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 로스쿨의 텅 빈 강의실. 송기춘 교수 페이스북 갈무리.
송기춘 전북대 로스쿨 교수 페이스북에 학생 응원글 남겨
“사법의 견고한 카르텔 깨나갈 다짐하는 수업거부 되기를”
“사법의 견고한 카르텔 깨나갈 다짐하는 수업거부 되기를”
법무부가 사법시험 폐지 유예안을 발표하면서 전국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학생들이 학사 일정을 전면 거부하고 나선 가운데 한 로스쿨 교수가 학생들을 응원하는 뜻을 담은 ‘종강사’를 써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를 낳고 있다.
송기춘(54) 전북대 로스쿨 교수는 9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바로 가기)에 “오늘도 학생들은 오지 않는다”라고 시작하는 글을 올렸다. 전북대 로스쿨 재학생 300여명은 최근 법무부가 ‘사법시험 폐지 2021년으로 유예한다’고 발표한 방안에 반발해 집단 자퇴서를 내고 전국 로스쿨 학생들과 함께 학사 일정을 거부하고 있다.
송 교수는 학생들이 없어 텅 빈 강의실 사진을 올린 뒤 이번 논란에 대해 “단지 제도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더 근본에는 로스쿨과 로스쿨생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과 조롱, 교묘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해보려는 법조인들의 의도가 있을 것”이라며 “그것은 한국 사회의 지배구조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런 의미에서 로스쿨은 기존의 구조에 균열을 일으키는 사건이기도 하고, 이번 사태는 로스쿨의 도입 이후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 교수는 또 사법시험 출신 변호사와 로스쿨 출신 변호사를 단순 비교해 로스쿨 출신 변호사의 능력을 평가 절하하는 데 대해서도 “변호사의 개념이 다르고 변호사에 대한 평가는 개인적 역량에 달려 있는 것”이라며 “연수원 출신 변호사가 자동차 회사에서 만든 차라고 한다면 로스쿨의 변호사는 철로 된 제품을 만드는 여러 회사에 자료로 사용할 핫코일과 같은 재료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로스쿨을 마치고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가 배우면서 성장할 게 예정되어 있는데 변호사 사무실은 그것까지 로스쿨에서 왜 안 해주느냐고 한다”며 “금수저니 돈스쿨이니 하는 이런 비이성적인 매도를 법률가들이 하는 건 자기 얼굴에 침 뱉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송 교수는 “학생들이 이 기회를 통해 한국사회를 좀 더 넓고 깊게 보고, 어마어마하게 보이지만 결국은 깨질 수 있는 지배 체제도 목도하고 싸울 용기를 내어보길 기대한다”며 “정말 따뜻한 인간미를 가지고 성실함을 갖춘 변호사가 로스쿨 제도를 통해서 ‘엄청나게 많이 배출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바란다. 사법의 견고한 카르텔을 깨나갈 다짐을 하는 ‘수업거부’ 기간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하 송 교수의 글 전문
오늘도 학생들은 오지 않는다.
언제나 환한 강의실에 들어왔다가 내 손으로 등불을 켜고 보니 이 방을 참 많은 등불이 비추고 있었구나 싶다. 천정에 환하게 빛나는 저 등처럼 하나 하나 보석같이 빛나는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는 결정을 할 때의 심정을 헤아려 본다.
단지 제도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더 근본에는 로스쿨과 로스쿨생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과 조롱, 교묘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해 보려는 법조인들의 의도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한국사회의 지배구조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로스쿨은 기존의 구조에 균열을 일으키는 사건이기도 하고 이번 사태는 로스쿨의 도입 이후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로스쿨 제도가 단점도 있고 부정적인 면도 어찌 없을까만 기존의 체제가 가진 문제에 상당한 도전이 되고 있음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사시-연수원을 거친 변호사와 로스쿨 졸업 후 바로 변호사가 된 경우를 단순히 비교해서 로스쿨 출신 변호사를 싸잡아 평가하고 로스쿨 자체를 매도해서도 안 된다. 변호사의 개념이 다르고 변호사에 대한 평가는 개인적 역량에 달려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 연수원출신 변호사가 대개 자동차 회사에서 만든 차(이 정도가 되는지 모르겠으나)라고 한다면 로스쿨의 변호사는 철로 된 제품을 만드는 여러 회사에 자료로 사용할 핫코일과 같은 재료를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걸 자동차 회사에서는 차체를 만들고 다른 회사에서는 또 다른 용도에 맞춰 가공하여 사용하게 되는 것과 같다. 제품이 만들어지는 시스템이 바뀐 것이다.
로스쿨을 마치고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가 배우면서 성장할 게 예정되어 있는데 변호사 사무실은 그것까지 로스쿨에서 왜 안 해주느냐고 한다. 로스쿨은 충실한 재료를 만드는 과정인데 완제품을 요구한다. 그러니까 3년이 짧다 한다. 3년 동안 무엇을 충실하게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지를 알면 3년이 짧지도 않다. 짧다고 하는 기간 동안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인턴하면서 배워야 할 것을 과목으로 학점까지 줘 가며 가르쳐야 할 것도 아니다.
금수저니 돈스쿨이니 하는 이런 비이성적인 매도를 법률가들이 하는 건 자기 얼굴에 침뱉는 일이다. 사시가 매도당할 일도 아니겠지만 로스쿨도 그렇게 하찮게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제발 각 법률가의 역량에 따라 공정하게 평가하길 바란다. 실력 없는 로스쿨 변호사가 혹평을 받을 수 있지만 그게 모든 로스쿨 변호사의 문제가 아닌 것은 논리의 기본 아닌가. 연수원 출신 변호사가 실력이 있다고 해서 연수원 출신 변호사가 모두 실력이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수업에 들어오지 않고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을 학생들이 이 기회를 통해 한국사회를 좀 더 넓고 깊게 보고 어마어마하게 보이지만 결국은 깨질 수 있는 지배체제도 목도하고 싸울 용기를 내어보길 기대한다. 어쩌면 강의실에서보다 더 많은 걸 공부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더 독기를 품고 공부하기 바란다. 실력 없는 로스쿨 변호사는 없다는 걸 보란 듯이 보여주기 바란다. 변시 정도는 가볍게 뛰어넘고 3년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공부를 하기 바란다. 정말 따뜻한 인간미를 가지고 성실함을 갖춘 변호사가 로스쿨 제도를 통해서 ‘엄청나게 많이 배출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바란다. 사법의 견고한 카르텔을 깨나갈 다짐을 하는 ‘수업거부’기간이 되길 바란다. 어쨌거나 한국사회에서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며 살 수 있는 학생들이 억울하고 분노하는 경험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억울한 사람들과 아픈 사람들과도 공감할 수 있길 바란다.
학생들이 오지 않아도 오늘 이번 학기 수업은 마친다. 예고했던 대로 학기 마치고 성탄절 기념 보강을 하길 바란다. 이번 학기 종강사다.
<기사 출처 : 한겨레>
<기사 출처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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