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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30일 월요일

“통영서 3시간이면 日 밀항... 대가는 2000만원”

부산경찰청, 브로커 일당 3명 구속
무장 소매치기단으로 日서 악명 40대 밀항자 검거
일본 밀항에 사용된 4.99톤급 어선. 사진제공=부산경찰청
9년전 일본에서 원전 소매치기를 일삼다 한국으로 추방된 김모(49)씨는 지난 3월 일본에 다시 밀입국하기 위해 경남 통영시에서 밀항 전문업자 최모(55)씨 등과 접촉했다.

최씨 일당은 시속 20노트(37㎞) 정도의 속도를 내는 4.49톤짜리 소형 선박에 고속엔진을 3개나 장착, 40~50노트(시속 80~90㎞)로 운항할 수 있도록 개조했다. 시속 30노트에 불과한 일본 경비함정과 해군함정과 조우하더라도 따돌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이 배로 일본 경비함정의 감시를 피해, 통영에서 출항 3시간만에 규슈에 도착했다.

하지만 김씨의 범행은 오래가지 않았다. 김씨는 지난 5월 오사카의 한 쇼핑몰에서 여성의 가방을 훔친 혐의로 현지 경찰에 검거됐다. 김씨는 4월 도난 신고된 통장으로 현금을 인출하고 나오다가 다가온 우체국 직원에게 스프레이를 뿌리고 달아난 혐의도 받고 있다.

김씨가 일본 밀입국을 감행한 것은 과거 소매치기 경험을 잊지 못해서였다. 그는 2006년 4월 일본 도쿄 아라카와구 니시니포리역에서 발생한 한국 4인조 원정 소매치기단중 한명이었다. 김씨는 경찰의 불심검문에 최루스프레이를 뿌리는 등 경찰관과 시민 20여명에게 부상을 입힌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후 국내로 추방됐다. 이 사건은 일본 열도를 떠들썩하게 했고, 일본 언론은 김씨 일당을 무장 소매치기단으로 보도했다. 일본 경찰로부터 영구추방된 김씨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일본 입국이 불가능해지자 밀항을 선택했다.

한편 일본 오사카 경찰은 김씨가 밀항 과정에서 전문 조직의 도움을 받은 사실을 한국 경찰에 알렸고, 부산경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30일 당시 김씨를 태워준 최씨 등 일당 3명을 밀항단속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조사결과 브로커를 통해 모집된 밀입국 희망자는 김씨를 비롯, 8명이나 됐다. 이들은 1인당 1,500만원에서 2,000만원을 밀항 대가로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나머지 밀항자에 대해서도 체포영장을 발부 받고 지명수배를 내렸다.
<기사 출처 : 한국일보>

2015년 10월 28일 수요일

조희팔은 죽었다… “유족들 내가 봤다”



수조원대 다단계 사기를 저지르고 중국으로 밀항해 종적을 감춘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 그는 2004~2008년 전국에 20여개 다단계 업체를 차린 뒤 ‘의료기기 대여업’으로 고수익을 보장한다며 사기 행각을 벌였다. 경찰은 사기 피해액 2조5000억원, 피해자 3만여 명으로 보고 있지만 피해자들은 피해 금액이 4조원이 넘고 피해자도 4만명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씨는 2011년 12월 숨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의 생사를 둘러싼 진실 공방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지난 10일 조씨의 최측근 강태용(54)이 도피 7년 만에 중국에서 붙잡히면서 ‘생사 공방’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국민일보는 조희팔이 ‘살아있다’는 쪽과 ‘죽었다’고 주장하는 쪽의 근거를 집중 분석해봤다. 

“조희팔은 죽었다.” 

조씨 유족들은 조씨의 죽음을 직접 목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2년 5월 조씨의 사망을 발표한 경찰은 최근 공식적으로 “조씨 사망을 확신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도 여전히 조씨의 사망에 무게를 두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족들 “조희팔 죽음 내가 봤다”=조씨 유족들은 그가 사망했다고 줄기차게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20일 약물 중독으로 인해 숨진 채 발견된 조씨의 생질이자 조씨 밀항을 주도한 유모(46)씨가 생전 조씨의 죽음을 가장 강하게 주장했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외삼촌 유골을 직접 들고 왔다. (외삼촌은) 오전에 스크린골프를 치고 내연녀를 만나러 갔는데 오후 9시쯤 조선족 운전기사로부터 전화가 왔고 병원에 가보니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이미 맥박이 멈췄고 한쪽 발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고 밝혔다. 유씨는 이후에도 각종 인터뷰를 통해 조씨가 죽은 것이 틀림없다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조씨의 아들 등 유족들 역시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조씨가 죽은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유씨는 외삼촌의 살해 의혹까지 제기했었다. 평소 심장 질환을 앓은 적도 없고 돈 문제로 사업 파트너 등과 문제가 생겨 살해당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 그는 한 방송에서 같이 노래방에 있던 내연여와 조씨의 지인이 의심스럽다는 말까지 했다. 강태용보다 먼저 중국에서 잡힌 조씨 최측근 3명도 조씨가 죽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의 죽음에 대한 추측도 난무한다. “조씨의 은닉재산을 노린 중국 조직폭력배가 살해했다” “다단계 관련자들이 살해했다” 등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도 돌고 있다. 

하지만 조씨와 중국에서 함께 생활하는 등 조씨의 생사를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라던 유씨가 사망해 조씨 생존 여부에 대한 수사는 더욱 어렵게 됐다. 

◇경찰, “조씨 생존 반응이 없다”=강신명 경찰청장은 지난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아무리 중국이라고 해도 조희팔이 살아 있다면 여러 정황이 나타나야 하는데 그런 생존 반응이 3년간 없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살아 있는 사람이면 분명 누군가와 접촉하는데 그런 반응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수집한 첩보에도 별다른 것이 없었다고 한다. 


강 청장은 앞서 “조희팔이 사망했다고 볼만한 과학적 증거는 없고 외국에서 작성된 사망진단서 등으로 (사망을) 선언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며 사망에 의문점이 있다고 밝히긴 했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조씨 사망 가능성이 높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2년 조희팔의 은닉자금을 수사했던 황운하 서울지방경찰청 생활안전부장도 “조희팔 사망 가능성은 100%에 가깝다”며 조씨의 죽음을 확신했다. 

그는 “조희팔의 사망진단서와 화장증명서도 중국 현지 주재 경찰관들이 중국 공안과 의료진 등을 통해 진본임을 확인했다”며 “여러 진술과 정황 등을 토대로 의심이 필요 없을 정도로 사망이 확실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조씨 사망 당시 조사 기록도 조씨의 사망에 신빙성을 더한다고 보고 있다. 2011년 12월 19일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 한 주점에서 조씨가 급성 심근경색 증세를 보여 사망할 당시 함께 있었던 측근 3명에 대해 이듬해 5월 17~24일 조사가 이뤄졌다고 한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가라오케에서 술 먹고 노래 부르다 조희팔이 가슴 통증을 느껴 병원으로 옮겼으나 사망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조씨가 이송된 병원에도 함께 간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고혈압약을 복용하고 있던 1명을 제외한 2명에 대해 거짓말탐지기를 이용해 조사했고, 이 결과 ‘진실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경찰은 또 조씨 사망일 아들의 행적도 조씨 사망을 뒷받침한다고 보고 있다. 아들은 조씨가 숨진 날 서울 종로에 있는 한 여행사에 전화해 울먹이며 “아버지가 죽었으니 곧바로 비자와 비행기 편을 구해 달라”고 통화했다고 한다. 조씨 딸이 컴퓨터로 작성한 일기에도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슬프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가족들이 경찰 수사 방향을 예상해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위장하고 연극했다고는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기사 출처 : 국민일보>