무를 시킬수 있게 되는 거죠.
결론적으로 국토부의 기준을 적용하면 비행시간이 훨씬 늘어나게 됩니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24시간동안 가능한 항공기의 왕복 이착륙 횟수 역시 국토부의 '휴식시간 없는 24시간' 개념을 따르고 있습니다. 국토부의 기준대로 하면 앞서 소개해드린 국내선 항공기 기장의 스케쥴처럼 하루(24시간)에 6회,7회 비행도 가능해집니다. 물론 조종사들이 자주 오래 비행하면 당연히 피로도도 증가하겠죠.
항공법과 운항기술기준이 충돌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자, 법제처는 지난 2월 새로운 유권해석을 내놓았습니다. 국토부의 '고시'에 불과한 운항기술기준이 상위법인 '항공법'의 취지를 어기고 있어 위법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휴식시간을 둘 때마다 '리셋'되는 운항기술기준의 '24시간(하루) 개념이 항공법에 어긋난다는 겁니다.
하지만 국토교통부는 법제처의 유권해석 이후에도, 운항기술기준의 개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습니다. 그 사이 '비행시간'과 '연속 이착륙 횟수'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는데요. 일선에서 '피곤한 조종사'들의 '무리한 비행'도 개선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에 대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경협 의원은 "법제처의 유권 해석은 항공 안전을 고려한 당연한 결정"이라면서 "결정에 따라야 할 국토부가 국민의 안전보다는 항공사의 이윤에 집착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의원은 이어 "세월호 참사를 교훈 삼아 방치되어 있는 항공안전분야에서 조종사들의 피로도 관리시스템 등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 “돈보다는 항공 안전”조종사들 역시 '돈'보다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최근 아시아나항공 히로시마 공항 활주로 이탈 등 항공 사고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안전 운항의 중요성이 더욱 절박해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한 조종사는 '안전'을 중시하는 경영철학이 현장에서 실제로 지켜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습니다.
항공기 조종사 G"비행을 많이 하면 할수록 조종사들도 수당 형식으로 돈을 더 많이 받거든요. 하지만 저희는 봉급이 줄어들더라도 안전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저와 제 가족, 승객들의 생명이 걸린 문제니까요."
항공기 조종사 H"최근 일본 히로시마공항 활주로 이탈 사고 이전에도 미국 샌프란시스코 활주로 이탈사고가 있었고.. 두 번의 사고 이전에도 피로에 관한 문제를 계속 제기해왔으나 사고는 2년에 한 번씩 났고 실제로 사고가 났기 때문에 항공사 조종사로서 이러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굉장히 두렵습니다. 조종사로서 이런 인터뷰를 한다는 것이 승객과 국민들에게 부끄럽지만, 용기를 내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조종사의 피로도와 승객들의 안전 문제에 대해 항공사와 국토부가 더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는 이유에서거든요. '안전이 항공사 운영 철학이고, 안전관는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다'는 항공사 소유주의 경영철학이 실제로 현장에서 지켜졌으면 합니다"
<기사 출처 : KBS 뉴스 | 디지털 퍼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