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0일 일요일

도서관도 맞춤형…“이곳에 가면 뭐든지 OK”



입구에서 만나는 비행 안내판, 여행객들의 시선과 발길을 붙잡는 이곳은 공항이 아닌 도서관입니다. 수동식 안내판의 철자가 부딪치며 내는 경쾌한 소리가 정겹게 느껴집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트렌디'하다는 서울 청담동에 있는 이색적인 여행 전문 도서관 이야기입니다. 지난해 5월 문을 열었습니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요즘 휴일이면 사람들이 줄을 서서 이용해야 할 만큼 인기 도서관이 됐습니다.

12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구의 일기장으로 불리는 여행 잡지죠. 이곳엔 <내셔널 지오그래픽> 전 권은 물론 세계 최초 여행 저널인 <이마고 문디> 전 권도 만날 수 있습니다.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여행 관련 도서는 모두 15,000권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주요 여행지 90여 개 국가의 지도와 전철 노선도, 전 세계 풍경을 파노라마로 볼 수 있는 구글 위성 지도 시스템도 갖췄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도서관에서는 단순히 책만 보는 게 아니라 여행 컨시어지(상담가)가 항공편과 숙소, 일정 등 여행 전반에 대해 1대 1로 상담해주고, 비치된 스마트 기기를 활용해 여행 계획까지 꼼꼼하게 짤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인지 도서관은 여행을 앞두고 찾아온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꿈이 여행작가라며 시중에서는 볼 수 없는 전문서적이 많아 종종 찾는다는 이용객도 있었습니다.

이제 막 첫걸음을 뗀 테마도서관도 있습니다. 최근 서울 명동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관한 영화 전문 도서관입니다. 영화관 상영관 하나를 고쳐 도서관으로 만들었습니다. 도서관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실내장식이 멋스럽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자료들이 많습니다. 실제 영화 촬영 현장에서 사용된 시나리오와 스토리보드를 포함해 영화 관련 책 15,000권을 벽면에 비치했습니다. 좌석이 있던 자리에는 소파와 개인 탁자를 놓아 영화를 좋아하는 일반인은 물론 영화 전공자들에게도 영감을 주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스크린은 그대로 두고 영화 관련 명사를 초청해 강연도 열고 있습니다.

◆ 디지털 시대 사회의 요구

'테마 도서관'은 이제 하나의 트렌드가 됐습니다. 한 IT업체가 만든 '디자인·IT 도서관',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의 '만화 도서관', '광고 도서관', '역사 도서관', 판타지 책만 모은 'SF 도서관' 등 분야도 다양합니다. 국내 한 금융회사는 아예 지난 2013년 디자인 도서관을 개관한 이후 1년에 하나씩 여행·음악·요리 등과 관련한 전문 도서관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디지털 시대에 웬 아날로그 도서관이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시간과 비용을 마다하고 멀리서 찾아오는 이용객도 있을 만큼 테마 도서관은 인기입니다.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시대의 변화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합니다.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의 발전으로 인해 꼭 도서관이 아니더라도 일반인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는 차고 넘치는 시대가 됐습니다. 도서관을 더는 과거와 같은 고전적인 공간으로 해석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회가 다층화되고 사회 구성원의 관심사 역시 다양해지면서 특정 주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요구가 이런 테마 도서관으로 나타난다는 해석입니다. 이 때문에 책을 열람하고 빌리던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영감을 주는 곳, 주제를 가지고 소통하는 특별한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는 겁니다. 앎을 위한 공간인 동시에 방문 자체가 하나의 이벤트가 되는 것이죠.

◆ 민간에서 주도…일석이조 효과

우리나라의 테마 도서관은 대부분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 기업이 주도해 만들고 있습니다. 공공 도서관의 경우, 특정 분야의 독자가 아닌 다양한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하므로 여러 분야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수준의 책을 갖출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한 분야의 지나치게 전문적이거나 깊이 있는 책들은 상대적으로 소장이 쉽지 않은 편입니다. 이처럼 공공에서 하지 못하는 역할을 민간이 주도한다는 점은 사회 전체적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받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일반인에게 민간 기업이 진출하고 있는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하면서 기업 이미지도 굳힐 수 있고, 한편으로는 사회에 환원도 할 수 있는 그야말로 일거양득의 마케팅 방법입니다. 실제로 한 금융기업의 도서관 시리즈는 해당 업체 카드가 있어야 입장할 수 있고, 영화도서관 역시 영화관 멤버십 카드 소지자만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을 이용하기 위해 카드를 만들었다는 이용객도 있을 정도니 윈윈(win-win) 전략이 어느 정도 먹힌 셈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젊은 세대는 종이책을 안 읽는다'는 인식이 사회적 통념이 돼버렸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바라본 풍경은 사뭇 달랐습니다. 이용자는 주로 '책 안 읽는다'는 얘기를 듣는 젊은 층이고, 취재진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책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작지만 깊이 있는 도서관', 어쩌면 사람들은 도서관의 변신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기사 출처 : KBS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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