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과수 “증도가자는 가짜”]국과수, 5년 진위 논란에 종지부 “CT 촬영 결과 조작 흔적 드러나”… 국립문화재硏 부실 검증 도마에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증도가자로 분류한 ‘수(受)’ 자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3차원 컴퓨터단층촬영(CT) 장비로 찍자 두 겹의 단면이 나타났다(가운데 사진). 반면 오른쪽 사진의 전통 금속활자 주조 방식으로 만든 ‘면’자는 이런 단면이 보이지 않는다. 왼쪽 사진의 ‘受’자 표면에서는 먹을 덧씌운 흔적도 발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제공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 논란을 빚고 있는 청주 고인쇄박물관의 이른바 ‘증도가자(證道歌字)’가 가짜로 밝혀졌다. 이로써 현존하는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1377년)보다 138년 이상 앞섰다는 주장과 함께 5년간 지속돼 온 증도가자 논란은 종지부를 찍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26일 “고인쇄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증도가자 등 고려활자 7개에 대한 3차원(3D) 금속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 모두에서 인위적인 조작의 흔적을 발견했다”며 “CT 및 성분 분석 결과를 종합해 볼 때 고려시대 전통적 방식의 주물 기법에 의해 제작된 활자가 아니고, 위조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국과수의 금속 CT 결과 7개 활자의 가로와 세로 단면에서 외곽을 균일하게 둘러싼 또 하나의 단층이 추가로 포착됐다. 활자 안쪽과 밀도가 다른 물질이 외부를 둘러싸고 있는 것. 강태이 국과수 연구사는 “금속활자를 주조할 때는 안팎을 따로 만들지 않기 때문에 정상이라면 이처럼 균일한 이중 단면이 나올 수 없다”며 “금속활자가 수백 년에 걸쳐 부식된 것처럼 꾸미기 위해 겉을 다른 물질로 감싼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 조사 결과 활자 내부는 구리 20∼22%, 주석 55∼56%인 반면 바깥은 구리 30∼31%, 주석 47∼49%로 나타나 안팎이 다른 물질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수(受)와 반(般) 등 두 활자 뒷면에서는 땜질한 것 같은 흔적도 발견됐다.
이번 국과수의 검증 결과에 따라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부실 검증도 도마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11월 연구 보고서에서 “고인쇄박물관의 7개 활자 중 증도가자가 3개, 고려활자가 4개”라고 결론 내린 바 있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이 보고서에서 역시 증도가자로 분류한 김종춘 다보성고미술 대표 소유의 59개 활자에 대해서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당시 연구소는 김 대표가 보유한 101개 활자 중 59개를 증도가자로 분류한 바 있다. 이 활자들은 이번에 국과수에서 조사한 청주 고인쇄박물관 활자들과 같은 자형으로 분류됐고, 출처도 같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과수는 증도가자 검증 결과를 논문(‘금속활자의 법과학적 분석방법 고찰’)으로 정리해 31일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에 발표할 예정이다.
▼ “안팎 덧씌운 흔적 뚜렷… 고려시대 활자로 볼 수 없어” ▼
3차원 CT로 위조 밝혀내
청주 고인쇄박물관이 소장한 금속활자로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보고서에서 증도기자로 분류된 ‘상(上)과’ ‘반(般)‘, ‘수(受)‘ 활자(왼쪽부터). 나머지 4개의 활자들과 마찬가지로 금속용 컴퓨터단층촬영(CT)에서 이중단면이 찍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제공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이번 분석은 증도가자(證道歌字)에 대한 첫 과학적 검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금속 속성상 활자에 대한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 과학적인 진위 검증은 힘들 것으로 예상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연구 용역 보고서에서 활자에 묻어 있는 먹의 탄소연대를 측정해 제작 시기를 고려시대로 추정했다. 그러나 수백 년 된 먹을 중국이나 국내에서도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먹만 가지고 고려활자로 판단하기는 섣부르다는 지적이 학계에서 꾸준히 제기됐다.
이번 국과수의 조사에서는 납 성분을 투사할 수 있는 금속용 3차원(3D) 컴퓨터단층촬영(CT) 장비를 사용함으로써 기술적인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첨단 과학 장비를 활용해 무려 5년을 끈 진위 논란을 끝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국과수가 발견한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금속활자 CT에서 나온 이중(二重)의 균일한 단면이다. 이와 관련해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보고서에서 증도가자로 규정된 활자들은 모두 국과수 조사에서 활자 안쪽의 밀도가 바깥의 밀도보다 높게 나타났다. 금속을 녹여 통째로 주조하는 보통의 금속활자에서는 이처럼 안과 밖의 밀도가 다르게 나타날 수 없다.
도정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물질구조제어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CT에서 보이는 외부 단면은 이례적으로 두껍고 균일하게 형성돼 있다”며 “자연 상태에서 생긴 녹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증도가자는 어떤 방법으로 위조됐을까. 문화재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증도가자의 위조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추정된다. 하나는 활자를 우선 만들어 놓은 뒤 녹이 슨 것으로 위장하기 위해 화학물질을 표면에 코팅하는 경우다. 오줌이나 염산 같은 산성 물질을 구릿가루에 섞어 활자에 뿌린 뒤 일정 기간 땅속에 묻어두는 위조 방식이 고미술업계에 알려져 있다. 이렇게 하면 오래된 청동에서 흔히 보이는 것과 비슷한 푸른 녹이 표면에 생긴다.
또 하나는 부식 효과를 낸 활자 겉면을 먼저 만든 뒤 주석 함량이 높은 물질을 내부에 채워 넣는 방식이다. 한 고미술상 관계자는 “주석은 녹는점이 구리보다 낮아 상대적으로 다루기가 쉽다”며 “비파괴검사로 내부 성분까지 들여다보기는 힘들 것이라 보고 주석 함량을 높여 속을 채웠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국과수 조사 결과 활자 내부의 주석 성분비는 55∼56%였지만 바깥 부분은 이보다 낮은 47∼49%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 국과수 검증에서는 증도가자로 분류된 ‘수(受)’ 자에서 먹을 덧씌운 흔적도 발견됐다. 분광 비교분석기로 확대한 사진을 정밀 분석한 결과 먹과 활자 사이에 부자연스러운 경계선이 여럿 관찰됐다. 일반적인 금속활자는 인쇄를 거듭할수록 먹이 활자에 골고루 묻는다. 황정하 청주 고인쇄박물관 학예실장은 “2010년부터 증도가자가 위조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외부 감정을 수차례 의뢰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3D 스캐너를 이용한 활자 진직도(進直度·직선도) 조사에서도 일반 활자에 비해 증도가자의 진직도가 높게 나타났다. 진직도는 글자의 각 자획이 직선으로 뻗어 있는 정도를 수치화한 것이다. 컴퓨터로 인쇄한 글자일수록 자획이 명료하고 글씨가 똑바르기 때문에 진직도가 높게 나타난다. 반면 고려시대 금속활자는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데다 제조기술이 무르익지 않아 진직도가 낮게 나올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 한국 옥편에도 없는 ‘연자매 용’ 활자 中서 위조했을 가능성 높아 ▼
‘증도가자’ 누가 왜 위조했나
고미술상 “中서 예전부터 매매… 문화재 지정설에 가격 치솟아”
증도가자는 누가, 왜 위조했을까.
고미술업계에서는 일찍부터 ‘짝퉁 문화재’ 공장으로 통하는 중국에서 증도가자가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실제로 본보가 접촉한 한 고미술상은 “증도가자가 중국에서 예전부터 매매되고 있다”며 “과거 한 글자에 한국 돈 10만 원 정도 했는데 최근 국가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1000만 원으로 치솟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증도가자의 출처가 북-중 접경지대에 있는 중국 단둥(丹東)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증도가자로 분류된 금속활자 59개를 소유한 김종춘 다보성고미술 대표는 “대구의 고미술상으로부터 증도가자를 구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국과수는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증도가자 용역보고서에서 중국 위조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하나 찾아냈다. 청주 고인쇄박물관의 활자 7개 중 하나가 국내 옥편에 나오지 않고 옛 중국에서만 잠시 쓰였던 ‘(연자매 용·사진)’ 자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 국과수는 증도가자가 중국에서 위조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현지 조사를 추진 중이다.
황당한 것은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의뢰로 용역보고서를 작성한 경북대 산학협력단은 이 ‘연자매 용’ 자를 다른 한자(‘聾·귀먹을 롱’)로 오인해 고려활자로 결론을 내렸다는 점이다. 권인한 성균관대 교수는 “연자매 용 자는 고려∼조선시대 서책에 쓰인 적이 없다”고 밝혔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보고서에는 이 밖에도 허점이 여럿 보인다. 보고서는 “고인쇄박물관이 소장한 증도가자 3개 중 하나(受·수)가 삼성출판박물관이 소장한 증도가에 사용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조사결과 受 자는 증도가에 세 차례 이상 등장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밖에 먹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에서 령(令) 자의 연대가 서기 640∼780년으로 측정된 것도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다. 활자는 고려시대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정작 먹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꼴이기 때문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용역을 의뢰한 연구 주체에 대한 신뢰성도 논란거리다. 경북대 산학협력단을 이끈 남권희 경북대 교수가 5년 전 김종춘 대표와 함께 증도가자 진품을 주장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과수 검증을 계기로 주무 부처인 문화재청의 안일한 증도가자 검증이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국과수의 증도가자 검증 자료를 아직 받아보지 못해 요청해 놓은 상태”라며 “향후 증도가자와 관련해 문화재 지정조사단 전문가들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사 출처 : 동아일보>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증도가자로 분류한 ‘수(受)’ 자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3차원 컴퓨터단층촬영(CT) 장비로 찍자 두 겹의 단면이 나타났다(가운데 사진). 반면 오른쪽 사진의 전통 금속활자 주조 방식으로 만든 ‘면’자는 이런 단면이 보이지 않는다. 왼쪽 사진의 ‘受’자 표면에서는 먹을 덧씌운 흔적도 발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제공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 논란을 빚고 있는 청주 고인쇄박물관의 이른바 ‘증도가자(證道歌字)’가 가짜로 밝혀졌다. 이로써 현존하는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1377년)보다 138년 이상 앞섰다는 주장과 함께 5년간 지속돼 온 증도가자 논란은 종지부를 찍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26일 “고인쇄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증도가자 등 고려활자 7개에 대한 3차원(3D) 금속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 모두에서 인위적인 조작의 흔적을 발견했다”며 “CT 및 성분 분석 결과를 종합해 볼 때 고려시대 전통적 방식의 주물 기법에 의해 제작된 활자가 아니고, 위조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국과수의 금속 CT 결과 7개 활자의 가로와 세로 단면에서 외곽을 균일하게 둘러싼 또 하나의 단층이 추가로 포착됐다. 활자 안쪽과 밀도가 다른 물질이 외부를 둘러싸고 있는 것. 강태이 국과수 연구사는 “금속활자를 주조할 때는 안팎을 따로 만들지 않기 때문에 정상이라면 이처럼 균일한 이중 단면이 나올 수 없다”며 “금속활자가 수백 년에 걸쳐 부식된 것처럼 꾸미기 위해 겉을 다른 물질로 감싼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 조사 결과 활자 내부는 구리 20∼22%, 주석 55∼56%인 반면 바깥은 구리 30∼31%, 주석 47∼49%로 나타나 안팎이 다른 물질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수(受)와 반(般) 등 두 활자 뒷면에서는 땜질한 것 같은 흔적도 발견됐다.
이번 국과수의 검증 결과에 따라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부실 검증도 도마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11월 연구 보고서에서 “고인쇄박물관의 7개 활자 중 증도가자가 3개, 고려활자가 4개”라고 결론 내린 바 있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이 보고서에서 역시 증도가자로 분류한 김종춘 다보성고미술 대표 소유의 59개 활자에 대해서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당시 연구소는 김 대표가 보유한 101개 활자 중 59개를 증도가자로 분류한 바 있다. 이 활자들은 이번에 국과수에서 조사한 청주 고인쇄박물관 활자들과 같은 자형으로 분류됐고, 출처도 같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과수는 증도가자 검증 결과를 논문(‘금속활자의 법과학적 분석방법 고찰’)으로 정리해 31일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에 발표할 예정이다.
▼ “안팎 덧씌운 흔적 뚜렷… 고려시대 활자로 볼 수 없어” ▼
3차원 CT로 위조 밝혀내
청주 고인쇄박물관이 소장한 금속활자로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보고서에서 증도기자로 분류된 ‘상(上)과’ ‘반(般)‘, ‘수(受)‘ 활자(왼쪽부터). 나머지 4개의 활자들과 마찬가지로 금속용 컴퓨터단층촬영(CT)에서 이중단면이 찍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제공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이번 분석은 증도가자(證道歌字)에 대한 첫 과학적 검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금속 속성상 활자에 대한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 과학적인 진위 검증은 힘들 것으로 예상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연구 용역 보고서에서 활자에 묻어 있는 먹의 탄소연대를 측정해 제작 시기를 고려시대로 추정했다. 그러나 수백 년 된 먹을 중국이나 국내에서도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먹만 가지고 고려활자로 판단하기는 섣부르다는 지적이 학계에서 꾸준히 제기됐다.
이번 국과수의 조사에서는 납 성분을 투사할 수 있는 금속용 3차원(3D) 컴퓨터단층촬영(CT) 장비를 사용함으로써 기술적인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첨단 과학 장비를 활용해 무려 5년을 끈 진위 논란을 끝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국과수가 발견한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금속활자 CT에서 나온 이중(二重)의 균일한 단면이다. 이와 관련해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보고서에서 증도가자로 규정된 활자들은 모두 국과수 조사에서 활자 안쪽의 밀도가 바깥의 밀도보다 높게 나타났다. 금속을 녹여 통째로 주조하는 보통의 금속활자에서는 이처럼 안과 밖의 밀도가 다르게 나타날 수 없다.
도정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물질구조제어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CT에서 보이는 외부 단면은 이례적으로 두껍고 균일하게 형성돼 있다”며 “자연 상태에서 생긴 녹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증도가자는 어떤 방법으로 위조됐을까. 문화재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증도가자의 위조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추정된다. 하나는 활자를 우선 만들어 놓은 뒤 녹이 슨 것으로 위장하기 위해 화학물질을 표면에 코팅하는 경우다. 오줌이나 염산 같은 산성 물질을 구릿가루에 섞어 활자에 뿌린 뒤 일정 기간 땅속에 묻어두는 위조 방식이 고미술업계에 알려져 있다. 이렇게 하면 오래된 청동에서 흔히 보이는 것과 비슷한 푸른 녹이 표면에 생긴다.
또 하나는 부식 효과를 낸 활자 겉면을 먼저 만든 뒤 주석 함량이 높은 물질을 내부에 채워 넣는 방식이다. 한 고미술상 관계자는 “주석은 녹는점이 구리보다 낮아 상대적으로 다루기가 쉽다”며 “비파괴검사로 내부 성분까지 들여다보기는 힘들 것이라 보고 주석 함량을 높여 속을 채웠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국과수 조사 결과 활자 내부의 주석 성분비는 55∼56%였지만 바깥 부분은 이보다 낮은 47∼49%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 국과수 검증에서는 증도가자로 분류된 ‘수(受)’ 자에서 먹을 덧씌운 흔적도 발견됐다. 분광 비교분석기로 확대한 사진을 정밀 분석한 결과 먹과 활자 사이에 부자연스러운 경계선이 여럿 관찰됐다. 일반적인 금속활자는 인쇄를 거듭할수록 먹이 활자에 골고루 묻는다. 황정하 청주 고인쇄박물관 학예실장은 “2010년부터 증도가자가 위조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외부 감정을 수차례 의뢰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3D 스캐너를 이용한 활자 진직도(進直度·직선도) 조사에서도 일반 활자에 비해 증도가자의 진직도가 높게 나타났다. 진직도는 글자의 각 자획이 직선으로 뻗어 있는 정도를 수치화한 것이다. 컴퓨터로 인쇄한 글자일수록 자획이 명료하고 글씨가 똑바르기 때문에 진직도가 높게 나타난다. 반면 고려시대 금속활자는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데다 제조기술이 무르익지 않아 진직도가 낮게 나올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 한국 옥편에도 없는 ‘연자매 용’ 활자 中서 위조했을 가능성 높아 ▼
‘증도가자’ 누가 왜 위조했나
고미술상 “中서 예전부터 매매… 문화재 지정설에 가격 치솟아”
증도가자는 누가, 왜 위조했을까.
고미술업계에서는 일찍부터 ‘짝퉁 문화재’ 공장으로 통하는 중국에서 증도가자가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실제로 본보가 접촉한 한 고미술상은 “증도가자가 중국에서 예전부터 매매되고 있다”며 “과거 한 글자에 한국 돈 10만 원 정도 했는데 최근 국가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1000만 원으로 치솟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증도가자의 출처가 북-중 접경지대에 있는 중국 단둥(丹東)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증도가자로 분류된 금속활자 59개를 소유한 김종춘 다보성고미술 대표는 “대구의 고미술상으로부터 증도가자를 구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국과수는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증도가자 용역보고서에서 중국 위조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하나 찾아냈다. 청주 고인쇄박물관의 활자 7개 중 하나가 국내 옥편에 나오지 않고 옛 중국에서만 잠시 쓰였던 ‘(연자매 용·사진)’ 자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 국과수는 증도가자가 중국에서 위조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현지 조사를 추진 중이다.
황당한 것은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의뢰로 용역보고서를 작성한 경북대 산학협력단은 이 ‘연자매 용’ 자를 다른 한자(‘聾·귀먹을 롱’)로 오인해 고려활자로 결론을 내렸다는 점이다. 권인한 성균관대 교수는 “연자매 용 자는 고려∼조선시대 서책에 쓰인 적이 없다”고 밝혔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보고서에는 이 밖에도 허점이 여럿 보인다. 보고서는 “고인쇄박물관이 소장한 증도가자 3개 중 하나(受·수)가 삼성출판박물관이 소장한 증도가에 사용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조사결과 受 자는 증도가에 세 차례 이상 등장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밖에 먹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에서 령(令) 자의 연대가 서기 640∼780년으로 측정된 것도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다. 활자는 고려시대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정작 먹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꼴이기 때문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용역을 의뢰한 연구 주체에 대한 신뢰성도 논란거리다. 경북대 산학협력단을 이끈 남권희 경북대 교수가 5년 전 김종춘 대표와 함께 증도가자 진품을 주장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과수 검증을 계기로 주무 부처인 문화재청의 안일한 증도가자 검증이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국과수의 증도가자 검증 자료를 아직 받아보지 못해 요청해 놓은 상태”라며 “향후 증도가자와 관련해 문화재 지정조사단 전문가들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사 출처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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