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은 총수 혹은 그의 일가가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리며 지배하는 대규모 기업집단을 말한다. 대기업 집단은 어느 나라에나 있지만 한국처럼 소규모 지분을 가진 총수와 그 일가 몇 명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문제는 재벌들이 돈을 앞세워 행정, 입법, 사법, 언론, 문화, 학계까지 전방위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수와 관료는 사외이사를 탐내고, 검사와 판사는 재취업을 기대하고, 언론과 문화계는 광고비나 지원금에 목매고, 의사는 재벌 의료기관에 취업하기를 바라면서 사회정의는 사라진다.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은 재벌 3대로 넘어가면서 급속히 타락해져가는 한국의 재벌가를 파헤친다. 광역수사대 서도철(황정민 분)은 트럭기사의 자살기도사건을 접한다. 백주대낮 대기업 본사에서 일어난 한 화물 운송노동자의 자살기도는 무언가 미심쩍은 데가 많다.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그는 본사에서 며칠째 1인 시위 중이었다. 사건을 담당한 경찰, 그를 지휘하는 경찰 수뇌부와 검찰, 입을 닫은 언론 등이 그의 앞을 가로막는다. 사건을 하나씩 파고들던 서도철은 자살기도 전 구타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 분)는 기행을 일삼는다. 재벌가 자제라고는 하나 그는 회장님 둘째부인의 아들이다. 그룹 내 경쟁에서 언제든지 밀릴 수 있다는 걱정에 그의 정서는 극도로 불안정하다. 안하무인 조태오에게는 삼촌으로 불리는 최 상무가 있다. 대를 이어 조씨가문에 충성하는 최 상무는 조태오가 사고를 칠 때마다 돈으로 뒤처리에 나선다. 샤넬백에 수천만원을 담는다. 피해자의 병원치료비는 물론이고 자녀 대학등록금과 병원비 일체도 댄다. 최 상무는 이 돈으로 전세금을 내고, 아이 대학을 보내고 하면 서로를 위해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경제를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조태오를 위한 사고 처리비는 ‘깨진 유리창의 오류’가 될 수 있다. 프랑스 경제학자인 클로드 프레데릭 바스티아는 1850년 에세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해 이 같은 주장을 폈다. 어느 동네 10대 아이들이 빵집 유리창을 향해 돌을 던졌다. 유리창이 깨지자 사람들은 아이들을 탓했다. 그런데 한 사람이 “그렇게 볼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빵집 주인이 새 유리를 사서 끼우면 유리창 수리업자는 돈을 벌게 되고, 수리업자가 그 돈을 다른 데 쓰면 또 다른 소득과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니 마을경제로 볼 땐 좋다는 것이다. 하지만 빵집 주인은 원래 그 돈을 가지고 옷을 사입을 생각이었다. 만약 유리창 사는 데 돈을 쓰지 않았다면 새옷을 샀을 테고, 그러면 양복점 주인이 돈을 벌었을 것이다. 양복점 주인은 그 수입으로 딴 데 썼을 테니 깨진 유리창은 새로운 소득과 일자리를 만든 게 아니라 지출의 방향만을 바꿨을 뿐이다. 어떤 면에서는 빵집 주인이 새옷을 입음으로써 기분 좋게 나들이를 할 수 있었지만 유리창 때문에 옷을 사지 못하면서 즐거운 외출의 기회만 잃었을 수도 있다. 깨진 유리창의 오류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 즉 기회비용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라고 강조한다.
만약 조태오가 사고를 치지 않았더라면 기업은 피해자 합의금을 지불할 필요가 없고, 이 돈을 연구개발이나 마케팅에 투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일자리가 창출되고, 일자리를 가진 직원들이 소비를 하면 경제는 더 잘 돌아갈 수 있다.
깨진 유리창의 오류는 정부의 인위적인 일자리 창출을 경고하는 사례로도 종종 쓰인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만든 일자리의 이면에는 다른 고급 일자리가 창출될 기회를 빼앗은 것일 수도 있다. 연간 40만~50만개의 일자리를 만든 박근혜 정부에서 유독 금융·전문직 등 고급 일자리가 사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일자리 개수에 매달리면서 일자리의 품질은 뒤로 밀렸다.
<기사 출처 : 주간경향>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은 재벌 3대로 넘어가면서 급속히 타락해져가는 한국의 재벌가를 파헤친다. 광역수사대 서도철(황정민 분)은 트럭기사의 자살기도사건을 접한다. 백주대낮 대기업 본사에서 일어난 한 화물 운송노동자의 자살기도는 무언가 미심쩍은 데가 많다.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그는 본사에서 며칠째 1인 시위 중이었다. 사건을 담당한 경찰, 그를 지휘하는 경찰 수뇌부와 검찰, 입을 닫은 언론 등이 그의 앞을 가로막는다. 사건을 하나씩 파고들던 서도철은 자살기도 전 구타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 분)는 기행을 일삼는다. 재벌가 자제라고는 하나 그는 회장님 둘째부인의 아들이다. 그룹 내 경쟁에서 언제든지 밀릴 수 있다는 걱정에 그의 정서는 극도로 불안정하다. 안하무인 조태오에게는 삼촌으로 불리는 최 상무가 있다. 대를 이어 조씨가문에 충성하는 최 상무는 조태오가 사고를 칠 때마다 돈으로 뒤처리에 나선다. 샤넬백에 수천만원을 담는다. 피해자의 병원치료비는 물론이고 자녀 대학등록금과 병원비 일체도 댄다. 최 상무는 이 돈으로 전세금을 내고, 아이 대학을 보내고 하면 서로를 위해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경제를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조태오를 위한 사고 처리비는 ‘깨진 유리창의 오류’가 될 수 있다. 프랑스 경제학자인 클로드 프레데릭 바스티아는 1850년 에세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해 이 같은 주장을 폈다. 어느 동네 10대 아이들이 빵집 유리창을 향해 돌을 던졌다. 유리창이 깨지자 사람들은 아이들을 탓했다. 그런데 한 사람이 “그렇게 볼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빵집 주인이 새 유리를 사서 끼우면 유리창 수리업자는 돈을 벌게 되고, 수리업자가 그 돈을 다른 데 쓰면 또 다른 소득과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니 마을경제로 볼 땐 좋다는 것이다. 하지만 빵집 주인은 원래 그 돈을 가지고 옷을 사입을 생각이었다. 만약 유리창 사는 데 돈을 쓰지 않았다면 새옷을 샀을 테고, 그러면 양복점 주인이 돈을 벌었을 것이다. 양복점 주인은 그 수입으로 딴 데 썼을 테니 깨진 유리창은 새로운 소득과 일자리를 만든 게 아니라 지출의 방향만을 바꿨을 뿐이다. 어떤 면에서는 빵집 주인이 새옷을 입음으로써 기분 좋게 나들이를 할 수 있었지만 유리창 때문에 옷을 사지 못하면서 즐거운 외출의 기회만 잃었을 수도 있다. 깨진 유리창의 오류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 즉 기회비용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라고 강조한다.
만약 조태오가 사고를 치지 않았더라면 기업은 피해자 합의금을 지불할 필요가 없고, 이 돈을 연구개발이나 마케팅에 투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일자리가 창출되고, 일자리를 가진 직원들이 소비를 하면 경제는 더 잘 돌아갈 수 있다.
깨진 유리창의 오류는 정부의 인위적인 일자리 창출을 경고하는 사례로도 종종 쓰인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만든 일자리의 이면에는 다른 고급 일자리가 창출될 기회를 빼앗은 것일 수도 있다. 연간 40만~50만개의 일자리를 만든 박근혜 정부에서 유독 금융·전문직 등 고급 일자리가 사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일자리 개수에 매달리면서 일자리의 품질은 뒤로 밀렸다.
<기사 출처 : 주간경향>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