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기부시대 열린다]기부금 탈세 사각지대
가족의 이름이 적힌 등을 달고 스님이 불공을 드리는 조건으로 서울에 있는 한 사찰에 연간 60만 원을 내온 이정숙(가명·52·여) 씨. 제사를 위탁해 지내거나 자녀가 수험생이라 기부를 많이 하던 때에는 1년에 200만 원 가까운 돈을 내기도 했다. 그렇게 10년 동안 이 씨가 이 사찰에 기부한 돈은 1000여만 원에 달한다. 하지만 연말정산을 위해 이 씨가 사찰에서 받은 기부 영수증에는 실제 기부금보다 늘 30%가 더 많은 금액이 적혀 있었다. 이 씨는 10년간 실제 낸 돈보다 300여만 원을 더 기부한 것으로 국세청에 등록돼 총 45만 원의 세제혜택을 더 받았다.
종교단체는 세금을 내지 않으니 기부금을 실제보다 많이 받은 것으로 처리해도 불이익이 없고 국가에 내는 돈도 없다. 신도들도 덕분에 소득공제 혜택을 더 받을 수 있으니 암묵적으로 짬짜미 탈세를 하는 셈이다.
○ 만연한 허위 기부금 영수증
종교단체들은 우리 사회의 ‘나눔 문화 정착’에 기여하는 공로가 적지 않다. 정부도 이런 점을 인정해 기부금에 세액공제 혜택을 줬다. 지난해 개인과 기업들이 연말정산을 받기 위해 국세청에 제출한 기부금 영수증을 토대로 추산해 본 기부금 연간 총액수는 12조4800억 원. 이 중 확인된 공익법인 5542개 단체의 3조9120억 원을 제외하면, 종교단체에 냈다고 신고한 기부금 규모는 약 8조 원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헌금이나 시주로 과연 이 금액이 기부됐을지 의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국세청도 칼을 뽑았다. 지난해 12월 국세청 홈페이지와 관보에 처음으로 허위기부금 영수증을 수시로 발급한 102개 단체의 실명, 주소, 대표자, 허위금액까지 세세하게 올려놓았다. 전체 102곳 중 91%(93곳)가 종교단체다. 경남 함안군 A사찰에서는 실제 기부를 받지 않았는데도 허위 영수증을 1123건(11억9800만 원) 끊어줬다. 부풀린 기부금으로 모두 세액공제를 받았다면 1억7970만 원(2014년 기준)의 세금이 이 사찰에서만 빠져나간 셈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올해 말에도 기부금 영수증을 허위로 발급하는 단체의 실명을 인터넷에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규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기부자들에게 더 큰 세제 혜택을 더 주려 해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추진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신도 압력에 미국에선 자발적 신고
연간 350조 원에 이르는 기부금 중 100조 원이 교회로 향하는 미국. 미국 교회들도 회계정보를 공시할 의무가 전혀 없다. 그러나 2000년부터 신도들의 압력이 시작됐다. “왜 우리 교회는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에 2004년 10만 곳, 2008년 30만 곳의 종교단체가 국세청 표준양식에 따라 자발적으로 신고하고 있다. 얼마를 교회 업무에 쓰고, 얼마를 지역사회에 내놨는지 미 국세청 인터넷을 통해 알 수 있다.
국내 종교단체도 점차 기부금 사용 명세를 공개하는 곳이 늘고 있다. 천주교 최대 교구인 서울대교구와 인천교구는 지난해 3월 종교단체로는 최초로 국세청 연말정산서비스 전산에 신자들이 낸 기부금 명세를 등록했다. 서동경 천주교 서울대교구 언론홍보팀장은 “국세청 공시 이후 신도들은 오히려 교구 사무실까지 찾아올 필요 없이 국세청 홈페이지에서 기부 내용을 출력할 수 있어 연말정산 때 더 편리했다며 반겼다”고 말했다.
불교계도 기부금 등 사찰재정을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올해 3월 열린 ‘제3차 대중공사’ 회의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사찰 재정 명세 공개 △회계 관리 프로그램 개선 등 총 7가지 계획안을 내놓았다. 조계종 관계자는 “30억 원 이상의 재정(기부금 포함)을 가진 사찰 36곳 중 대부분이 자체 홈페이지에 기부금 사용 명세 등을 공개하고 있다. 재정 투명화의 필요성에 절감하는 스님이 많아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한국세무학회장)는 “그간 깜깜이로 운영되던 기부금이 공개되면 종교단체 기부에 불신을 품은 신도들도 기부에 동참할 수 있어 전체 기부시장이 선순환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 출처 : 동아일보>
가족의 이름이 적힌 등을 달고 스님이 불공을 드리는 조건으로 서울에 있는 한 사찰에 연간 60만 원을 내온 이정숙(가명·52·여) 씨. 제사를 위탁해 지내거나 자녀가 수험생이라 기부를 많이 하던 때에는 1년에 200만 원 가까운 돈을 내기도 했다. 그렇게 10년 동안 이 씨가 이 사찰에 기부한 돈은 1000여만 원에 달한다. 하지만 연말정산을 위해 이 씨가 사찰에서 받은 기부 영수증에는 실제 기부금보다 늘 30%가 더 많은 금액이 적혀 있었다. 이 씨는 10년간 실제 낸 돈보다 300여만 원을 더 기부한 것으로 국세청에 등록돼 총 45만 원의 세제혜택을 더 받았다.
종교단체는 세금을 내지 않으니 기부금을 실제보다 많이 받은 것으로 처리해도 불이익이 없고 국가에 내는 돈도 없다. 신도들도 덕분에 소득공제 혜택을 더 받을 수 있으니 암묵적으로 짬짜미 탈세를 하는 셈이다.
○ 만연한 허위 기부금 영수증
종교단체들은 우리 사회의 ‘나눔 문화 정착’에 기여하는 공로가 적지 않다. 정부도 이런 점을 인정해 기부금에 세액공제 혜택을 줬다. 지난해 개인과 기업들이 연말정산을 받기 위해 국세청에 제출한 기부금 영수증을 토대로 추산해 본 기부금 연간 총액수는 12조4800억 원. 이 중 확인된 공익법인 5542개 단체의 3조9120억 원을 제외하면, 종교단체에 냈다고 신고한 기부금 규모는 약 8조 원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헌금이나 시주로 과연 이 금액이 기부됐을지 의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국세청도 칼을 뽑았다. 지난해 12월 국세청 홈페이지와 관보에 처음으로 허위기부금 영수증을 수시로 발급한 102개 단체의 실명, 주소, 대표자, 허위금액까지 세세하게 올려놓았다. 전체 102곳 중 91%(93곳)가 종교단체다. 경남 함안군 A사찰에서는 실제 기부를 받지 않았는데도 허위 영수증을 1123건(11억9800만 원) 끊어줬다. 부풀린 기부금으로 모두 세액공제를 받았다면 1억7970만 원(2014년 기준)의 세금이 이 사찰에서만 빠져나간 셈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올해 말에도 기부금 영수증을 허위로 발급하는 단체의 실명을 인터넷에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규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기부자들에게 더 큰 세제 혜택을 더 주려 해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추진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신도 압력에 미국에선 자발적 신고
연간 350조 원에 이르는 기부금 중 100조 원이 교회로 향하는 미국. 미국 교회들도 회계정보를 공시할 의무가 전혀 없다. 그러나 2000년부터 신도들의 압력이 시작됐다. “왜 우리 교회는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에 2004년 10만 곳, 2008년 30만 곳의 종교단체가 국세청 표준양식에 따라 자발적으로 신고하고 있다. 얼마를 교회 업무에 쓰고, 얼마를 지역사회에 내놨는지 미 국세청 인터넷을 통해 알 수 있다.
국내 종교단체도 점차 기부금 사용 명세를 공개하는 곳이 늘고 있다. 천주교 최대 교구인 서울대교구와 인천교구는 지난해 3월 종교단체로는 최초로 국세청 연말정산서비스 전산에 신자들이 낸 기부금 명세를 등록했다. 서동경 천주교 서울대교구 언론홍보팀장은 “국세청 공시 이후 신도들은 오히려 교구 사무실까지 찾아올 필요 없이 국세청 홈페이지에서 기부 내용을 출력할 수 있어 연말정산 때 더 편리했다며 반겼다”고 말했다.
불교계도 기부금 등 사찰재정을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올해 3월 열린 ‘제3차 대중공사’ 회의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사찰 재정 명세 공개 △회계 관리 프로그램 개선 등 총 7가지 계획안을 내놓았다. 조계종 관계자는 “30억 원 이상의 재정(기부금 포함)을 가진 사찰 36곳 중 대부분이 자체 홈페이지에 기부금 사용 명세 등을 공개하고 있다. 재정 투명화의 필요성에 절감하는 스님이 많아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한국세무학회장)는 “그간 깜깜이로 운영되던 기부금이 공개되면 종교단체 기부에 불신을 품은 신도들도 기부에 동참할 수 있어 전체 기부시장이 선순환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 출처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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