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9일 화요일

오일머니 ‘흔들’ 세계 경제 ‘미끌’… 끝없는 국제유가 하락 후폭풍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균형재정을 유지하기 위해선 국제유가가 106달러를 유지해야 한다. 50달러대 유가로는 대규모 적자로 인해 사우디 재정이 5년 안에 무너질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0월 지역경제보고서에서 유가 하락에 따른 사우디, 오만, 바레인 등 중동 산유국의 현금 고갈 사태를 경고했다. 수년간 고유가 행진으로 오일머니를 축적한 중동국가들은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고, ‘아랍의 봄’ 이후 민심을 달래기 위해 복지를 확충하면서 재정지출을 크게 늘렸다. 하지만 유가 급락으로 더 이상 재정지출을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신흥국을 중심으로 투자금을 회수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사우디는 내년 긴축에 돌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상황은 1980년대 중반 저유가 시대를 떠오르게 한다. 당시에도 30달러 선이던 유가가 한 자릿수로 떨어지는 저유가가 이어졌다. 당시 저유가는 ‘3저 호황(저유가·저달러·저금리)’ 요소 중 하나로 한국 산업 성장을 불러왔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배럴당 100달러대를 고수했던 유가는 바닥 모르고 떨어져 현재 배럴당 30달러 선으로 내려왔다. 곧 이마저 무너져 20달러대로 내려앉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제는 저유가가 호황의 요소가 아니라 위협이 되고 있다.

성장기였던 80년대와 달리 글로벌 경제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경기가 살아나는 신호를 보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과거에 비해 미약하다. 한국의 주요 수출국인 중국도 신통치 않다. 유럽 역시 불황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수요가 없는 상태에서 그나마 건설시장에서 큰손 역할을 하던 산유국들마저 저유가 때문에 손을 떼고 있다. 이렇게 원유값이 낮은 기간이 길어질수록 조선·해운·석유화학 산업도 타격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하이투자증권 강재연 연구원은 “산유국들이 저유가로 재정이 고갈되고 긴축에 착수하면서 글로벌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라며 “복지 확대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투자했던 사업까지 줄이면 한국, 일본, 중국 등의 건설사업 수주 위축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중동 국부펀드들의 자금회수 역시 불안요소다. 곳간이 바닥나게 생긴 중동 국부펀드들이 자금회수에 나서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흔들릴 위험에 처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시장조사업체 이베스트먼트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올해 3분기에만 중동 국부펀드들이 자산운용사에서 거둬들인 자금이 최소 190억 달러(약 22조1000억원)에 이른다. 6720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세계 4위 국부펀드 사우디통화청(SAMA)은 올해 약 700억 달러의 투자금을 회수했다. 한국에서도 9∼11월 사우디 투자자금이 3조원 넘게 빠져나갔다.

직접적인 자금 회수만이 아니라 다른 신흥국을 경유해 오는 간접 영향도 한국경제에 그늘을 드리울 수 있다. 고유가 시기 높은 금리를 좇아 신흥국 투자를 늘렸던 산유국들은 원자재 가격 하락 등으로 인해 흔들리는 신흥국에서 발을 빼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은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신흥국 경제 불안이 커지면 한국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한국이 신흥국에 수출하는 규모가 예전보다 커졌고, 자본거래 역시 활발해지는 등 상호 연계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때 200달러를 호가했던 고유가 시대가 다시 오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근본적으로 유가 하락세를 멈추기 위해 공급 과잉을 막아야 하지만 쉽지 않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지난 4일 내년도 감산을 논의했으나 합의에 실패했다. 원유 매장량 4위 국가인 이란까지 공급에 가세할 예정이다. 핵 개발 의혹으로 경제 제재 조치를 받고 있는 이란은 제재가 풀리자마자 원유 수출에 나서겠다고 벌써부터 공표하고 있다.

미국도 변수다. 미국은 40년 만에 원유수출 규제를 폐지했다. 당장엔 영향이 미미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공급 확대가 유가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 강세도 악재다. 일반적으로 달러가 강해지면 원유 가격은 약세를 보여 왔다. 내년에도 미국 금리 인상이 예정돼 있어 달러 강세에 따른 유가 하락이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기사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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