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수의(囚衣)를 만지작거리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습니다. 희뿌연 눈물 방울에 두 아들의 얼굴이 그렁그렁 맺힙니다. 초등학교 다니는 OO이와 유치원에 다니는 △△이는 엄마가 멀리 출장 간 줄 알고 있습니다. 그 착한 아이들이 경기도 안양구치소에 갇혀 있는 엄마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이게 다 돈 때문입니다. 8년 전쯤 남편이 수억원의 빚을 지게 됐어요. 차량 도색사업을 했는데 공장에 큰불이 났습니다. 보험을 따로 들지 않았던 탓에 화재를 수습하느라 쓴 돈이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죠. 우리 가족은 밤낮 빚쟁이에게 시달려야 했습니다. 불을 꺼 놓고 아무도 없는 척 며칠씩 집에서만 보내기도 했죠. 겨우 돌을 지난 큰아들이 울음이라도 터뜨리면 제가 아이의 입을 틀어막아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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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이렇게 살 순 없겠다 싶었어요. 택배 보조기사로 일해 월 120만원씩 버는 남편의 급여로는 이자 내기도 벅찼으니까요. 죽지 못해 사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을 때 동생이 솔깃한 제안을 했어요.
“언니, 남자친구가 그러는데 월 1000만원씩 벌 수 있는 일이 있대. 오전 10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에 전화 몇 통만 하면 된다는데?”
월 1000만원은 제겐 어마어마한 돈이었어요. 몇 년 열심히 일하면 빚도 다 갚고 새 출발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었죠. 동생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동생과 제가 ‘그 일’을 시작한 건 지난해 11월입니다. 석 달간 ‘그 일’을 했던 사무실은 서울 상계동의 한 아파트였습니다. 59.5㎡ 크기의 자그마한 아파트엔 책상 3개와 대포폰 3~4개, 데스크톱 PC 2대, 파쇄기 1대가 전부였어요. 우리 자매는 동생 남자친구가 일러 주는 대로 업무를 진행했습니다.
오전 10시쯤이면 그 아파트로 출근했습니다. 우선 중국에 있는 조직원에게 ‘QQ 메신저’로 출근을 알렸습니다. 그러면 중국에선 이름과 전화번호, 대출 이력 등이 적혀있는 리스트를 보내 옵니다. 저는 리스트에 적힌 번호로 하루에 200~300통씩 전화를 했습니다. 모든 일은 대포폰·대포에그(인터넷공유기)를 통해 이뤄졌죠. 우리는 기계처럼 말하고 또 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대부업체인데요, 저금리로 대출을 받게 해줄 테니 체크카드와 통장을 보내 주세요.”
금융기관 대출이 어려운 사람들은 금방 넘어왔습니다. 하루 200통 이상 전화를 걸면 1~2건은 꼭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동생이 했던 ‘그 일’이란 실은 보이스피싱이었습니다. 거짓 전화로 넘겨받은 통장을 ‘보이스(다시 전화를 걸어 돈을 입금시키도록 하는 사람)’ 쪽에 전달해 주는 게 우리 자매의 역할이었습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에 연루된 것을 안 건 출근 이틀째였습니다. 대출이 불가능한 사람들에게 대출이 가능하다고 꼬드겼지만, 돈은 결국 전달되지 않았으니까요. 처음엔 애들 얼굴을 쳐다볼 수도 없었습니다. 한 피해자가 ‘너도 새끼가 있는데 사기 치니까 좋냐’는 문자를 보내 왔을 땐 벌벌 떨렸지요. 죄책감을 도무지 누를 수 없을 땐 보이스피싱임을 밝혔습니다.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 자식의 결혼자금을 모으던 아버지 등에겐 뒤늦게 문자를 남겼습니다.
‘죄송합니다. 보이스피싱입니다. 통장이랑 카드 지급 정지시키세요’.
경험 몇 가지를 알려 드릴게요. 일반 금융업체에서 대출이 불가능한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대출이 안 돼요. 대통령이 해도 안 됩니다. 그러니 절대 돈·통장을 보내지 마세요. 발신이 안 되는 번호가 뜨거나 방문 상담을 거부할 때도 대부분 보이스피싱입니다.
우리 자매는 3개월간 보이스피싱 범죄를 도운 대가로 3121만원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어설픈 외도는 지난 5일 서울청 지능범죄수사대 경찰관 5명이 아파트에 들이닥치면서 끝났습니다. 경찰은 2월부터 집중 수사를 벌여 우리 자매를 비롯한 보이스피싱 조직원 54명을 붙잡아 33명을 구속했습니다. 전체 피해자는 280여 명, 피해금액이 24억3000여만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얼마 전 남편이 구치소로 면회를 왔습니다. 남편은 “나 때문에 범죄에까지 연루되다니 미안하다”며 펑펑 울었습니다.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 생각에 눈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위 기사는 보이스피싱 모집책으로 일하다 구속된 김모(40)씨 자매를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기사 출처 : 중앙일보>
이게 다 돈 때문입니다. 8년 전쯤 남편이 수억원의 빚을 지게 됐어요. 차량 도색사업을 했는데 공장에 큰불이 났습니다. 보험을 따로 들지 않았던 탓에 화재를 수습하느라 쓴 돈이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죠. 우리 가족은 밤낮 빚쟁이에게 시달려야 했습니다. 불을 꺼 놓고 아무도 없는 척 며칠씩 집에서만 보내기도 했죠. 겨우 돌을 지난 큰아들이 울음이라도 터뜨리면 제가 아이의 입을 틀어막아야 했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순 없겠다 싶었어요. 택배 보조기사로 일해 월 120만원씩 버는 남편의 급여로는 이자 내기도 벅찼으니까요. 죽지 못해 사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을 때 동생이 솔깃한 제안을 했어요.
“언니, 남자친구가 그러는데 월 1000만원씩 벌 수 있는 일이 있대. 오전 10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에 전화 몇 통만 하면 된다는데?”
월 1000만원은 제겐 어마어마한 돈이었어요. 몇 년 열심히 일하면 빚도 다 갚고 새 출발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었죠. 동생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동생과 제가 ‘그 일’을 시작한 건 지난해 11월입니다. 석 달간 ‘그 일’을 했던 사무실은 서울 상계동의 한 아파트였습니다. 59.5㎡ 크기의 자그마한 아파트엔 책상 3개와 대포폰 3~4개, 데스크톱 PC 2대, 파쇄기 1대가 전부였어요. 우리 자매는 동생 남자친구가 일러 주는 대로 업무를 진행했습니다.
오전 10시쯤이면 그 아파트로 출근했습니다. 우선 중국에 있는 조직원에게 ‘QQ 메신저’로 출근을 알렸습니다. 그러면 중국에선 이름과 전화번호, 대출 이력 등이 적혀있는 리스트를 보내 옵니다. 저는 리스트에 적힌 번호로 하루에 200~300통씩 전화를 했습니다. 모든 일은 대포폰·대포에그(인터넷공유기)를 통해 이뤄졌죠. 우리는 기계처럼 말하고 또 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대부업체인데요, 저금리로 대출을 받게 해줄 테니 체크카드와 통장을 보내 주세요.”
금융기관 대출이 어려운 사람들은 금방 넘어왔습니다. 하루 200통 이상 전화를 걸면 1~2건은 꼭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동생이 했던 ‘그 일’이란 실은 보이스피싱이었습니다. 거짓 전화로 넘겨받은 통장을 ‘보이스(다시 전화를 걸어 돈을 입금시키도록 하는 사람)’ 쪽에 전달해 주는 게 우리 자매의 역할이었습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에 연루된 것을 안 건 출근 이틀째였습니다. 대출이 불가능한 사람들에게 대출이 가능하다고 꼬드겼지만, 돈은 결국 전달되지 않았으니까요. 처음엔 애들 얼굴을 쳐다볼 수도 없었습니다. 한 피해자가 ‘너도 새끼가 있는데 사기 치니까 좋냐’는 문자를 보내 왔을 땐 벌벌 떨렸지요. 죄책감을 도무지 누를 수 없을 땐 보이스피싱임을 밝혔습니다.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 자식의 결혼자금을 모으던 아버지 등에겐 뒤늦게 문자를 남겼습니다.
‘죄송합니다. 보이스피싱입니다. 통장이랑 카드 지급 정지시키세요’.
경험 몇 가지를 알려 드릴게요. 일반 금융업체에서 대출이 불가능한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대출이 안 돼요. 대통령이 해도 안 됩니다. 그러니 절대 돈·통장을 보내지 마세요. 발신이 안 되는 번호가 뜨거나 방문 상담을 거부할 때도 대부분 보이스피싱입니다.
우리 자매는 3개월간 보이스피싱 범죄를 도운 대가로 3121만원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어설픈 외도는 지난 5일 서울청 지능범죄수사대 경찰관 5명이 아파트에 들이닥치면서 끝났습니다. 경찰은 2월부터 집중 수사를 벌여 우리 자매를 비롯한 보이스피싱 조직원 54명을 붙잡아 33명을 구속했습니다. 전체 피해자는 280여 명, 피해금액이 24억3000여만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얼마 전 남편이 구치소로 면회를 왔습니다. 남편은 “나 때문에 범죄에까지 연루되다니 미안하다”며 펑펑 울었습니다.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 생각에 눈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위 기사는 보이스피싱 모집책으로 일하다 구속된 김모(40)씨 자매를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기사 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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