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과 특색이 뚜렷한 작은 서점이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서울 상암동 ‘북바이북’ 1호점. 바로 인근 2호점에선 맥주를 마시며 책을 고를 수도 있고, 저자와의 만남 행사도 자주 열린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동네 서점에 새바람이 분다. 대형서점·온라인서점에 밀려 기존 동네 서점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한 지도 오래. 최근에는 새로운 작은 서점이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퇴근길에 맥주 한잔 걸치며 책을 고를 수 있는 서점부터 독립출판물로 이름난 서점까지 저마다 색깔이 뚜렷한 게 특징이다.
이런 서점의 주인들은 대개 책을 좋아하는 것은 물론이고 책을 직접 만들어보기도 한 젊은이들이다. 임대료가 싼 곳을 찾아 생각지도 못한 곳에 서점을 연 경우도 많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큰 문제는 아니다. SNS·인터넷 등으로 입소문이 나면, 지도를 보고 찾아오거나 전화·온라인으로 주문하는 손님이 얼마든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서교동 ‘유어마인드’의 서가(왼쪽). 서울 용산동에 자리한 ‘스토리지북앤필름’. [사진 각 서점]
서울 서교동의 ‘유어마인드’가 바로 그 좋은 예다. 엘리베이터 없는 5층 건물 꼭대기에 자리한 작은 서점인데도 평일 대낮부터 제법 북적인다. 대형서점에서 보기 힘든 소규모 출판물을 비롯, 이 서점만의 특색있는 책들이 손님들에게는 이미 널리 알려진 덕분이다. “모르고 찾아오는 분은 별로 없다”는 주인 이로(34)씨도 서점에 앞서 독립출판을 경험했다. 직접 1인 잡지를 만들었다가 이런 출판물을 유통할 길이 별로 없다는 걸 체험하고는 2009년 온라인으로 서점을 시작했다. 이듬해 직장을 그만두고 오프라인 서점을 열었다. 이후로 그는 매년 독립출판물을 모아 전시·판매하는 행사 ‘언리미티드 에디션’도 꾸준히 열고 있다.
서울 상암동의 ‘북바이북’은 이보다 한결 대중적인 책을 취급하되, 또다른 특색이 더욱 뚜렷하다. 주인 김진양(35)씨가 최근 펴낸 서점 창업기 제목이 『술 먹는 책방』인데서도 짐작하듯, 이 서점의 2호점에선 커피만 아니라 맥주도 판다.
김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2013년 가을 1호점을 내면서 그동안 꿈꾸던 아이디어를 차례로 실현하기 시작했다. 평소 자주 찾던 홍대앞 ‘땡스북스’는 물론이고 일본 도쿄의 여러 서점을 순례하며 더 편안히 책을 즐기는 방식에 대한 온갖 영감을 얻었다. 1호점에 이어 바로 인근에 지난해 여름 2호점을 낸 것도 그래서다. 좀 더 넓은 공간에서 저자와의 만남을 비롯한 여러 행사를 열기 위해서다. 그의 노력 덕에 그야말로 작은 서점인데도 유명한 저자들의 발길이 꽤 잦다. 김씨는 “직장 다니며 월급받던 시절보다 수입은 줄었지만 사람을 만나는, 단골 손님이 늘어가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특색있는 작은 서점이 최근 부쩍 늘고 있다. 독립출판물을 유통하는 서점(복합문화공간 포함)만 꼽아도 서울·부산·대전·대구·강릉·제주 등 전국에서 현재 약 40곳에 달한다. 흥미로운 건 이 중 절반 가량이 지난해와 올해 문을 연 점이다. 전반적으로 지역 서점이 급감해 온 추세에서 단연 눈에 띄는 현상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전국의 지역서점은 1994년 5683개에서 2003년 2247개, 2011년 1752개, 2013년 1652개로 줄어 들었다.
작은 서점이 늘면서 테마도 분화되는 추세다. 지난해 말 서울 염리동에 문을 연 ‘일단 멈춤’은 여행이 테마다. 헌데 대형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이드북 시리즈는 없다. “여행을 다녀와서 여행지에 대해 생기는 다양한 관심을 다룬 서적, 또는 여행길에 갖고 다니기 좋은 작은 책”을 다루겠다는 게 주인 송은정(29)씨의 생각이다. 그는 지난해 봄 직장을 그만두고 서점을 준비하면서 독립출판물 강좌를 들었다. “독립출판물만 다룰 건 아니지만 기획부터 유통까지 출판의 흐름을 일단 알아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일단 멈춤’은 현재 1인 여행 잡지 제작 워크숍을 열고 있고, 장차 중국어·스페인어 등 여행 외국어 강좌도 열 생각이다.
이처럼 작은 서점은 각종 문화 강좌가 활발한 것도 공통된 특징이다. 서울 용산동, 일명 해방촌에 자리한 ‘스토리지북앤필름’은 여느 작은 서점이 비교적 늦게까지 문을 여는 것과 달리 오후 7시면 문을 닫는다. 이 시간부터 독립출판 관련 워크숍이나 드로잉·캘리그라피 등의 강좌가 거의 매일 열리기 때문이다. 주인 강영규(34)씨의 본래 관심사는 사진, 그중에도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헌데 직접 사진집을 내면서 독립출판으로 관심이 넓어졌다. 필름 카메라 관련 상품을 다루며 본래 주말에만 문을 열었던 가게도 그에 따라 전일제 서점으로 변모했다. 은행 등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강씨 역시 지난해 봄부터 전업으로 서점 주인이 됐다.
출판계는 새로운 동네 서점의 등장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출판사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는 “요즘 독자들의 취향은 극도로 다양화되어 있다”면서 “색깔있는 작은 서점은 그런 취향을 집약해서 매니아 독자를 발굴하는 역할, 나아가 동네 주민들의 서재 역할을 할 수 있다”며 “굵은 동맥만 아니라 작은 핏줄이 건강해야 사람 몸이 잘 움직이듯, 대형서점만 아니라 이런 작은 서점이 더 많이 생겨나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동네 서점들이 기존에 문화 소비층의 발길이 닿지 않던 곳에 문을 여는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리고 있는 ‘도서관, 독립출판, 열람실’ 전시를 준비한 김명수 큐레이터는 “위치로 보면 좀 뜬금없다 싶은 곳에 문을 여는 서점도 많은데, 이를 통해 주변 지역이 활성화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 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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