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성복동 현대힐스테이트, ‘미분양으로 집값을 할인해 팔겠다’는 현수막이 아파트 입구에 걸려 있다.photo 조동진
경기도 용인시는 거대한 ‘아파트 공동묘지’다. 완공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팔리지 않는 ‘미분양 아파트’들이 도시 곳곳에 넘쳐난다. 골칫거리로 전락한 수천 채의 미분양 아파트를 팔기 위한 건설사와 분양대행사들의 영업은 눈물이 날 정도다. ‘중도금·잔금 무이자 대출지원’과 ‘발코니 무상 확장’ ‘빌트인 가구와 대형 TV·에어컨 무료 증정’ 정도로는 눈길도 끌기 힘들다. 미분양 아파트만 사준다면 ‘계약자에게 중대형 자동차 증정’은 물론 ‘취득세 등 세금을 대납해 주겠다’는 건설사도 많다. 심지어 ‘기존 분양가의 40%까지 집값을 할인해 주겠다’는 건설사들도 수두룩한 게 용인의 현실이다.
대규모 미분양 아파트들 때문에만 용인시가 거대한 ‘아파트 공동묘지’로 전락한 건 아니다. 이미 입주한 사람들조차 이곳을 탈출하기 위해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팔겠다’고 내놓는 상황이다. 용인 지역 부동산 중개업소마다 처리가 곤란할 만큼 매물이 쌓여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올해 용인의 아파트 분양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대림산업·대우건설·롯데건설·한화건설·효성 등 대형 건설사들이 아파트 분양 물량을 쏟아내고 있다. 대림건설 6725가구, 롯데건설 2356가구 등 올 10월 말부터 12월 말까지 약 1만5000채의 아파트가 용인에서 분양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올 상반기 1만1000채가 넘는 아파트가 용인에서 분양됐다. 상반기와 하반기 분양 물량을 합치면 용인에선 올해에만 2만6000채 이상의 아파트가 분양되는 것이다. 지난해 용인에서 분양된 아파트는 3050여채다. 2012년과 2013년에는 각각 1300여채와 2000여채에 불과했다. 이랬던 용인 분양시장이 올해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올해 분양시장에 나올 것으로 보이는 2만6000채 아파트 중 상당수가 미분양으로 전락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분양됐다’ 해도 완공 후 미입주 아파트가 되거나 청약·계약 철회 등으로 사실상 미분양 아파트가 될 가능성도 매우 크다. 이미 올 상반기 용인 곳곳에서 ‘분양됐던’ 아파트 중 10%에 이르는 물량이 사실상 미분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분양 100채 중 13채가 용인에
현재 용인의 미분양 상황은 심각하다. 용인은 전국에서 미분양 아파트가 가장 많은 도시 1위다. 올 9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총 3만2524채(국토교통부)다. 이 중 용인시의 미분양 아파트만 4247채다. 전국 미분양 아파트의 13%가 용인시 안에 있다. 미분양 아파트가 3000채 이상인 도시는 전국에서 용인이 유일하다. 참고로 미분양 아파트 규모 2위는 인천시(2764채)이고, 3위는 화성시(2285채)다. 미분양 추세도 심각한 상태다. 지난해 12월 말, 용인의 미분양 아파트는 3476채였다. 10개월 만에 1000채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지난 10월 27일 기자는 용인 지역 미분양 아파트 현장과 현재 분양 중인 아파트 모델하우스·건설 현장을 가봤다. 우선 용인시 기흥구 동백지구를 찾았다. 동백지구 안에는 총 2800가구에 이르는 롯데캐슬에코아파트 1·2단지가 있다. 이 롯데캐슬에코아파트 1·2단지는 2010년 분양돼 2013년 입주를 마쳤다. 하지만 여전히 ‘미분양 상태’다. 대규모 미분양 때문에 아파트 입구에 여전히 분양사무소가 운영 중이다. 또 롯데캐슬에코아파트 1·2단지 주변 부동산 모두 ‘롯데캐슬 특별분양’ 현수막과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한다.
한 중개업자는 “계약금과 중도금 조금 해서 (실입주금) 1억4000만원 정도면 원하는 동과 층에 당장 입주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지역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이전에는 미분양 아파트를 사주는 사람에게 취득세까지 지원했는데도 거의 안 팔렸다”며 “이곳 롯데캐슬 미분양 물량을 다 파는 건 불가능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른 중계업자는 “여기서 영업하지만 입지와 분양가 등을 고려할 때 나도 여기 아파트는 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차로 약 10분 거리인 용인시 기흥구 상하동의 ‘임광그대가아파트’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이 아파트는 ‘지석역 그대가 크레던스’로도 불린다. 아파트 주입구가 용인경전철 지석역과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총 554가구로 2010년에 입주했다. 현재 용인 지역의 대표적 대규모 미분양 아파트로 전락해 있다. 입주 5년이 지난 지금까지 발코니 새시조차 설치가 안 된 미분양·미입주 아파트들이 수두룩하다.
놀랍게도 현재 이 아파트의 미분양 물량은 처음 분양가격보다 40% 가까이 할인된 가격에 선착순 분양되고 있다. 이 아파트 분양사무소 관계자는 “처음 분양했을 때는 층과 동에 따라 분양가가 평당 1500만~1700만원이었다”며 “지금 미분양 물량을 사면 평(3.3㎡)당 1020만원에 가능하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동과 층은 고객이 원하는 대로 고르면 된다”고 했다. 분양사무소 관계자는 “550가구를 지었는데 250가구 정도만 입주했을 만큼 미분양이 컸다”며 “입주자가 없어 거래가 안 됐고 시세도 형성되지 않았었다”고 했다.
용인의 부촌으로 알려진 수지구 성복동 일대 아파트들의 미분양 문제도 심각하다. 이곳은 성남시 판교·분당과 멀지 않아 그나마 입지가 나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건설이 지은 성복동 힐스테이트 2·3차(총 1512가구) 단지와 GS건설이 지은 성복동 자이 1·2차(총 1502가구) 단지는 성복동을 대표하는 아파트다. 하지만 역시 대규모 미분양에 빠져 있다.
분양가보다 40% 깎아줘도 안 팔려
5년 전인 2010년 입주를 마쳤지만 아파트 입구에는 건설사(현대건설·GS건설)와 시행가가 운영하는 분양사무소가 여전히 영업 중이다. 분양사무소 주변은 물론, 이 아파트와 꽤 떨어진 곳에도 ‘성복동 힐스테이트·자이 할인 분양’이 적힌 현수막들이 수두룩하게 걸려 있다.
이곳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성복동 힐스테이트·자이 미분양 아파트를 사시면 건설사가 취득세를 내주고 있다”며 “발코니 무료 확장 서비스가 있어 할인 혜택이 더 크다”고 했다. 또 다른 중개업자는 “미분양 아파트 매매는 우리도 부동산 수수료를 안 받고 있다”며 “입주 5년이 지났고, 세금까지 대신 내주는데 아직 미분양인 걸 보면 더는 팔기 힘들어 보인다”고 했다.
이 상황에도 10월 대림산업이 처인구에 6725채, 롯데건설이 수지구에 2700채 등 건설사들은 올해 용인에서 대규모 아파트 분양을 감행하고 있다. 대림산업이 6725채를 분양하는 처인구 모델하우스와 공사 현장을 가봤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1시간30분 이상 가야 도착할 만큼 교통이 열악하다. 향후 GTX(광역급행철도)가 용인에 건설된다 해도 이를 타려면 20분 이상 차를 타고 나와야 한다.
이곳 모델하우스와 공사 현장을 보러온 사람 중에는 “청약은 해볼 생각이지만, 당첨되면 프리미엄(웃돈)을 보고 계약할지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사람은 “실거주보다 투자 목적으로 오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며 자신도 “프리미엄이 붙으면 팔고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청약 경쟁률은 높게 나온다 해도, 실제 계약을 포기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을 것 같다”며 “분양 경쟁과 무관하게 결국 미분양을 피하기 힘들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건설사 “시장 나아진 지금 빨리 털자”
악성 미분양 아파트가 대거 쌓여 있는 용인에, 건설사들은 왜 대규모 분양에 나서고 있는 걸까. 한 건설사 관계자는 “매매와 분양시장이 지난해보다 나아졌다”며 “최근 몇 년 용인에 아파트 공급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있어 이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건설사들이 올해 공급을 늘린 것으로 봐 달라”고 했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시장이 조금이라도 살아났을 때 분양 물량을 털어야 미분양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며 “용인은 경전철 신설과 향후 GTX 정차역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이 있어 경기권의 부동산 투자처로 홍보·영업하기가 쉬운 지역”이라고 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미분양이 4000채 이상 쌓인 도시에, 1년에 2만6000채의 아파트를 분양한다는 건 공급과잉”이라면서도 “지금이 아니면 또 몇 년을 기다려야 분양이 가능할지 점치기 힘들다. 과잉공급 지적에도 올해 대규모 분양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현재 용인에서 벌어지는 건설사들의 대규모 분양에 우려가 크다.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의 이호병 교수는 “건설사 입장에서 (미분양 아파트가 특히 많은) 용인은 갈수록 부담이 커질 지역”이라며 “그나마 지하철 신분당선 연장 등 호재가 있을 때 빨리 분양하고 나오자는 분위기가 건설사들 사이에 강한 것 같다”고 했다.
2~4년 후 문제 심각해질 것
부동산 시장조사업체 리어투데이 양지영 리서치실장은 “용인은 대규모 택지개발지구가 특히 많은 지역”이라며 “택지개발지구에 건설사들이 보유한 땅이 많다”고 했다. 그는 “내년에는 기존 3년이던 주택담보대출 거치기간이 1년으로 축소되고, 미국 기준금리가 인상된다”며 “건설사들이 이 같은 이슈가 벌어질 내년 시장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결국 시장이 그나마 회복된 올해 용인 택지지구 내 자신들의 땅에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지 못하면, 내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게 건설사들의 생각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관련 교수들과 시장 전문가들은 용인에 분양된 2만6000여채의 아파트가 지금보다 2~4년 후쯤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입주 시점이 될 2~4년 후 가격이 폭락하거나 대출금리가 인상돼 금융비용 부담이 증가하면 계약 철회·미입주 확대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용인 아파트 분양시장은 공급 과잉과 미분양 증가라는 불안 요소를 동시 안고 있다. 살 사람은 많지 않은데 공급은 급증하고 있다. 용인의 아파트 버블이 가장 심했던 2007년과 2008년을 합쳐 약 2만6700여채가 분양됐다. 이 중 상당수가 미분양·미입주 아파트로 전락해 지금도 우리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다. 그런데 올해 단 한 해에만 2만6000여채의 아파트가 용인에 분양된다. 2008년 이후 ‘아파트 공동묘지’로 전락한 용인에 또 다른 아파트 무덤이 생기지 않게끔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기사 출처 : 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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