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소영(30·여) 씨는 식빵과 딸기잼, 사과주스를 곁들인 아침식사를 했다. 회사에 출근해서는 매일 배달되는 유산균 요구르트를 마셨고, 오후 4시쯤 배가 출출해 캐러멜마키아토 한 잔을 마셨다. 퇴근 후에는 한 시간 동안 운동하고 무가당 오렌지주스를 마셨고, 밤에는 두유 한 잔을 마시며 TV를 보다 잠자리에 들었다. 여느 평범한 대한민국 성인의 일상이다. 하지만 김씨가 하루 동안 섭취한 당분의 양이 건강에 치명적임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김씨가 먹은 음식에는 엄청난 양의 당류가 들어 있다. 식빵 2쪽에는 6g, 딸기잼 1회 제공량(20g)에는 12g, 사과주스 한 병(100mℓ)에는 12g, 유산균 요구르트(90g)에는 12g이 포함돼 있다. 캐러멜마키아토 한 잔(300mℓ)에는 15g, 무가당 오렌지주스 한 잔(200mℓ)에는 20g, 두유 한 잔(200mℓ)에는 14g이 들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가공식품을 통한 당류 섭취량을 일일 총열량의 10% 미만으로 두고 있다. 하루에 2000kcal의 열량을 섭취한다면 당류는 50g 미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씨가 딸기잼, 음료수 등으로 취한 당분은 총 91g으로 일일 섭취 권장량의 1.8배다. 3g 무게의 각설탕 30개를 떠먹은 셈이다.
당뇨와 비만, 초경 앞당겨
한국인의 당류 섭취량이 급증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한국인의 일일 당분 섭취량은 2008년 56.0g에서 2012년 65.3g로 17% 상승했다. 가공식품을 통한 당류 섭취량도 2010년 38.8g에서 2012년 40g으로 늘었다. 한국인이 당류를 섭취하는 가공식품은 음료류(34.3%), 빵·과자·떡류(15.0%), 설탕 및 기타 당류(14.5%), 가공우유 및 발효유(8.0%), 아이스크림 및 빙과류(6.0%) 순이었다.
과다한 당분 섭취가 건강에 나쁜 이유는 잘 알려져 있다. 첫째, 한국 성인 10명 중 1명이 앓고 있는 당뇨병의 주요 원인이다. 당류 섭취량이 늘어나면 몸에 포도당이 축적되고, 혈당 수치가 높아지며, 혈당 농도를 낮추기 위해 인슐린이 분비된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이 망가져 인슐린 분비 기능이 떨어지고 당뇨병이 발생하는 것이다. 둘째, 비만을 유발한다. 몸속 에너지원이 충분한 상황에서 당분을 계속 섭취하면 잉여 에너지원은 지방으로 저장돼 살이 찐다. 비만이 심한 경우 고혈압, 관절염 등의 합병증도 초래할 수 있다.
이승환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요즘 젊은이들 가운데 탄산음료나 주스 등 단 음료를 자주 섭취해 당뇨나 비만 환자가 늘어났다”며 “평소 즐겨먹는 단것이 대사증후군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나친 당분이 특히 여성에게 해롭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1월 26일 미국 하버드대 의대 카린 미셸(Karin Michels) 교수 연구팀은 “하루 1.5회 이상 당 음료(sugar beverage)를 마시는 소녀들은 일주일에 2회 이하 마시는 소녀들보다 2.7개월 빨리 초경을 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초경 시기가 빠르면 에스트로겐에 노출되는 기간이 늘어나 유방암 발병이나 지방간 발생 위험이 커진다”고 경고했다.
손발 떨리고 우울해지는 ‘슈거 블루스’
더 무서운 것은 ‘설탕중독’이다. 달콤한 음식을 끊으면 손발이 떨리고 산만해지며 우울과 무기력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담배나 마약을 끊었을 때 나타나는 금단현상과 비슷하다. 단것을 먹지 않아 발생하는 감정 기복 등 정신적 질환을 ‘슈거 블루스(Sugar Blues)’라 하며, ‘설탕중독(Sugar Addiction)’은 신경정신과 진단명이기도 하다.
설탕중독은 왜 생기는 걸까. 먼저 ‘단것을 먹어야 힘이 나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통념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많은 수험생, 야근이 잦은 직장인이 초콜릿을 입에 달고 산다. 두뇌 활동이 증가하면 뇌가 에너지원으로 혈당을 쓰기 때문에 단것에 대한 욕구가 상승한다. 하지만 단것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당분에 중독되고 심한 경우 정상적인 뇌 활동이 불가능해지는 결과를 일으킨다.
유은정의 좋은클리닉 유은정 원장(정신과 전문의)은 “당분중독은 곧 탄수화물중독이며,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하면 포도당을 주 에너지로 사용하는 뇌가 활성화하면서 도파민(dopamine)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한다. 도파민은 마약을 복용할 때 뇌에서 분비하는 물질로 단 음식, 탄수화물도 똑같이 중독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혈당량을 조절하기 위해 달콤한 음료수만 끊으면 될까. 그렇지 않다. 흔히 건강식품으로 인식되는 제품도 알고 보면 엄청난 설탕덩어리다. 우리가 즐겨먹는 과일청은 과일과 설탕을 일대일 비율로 섞는다. 과일 1kg에 설탕 1kg인 식이다. 과일청 원료로 쓰는 매실, 오미자, 유자 등은 신맛이 강하기 때문에 설탕 없이 먹을 수 없다. 흔히 ‘설탕과 과일을 일대일로 섞어 병에 담아두면 설탕이 발효되면서 건강에 좋은 효소가 된다’고 알고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설탕 농도가 워낙 높아 효소로 변질되지 않기 때문이다. ‘홍삼원액’이나 ‘블루베리 농축액’이라 부르는 건강음료도 알고 보면 원액추출물 50~70%에 물과 사카린 같은 당분을 첨가한 제품이 대부분이다. 술안주나 아이들 간식거리로 자주 먹는 말린 과일은 보통 생과일에 함유된 천연당보다 5~10배 많은 첨가당이 들어 있다.
신우섭 오뚝이의원 재활클리닉 원장은 “가공한 과일이나 원액식품을 섭취하면 설탕을 숟가락으로 퍼먹는 셈”이라며 “몸에 좋다거나 병을 낫게 해준다는 입소문을 쉽게 믿지 마라. 음식 성분을 제대로 알아보고 소비하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섭취하는 당분 양은 어떻게 조절할 수 있을까. 먼저 가공식품을 살 때 영양성분표에서 당류 함량을 확인해야 한다. 차윤환 숭의여대 식품영양과 교수는 “빵이나 디저트보다 음료수의 당분 수치가 훨씬 높다”며 “하루에 섭취하는 칼로리의 10~20% 내에서 당분 양을 결정하고, 성분표에서도 1회 분량인지 제품 1개 분량인지를 확인하고 선택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설탕 대신 소금에 길들여지는 방법도 있다. 소금에도 일부 단맛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감자에 소금을 찍어 먹으면 감자의 단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 그 예다. 신우섭 원장은 “아직 특정 입맛이 없는 어린아이에게 소금을 먹이면 사탕을 찾지 않게 된다. 특히 천일염은 몸에 좋은 80여 가지 미네랄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추천한다”고 말했다.
설탕중독 환자는 무엇보다 스스로를 정신적으로 압박하지 말아야 한다. 유은정 원장은 “단것을 찾는 습관은 의학적 원인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당연히 조절이 어렵다. ‘음식 하나 못 참는다’며 자신을 구박하지 말고 의사에게 도움을 받아 식단을 짜라”고 조언했다.
<기사 출처 : 주간동아>
<기사 출처 : 주간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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