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북부 닌빈에 위치한 땀꼭 선착장에 ‘삼판’이라고 불리는 나룻배들이 여행객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서부터 1시간30분가량 응오동강의 지류를 따라가는 ‘강의 하롱베이’ 땀꼭 여정이 시작된다. 멀리 보이는 기암괴석은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는 걸 잊지 말자.
여행은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상사의 잔소리, 실적 압박, 오전 7시의 알람…. 여행은 일상에 모라토리움을 선언하는 것이다. 일상에 지불할 정신적 에너지가 바닥을 보일 때 우린 떠난다.
베트남을 선택한 데엔 별다른 이유는 없다. 물가가 싸고 음식이 맛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5시간만 비행기를 타면 갈 수 있다는 말에 마음이 조금 움직였다. 쌀국수로만 알고 있던 나라. 새삼 궁금해졌다.
‘시민의 발’ 오토바이 한 대에 모두 탄 출근길 일가족.
의외였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베트남은 새로운 것으로 가득했다. 삿갓 모양의 전통 모자 ‘논라’와 전통 의상 ‘아오자이’를 입은 여성들. 차도를 점거한 오토바이 출근족, 혀끝을 맴도는 향신료 고수의 향기. 열 가지가 넘는 종류의 쌀국수.
커피도 새롭다. 시럽대신 연유를 넣어 마신다. 베트남에서 재배되는 커피인 로부스타 품종이 향이 강하고 진하기 때문이다. 조금 쓴 첫 맛에 놀란 혀를 부드러운 연유의 달콤함이 달래준다. 커피를 마시면서 마음이 위로받고 있다고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호수의 도시, ‘아시아의 파리’ 하노이
열대의 나라답게 다채로운 과일가게.
이 모든 것을 만나려면 하노이로 가야한다. 베트남 북부에 위치한 이 곳은 2010년 수도가 된지 1000년째를 맞았다. 그래선지 유서 깊은 사원과 오래된 건축물이 많다. 프랑스가 19세기 인도차이나 반도를 지배했을 때도 이 곳을 수도로 삼았다. 거리마다 한 채 정도는 프랑스풍 건물을 마주할 수 있는 이유다. 혁명박물관, 오페라하우스, 성 요셉 대성당 등 걸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당시 건축물도 여럿 있다. 거닐다 보면 유럽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성 요셉 성당 앞 대로변 카페에 앉아 친구에게 엽서를 썼다. ‘아시아의 파리 하노이에서’ 라고 시작했다. 그래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았다.
‘여긴 센 강이 없잖아’라고 아쉬워할 것도 없다. 하노이는 호수의 도시다. 도시를 둘러싼 홍강(紅江)이 시내에 크고 작은 아름다운 호수를 빚었다. 특히 유명한 곳은 도시의 동쪽에 위치한 호안끼엠(還劍) 호수다. 15세기 레러이 왕이 호수의 신성한 거북이에게 받은 검으로 명나라 침략을 격퇴했다는 전설로 유명하다. 20분이면 족히 한 바퀴를 돌만한 크기다. 신성한 거북이는 이제 없지만 평범한 베트남 사람들을 관찰하긴 좋은 곳이다.
물 속에 뿌리를 내린 열대 나무들이 만든 그늘 한 편에 자리를 잡았다. 하노이 사람들은 한가롭게 오후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는 사람, 배드민턴을 치는 젊은이들, 한가롭게 산책하는 노부부, 그 옆을 빠르게 지나가는 어린아이들. 호수 북쪽에 위치한 붉은색 목조 다리 너머에는 전설의 거북이를 모신 ‘응옥선’ 사당이 있다. 굳이 가지 않았다. 여행지에서도 휴식이 필요할 때가 있다. 바라만 봐도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었다.
닌빈 동굴투어에서 만날 수 있는 보트행상.
호안끼엠 호수 근처엔 볼거리도 많다. 호수 북쪽에는 11세기 리 왕조 때 조성된 구시가지가 있다. 36거리라고도 불리는 시장 골목이다. 실크, 전등, 장난감, 불교용품 같은 다양한 베트남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다. 맥주 거리를 비롯해 먹거리 골목도 있다. 허기를 때운 뒤 근처 카페에서 달고 쌉쌀한 베트남 커피를 마셨다. 자전거를 개조해 만든 인력거 ‘시클로’가 지나간다.
조숙한 고백의 기억, ‘강의 하롱베이’ 땀꼭
2003년 여름이었다. 친한 여자아이가 베트남에 다녀왔다며 하롱베이 사진이 담긴 엽서를 건넸다. 선물로 엽서를 받는 건 별로 반갑지 않은 일이라 “고마워”라고 말하곤 가방에 넣었다. 한달 쯤 뒤 가방을 정리하다 구깃해진 엽서를 발견했다. 뒷면에 몇 문장이 적혀있었다. ‘하롱베이는 아름다워. 감동이 전해질 진 모르겠지만 사진이 담긴 엽서에 맘을 전해. 훗날 이 곳을 바라보며 함께 인생을 허비하고 싶어.’
당시엔 이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허비’라는 말은 부정적으로 쓰인다. 대학교 2학년이었던 우리는 이미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인생을 함께 허비하고 있었다. 굳이 늦은 답장을 할 필요는 없다고 느꼈다. 몇 년이 지난 뒤 다른 아이에게 그 아이 안부를 물었다. 외국으로 유학을 갔다고 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걔가 너 좋아했었는데 왜 받아주지 않았어? 엽서로 고백했었다는데.”
땀꼭으로 가다가 문득 생각났다. 가이드가 “강의 하롱베이라고 불린다”고 말했기 때문일 것이다. 석회암이 침식된 카르스트 지형이 하롱베이와 흡사하다는 게 이유라고 했다. 차를 타고 2시간 정도 걸려 땀꼭에 도착했다. 땀꼭은 ‘세개의 동굴’이라는 뜻이다.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응오동 강의 지류를 따라 ‘항카’ ‘항하이’ ‘항바’라는 석회암 동굴 3곳을 구경할 수 있다. 뱃사공을 따라 ‘삼판’이라는 이름의 나룻배에 올랐다.
땀꼭은 아름다웠다. 잔잔한 강을 따라가니 녹음이 우거진 돌산이 보였다. 산은 나를 껴안듯 감싸다 다음 산에 건넸다. 멀리 여러 겹의 돌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안개가 일어 잘 보이지 않았다. 신비로웠다. 가까워질수록 신비로움은 사라진다. 하지만 땀꼭이 가장 신비로운 순간은 그 때다. 물 위에 뜬 채 거대한 바위들 사이에 잠시 갇혀 있었다. 아름다운 구속이 끝날 때쯤 강이 산을 뚫어 만든 동굴이 나타났다. 앞서 가는 배가 동굴 안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보였다. 손에 닿는 종유석의 감촉은 차가웠다.
배를 탄지 40분 정도가 지나자 세 번째 동굴에 도착했다. 이곳을 반환점 삼아 왔던 길을 돌아간다. 배 위에서 음료수와 열대 과일을 파는 베트남 여성이 보였다. 강매하듯 건네 음료수를 샀다. 이내 그 여성에게 감사하게 됐다. 긴장을 조금 풀고 사진기를 내려놓았다. 비스듬히 앉아 흘러가는 대로 보이는 땀꼭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 뒤 40분은 고요했다. 귀에는 물소리, 노를 젓는 소리만 들렸다. 바람이 불 땐 눈을 감았다. 돌산은 내게 왔다가 멀어져갔다. 풍경은 세상의 모든 좋은 일들만 생각나게 했다. 옛 일이 다시 떠올랐다. 서울에서는 기억나지 않았을, 10여년 전의 조금 조숙하고 난해한 고백. 그녀가 한 말의 의미를 이제 알 것도 같다. ‘누군가와 다시 이 순간을 나누고 싶다’는 기분이 들게 한 땀꼭, 강의 하롱베이. 나루터로 돌아오는 삼판 위에서 나는 인생을 ‘허비’하고 있었다.
<기사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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