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단이 질누공 수술을 받은 이후 아들과 함께 미소를 짓고 있다. / 월드비전 제공 |
여성 할례, 가장 잔혹한 여성 통제
소말리아, 수단, 케냐 등에서는 부모들이 가난 때문에 딸들을 일찍 결혼시키는 일이 많다. 조혼을 위해서는 일종의 성인식인여성 할례를 강요하게 된다.
소말리아의 북부 토그데르주에 사는 17세 여성 호단은 3세 아이가 있는 엄마다. 13살에 결혼해 이듬해 아이를 낳은 호단은 출산 이후 한동안 여성으로서 견딜 수 없는 수치심을 안고 살 수밖에 없었다. 출산 당시 호단은 산통이 비정상적으로 길었다. 30시간이 넘게 걸린 끝에 호단은 아들을 낳을 수 있었다.
출산 이후 호단의 몸에서는 악취가 떠나지 않았다. 출산의 후유증으로 질에서 소변이 새는 증상(질누공)을 겪게 됐기 때문이다. 흐르는 소변으로 인한 악취 때문에 호단의 남편은 그의 곁을 떠났다. 아들과 함께 잠을 자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호단은 소변이 새지 않게 하려고 하루 종일 물도 마시지 않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호단은 소말리아 여성 할례 철폐 활동가들에게 과거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며 “하루하루가 우울하고, 외롭고, 불행했다”고 말했다.
소말리아 여성들 중 호단처럼 질누공에 시달리는 사람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이들이 질누공에 시달리는 원인은 다름 아닌 ‘여성 할례’다. 할례는 성기의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로, 보통은 음핵이나 그 표피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소말리아에서 주로 행해지는 할례 방식은 일명 ‘파라오 할례’라 불린다. 여러 가지 할례 방법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방식이다. 파라오 할례는 할례를 마친 뒤 소변을 볼 수 있는 부분을 제외하고 생식기를 봉합하고, 출산 시에만 이를 열어준다. 이렇게 할례를 받은 여성의 상당수는 평생을 심각한 생리통에 시달리고, 출산 시에는 호단처럼 할례 수술을 받은 부위가 찢어져 질누공으로 고생하기도 한다. 할례를 당하는 순간에도 제대로 마취가 이뤄져 있지 않거나 비위생적인 도구로 수술을 하는 문제점이 있다.
어린 시절 영문도 모른 채 강요 받아
여성 할례를 실시하는 국가들은 ‘위생을 위한 전통’이라며 여성 할례를 옹호한다. 수단에서는 여성 할례를 ‘정화’라는 의미의 ‘타후르’라 부르며, 나이지리아에서는 ‘목욕하다’라는 의미의 ‘이사루’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소말리아에서는 ‘매듭짓다’라는 의미의 ‘코도브’란 용어가 쓰인다. 일각에서는 고대 이집트 파라오 때부터 여성 할례가 있었다고 주장하나 명확한 역사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여성 할례가 시작됐는지, 여성 할례가 실제로 여성의 신체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소말리아 월드비전 여성보건지원사업 책임자인 캐서리나 위코스키는 “이런 관습이 나쁘다는 것은 알지만 부모들이, 그리고 부모의 부모들이 해오던 일이기 때문에 끊어버리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위코스키는 지난 2년 반 동안 여성 할례 비율이 높은 소말리아와 케냐 등지를 오가며 여성 할례 철폐운동을 벌여 왔다. 위코스키는 지난 2년간 한국 월드비전의 도움을 받아 41명의 소말리아 여성이 무료로 질누공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위코스키는 소말리아에서 여성 할례가 일반화된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현지인 여성 활동가 A씨의 사례를 들었다. A씨는 소말리아에서 고등교육까지 마쳤고 현재는 위코스키와 함께 여성 할례 철폐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런 A씨도 어린 시절 영문도 모른 채 할례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A씨는 이따금씩 아침에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고통을 받고 있다.
A씨는 다섯 자매 중 장녀다. 나이가 들면서 A씨는 자신의 막내 동생만큼은 여성 할례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리라고 마음먹었다. 끈질기게 부모를 설득한 끝에 A씨의 부모는 자신의 막내딸에게 할례를 시키지 않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주변 마을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지 못한 A씨의 부모는 결국 마음을 바꿨고, A씨의 막내동생도 할례를 당하게 됐다. A씨는 위코스키에게 “단 한 번의 경험으로 지금까지 고통을 겪고 있으며, 월경 중에는 더 심하다”고 털어놨다고 한다.
여성 할례가 만연화된 나라들은 대표적인 빈국으로 꼽히는 곳들이다. 소말리아, 수단, 케냐 등에서는 부모들이 가난 때문에 딸들을 일찍 결혼시키는 일이 많다. 조혼을 위해서는 일종의 성인식인 여성 할례를 강요하게 되고, 때문에 많은 어린 여성들이 초등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들이 다시 자신의 딸들에게 할례를 강요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여성 할례 철폐 활동가들은 질누공 수술 지원 등 사후적인 방법만으로는 여성 할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케냐 수도 나이로비 남서부의 나록 지방은 여성 할례 비율이 70%에 달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여성 할례 철폐 활동가들은 교육을 통해 여성 할례의 문제점을 알리는 한편, 여성들 스스로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나록에는 월드비전이 세운 니트마마 리지 초등학교(케냐의 초등학교는 8년제)가 있다. 5년 전만 해도 여성 할례 때문에 많은 여학생들이 5~6학년이 되면 자퇴하는 경우가 많았다. 8학년까지 마치고 졸업하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활동가들의 꾸준한 캠페인의 결과 현재는 오히려 여학생들이 더 많이 다니는 여성 교육의 현장으로 자리잡았다. 니트마마의 여학생 투시암페이(15)는 “더 많은 부모들이 용기를 내어 여성 할례에 반대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다른 여자아이들도 꿈을 가지고 자랄 수 있을 테니까요”라고 말했다.
윤리적 차원에서 분명 없어져야 할 풍습
장용규 한국외대 아프리카학부 교수는 소말리아처럼 여성 할례가 보편화된 곳은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이 여성을 통제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 잔혹한 방법은 여성의 고유 능력인 출산 능력을 통제하는 것”이라며 “남성 입장에서는 (출산 능력을 가진) 여성의 성기를 통제함으로써 ‘고결한 전통’이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소말리아는 ‘여자는 악마가 놓은 덫’이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남성중심적인 사회로 알려져 있다. 여성 할례를 받는 비율 역시 95%를 넘어 다른 국가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장 교수는 여성 할례에 대해 “윤리적 차원에서 분명 없어져야 할 풍습”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장 교수는 여성 할례라는 특정한 관습 철폐를 넘어서 남성중심적인 사회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뤄져야 한다며 “남성들이 지배하는 사회구조가 그대로 있는 한 여성 할례가 금지된다 하더라도 또 다른 차별적 풍습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장 교수는 여성 할례가 마치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고유한 전통인 것처럼 인식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봤다. 실제로 소말리아, 이집트, 수단, 지부티 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여성 할례가 금지돼 있다. 반대로 아프리카 대륙 밖에서도 여성 할례가 실시되는 곳이 있다. 장 교수는 “‘아프리카의 여성 할례’라는 말은 마치 인도의 카스트 제도가 아시아를 대표할 수 없는 것처럼 맞지 않는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캐서리나 위코스키는 여성 할례를 근절시키는 운동에 장기적인 후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후원자들은 (수자원 복구, 음식 배포 사업과 달리) 여성 할례 철폐운동의 결실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후원자들은 그들의 눈으로 결과를 보지 못하면 참지 못한다. 여성 할례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뿐 아니라 장기적 관점으로 도움의 손길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사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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