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檢, 상습절도범에 특가법 대신 刑法 적용키로
김모(39)씨는 영업이 끝난 분식집에 몰래 들어가 라면 2개를 끓여 먹고 허기를 채운 뒤 2만원쯤 든 동전통과 라면 10개를 훔쳐 나왔다. 이 일로 그는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70억원대의 횡령·배임으로 기소된 청해진해운 유병언 전 회장의 장남 유대균씨에게 선고된 징역 3년보다도 높다. 지하철에서 취객의 지갑에 손대다 붙잡힌 정모(55)씨는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들이 중형을 선고받은 것은 형법 대신 특정범죄가중처벌법 5조 4항의 상습절도죄가 적용됐기 때문이다. 이 조항은 '상습적으로' 절도를 한 경우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더구나 두 번 이상 이 법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으면 같은 조의 6항에 따라 법정형이 최소 6년이 된다. 징역 5년 이상인 살인죄보다 하한(下限)이 더 높은 것이다. 그래서 6항이 적용되면 자수나 피해자의 선처 호소 등 감경 요소를 최대한 인정해도 3년 밑으로는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다. 물론 거듭되는 처벌에도 또다시 남의 물건에 손을 댄 잘못이 크다. 그러나 지은 죄에 비해 형량이 너무 가혹하기 때문에 이 법은 '한국의 장발장법'이라 불린다.
국민참여재판에서도 단골 소재가 되지만 배심원들도 속수무책이다. 피의자는 배심원들에게 조실부모(早失父母)한 기구한 과거를 토로하고 '출소 후 생계가 막막해 딱 한 번 남의 물건에 손댄 것뿐'이라며 선처를 호소한다. 하지만 절도 전과가 많아 상습성이 인정될 수밖에 없고 특가법의 법정형 자체가 워낙 높다 보니 아무리 사정이 딱해도 중형이 불가피하다. 형법에도 '상습절도'를 처벌하는 조항이 있지만 특별법 우선 원칙에 따라 수사기관은 특가법을 적용해 왔다.
그런데 대검찰청이 지난해 12월 24일부터 "상습절도범에 특가법 대신 형법을 적용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일선 검찰청은 이 지침에 따라 특가법으로 기소된 사건은 형법의 상습절도로 죄명을 바꾸고, 수사 중인 사건도 특가법 대신 형법을 적용하고 있다. 형법의 상습절도는 절도죄의 2분의 1을 가중(加重)하도록 하고 있다. 만약 김씨의 경우 형법이 적용됐다면 '6년 이상 징역'이 아니라 '10년 이하의 징역'이 적용돼 이론적으로는 벌금형도 가능하다.
대검이 이런 지침을 내린 이유는 형량이 워낙 높은 데다 비슷한 취지의 2개 조항에 대해 잇달아 위헌(違憲)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4월 마약 밀수를 처벌하는 특가법 11조에 대해, 지난해 11월에는 화폐 위조를 처벌하는 특가법 10조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유는 '특정 범죄를 가중 처벌'하는 특가법이라면 일반 형법보다 더 큰 범죄를 대상으로 처벌해야 하는데 형법과 똑같은 내용의 범죄에 대해 법정형만 높여 놓았기 때문이다. 특가법 10조는 형법과 똑같은 통화위조범에 대해 법정형 하한만 2년에서 5년으로 높여 놓고 사형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되면 똑같은 잘못에 대해 검사가 형법이나 특가법 중 어느 법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형량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형평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두 조항이 위헌 판정을 받으면서 상습절도의 법정형만 높여 놓은 특가법 5조의 4항도 문제가 됐다. 대검 관계자는 "아직 위헌 결정이 난 것은 아니지만 헌재의 결정 취지를 보면 위헌 소지가 높다고 판단돼 적용 중지 조치를 내렸다"고 했다. 실제로 특가법 5조의 4항도 법원이 직권으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 헌재에서 심리 중이다. 지금도 사실상 '죽은 법'이나 마찬가지인데, 위헌 결정까지 내려지면 확실한 사망 선고가 되는 셈이다.
한 국선 전담 변호사는 "상습절도 사건의 국민참여재판을 하다 보면 특가법 형이 너무 높다 보니 극빈층이 대부분인 당사자들로서는 '무전유죄 유전무죄'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이 특가법 조항이 빨리 시정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발장법
프랑스 소설가 빅토르 위고가 쓴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의 이름을 본뜬 죄명. 그가 빵 한 조각을 훔치고 19년간 감옥살이를 한 것처럼, 특가법 5조의 4항도 동종 전과가 있다는 이유로 생계형 절도범죄에 대해서도 징역 3년 이상의 중형에 처하기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이 조항을 '장발장법'이라 부른다.
<기사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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