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유학 자녀들 U턴 외국인 학교行도 급증
근로자의 날인 지난 1일 서울 광진구의 어린이대공원을 찾아 아이와 놀아주고 있는 아빠들. 요즘 아빠들은 자녀의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하는 '기러기 아빠'가 되는 선택을 하기보다는 가정 전체의 행복을 지키는 선택을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사진=뉴스1 |
"가족·건강 붕괴 싫다…."
지난해 3월,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사립중학교 체육관에 목을 매 숨진 체육교사 A씨(52). 그는 기러기 아빠였다. 6년 동안 자녀와 아내를 캐나다에 보내두고 생활해오던 그는 우울증에 빠져 학교에 휴직계를 제출했지만 반려되자 몇 개의 쪽지를 남긴 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기러기 아빠라는 명칭이 탄생한 지 20여년, 아빠들은 이제 '헌신하다간 헌신짝처럼 버려진다'는 위기의식을 강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우울증''배우자의 외도''자녀와의 거리감' 등은 자녀를 유학 보냈거나 보낼 예정인 남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떠올리는 단어가 돼 버렸다.
7일 자녀들을 유학 보낸 부모들의 커뮤니티에서는 '기러기 생활'을 만류하는 수많은 기러기 아빠들의 글을 볼 수 있었다. "집사람이 3년간 아이를 데리고 미국에 다녀오겠다고 최후 통보를 해 왔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같은 질문에 아빠들은 '절대 반대'라며 앞다퉈 의견을 제시했다.
아빠들은 "기러기 아빠는 돈 보내는 기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가족한테 무슨 죄 진거 있냐, 아빠가 왜 혼자 남아 기러기 생활을 해야 하느냐", "기러기 아빠 생활을 2년간 해본 뒤 이제는 자녀유학을 생각하는 주변 사람들을 도시락 싸 가며 말리고 다닌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올해로 4년차 기러기 아빠인 대기업 부장 B씨(49)도 "지금 기러기 아빠가 아니라면 생각조차 하지 마라"고 조언했다. 그는 "기러기 아빠 생활에 좋은 것이 하나도 없다"며 "시간이 꽤 지난 지금까지도 이 생활에 대해 고민을 계속 하고 있다"고 말했다.
B씨는 "돈도 많이 들뿐더러 떨어져 있다보니 가족 간의 사랑도 줄어든다"며 "자식 때문에 이런 생활을 감내하고 있기는 하지만 매우 힘들고 전화통화로 외로움이 채워지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렇게 힘든 생활 끝에 돌아올 보상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도 기러기 아빠들이 이 생활을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한 큰 요인이 됐다. 자녀의 해외 적응이 쉽지 않은 경우도 많고, 해외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국내 기업들이 유학파를 크게 선호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한 몫 했다.
초등학교 3학년때 아이를 호주로 보내 3년간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다가 최근 국내로 다시 불러들인 아빠 C씨(47)는 "10년 전만 해도 외국에서 대학을 나오거나 MBA를 이수했다고 하면 국내 취업할 때 눈에 띄었다"라며 "그러나 이제는 유학생이 많고 해외에서도 취업이 쉽지 않아 메리트가 없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부적응 문제로 유학을 보냈다가 아이들을 국내로 다시 'U턴'시켜 외국인 학교를 보내는 가정도 많다. 이승현 센테니얼 크리스천 스쿨 홍보실장은 "조기 유학의 주요 목적이 열린 교육법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자 함인데 어린 시절부터 외국에서 공부하다보니 문화적 괴리감을 느끼거나 향수병을 앓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사춘기를 잘못 보내고 적응에 실패한 아이들이 한국에 돌아와서는 또 한국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 때문에 외국인 학교를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조기유학 열풍이 시작된 때와 달리 국내에서도 영어공부를 현지 수준으로 할 수 있는 여건이 다양하게 마련되자 기러기 아빠들은 자녀의 유학을 대신할 대안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2008년 정부가 '동북아 교육 허브'를 조성하겠다며 약 1조7806억원을 투입해 시작한 '제주영어교육도시'로도 관심이 몰리고 있다. 현재 운영되는 국제학교 3곳 중 하나인 NLCS-jeju의 경우 지난해 첫 졸업생 중 52명이 영국 옥스퍼드대, 미국 예일대 등 세계 40위권(2014년, 타임지 선정)의 명문대에 합격하기도 했다.
이렇게 '기러기 아빠'의 폐해에 대한 경험이 쌓여가고 국내에서도 유학을 대신할 수 있는 방법들이 늘자 가정의 평화와 자신의 삶을 지키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는 아빠들이 늘어나는 추세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동석 한국교원총연합회 대변인은 "그동안은 우리나라 부모들이 자식을 통해 성취감과 행복감을 느껴왔고 이를 본인의 삶 앞에 두는 경향이 컸다"며 "그러나 희생의 결과에 대해서마저 회의적인 목소리가 커지면서 굳이 기러기 아빠가 되지 않는 길을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사 출처 :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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