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서 사업을 하는 A씨(57·여)는 지난달 감금·상해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동생의 항소심 변호사로 B씨를 낙점했다. 대형 로펌을 포함해 10여 군데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 상담한 결과였다. A씨는 “B변호사가 믿음직스럽기도 했지만 성공보수 위주의 이면약정을 해주겠다고 해 마음이 기울었다”고 말했다. 이런 결정에는 1심 판결의 영향이 컸다. 1심에서 A씨는 검찰 출신 변호사를 선임했다. 착수금과 성공보수를 합한 금액의 70% 선에서 포괄수임약정을 했다. 해당 변호사는 “집행유예를 자신한다”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1년6월의 실형 선고였다. A씨는 “변호사가 최선을 다하는지, 어떤지 알 길이 없어 답답했다”며 “대형 로펌 중에 이면약정을 제안한 곳도 있었으나 성공보수로 억대를 요구해 포기했다”고 말했다.
지난 7월 23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그간 법조계의 관행으로 굳어졌던 형사사건 성공보수약정에 대해 “선량한 풍속 또는 건전한 사회질서에 반해 무효”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적잖은 국민이 유전무죄·무전유죄 현상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회 풍토에서 형사 성공보수는 형사사법의 공정성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증폭시켜 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들은 “판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들에게 크게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로부터 3개월여가 지난 현재 대형 로펌, 중소형 로펌, 개인 변호사 간에 온도 차가 나타나고 있다. 전관들이 대거 포진한 대형 로펌들은 대부분 형사 성공보수 폐지로 인해 “매출에 별 영향이 없다”(본지 10대 로펌 설문조사 결과)는 입장이다. 반면 중소 로펌이나 개인 변호사들은 “수임이 뚝 끊겼다”고 토로한다.
특히 이면계약 등의 형태로 사실상의 성공보수 약정이 이뤄지는 등 꼼수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 ‘형사 성공보수 금지 판결에 대한 법경제학적 분석’이라는 논문을 쓴 한양대 경영학부 이창민 교수는 “의뢰인과 변호사는 최고경영자(CEO)-주주 사이와 유사한 주인-대리인 관계”라며 “문제는 전문 지식이 부족한 의뢰인이 전문가인 변호사가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하는지 감시·감독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점”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변호사들의 업무 수행을 유도하는 역할을 해 온 성공보수가 사라지면서 오히려 경험이 많은 전관들에게 사건이 쏠릴 수도 있다”며 “계약상 충실 의무나 변호사 윤리만 강조해도 변호사가 성실하게 업무에 임하리라고 보는 건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로펌들은 형사 성공보수 폐지에 대한 대책으로 ‘타임차지(시간제 보수약정)’를 시행하고 있지만 법률 소비자들의 의구심은 여전하다. 자신을 해임한 사립학교를 상대로 ‘나홀로 소송’을 벌이고 있는 C교수는 “중견 로펌에서 타임차지로 매달 수백만원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변호사가 하루에 몇 시간이나 내 사건에 쓰는지 검증할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김한규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수임료 약정을 소송 진행 단계별로 세분화해 투명성을 높이려는 변호사업계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성공보수를 예외적으로 허용하거나 변호사 수임료 하한을 정하는 등 정책 대안도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사 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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