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자들이 땅 위의 ‘인공태양’을 만드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공동 개발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경수 ITER 국제기구 사무차장, 남궁원 ITER 이사회 의장, 박주식 ITER 건설담당본부장, 최창호 ITER진공용기섹션리더. 국가핵융합연구소 제공
“땅 위의 ‘인공태양’을 만드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공동 개발사업은 향후 2년간 한국이 주도하게 될 겁니다. 한국 핵융합의 황금기가 열린 셈입니다.”
한국인 과학자들이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제 공동 프로젝트인 ITER 사업에서 핵심 요직을 맡게 됐다. ITER 국제기구 ‘2인자’인 사무차장부터,ITER 사업의 최고의결기구인 이사회 의장, 그리고 핵심 부품 설비의 책임자까지 모두 한국인으로 구성됐다. 정기정 국가핵융합연구소 ITER 한국사업단장은 “우리나라는 미국,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에 비해 40∼50년 늦게 연구를 시작했지만 한국인 특유의 빠른 행동력과 정밀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핵심 역할을 맡게 됐다”고 말했다.
○ 진척 더딘 ITER ‘속도전’ 시작
ITER 프로젝트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러시아,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인도 등 7개국이 2007년 공동으로 사업비를 부담하기로 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총 예산은 71억1000만 유로(약 8조7000억 원). 우리는 이 가운데 7908억 원(9.09%)을 부담한다. 2019년에는 프랑스 남부 카다라슈에 ITER가 완공되고, 2020년 여기서 첫 플라스마가 발생하면 향후 시험을 거듭해 2027년 본격적으로 가동하는 게 목표다. 그간 진척 속도는 지지부진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7개국의 이해관계가 서로 얽혀 있어 의사결정이 더뎠기 때문이다. ITER가 인공 핵융합이라는 최첨단 기술을 적용하는 장치라는 점도 한몫했다. ITER는 태양 중심처럼 1억 도가 넘는 초고온 플라스마 상태에서 가벼운 수소 원자핵들이 무거운 헬륨 원자핵으로 바뀌도록 인위적으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고, 이때 나오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얻는 장치다.
정 단장은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논의를 거치다 보니 일정이 계속 늦춰지는 경향이 있다”며 “한국이 주도하는 체제에서는 현재 기술을 이용해 건설에 속도를 내고, 신기술은 다음 세대에 적용하자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런 ‘속도전’에는 이경수 ITER 국제기구 사무차장(전 국가핵융합연구소장)이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사무차장은 ‘한국형 인공태양’으로 불리는 핵융합실험로인 ‘KSTAR’의 설계부터 2008년 완공까지 지휘한 인물인 만큼 최고 적임자로 평가받는다.
프랑스 남부 카다라슈에 짓고 있는 ITER ‘토카막’. 1억 도가 넘는 인공태양을 담는 그릇에 해당하는 장치로 한국 과학자들의 주도하에 만들어지고 있다. ITER 제공
○ KSTAR 기술력, ITER가 인정
실제로 ITER 사업단 내에서 한국의 리더십이 인정받게 된 배경에는 KSTAR의 역할이 크다. KSTAR는 ITER를 25분의 1로 축소한 시제품으로 불릴 만큼 구조와 작동 방식이 비슷하다. 두 실험로 모두 초전도자석에서 나오는 강력한 자기장이 1억5000만 도까지 올라가는 플라스마를 가두는 ‘토카막’을 핵심 장치로 쓴다.
세계적으로 초전도 핵융합장치는 KSTAR와 중국의 ‘EAST’가 유일하다. 하지만 초전도 기술에서는 우리가 중국보다 한 수 위로 인정받는다. 일본도 초전도 핵융합장치 ‘JT-60SA’를 건설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 비해 4∼5년 뒤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이유로 ITER 토카막 조립은 박주식 박사가, 진공용기 제작은 최창호 박사가 각각 총괄 지휘하고 있다. 박 박사는 KSTAR 건설 당시 총책임자였고, 최 박사는 KSTAR에서 실무 책임을 맡았던 초전도 전문가다.
오영국 KSTAR연구센터 부센터장은 “핵융합장치는 한 치의 오차라도 발생하면 실패하는 정밀한 첨단장치인 만큼 KSTAR를 성공시킨 한국의 기술력이 주목받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8일 프랑스에서 열린 ITER 이사회에서는 남궁원 포항공대 명예교수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출했다. 이사회는 ITER 건설과 관련된 일정, 예산 등 사업의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는 ITER 내 최고 의결기구다. 남궁 교수는 내년 1월부터 2년간 이사회를 이끈다. ITER 이사회는 내년 6월 사업 진행 절차와 비용 등을 전반적으로 검토해 전체 일정 등을 조정할 방침이어서 남궁 신임 의장의 역할이 더욱 막중하다.
<기사 출처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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