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가운데 중년, 아니 30대 중반 이상이라면 신문이나 방송에서 ‘건강 정보’가 나오면 눈을 크게, 귀를 쫑긋 세울 것이다. 운동을 꾸준히 하기는 귀찮은데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 몸을 간단하게 치유할 만병통치약 같은 정보가 혹시라도 있나 하는 호기심 때문이다. 게다가 술 한 잔 마시면 건강이 좋아지고, 술 깨라고 커피 마시면 또다시 건강이 좋아진다는 뉴스가 있다면?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음식 가운데 와인과 커피에 관한 정보는 각종 매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체로 ‘○○대 연구에 따르면…’으로 시작한다.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엄밀하게 검증한 결과니 믿으라는 얘기다. 초지일관 같은 결과가 나온다면 문제없다. 그저 믿으면 되니까! 그렇지만 매번 나오는 내용이 다르다. 한 번은 몸에 좋다고 했다가, 다음번에는 나쁘다고 한다. 대체 진실은 무엇일까.
커피, 당뇨병엔 ‘좋아’…모닝커피 ‘글쎄’
2012년 우리나라 사람 1명이 1년 동안 소비한 커피는 293잔 정도다. 관세청이 커피 수입량으로 계산해 발표한 것으로, 하루 0.8잔을 마시는 셈이다. 많은 이가 커피를 마실 때마다 카페인에 중독돼 심장병이나 고혈압에 걸리는 것은 아닐까 우려한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이런 걱정이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커피 효능과 관련한 가장 눈에 띄는 연구 결과는 40대 이후 주로 발병하며 전체 당뇨병의 80~90%를 차지하는 ‘제2형 당뇨병’ 발병 위험을 커피가 낮춰준다는 것이다. 2002년 네덜란드에서 판 담과 프레스켄 연구팀이 커피를 섭취하는 1만711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하루 커피 7잔을 마신 사람의 제2형 당뇨병 발병 가능성은 2잔 이하를 마신 이의 절반이었다. 2004년 미국 하버드대 공중보건대 연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커피가 대장암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도 지난해 발표됐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CI) 는 49만 명의 대장암 발병 자료를 분석했는데, 커피를 하루 6잔 이상 마시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대장암 발병 위험이 최대 40%나 낮았다. 2011년 발표한 경북대 식품공학부 강남주 교수팀 연구에서도 커피 속 페놀릭파이토케미컬(페놀구조를 갖는 식물유래화합물) 성분에 대장암과 피부 노화 억제 효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커피가 심장질환에는 안 좋은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커피에 혈압을 올리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연구팀이 소속 의대 남학생 1017명을 대상으로 조사,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장기간 커피를 섭취하면 혈압이 오르고 고혈압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단 커피를 하루 400ml 이상 마실 때 얘기다.
잠을 깨려고 마시는 모닝커피도 건강에 그리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국립군의관의과대 스티븐 밀러 연구원은 스트레스 관련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하루 중 오전 8~9시에 가장 많이 분비되는데, 여기에 카페인이 더해지면 체내에 각성물질이 과다하게 쌓인다고 발표했다. 즉 카페인 중독에 걸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밖에도 이미 널리 알려진 바처럼 임산부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는 연구가 압도적으로 많다.
‘내 몸에 커피 내 안의 행복’를 집필한 배재훈 계명대 의대 교수는 “설탕과 크림이 들어간 믹스커피는 몸에 안 좋다”면서 “원두를 갈아 끓인 커피보다 종이 필터를 통해 추출한 커피를 섭취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전문가는 또 “커피를 마시더라도 하루 300~400ml(3~4잔) 이내로 마시면 커피가 주는 장점은 살리고 부작용은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와인, 면역력 강화에 좋지만 머리 아파
이번엔 와인을 살펴보자. 한국인의 술상에서 이제 와인을 빼놓을 수 없을 듯하다. 특히 조금 근사한 식사자리에 와인 한 잔이 없으면 허전하기까지 하다. 와인은 심지어 몸에 대체로 나쁘다는 기사가 많이 나오는 여타 술 종류와 달리 ‘몸에 좋다’는 뉴스가 종종 나온다. 술이면 다 똑같지 와인이라고 남다른 재주가 있을까.
와인에 대한 상식 역시 커피와 마찬가지로 일부는 과학적으로 타당하지만, 일부는 그르다. 먼저 와인도 다른 술과 마찬가지로 몸에 좋지 않으리라는 편견은 틀린 것으로 나타났다. 와인 업계에는 ‘프렌치 패러독스’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인이 영국인, 미국인처럼 고기를 많이 먹지만 그들보다 심장질환을 적게 앓는 이유가 와인 때문이라는 얘기다. 와인 성분 중 폴리페놀이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할 뿐 아니라 노화를 막아준다는 연구 결과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폴리페놀뿐 아니라 안토시아닌, 레스베라트롤, 카테킨, 플라보노이드 등 각종 와인 성분이 체내 활성산소를 해독해 노화를 막는 것이다. 특히 포도껍질에 많은 레스베라트롤은 콜레스테롤을 흡착해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하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분석됐다.
하루에 와인 한 잔 정도는 면역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UC리버사이드대 연구팀이 지난해 12월 의학저널 ‘백신’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저녁식사 때 와인 한 잔을 마시면 면역계를 강화하고 백신에 대한 반응도도 높일 수 있다.
그렇다고 와인이 다 좋은 건 아니다. 주당 중 “와인은 뒤끝이 안 좋아”라고 말하는 이가 종종 있다. 와인을 마신 다음 날 아침 편두통을 경험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레드와인 속 티라민이라는 성분이 두통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레드와인을 마시면 티라민이 관자놀이와 눈 주변 혈관을 수축하기 때문에 편두통이나 눈 주변에서 맥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잘못 아는 또 다른 와인 상식은 ‘와인과 치즈가 잘 어울린다’이다. 영국 런던 웰링턴병원 연구에 따르면 치즈를 많이 먹으면 심장 부정맥 현상, 즉 혈압이 올라가는 현상이 생긴다. 와인 속 티라민 성분 역시 체내 교감신경을 흥분시켜 심장을 빨리 뛰게 한다. 건강한 사람은 별문제 없지만, 심장질환이 있거나 고령자는 심부전증, 돌연사 위험이 있다. 특히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사람이라면, 와인과 치즈 조합을 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항우울제에는 티라민 분해를 억제하는 성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술을 잘 못 마시지만 와인이 가진 장점을 취하고 싶은 사람은 포도를 그대로 먹으라고 전문가들은 권한다. 포도 속 항산화물질이 유사한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신체가 건강하다면 와인을 마셔도 문제없지만, 질환을 앓고 있다면 굳이 와인을 마실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기사 출처 : 주간동아>
<기사 출처 : 주간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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