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외국어 교육 망치는 수능 시스템
가르치는 곳 적은데 63%가 선택 "조금만 공부해도 성적 잘나와"
점수 따기 힘든 중국어는 외면
작년 11월 치러진 2015학년도 수능 '제2외국어 및 한문' 영역에서 아랍어와 베트남어는 원점수 50점 만점에 각각 15점, 18점을 맞으면 3등급(전체 9등급 중)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다른 외국어 과목 3등급 커트라인은 독일어 40점, 프랑스어 42점, 스페인어 40점, 중국어 39점, 일본어 42점 등으로 아랍어·베트남어에 비해 상당히 높았다.
수능 '제2외국어 및 한문'은 주로 인문계 학생들이 치르며 9개 외국어 중 하나를 선택한다. 지난해 수능에서는 '제2외국어 및 한문'을 본 수험생 6만3225명 중 43.5%가 베트남어를 선택해 시험을 치렀다. 그다음으로 많은 수험생이 선택한 과목은 아랍어(19.5%)였다. 제2외국어 영역 응시생 10명 중 6명꼴(63%)로 베트남어와 아랍어를 선택한 것이다.
25일 입시 기관 종로학원하늘교육이 2015학년도 수능 '제2외국어 및 한문' 채점 결과를 분석한 결과 수험생들이 아랍어와 베트남어를 대거 선택하는 이유가 나타났다. 2015학년도 수능 아랍어와 베트남어는 모든 문제 정답을 3번으로 찍어도 5등급(원점수 11점)을 받을 수 있었다. 반면 일본어·중국어·한문 등에서 원점수 11점을 받으면 7~8등급에 그쳤다.
오종운 종로학원하늘교육 평가이사는 "아랍어와 베트남어는 가르치는 고등학교도 거의 없고 아직 생소한 외국어이기 때문에 조금만 공부해도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가 쉽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국에서 아랍어와 베트남어를 가르치는 고등학교는 울산외고(아랍어)와 충남외고(베트남어)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전국 최초로 베트남어과를 만든 충남외고 이완구 3학년 부장교사는 "제2외국어 시험은 영어처럼 듣기나 발음 평가가 없고 문법만 알면 되기 때문에 학생들이 쉽게 선택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반면 상대적으로 점수를 올리기 힘든 중국어는 수험생들이 점점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특히 일반고 학생들이 실력이 뛰어난 외국어고 학생들을 피하기 위해 아랍어나 베트남어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상위권 대학들 중 상당수가 사회탐구 한 과목을 제2외국어 과목 점수로 대체해주고 있어, 고 3에 진학한 후 아랍어·베트남어를 새로 배우겠다는 수험생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고등학교에서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이모 교사는 "학교에선 중국어를 제2외국어로 가르치는데 학생들이 정작 중국어 수업은 안 듣고 방학 때 베트남어 인강(인터넷 강의) 듣는 학생이 많다"고 밝혔다.
학교에선 가르치지도 않고 사회에서는 실수요도 상대적으로 적은 외국어 과목이 오로지 수능에서만 열풍을 일으키는 기현상은 5~6년 전부터 반복되고 있다. 2009학년도 수능 당시 가르치는 학교가 전국에 한 곳도 없는 아랍어가 제2외국어 영역 응시생 1위를 차지한 이후 줄곧 아랍어가 응시생 1위를 하다 2014학년도 수능에선 처음 도입된 기초베트남어가 아랍어를 앞섰다.
문제는 이 때문에 중국어 등 점수 따기 어려운 외국어 과목이 학생들로부터 외면받는다는 현실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2외국어 및 한문' 영역을 영어나 한국사처럼 절대 평가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용화여고 이영순 교사(중국어)는 "제2외국어는 수능에서 비중이 낮은 데다 과목들 간 유불리가 워낙 다르니까 학생들이 자신이 좋아하거나 필요한 언어를 공부하기보다 점수 따기 좋은 과목에만 집중한다"며 "제2 외국어는 우리 학생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기르기 위해 꼭 필요한데도 현실을 반영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기사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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