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6일 목요일

화산·바다·사람을 만나는 ‘내 마음의 보석상자’… 제주 성산·오조 지질트레일을 걷다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 식산봉 인근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과 내수면 야경. 일출봉 정상에서 점점이 이어지는 탐방로 불빛과 내수면에 비친 성산리의 조명이 휘황찬란하다. 내수면 가운데 튜물러스도 보인다.
약 7000년 전. 제주도 동쪽 해안 인근 바닷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시뻘건 마그마가 솟아올랐다. 수성화산활동이다. 화구에서 뿜어져 나온 화산재와 암석 등 분출물이 바닷물에 젖은 채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가 천천히 떨어지면서 가파른 경사를 이루며 쌓였다. 모두 3차례에 걸친 분출로 성산일출봉은 태어났다.

이후 풍파에 제 살을 조금씩 내주었다. 육지와 연결된 부분을 제외하고 바다와 접한 부분이 깎아지른 절벽을 이룬 이유다. 하지만 웅장한 왕관 모양의 분화구는 남겨뒀다. 높이 182m의 이 분화구는 지름 600m, 넓이 13만㎡, 화구 바닥의 길이 90m다. 분화구 주변에는 거대하고 날카로운 기암이 장관을 연출한다. 등경돌, 장군석, 초관바위, 곰바위, 독수리바위, 거북바위 등이 금방이라도 꿈틀거릴 것 같다. 불과 물이 만들고 파도와 바람이 빚어낸 합작품이다.

성산일출봉에 올라서서 한라산 방향으로 내려다보면 커다란 호수가 보인다. 한때 이곳은 바다였다. 바닷물이 넘나들던 모래톱인 터진목에 길이 놓이며 고성리와 연결되고, 오조리로 이어지는 갑문다리(한도교) 공사로 갇히다시피 한 바다가 내수면이 된 것. 성산리가 뭍으로 연결되면서 바다가 호수로 고립된 셈이다.

성산일출봉을 뒤로 하고 남쪽으로 진분홍색·감청색 리본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나선다. ‘성산·오조 지질트레일’이다.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제주의 네 번째 지질트레일이다. 화산과 바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흐르는 이 길에는 수천 년의 시간을 품은 제주의 보석 같은 풍경들이 숨겨져 있다. 걷는 내내 가까이서 또는 멀리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성산일출봉은 시시각각 변해가는 모습을 내보인다. 놀멍쉬멍 걷다보면 그동안 놓쳤던 일출봉의 다른 면면을 볼 수 있다.

성산일출봉 정상에 거대한 분화구가 파노라마로 펼쳐져 있다. 약 7000년 전부터 3차례의 수성화산활동으로 형성됐다.
먼저 일제의 침략상을 보여주는 아픔의 역사 현장인 동굴진지 유적지가 나온다. 당시 제주에 주둔한 일본군 7만5000여명은 수많은 동굴진지를 구축했다. 일본해군의 자살 특공기지였던 일출봉에는 18개나 만들었다. 동굴진지는 폭약을 실은 특공 소형선을 감춰놓기 위한 비밀기지였다. 일부는 내부에서 왕(王)자 형태로 연결돼 있다. 전남의 광산 노동자들을 동원해 만든 동굴진지는 일제의 패망으로 다행히 사용되지 못한 채 남았다.

이어 광치기 해변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썰물 때 일출봉 언저리가 바닷물과 빗물 등에 깎이고 흐르면서 주변 일대로 옮겨져 쌓인 바위가 속살을 드러낸다. 푸른 이끼를 덮어쓴 퇴적층이 드넓게 펼쳐지면서 파란 바다 빛과 어우러져 원시의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해가 뜰 때 해변에서 바라보는 일출봉의 모습이 유난히 아름다워 사진 명소로 꼽힌다.

바로 옆에 모래언덕인 터진목이 자리한다. 성산리는 원래 섬이었으나 썰물이면 가느다란 모래톱이 드러나 제주 본섬과 이어졌다. 본섬으로 가는 길목을 바닷물로 터진 곳이라 해서 ‘터진 길목’ 곧 ‘터진목’이라고 했다. 이곳은 한국 현대사에 비극적인 사건으로 꼽히는 4·3사건 당시 성산 지역 주민들이 집단으로 학살당한 가슴 아픈 역사를 가진 곳이다. 일제강점기 때 연육 공사로 이어지면서 지금은 넓은 도로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고성리 제방 머리엔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조그만 유채밭이 노란 물결이다.

터진목을 지나면 내수면이 나온다. 요즘 청둥오리 가마우지 등 새들이 먹이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이 광활한 내수면에는 고기를 가둬잡아 기른 제주 최초의 양어장이 있다. ‘장정의보’다. 이후 성산항 쪽에 갑문이 들어서 진짜 호수가 되면서 쓰임새를 잃었다. 지난해에는 20여년 만에 갑문을 열어 전국체전 카누경기장으로 활용했다.

내수면에는 현무암으로 된 암반이 많다. 전문용어로 ‘튜물러스’로 불린다. 화산 폭발로 흘러내린 용암의 표면이 굳어 완만한 구릉 형태를 이룬 지형으로 이는 제주에서만 볼 수 있다. 제각기 모양을 달리하는 크고 작은 검은 바윗덩어리들이 제멋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오조리 마을의 용천수 ‘족지물’.
마을이 가까워지면 밭담이 이어진다. 마소의 침입을 막고, 밭 경계의 표지로 쌓은 것이다. 오조리는 성산 앞바다 일출봉 너머로 해가 떠오르면 가장 먼저 햇살이 닿는 마을이라서 붙여진 지명이다. ‘나 오(吾)’자에 ‘비출 조(照)’자를 쓴다. 마을로 들어서면 용천수 ‘족지물’이 나온다. 물이 귀한 제주에서 땅에서 솟아나는 용천수는 생명의 물이었다. 식수와 빨래, 목욕물로도 사용했다. 가장 위쪽은 식수, 다음은 여자탕, 아래쪽은 남자탕으로 나뉘어 사용했다고 한다.

이어 ‘성산10경’의 하나로 꼽히는 해발 40m의 작은 오름 식산봉(食山峯)에 다다른다.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산 전체를 낟가리를 쌓은 것처럼 위장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곳은 염습지에서만 자라는 멸종위기종 2급 희귀식물인 황근의 국내 최대 자생군락지다. 무궁화와 비슷한 노란 꽃은 6∼8월 한여름에 핀다.

한도교를 건너 성산포를 지나면 제주의 서정을 시편에 담아낸 시인 이생진의 시 19편을 새긴 시비 거리와 자연 포구 ‘오정개’를 만난다. 이후 출발점으로 되돌아온다.
<기사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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