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0일 금요일

정선희, 44년 세월에게 받은 선물



'안 좋았던 일/좋았던 일/내일 할 일' 세 줄을 쓰는 간단한 일상을 통해 자존감이 높아졌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니, 남 의식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하게 되더라는 그녀의 설명이 이어졌다.
 
"연예계에선 자존감이 정말 중요해요. 자존감이 높지 않았던 전 유명세를 얻은 뒤 능력 이상의 박수를 받았고, 어느 순간 그걸 당연히 여기는 시기도 겪었습니다. 박수소리에 따라 덩치 커지는 느낌이죠. 그 이후 내가 내려간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아주 극단적으로 '내가 사라져야 하는건가'로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작아지는 박수소리. 그게 싫어서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강박 아닌 강박이 생겼었습니다. 그 시기는 정말 피곤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습니다."
 
3년 전이면 2012년. 정선희가 힘든 일을 겪고 방송에 복귀하던 시기와 일맥상통한다. 연예인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견디기 힘든 일을 연이어 겪어낸 뒤 브라운관에 등장하는데는 굳은 결심이 필요했을 터. 자신의 건재함을 알려야했고 여전히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란 걸 더 필사적으로 드러내야 했다.
 
"그 땐 괜찮은 척 하느라 정신 없었어요.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순간 (방송 인생이) 끝이 날 것 같으니까. 그래서 어디서나 '아냐. 난 괜찮아' 하면서 살았지. 아마 보는 사람들도 피곤했을거야. 그 땐 항상 '난 (방송에 임할) 준비가 돼있어'라고 말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개뿔. 준비 안 돼 있었어요. 정말 힘들었지. 그렇게 몇 년 살았어요. 물론 그 시기를 부정하진 않아요. 그 때의 난 그게 최선이라 생각했거든.
 
지금? 이젠 '에이 모르겠다' 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된거죠. 나이가 주는 축복 아닌 축복이 뭐냐면, 불가능을 마주했을 때 타협도 되고 피해갈 수도 있고 포기할 수도 있는 지혜가 생기는 겁니다. 예전엔 치열하게 사느라 불가능에 계속 도전했었죠. 하지만 몇 번 깨지니 내 가치관이 넓어지고 고집도 유해지더라고요. 나이를 잘 먹었을 때 받을 수 있는 선물이랄까. 자연히 쓸데없이 에너지 소모를 하지 않게 되죠. 그 때부터 재밌게 살게 됐습니다."
 
암막을 걷고 다시 달려나가기까지. 이 모든게 정선희가 성인(聖人)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걸까. 절대 아니다. 주변엔 항상 그녀를 생각하는 절친한 지인들이 있었다. 힘든 시기를 견뎌낼 수 있었던 데는 그들의 영향이 지대했다는 설명.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았고, 내 생각의 궤도를 수정해줄 사람도 많았어요. 주변 사람들이 개그맨이라 참 좋은게 내가 센치해질 틈을 주지 않아. 하하. 창 밖 보면서 '아, 인생 정말 허무하다'고 말해도 '닥쳐, 짜장면 짬뽕 뭐 먹을거야. 빨리 골라'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그들 덕에 (어두운 생각에) 깊게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 때도 고마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고마움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어요. 내 주변 사람들이 내게 그렇게 대해주지 않았다면? 아마 '안되겠다. 난 삶을 마감할게' 하면서 슝 떠나버렸을거에요."


 <기사 출처 : 엑스포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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