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월급의사 고백으로 본 잇단 사고
쌍꺼풀 수술은 30분… 앞·뒤트임은 1시간… 코는 2시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갓 치른 여고생(19)이 지난해 12월 9일 서울 강남의 한 대형 성형외과에서 눈과 코 수술을 받다가 뇌사상태에 빠진 데 이어 이달 6일에는 30대 여성이 강남 지역 성형외과에서 복부 지방흡입과 코 수술을 받다가 사망하는 등 의료사고가 잇따르면서 강남 일대에 ‘성형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 대형 성형외과에서 막 전문의가 된 ‘페이 닥터(월급 의사)’를 여럿 고용해 ‘공장식 성형수술’을 양산하고 비전문의들까지 성형 시장에 다수 몰린 부작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하루 15명씩 수술하는 대형 성형외과 월급 의사
“저는 ‘성형공장 직원’이었어요.”
서울 강남의 한 대형 성형외과에서 월급 의사로 2년 동안 일했던 A 씨는 12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속내를 털어놓았다. A 씨는 2012년 초 전문의 자격을 딴 직후 경험을 쌓기 위해 강남에서 손꼽히는 대형 병원에 입사했지만 ‘공장식 찍어내기 수술’에 지쳐 그만뒀다고 고백했다.
A 씨는 3개월 동안 관찰 교육을 받고 수술 집도를 시작했다. 오전 10시에 출근해 다음 날 새벽까지 수술하는 날이 부지기수였고 성형 수요가 많은 겨울철에는 하루 15명까지 수술했다. 월급 의사는 수술 건수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는 데다 병원 측도 월급을 주는 의사를 놀리기 아까워해 최대한 빡빡하게 수술 일정을 잡는다고 한다. A 씨가 일했던 병원은 쌍꺼풀 30분, 앞·뒤트임 1시간, 코 2시간 등 부위별로 시간을 정한 뒤 수술실에 타이머를 설치해 빠른 수술을 독촉하기도 했다. 의사별 수술 시간은 병원장에게 보고돼 예정보다 길어지면 꾸중을 듣는다고 한다. A 씨는 “한번은 수술이 길어지자 수술팀장이 ‘장인정신 같은 건 개업해서 발휘하시고 빨리 끝내기나 하라’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월급 의사들은 실적만을 따지는 병원 측의 강요에 의사로서의 신념을 꺾을 때가 많았다고 고백했다. 대부분의 성형외과는 상담실장이 1차 견적을 내고 의사가 최종 견적을 확정하는데 상담실장이 과도한 견적을 내 와도 거절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극소수 대형 병원에서는 월급 의사가 계약 기간 전에 일을 그만두면 수익의 20∼25%를 반납하도록 하는 ‘노예 계약’을 맺기도 해 병원 측의 뜻을 거스르기 더욱 어렵다.
○ 수술 도중 다른 환자 상담하러 나가기도
대부분의 성형수술이 수면마취 상태에서 이뤄지는 점을 노려 일부 대형 병원에서는 실적을 올리려고 수술 중인 의사를 불러 다른 환자 상담을 시키기도 한다. 강남의 대형 성형외과에서 최근까지 일했던 30대 전문의 B 씨는 12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환자가 몰려드는데 상담해줄 의사가 없자 병원 측이 ‘모든 의사들은 수술을 중지하고 30분 동안 상담을 하라’고 공지해 마취 상태인 환자들을 두고 상담을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원장이나 유명 의사가 상담을 해준 뒤 환자가 마취 상태에 빠지면 다른 의사가 수술을 하는 ‘섀도 닥터(그림자 의사)’의 존재도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환자가 몰리는 일부 대형 성형외과 중엔 커다란 공간에 커튼식 가림막만 친 수술대 여러 개로 수술방을 꾸리는 곳도 있다. 수술방은 위생상 철저하게 밀폐돼 있어야 하지만 수술 건수를 채우려고 기본적인 원칙조차 무시하는 셈이다. 비용을 절감하려고 수술을 돕는 간호조무사를 무자격자로 뽑기도 한다. B 씨는 “수술 일정이 워낙 빡빡하다 보니 간호조무사들이 무단 퇴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자격증조차 없는 간호학원 수강생들을 마구잡이로 고용해 수술에 투입시켰다”며 “수술 경험이 전혀 없는 학생들과 수술을 하자니 늘 조마조마했다”고 말했다.
성형수술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고수익 수술 항목이 많다 보니 비전문의들도 ‘피부과’ ‘이비인후과’ 등의 간판을 내걸고 성형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강남 일대 성형외과의 도덕적 해이가 극심해지다 보니 내부에선 자체 정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대한성형외과학회 황규석 윤리이사는 “내년에 전문의를 따는 전공의부터 일정 시간의 윤리교육을 의무화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기사 출처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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