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못하는 저소득의 늪
청소노동자 아내ㆍ계약직 남편, 월수입 250만… 가구 평균 소득 65%
하위 70% 실질임금 인상률, 최근 20년간 연평균 0.1%뿐
"정규직-비정규직간의 대립 보다 하위 70%를 위한 임금 대책 필요"
최경자씨와 동료가 인천 연수구 연세대 국제캠퍼스 기숙사 로비를 청소하고 있다. 최씨는 "최소한 반찬 값이 오르는 만큼이라도 월급을 올려 받고 싶다는 것이 무리한 요구는 아니지 않느냐"고 물었다.
늘어선 빌딩 유리창이 하나 둘씩 불을 밝힌 인천지하철 1호선 캠퍼스타운역 인근 새벽녘 거리. 대학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는 최경자(62ㆍ가명)씨는 출근길 삭풍이 파고들자 옷깃 사이로 목을 깊이 움츠렸다. 지하철역에서 최씨가 일하는 대학 캠퍼스까지는 걸어서 20분. 무겁게 내려앉은 안개로 출근길은 평소보다 한참이나 멀어 보였다. “처음엔 불러주는 일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는데, 평생 일해도 제자리라는 게 점점 힘겹네요. 노후대책도 없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낀 인생이에요.”
최씨는 인천 연수구 연세대 국제캠퍼스 기숙사의 미화원이다. 학생들이 빠져나간 빈 방을 청소하고 정돈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맨발의 최씨는 빈 기숙사 화장실에 들어가 머리카락 등 각종 생활오물들을 걷어내고 청소 약품을 뿌렸다. 한 사람이 쭈그려 앉으면 세면대와 변기가 앞뒤로 꽉 차는 화장실에서 수세미로 타일의 묵은 때를 닦아내길 10여분. 이마에선 구슬땀이, 입에서는 신음소리가 절로 났다. 최씨는 “학생들이 입실 하기 전까지 부지런히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미화원 16명이 담당하는 기숙사는 지하1층, 지상10층짜리 건물 3개로 학생 2,000여명을 수용한다.
하루 8시간 허리 펼 새 없이 기숙사를 쓸고 닦는 최씨의 월급은 기본급 120만원에 밥값과 교통비 15만원을 합쳐 총 135만원이다. 그나마 수년간 100만원 안팎이던 월급은 지난해 생긴 노동조합이 단체협약에 나선 뒤부터 조금 올랐다. 인천의 한 제조업체 계약직 직원인 남편(63) 급여를 합치면 두 부부의 수입은 월 250만원 남짓이 된다. 지난해 도시근로자 가구 월평균소득(2인가구) 387만원의 65% 수준이다. 보험료, 통신비, 교통비, 병원비, 생활비를 간신히 충당할 뿐 저축은 남의 이야기다.
최씨는 “20년째 게으름 한번 피우지 않고 맞벌이하며 일해왔는데 연금하나 부을 수 없는 형편이라는 게 답답하다”고 했다.
최씨가 처음 맞벌이에 나선 것은 1994년. 세 아이(당시 9ㆍ15ㆍ16세)의 학원비와 반찬 값을 벌어 보려고 인천 남동공단의 한 자동차 부품 제조공장에 취업했다. 하루 5시간 주6일 근무에 6시간씩 잔업도 했지만 주어지는 것은 주급 12만원 뿐이었다. 퇴직금도 없었다.
1995년부터는 집 근처 빌딩 미화원으로 일했다. 약 1,322㎡(400평) 규모의 7층 건물을 미화원 두 사람이 종일 쓸고 닦아 받은 월급은 45만원. 몇 달 뒤부턴 월급 70만원을 받는 대신 전체 빌딩을 혼자 청소해야 했다. 그렇게 10여년 간 최씨의 월급은 70만원에 고정돼 있었다.
그래도 빌딩주의 태도는 당당했다. ‘이 월급으로도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으니, 당신도 그래야 한다’는 식이었다. 그 사이 남편의 월급도 100만~200만원을 넘지 못했다. 최씨는 “10만원이 예전 1만원만 못하게 느껴질 정도로 물가는 오르는데, 해가 가도 상황이 나아질 기미는 없었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2년 전 일하던 공장에서 정년 퇴직한 후 계약직으로 재취업한 남편의 급여는 절반으로 줄었다. 그리고 최씨의 미화원 동료들은 최근 대량 해고 통보를 받았다. 용역업체가 비용 절감을 명분으로 ‘하루 5.5시간 근무에 월급95만원’의 급여 인하 안에 동의하지 않은 직원들을 불시에 해고했다는 것이 노동조합의 주장이다. 최씨는 “종일 쓸고 닦는 사람들 덕분에 학교도 기숙사도 운영되는 것인데 정작 돌아오는 것은 이런 야박한 대접 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15~20여 년 간 급여가 제자리를 맴돈 것은 최씨 부부만의 사정은 아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국세청 소득공제 자료를 분석한 ‘노동소득 분배율과 개인소득’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1995~2012년 임금 하위 70% 집단의 명목임금은 연평균 3.5% 증가했다. 그나마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실질임금으로 계산하면 증가율은 연평균 0.1%에 그친다. 같은 기간 최상위 10%, 상위 10~20%, 상위 20~30% 집단의 실질임금 증가율은 각각 5.9%, 4.6%, 3.9%였다. 17년 간 상위 30% 집단의 월급이 약 4~6% 오르는 동안, 평범한 국민 대다수인 하위 70%의 월급은 단 0.1% 오르는데 그쳤다는 결론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체소득에서 각 계층이 가져간 몫도 달라졌다. 상위층의 몫은 늘고, 아래쪽 70%의 몫은 줄었다. 임금 최상위 10% 집단이 국민소득, 순부가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5년 13.6%에서 2012년 20%로 늘었다. 반면 하위 70%의 몫은 같은 기간 23.9%에서 13.9%로 추락했다.
연구를 진행한 홍민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20여 년간 하위집단 임금이 사실상 제자리에 머물면서 노동소득에 대한 정당한 분배가 전혀 이뤄지지 못하는 기형적인 상황”이라며 “상위계층에게만 돌아가는 이자소득, 배당소득까지 감안하면 전체 소득에서 불평등 정도는 이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런 심각한 불평등 상황에서 정규직이 비정규직의 몫을 빼앗는다는 식의 논의는 하위 70% 안에서 편을 가르는, 본질을 흐리는 논의”라며 “70%의 하위집단이 정당하게 일한 만큼의 임금 몫을 가져갈 수 있는 근본적인 소득불평등 완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기사 출처 : 한국일보>
청소노동자 아내ㆍ계약직 남편, 월수입 250만… 가구 평균 소득 65%
하위 70% 실질임금 인상률, 최근 20년간 연평균 0.1%뿐
"정규직-비정규직간의 대립 보다 하위 70%를 위한 임금 대책 필요"
최경자씨와 동료가 인천 연수구 연세대 국제캠퍼스 기숙사 로비를 청소하고 있다. 최씨는 "최소한 반찬 값이 오르는 만큼이라도 월급을 올려 받고 싶다는 것이 무리한 요구는 아니지 않느냐"고 물었다.
늘어선 빌딩 유리창이 하나 둘씩 불을 밝힌 인천지하철 1호선 캠퍼스타운역 인근 새벽녘 거리. 대학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는 최경자(62ㆍ가명)씨는 출근길 삭풍이 파고들자 옷깃 사이로 목을 깊이 움츠렸다. 지하철역에서 최씨가 일하는 대학 캠퍼스까지는 걸어서 20분. 무겁게 내려앉은 안개로 출근길은 평소보다 한참이나 멀어 보였다. “처음엔 불러주는 일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는데, 평생 일해도 제자리라는 게 점점 힘겹네요. 노후대책도 없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낀 인생이에요.”
최씨는 인천 연수구 연세대 국제캠퍼스 기숙사의 미화원이다. 학생들이 빠져나간 빈 방을 청소하고 정돈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맨발의 최씨는 빈 기숙사 화장실에 들어가 머리카락 등 각종 생활오물들을 걷어내고 청소 약품을 뿌렸다. 한 사람이 쭈그려 앉으면 세면대와 변기가 앞뒤로 꽉 차는 화장실에서 수세미로 타일의 묵은 때를 닦아내길 10여분. 이마에선 구슬땀이, 입에서는 신음소리가 절로 났다. 최씨는 “학생들이 입실 하기 전까지 부지런히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미화원 16명이 담당하는 기숙사는 지하1층, 지상10층짜리 건물 3개로 학생 2,000여명을 수용한다.
하루 8시간 허리 펼 새 없이 기숙사를 쓸고 닦는 최씨의 월급은 기본급 120만원에 밥값과 교통비 15만원을 합쳐 총 135만원이다. 그나마 수년간 100만원 안팎이던 월급은 지난해 생긴 노동조합이 단체협약에 나선 뒤부터 조금 올랐다. 인천의 한 제조업체 계약직 직원인 남편(63) 급여를 합치면 두 부부의 수입은 월 250만원 남짓이 된다. 지난해 도시근로자 가구 월평균소득(2인가구) 387만원의 65% 수준이다. 보험료, 통신비, 교통비, 병원비, 생활비를 간신히 충당할 뿐 저축은 남의 이야기다.
최씨는 “20년째 게으름 한번 피우지 않고 맞벌이하며 일해왔는데 연금하나 부을 수 없는 형편이라는 게 답답하다”고 했다.
최씨가 처음 맞벌이에 나선 것은 1994년. 세 아이(당시 9ㆍ15ㆍ16세)의 학원비와 반찬 값을 벌어 보려고 인천 남동공단의 한 자동차 부품 제조공장에 취업했다. 하루 5시간 주6일 근무에 6시간씩 잔업도 했지만 주어지는 것은 주급 12만원 뿐이었다. 퇴직금도 없었다.
1995년부터는 집 근처 빌딩 미화원으로 일했다. 약 1,322㎡(400평) 규모의 7층 건물을 미화원 두 사람이 종일 쓸고 닦아 받은 월급은 45만원. 몇 달 뒤부턴 월급 70만원을 받는 대신 전체 빌딩을 혼자 청소해야 했다. 그렇게 10여년 간 최씨의 월급은 70만원에 고정돼 있었다.
그래도 빌딩주의 태도는 당당했다. ‘이 월급으로도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으니, 당신도 그래야 한다’는 식이었다. 그 사이 남편의 월급도 100만~200만원을 넘지 못했다. 최씨는 “10만원이 예전 1만원만 못하게 느껴질 정도로 물가는 오르는데, 해가 가도 상황이 나아질 기미는 없었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2년 전 일하던 공장에서 정년 퇴직한 후 계약직으로 재취업한 남편의 급여는 절반으로 줄었다. 그리고 최씨의 미화원 동료들은 최근 대량 해고 통보를 받았다. 용역업체가 비용 절감을 명분으로 ‘하루 5.5시간 근무에 월급95만원’의 급여 인하 안에 동의하지 않은 직원들을 불시에 해고했다는 것이 노동조합의 주장이다. 최씨는 “종일 쓸고 닦는 사람들 덕분에 학교도 기숙사도 운영되는 것인데 정작 돌아오는 것은 이런 야박한 대접 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15~20여 년 간 급여가 제자리를 맴돈 것은 최씨 부부만의 사정은 아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국세청 소득공제 자료를 분석한 ‘노동소득 분배율과 개인소득’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1995~2012년 임금 하위 70% 집단의 명목임금은 연평균 3.5% 증가했다. 그나마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실질임금으로 계산하면 증가율은 연평균 0.1%에 그친다. 같은 기간 최상위 10%, 상위 10~20%, 상위 20~30% 집단의 실질임금 증가율은 각각 5.9%, 4.6%, 3.9%였다. 17년 간 상위 30% 집단의 월급이 약 4~6% 오르는 동안, 평범한 국민 대다수인 하위 70%의 월급은 단 0.1% 오르는데 그쳤다는 결론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체소득에서 각 계층이 가져간 몫도 달라졌다. 상위층의 몫은 늘고, 아래쪽 70%의 몫은 줄었다. 임금 최상위 10% 집단이 국민소득, 순부가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5년 13.6%에서 2012년 20%로 늘었다. 반면 하위 70%의 몫은 같은 기간 23.9%에서 13.9%로 추락했다.
연구를 진행한 홍민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20여 년간 하위집단 임금이 사실상 제자리에 머물면서 노동소득에 대한 정당한 분배가 전혀 이뤄지지 못하는 기형적인 상황”이라며 “상위계층에게만 돌아가는 이자소득, 배당소득까지 감안하면 전체 소득에서 불평등 정도는 이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런 심각한 불평등 상황에서 정규직이 비정규직의 몫을 빼앗는다는 식의 논의는 하위 70% 안에서 편을 가르는, 본질을 흐리는 논의”라며 “70%의 하위집단이 정당하게 일한 만큼의 임금 몫을 가져갈 수 있는 근본적인 소득불평등 완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기사 출처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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