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 바라나시의 한국 사람들
바라나시에서 며칠 동안 적응하며, 놀랐던 것이 있다. 바로, 너무나 많은 한국 사람! 여행자 숙소가 몰려있는 고돌리아 지역은, 한국 음식이 그리워 걱정할 필요가 없는 동네였다. 김치볶음밥에 라면에, 내 나라를 떠나면 늘 앓이를 하곤 하는 김치찌개부터 심지어 닭백숙까지 판다.
이렇게나 많은 레스토랑이 한국 음식을 팔고 있으며, 심지어는 김치까지 담근다니 생경했다. 특히 신기할 정도로 20대 젊은이들이 많은 것을 보면 딱히 이 곳이 불교의 4대 성지인 사르나트가 가까이 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종교적인 색채로 유명한 바라나시의 기운을 느끼기 위해서일 수도 있었다.
신에게 드리는 자못 현란해 보이는 제사 뿌자나, 이들이 아직 가지고 있는 가트(강가의 층계를 지칭하는 벵골어)에서의 화장 문화도 한몫 할 수도 있었다. 아니면 인도를 노래한 어떤 시인의 책이 나온 이후로 인도 여행이 급증했다는데 그 현상이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걸까.
오며 가며 마주치고 대화를 하다 친해질 듯 하면 여지없이 질문을 던졌다.
"여기 오자 마자, 깜짝 놀랐어. 학생들이 왜 이렇게 많아? 지금이 방학시즌인가?"
그들은 큰일이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많은 젊은 친구가 학업을 중단하거나 방학을 맞아 유럽을 돌 듯, 인도 또한 그런다고 했다.
"제 주위에도 인도 와본 애들 많아요. 사실 이번에 유럽으로 가려고 했는데 자금이 좀 부족해서 다음으로 미뤘던 인도로 행선지를 바꿨어요."
신기했다. 사실 필자도 오랜 기간 여행을 했지만, 개인적으로 인도는 늘 미적거리기만 했다. 준비가 덜 된 느낌이라고 할까. 어쩌면 같은 삶에서도 내가 범접할 수 없는 곳이 있다는 희망을 갖고 싶었던 속내가 반영된 것이었을 게다. 타인들에게서 투영된 이미지를 차곡차곡 모아 나를 위한 환상으로 만들었던 것. 그럼에도 스무 살 초 중반의 젊은 친구들을 인도의 한 골목에서 이렇게나 많이 만날 수 있다니, 한편으로 대견했다.
여행은 때로 책보다 많은 것을 가르친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가르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주위 사람들의 여행에 늘 적극적으로 등을 떠미는 편이다. 이들은 적어도 인도를 떠올리면서, 카레 이상의 것을 떠올릴 것이며 손으로 밥을 먹는다는 것이 더럽다는 편견을 뛰어넘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쉽게 하고자 하는 욕망은 우리를 사로잡듯이, 여행도 예외는 아니다. 안타깝다고 생각했던 혼자만의 사견을, 인도의 한 젊은이가 들춰낸 적이 있었다. 동양의 베니스라고 불리는 호수의 도시, 우다이푸르란 곳에서였다.
"하나같이 똑같은 한국인들"
기차에서 만난 스페인 친구가 버스표를 사겠다고 해서 따라 나섰다. 책상에 앉아 있는 그를 본 곳은 트래블 에이전시에서였다. 스페인 친구가 버스 티켓의 정보를 물으며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버스 티켓의 정보를 주던 이십 대 중반의 인도 청년을 다시 보게 된 건, 인도 북서쪽의 사막에서 몇 달간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원 봉사를 끝내고 형님의 여행사 일을 돕기 위해 막 돌아왔다는 얘기 때문이었다. 본인이 속했던 단체가 어느 나라의 단체인지와 자세한 위치까지 설명을 곁들이며 시간이 되면 꼭 한번 가서 자원봉사를 해달라는 그 청년의 말에 호기심이 일었다. 그러다 청년이 물었다.
"그런데 국적이 어디야?"
"대한민국이야."
"코리안이구나.하나같이 똑같은 한국인들."
"무슨 말이지?"
"한국인들 말이야. 하나같이 똑같잖아. 다들 인터넷에 빠져있고, 인터넷의 카페에 나온 대로만 여행하는 것. 다른 나라에 왔으면, 그 나라에 대한 역사나 혹은 문화를 보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아냐? 한국인들은 인터넷에만 의존해서 다른 것은 안 보는 것 같아. 그리고 누구 하나가 어디가 좋더라 하면, 다들 거기만 가."
그의 말은 날카롭고 뾰족한 송곳 같았다. 옆에 타 국적의 사람도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즉각 반박하고 싶었으나 난 그러지 못했다.
솔직히, 그는 틀리지 않았다. 인터넷 운운할 때는 내 양심이 찔끔했으며, 한국인들을 말할 땐, 평소에 내가 하던 생각과 일치해서 한국인이 아님에도 그 부분을 눈치 챈 그의 예리함이 놀라웠다.
"네 말이 틀린 건 아니야. 그런데 생각해봐. 인도라는 나라를 처음 온 여행자고, 거기다 그들의 경험이 많지 않다고 가정하면, 발걸음을 떼기 전 먼저 경험한 사람의 의견을 참고하고 따르고 싶지 않을까. 어떤 것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좀 더 안전하게 가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것 뿐이야. 그러다 자신만의 경험이 쌓이면 여행 스타일도 생기게 되고 세상을 보는 눈도 길러지는 거지."
내 반박도 틀리진 않았다.
그러나 자신만의 경험이 쌓여, 각자 다양성의 축을 이루는 것이 다소 우리에겐 너무 더디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날카로운 그의 지적에 다시 한번 나에 대해, 우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 2013년 12월부터 2014년 2월에 걸친 인도의 종단여행을 바탕으로 합니다. 현지 장소의 표기는 현지에서 이용하는 발음을 기준으로 합니다.
<기사 출처 : 오마이뉴스>
▲ 태평한 주인과 불청객 짜이(인도에서 널리 마시는 향신료가 가미된 홍차의 일종) 가게의 불청객 |
ⓒ 박설화 |
바라나시에서 며칠 동안 적응하며, 놀랐던 것이 있다. 바로, 너무나 많은 한국 사람! 여행자 숙소가 몰려있는 고돌리아 지역은, 한국 음식이 그리워 걱정할 필요가 없는 동네였다. 김치볶음밥에 라면에, 내 나라를 떠나면 늘 앓이를 하곤 하는 김치찌개부터 심지어 닭백숙까지 판다.
이렇게나 많은 레스토랑이 한국 음식을 팔고 있으며, 심지어는 김치까지 담근다니 생경했다. 특히 신기할 정도로 20대 젊은이들이 많은 것을 보면 딱히 이 곳이 불교의 4대 성지인 사르나트가 가까이 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종교적인 색채로 유명한 바라나시의 기운을 느끼기 위해서일 수도 있었다.
▲ 김치볶음밥과 계란찜 바라나시에선 한국 음식이 그리워 고생할 일은 없다. |
ⓒ 박설화 |
신에게 드리는 자못 현란해 보이는 제사 뿌자나, 이들이 아직 가지고 있는 가트(강가의 층계를 지칭하는 벵골어)에서의 화장 문화도 한몫 할 수도 있었다. 아니면 인도를 노래한 어떤 시인의 책이 나온 이후로 인도 여행이 급증했다는데 그 현상이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걸까.
오며 가며 마주치고 대화를 하다 친해질 듯 하면 여지없이 질문을 던졌다.
▲ 기다림 게스트하우스 앞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어미 개. |
ⓒ 박설화 |
"여기 오자 마자, 깜짝 놀랐어. 학생들이 왜 이렇게 많아? 지금이 방학시즌인가?"
그들은 큰일이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많은 젊은 친구가 학업을 중단하거나 방학을 맞아 유럽을 돌 듯, 인도 또한 그런다고 했다.
"제 주위에도 인도 와본 애들 많아요. 사실 이번에 유럽으로 가려고 했는데 자금이 좀 부족해서 다음으로 미뤘던 인도로 행선지를 바꿨어요."
신기했다. 사실 필자도 오랜 기간 여행을 했지만, 개인적으로 인도는 늘 미적거리기만 했다. 준비가 덜 된 느낌이라고 할까. 어쩌면 같은 삶에서도 내가 범접할 수 없는 곳이 있다는 희망을 갖고 싶었던 속내가 반영된 것이었을 게다. 타인들에게서 투영된 이미지를 차곡차곡 모아 나를 위한 환상으로 만들었던 것. 그럼에도 스무 살 초 중반의 젊은 친구들을 인도의 한 골목에서 이렇게나 많이 만날 수 있다니, 한편으로 대견했다.
▲ 길을 막아선 소 거리를 제 멋대로 돌아다니는 것 같은 이 소들도 모두 주인이 있다. |
ⓒ 박설화 |
여행은 때로 책보다 많은 것을 가르친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가르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주위 사람들의 여행에 늘 적극적으로 등을 떠미는 편이다. 이들은 적어도 인도를 떠올리면서, 카레 이상의 것을 떠올릴 것이며 손으로 밥을 먹는다는 것이 더럽다는 편견을 뛰어넘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쉽게 하고자 하는 욕망은 우리를 사로잡듯이, 여행도 예외는 아니다. 안타깝다고 생각했던 혼자만의 사견을, 인도의 한 젊은이가 들춰낸 적이 있었다. 동양의 베니스라고 불리는 호수의 도시, 우다이푸르란 곳에서였다.
"하나같이 똑같은 한국인들"
▲ 대부분의 재봉틀을 잡은 사람들은 남자. 인도에서 가방을 수선하다. |
ⓒ 박설화 |
기차에서 만난 스페인 친구가 버스표를 사겠다고 해서 따라 나섰다. 책상에 앉아 있는 그를 본 곳은 트래블 에이전시에서였다. 스페인 친구가 버스 티켓의 정보를 물으며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버스 티켓의 정보를 주던 이십 대 중반의 인도 청년을 다시 보게 된 건, 인도 북서쪽의 사막에서 몇 달간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원 봉사를 끝내고 형님의 여행사 일을 돕기 위해 막 돌아왔다는 얘기 때문이었다. 본인이 속했던 단체가 어느 나라의 단체인지와 자세한 위치까지 설명을 곁들이며 시간이 되면 꼭 한번 가서 자원봉사를 해달라는 그 청년의 말에 호기심이 일었다. 그러다 청년이 물었다.
▲ 바라나시의 가트 아침의 태양을 맞고, 하루가 저물어가는 것을 즐기기 가장 좋은 장소. |
ⓒ 박설화 |
"그런데 국적이 어디야?"
"대한민국이야."
"코리안이구나.하나같이 똑같은 한국인들."
"무슨 말이지?"
"한국인들 말이야. 하나같이 똑같잖아. 다들 인터넷에 빠져있고, 인터넷의 카페에 나온 대로만 여행하는 것. 다른 나라에 왔으면, 그 나라에 대한 역사나 혹은 문화를 보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아냐? 한국인들은 인터넷에만 의존해서 다른 것은 안 보는 것 같아. 그리고 누구 하나가 어디가 좋더라 하면, 다들 거기만 가."
그의 말은 날카롭고 뾰족한 송곳 같았다. 옆에 타 국적의 사람도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즉각 반박하고 싶었으나 난 그러지 못했다.
▲ 뿌자 신에게 드리는 제사로 꽤 긴 시간을 하며, 제일 많은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
ⓒ 박설화 |
▲ 뿌자 신에게 드리는 제사로 꽤 긴 시간을 하며, 제일 많은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
ⓒ 박설화 |
솔직히, 그는 틀리지 않았다. 인터넷 운운할 때는 내 양심이 찔끔했으며, 한국인들을 말할 땐, 평소에 내가 하던 생각과 일치해서 한국인이 아님에도 그 부분을 눈치 챈 그의 예리함이 놀라웠다.
"네 말이 틀린 건 아니야. 그런데 생각해봐. 인도라는 나라를 처음 온 여행자고, 거기다 그들의 경험이 많지 않다고 가정하면, 발걸음을 떼기 전 먼저 경험한 사람의 의견을 참고하고 따르고 싶지 않을까. 어떤 것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좀 더 안전하게 가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것 뿐이야. 그러다 자신만의 경험이 쌓이면 여행 스타일도 생기게 되고 세상을 보는 눈도 길러지는 거지."
내 반박도 틀리진 않았다.
그러나 자신만의 경험이 쌓여, 각자 다양성의 축을 이루는 것이 다소 우리에겐 너무 더디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날카로운 그의 지적에 다시 한번 나에 대해, 우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 뿌자 신에게 드리는 제사로 브라만 계급만이 제사를 진행할 수 있다고 하며, 제일 많은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
ⓒ 박설화 |
덧붙이는 글 | 2013년 12월부터 2014년 2월에 걸친 인도의 종단여행을 바탕으로 합니다. 현지 장소의 표기는 현지에서 이용하는 발음을 기준으로 합니다.
<기사 출처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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