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콴유 전 총리가 타계 전 입원해 있던 싱가포르 시내의 병원 앞에 쾌유를 기원하는 꽃다발과 메시지가 쌓여 있다. 리 전 총리가 23일 세상을 뜨자 싱가포르 전역이 애도의 물결로 가득찼다. 싱가포르/AP연합뉴스 |
23일 타계한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총리는 시장에 기반을 둔 경제모델을 강력 추진하면서도 서구식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아시아적 발전모델’을 강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웃한 말레이시아에서 장기집권했던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총리와 함께 리콴유는 ‘아시아 모델’의 대명사였다.
1990년대 말 아시아 금융위기로 인해 아시아적 발전모델은 허상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서구로부터 쏟아져 나왔으나, 리콴유는 싱가포르라는 성공사례를 발판으로 자신의 노선에 대한 자부심을 버리지 않았다. 리콴유가 남긴 말들에는 그런 자부심과 신념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언론의 자유, 뉴스미디어의 자유는 싱가포르의 통합과 선출된 정부의 우선순위 아래에 종속돼야 한다.”
-1971년 6월 9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국제언론인협회(IPI) 총회 연설
▲“내가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개입한다는 비난을 종종 듣는다. 맞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오늘날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한 줌의 후회없이 말하건대, 누가 내 이웃이고 어떻게 사는지, 어떤 소란을 일으키는지, 거리에 침을 뱉는지, 어떤 언어를 쓰는지, 이런 개인적인 문제에까지 개입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이 위치에 오지 못했을 것이며 경제적 번영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옳다고 믿는 바대로 결정한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개의치 않는다.”
-1987년 4월 스트레이츠타임스 인터뷰
▲“뭔가가 잘못돼 있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병상에서, 아니 무덤에서라도 일어날 것이다.”
-후임자인 고촉통으로의 권력 이양을 2년 앞둔 1988년 독립기념일 발언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민주주의는 신생 개발도상국에 좋은 정부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아시아의 가치가 미국인이나 유럽인의 가치와 반드시 같아야 할 필요는 없다. 서구인들의 가치는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지만 중국적 문화를 배경으로 한 아시아인으로서 나의 가치는 정직하고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정부를 만드는 데 있다.”
-1992년 11월 일본 도쿄에서 한 연설
▲“나는 여론조사나 인기투표에 연연하고 구애받은 적이 결코 없다. 그런 지도자는 약한 지도자다. 사랑받는 것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 사이에서, 나는 항상 마키아벨리가 옳았다고 믿어왔다. 아무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나는 무의미한 존재인 것이다.”
-1997년 회고록 <싱가포르 스토리: 리콴유 비망록>(국내에서는 <내가 걸어온 일류국가의 길>로 번역)에서
▲“사람들의 의견을 구하는 것은 미국을 모방하는 것일 뿐이다. 압력단체나 로비그룹 말이다. 그것은 서구의 관행을 우리 형편에 맞게 뜯어고치지 않은 채 생각 없이 가져다 적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1997년의 한 인터뷰
▲“싱가포르가 ‘보모 국가(정부가 국민의 일상생활에 깊이 개입하는 나라)’라고 한다면, 나는 그 점을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
-1997년의 회고록에서
▲“나는 정부를 투표로 구성하는 방식은 무시해버린다. 그건 정신력이 약하다는 반증이다. 바람 부는 대로, 미디어가 사람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대로 추종하는 무능력의 표현일 뿐이다. 힘으로든 아니든 국민들이 자신을 따르게 할 능력이 없다면 지도자가 아닌 것이다.”
-2002년의 한 인터뷰
▲“비유를 들자면, 우리 싱가포르 국민들은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이고 외국에서 받아온 것들은 원래 갖고 있던 용량에 메가바이트들을 좀 더하는 것이다. 자체의 용량이 크다면 외국에서 받아들이는 것들 때문에 마비가 되지는 않는다.”
-2007년 4월 스트레이츠타임스 인터뷰
<기사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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