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가 아이패드용 MS 오피스를 27일(현지시각) 깜짝 출시했다. 아이패드만이 전부는 아니다. 빠른 시일내로 안드로이드 태블릿PC용 MS 오피스를 공개하겠다고 함께 밝혔다. 윈도8, 윈도RT 등 윈도 운영체제를 설치한 태블릿PC에만 MS 오피스를 제공했던 점을 감안하면 꽤 의미 깊은 일이다. 왜 MS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오피스를 경쟁자의 플랫폼에도 제공한다는 결정을 한걸까.
PC 문서시장에서 MS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MS 오피스가 없으면 업무를 처리할 수 없을 지경이니. 오픈오피스, 리브레오피스 등 오픈 도큐먼트(열린문서) 진영과 한컴오피스 등 특정 문자에 특화된 로컬 문서작성 프로그램이 MS의 아성에 도전했지만 눈 하나 까딱 하지 않았다. 그런데 모바일 시대가 열리면서 사정이 변했다. 구글독스(Google Docs), 에버노트(Evernote) 등 클라우드를 품은 문서도구가 공유와 협업을 앞세우며 치고 들어왔다. 거기에 애플, 구글 등 플랫폼 사업자가 자사의 문서작성 애플리케이션(앱)을 무료로 풀기 시작하자 느긋했던 MS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MS에겐 안좋은 기억이 있다. 느긋하게 대응하다가 구글과 애플에게 밀려 모바일 운영체제 시장의 조연으로 밀려난 기억이다. 모바일 문서시장마저 그렇게 밀려날 수는 없다. 때문에 모든 플랫폼에 MS 오피스를 제공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먼저 구글독스와 에버노트를 견제하기 위해 워드, 파워포인트, 엑셀 웹앱(웹 브라우저에서 실행되는 앱)과 원노트 앱을 무료로 공개했다. 이어 아이패드용 MS 오피스를 공개했다. 사용자들이 애플 아이워크와 구글 ㅤㅋㅝㄱ오피스로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아이패드용 MS 오피스의 완성도는 어느정도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존 모바일 문서작성 앱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 기대 이상으로 잘나왔다. 엑셀은 '모바일에 이러한 기능까지 구현하다니...'라고 놀랄 정도고, 파워포인트도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센스있는 기능을 한가득 품고 있다. 원노트는 7 ~ 27GB까지 제공하는 클라우드 저장공간이 인상적이다. 메모에 텍스트뿐만 아니라 그림, 동영상까지 추가해도 용량 부족에 시달리지 않는다. 아이패드용 MS 오피스를 하나하나 뜯어보자.
MS 오피스 2013과 동일한 UI
아이패드용 MS 오피스는 PC용 MS 오피스 2013과 매우 유사하다. UI(사용자 환경)가 같아 MS 오피스 2013을 한번이라도 사용해본 사용자라면 쉽게 적응할 수 있다.
다른 모바일 오피스 앱은 화면 크기가 작고 터치스크린으로 조작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해 큼지막한 아이콘 위주의 UI를 채택하고 있다. UI 및 기능이 전혀 달라 작성/편집할 수 있는 문서 형식이 동일하다는 점만 제외하면, PC용 문서작성 앱과 전혀 다른 앱으로 봐도 무방할 지경이다.
반면 아이패드용 MS 오피스는 리본UI(PC용 MS 오피스의 UI)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때문에 텍스트 위주의 메뉴 구성을 보여준다. 대신 텍스트와 아이콘의 크기를 키웠다. 터치스크린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PC용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의 핵심 기능도 모두 수혈받았다. 워드는 '오탈자 교정'과 '검토'가, 엑셀은 '수식'과 '전용 키보드'가, 파워포인트는 '전환 애니메이션'과 '프레젠테이션 도중 메모 추가'가 핵심 기능이다.
워드, 오탈자 교정과 변경내용 추적이 눈에 띄어
아이패드용 워드의 핵심 기능은 오탈자 교정과 검토(문서 변경내용 추적)다. 특히 검토가 인상적이다. 이를 통해 원본 문서에서 무엇이 달라졌는지 추적할 수 있고, 변경 작업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 경쟁자 중에는 구글독스만이 이 기능을 품고 있다. 구글독스의 경우 반드시 인터넷에 연결해야 사용할 수 있는 웹앱이란 점을 감안하면, 인터넷에 연결하지 않아도 검토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아이패드용 워드의 메리트는 크다. (다만 특정 시점을 선택해 문서를 롤백할 수 있는 구글독스와 달리 변경전 최초 상태로만 롤백할 수 있으니 주의할 것)
오탈자 교정 기능은 PC용 워드와 동일하다. 다만 국내 사용자에겐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는데, 현재 오탈자 교정 기능은 영어만 지원한다. 한글 오탈자 교정 기능은 추후 업데이트를 통해 지원할 예정이니 참고하자.
엑셀, 모바일 스프레드 시트 종결자
아이패드용 엑셀의 핵심 기능은 함수 명령어다. 대부분의 사용자가 표를 만들 때 사용하는 프로그램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엑셀은 엄현히 통계를 내고 자료를 분석하는 스프레드 시트 프로그램이다. 때문에 함수 명령어를 빼면 시체에 불과하다. 아이패드용 엑셀은 SUM, AVERAGE 등 널리 사용되는 명령어부터 DATE, DMAX 등 유용한 명령어까지 약 200개의 명령어를 지원한다. PC용 엑셀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단순히 표를 짜는 앱에 불과한 경쟁자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이러한 기능을 보조하기 위해 엑셀은 전용 키보드를 내장했다. 숫자를 한결 편리하게 입력할 수 있고, 방향키를 추가해 원하는 행열을 빠르게 찾아갈 수 있다. 무엇보다 시그마 명령어가 전용키로 들어있는 게 마음에 든다. MS가 모바일에서 제대로된 스프레드 시트를 구현하기 위해 고민했다는 증거다. 전용 키보드는 일반 키보드 오른쪽 상단의 전환 버튼을 선택하면 불러낼 수 있다.
파워포인트, 언제 어디서나 프레젠테이션이 목표
아이패드용 파워포인트의 핵심 기능은 프레젠테이션 도중 메모 추가 기능이다. 프레젠테이션 도중 특정 부분을 강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PC용 파워포인트의 경우 레이저포인터 등을 이용해 해당 부분을 가리켜야 했다. 아이패드용 파워포인트는 그럴 필요가 없다. 프레젠테이션 도중 화면 오른쪽 상단의 펜 버튼을 누르면 강조할 부분에 줄을 긋거나, 동그라미를 그리는 등 간단한 편집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PC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보다 더욱 효율적으로 특정 부분을 강조할 수 있다. 태블릿PC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는 사용자는 대부분 제품을 손에 들고 있다는 것에서 착안한 아이디어다.
다양한 애니메이션과 효과를 추가한 PPT도 대부분 호환된다. MS 오피스 2013으로 제작한 PPTX 파일은 별다른 문제가 없고, MS 오피스 2007 이전 버전에서 제작한 PPT 파일은 호환성 문제가 종종 발생한다. 도형과 텍스트의 위치가 자주 어긋난다. 프레젠테이션에 앞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반드시 확인할 것. (워드, 엑셀은 호환성 문제가 별로 발생하지 않는데, 유독 파워포인트만 호환성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
프레젠테이션 진행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문서 제작 기능은 조금 소홀하다. 도형을 추가할 경우 등장 애니메이션을 설정할 수 없다. 다음장으로 넘어갈 때 전환 효과만 추가할 수 있다. 전환 효과는 총 47가지다. 다양한 등장 애니메이션이 파워포인트의 강점인 만큼 MS의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지금 상태로는 다양한 애니메이션과 전환 효과를 추가할 수 있는 애플 키노트 앱에 대적할 수 없다.
파워포인트 앱을 실행할 경우 화면이 가로 방향(4:3 화면비)으로 강제 고정된다. 모니터, TV, 프로젝터 등 외부로 출력할 일이 잦은 점을 감안한 결정이다.
원노트, 저장 공간으로 승부
아이패드용 원노트의 핵심은 무료와 저장공간이다.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는 유료 앱인 반면, 원노트는 무료 앱이다. 또 경쟁자 에버노트가 저장공간을 50MB~1GB의 저장공간을 제공하는 반면, 원노트는 7~27GB를 제공한다. 때문에 메모, 이미지 등을 한층 많이 보관할 수 있다.
그렇지만 좋은 평가를 할 수는 없다. 메모 앱의 필수요소인 웹 페이지 스크랩과 녹음 기능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웹 페이지 스크랩이야 앱이 운영체제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 애플의 정책 탓에 구현이 불가능했다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녹음 기능이 없는 것은 큰 문제다. 저장공간을 많이 제공하면 뭐 하나. 그곳을 채울만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없는데.
오탈자 교정 기능을 품고 있는 것은 분명 경쟁자보다 나은 점이다. 하지만 워드 앱과 마찬가지로 영문 오탈자만 교정해주고, 국문 오탈자 교정은 아직 지원하지 않는다.
평가를 종합하자면, 엑셀은 경쟁자와 비교할 수 없는 고품질 앱이고 워드도 문서작성에 도움이 되는 기능을 많이 품고 있다. 파워포인트는 프레젠테이션 기능은 훌륭하지만, 문서 작성 기능이 아쉽다. 원노트는 어딘가 나사가 빠져있다. 빠른 기능 추가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클라우드를 품다
아이패드용 MS 오피스는 문서를 2군데에 저장할 수 있다. '앱 내부'와 클라우드 저장소 '원 드라이브'다. 아이패드속에서 문서를 꺼내는 일은 상당히 번거로운 작업인 만큼(PC에 아이튠즈를 설치하고 앱 폴더에서 꺼내야 한다), 원 드라이브에 문서를 저장할 일이 잦을 것으로 생각된다. 원 드라이브에 저장한 문서는 오피스닷컴(www.office.com)에 접속하거나, 문서 다운로드 URL을 입력하면 내려받을 수 있다(문서 공유 상태를 제한에서 모두로 바꿔야 한다).
용량은 7GB(무료 가입자)에서 27GB(유료 가입자)까지 제공한다. 가족 5명이 원 드라이브에 가입할 경우 135GB까지 제공받을 수 있다(월 1만 1,900원 요금 기준).
무료 앱 아니에요
앞에서 밝혔듯이 아이패드용 MS 오피스는 무료 앱이 아니란 점을 주의해야 한다. MS의 클라우드 서비스 오피스365에 가입해야 사용할 수 있다. 오피스365는 한번에 큰 금액을 내고 특정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매달 또는 매년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최신 오피스 프로그램을 제공받는 서비스다. 온라인게임 월정액을 생각하면 쉽다. 오피스365에 가입하지 않을 경우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앱은 문서 편집이 불가능한 뷰어 앱(읽기전용)으로만 이용할 수 있다.
오피스365는 현재 월 1만 1,900원, 연 11만 9,000원에 가족요금제로 이용할 수 있고, 오는 4월 월 6.99달러(한화 미정)로 가족요금제보다 3달러 저렴해진 개인요금제를 출시할 예정이다. 가입은 오피스닷컴을 통해 할 수 있다. 아이패드용 MS 오피스 앱은 애플 앱스토어 메인화면 MS 오피스 전용 카테고리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프린트 기능은 추후 업데이트로
아이패드용 MS 오피스는 아직 완성된 상태가 아니다. 문서작성 앱으로서 필수적인 기능만 포함하고 부가 기능 몇 가지는 빠진 상태로 출시됐다. 대표적인게 프린트 기능이다. 아이패드용 MS 오피스는 프린터와 연결해 문서를 출력할 수 없다. 원 드라이브에 문서를 저장한 후 PC를 통해 뽑아야 한다.
사용자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MS는 재빨리 진화에 나섰다. 업데이트를 통해 앱에 프린트 기능을 추가하겠다고 29일 밝혔다. 프린트나 오탈자 교정에서 알 수 있듯이 앞으로 많은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MS 사티아 나델라 최고 경영자가 "모든 플랫폼에 동일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강조한 만큼 아이패드용 MS 오피스에서도 PC용 MS 오피스와 동일한 작업을 할 수 있게 빠른 업데이트를 기대해 본다.
사족: 아이패드용 MS 오피스는 자동저장 기능을 지원한다. 다만 이 기능을 활성화하려면 기존에 저장돼 있던 문서를 불러들이거나, 문서를 한번 이상 저장해야 한다. 한번도 저장하지 않은 새문서는 오피스닷컴 웹앱이나 구글독스와 달리 자동으로 저장되지 않는다. 앱이 강제 종료되는 불상사에 대비해 반드시 알아 둘 것. 기자는 이 때문에 거의 다 작성한 기사를 새로 써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